멧가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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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종 이방원 (2021)

멧가비|2022년 5월 10일

방영 전 홍보단계에서부터 "가족을 넘어 국가로"라는 캐치프레이즈를 굉장히 강조했던 걸로 아는데, 그게 제대로 표현되었는가에 대해서는 조금 회의적이다. 아니 기본적으로 캐릭터성 빌드업도 허술한데 캐치프레이즈를 살릴 겨를은 정말 없어보이던데. 당시 대선 정국과 맞물린 국내 정치 담론 때문에라도 어느 샌가 부터 조선 태종에 대한 재평가 및 이미지 재생산 분위기가 활발해졌던 기억이 난다. 그러니까 쉽게 말해, 명분있는 칼을 뽑는 결단력 있는 리더의 아이콘으로 조선 태종이 재발굴된 셈이었는데, 뭔가 되게 자연스러운 흐름으로 그 조선 태종에 대한 드라마 제작 소식이 전해지더라. 거두절미하면, 상당부분 실패다. 가족을 숙청하면서 까지 대국적인 결단을 내릴 때의 고뇌와 딜레마, 그런 거 원했단 말이지. 그렇게 까

MCU탐구 - 대혼돈의 멀티버스, 남는 의문점

멧가비|2022년 5월 9일

스포일러 방지용- 엘리자베스 올슨은 대체 언제까지 예쁠 것인가- 레이첼 맥아담스는 대체 언제까지 예쁠 것인가, 심지어 이 누나는 나보다 나이도 많으신데- [에이전트 오브 실드]의 다크홀드와 다른 물건인가 이번에도 드라마 설정 짬시키는 건가 스포일러 방지 끝 - 웡은 닥터가 소서러 수프림일 시절에 고개 숙여 인사한 적이 있나 - 완다는 멀티버스를 통해 어나더 비전이나 피에트로를 찾을 생각은 하지 않는가 - 화이트 비전은 왜 완다를 찾아오지 않았는가 - 닥터는 완다를 설득시킬 카드로 왜 화이트 비전을 고려하지 않았는가생판 남인 오딘슨 패밀리의 거취도 감시하고 있던 닥터가 화이트 비전의 존재를 모르기는 힘들텐데 - 멀티버스의 빌리, 토미는 실제 살아있는 아이들이긴 한

파친코 PACHINKO (2022)

멧가비|2022년 5월 9일

일제의 만행을 적나라하게 고발한 사회파 장르 같은 건 아니더라. 그보다는 조금 더 보편적인 이민자 소수집단의 가족 멜로였던 점, 확실히 상업적으로는 더 잘 먹히는 플롯이고 원작이 미국에서 얻은 호응 역시 미국의 이민자 역사에 얽힌 감성을 건드렸기 때문일 것이다. 애플 TV 이전 제작사들이 백인들 이야기로 각색하고 싶어했다던 게 무슨 말인지 알겠더라. 물론 그렇다고 이야기가 가진 진정성이 없다는 뜻은 아니고. 한국인의 입장에서 보기에는 식민지 시대를 거친 재일 1세들에 관한 이야기를 하면서 진짜 날카로운 얘기는 피하고 조금 두루뭉술하게 에둘러 간다는 인상을 조금은 받는 게 사실이다. 하지만 드라마에서 느껴지는 어떤 강단이랄까, 단전에 감추고 있는 단단한 힘 같은 것이 느껴져서 다음 시즌에 조금 더 본

업로드 Upload (2020 ~ 2022) 시즌1,2

멧가비|2022년 5월 8일

우선적으로 칭찬하고 싶은 점은, 이 드라마가 중심으로 삼고 있는 소재, "복제된 자아"에 대해서 할 법한 어설픈 고민같은 것들은 일찌감치 집어치웠다는 사실이다. 유기적 뇌에 담겼던 기억이 디지털로 복제되고 다시 그것을 복제된 유기 신체에 다운로드 하는데도 이 드라마는 그 각각의 개체들을 같은 사람(자아)으로 간주한다. 장 보드리야르 선생이 무덤에서 통탄할 일이지만, 아니 그런 거 다루는 픽션 이미 많잖아요. 여기선 관둡시다. 이런 장르의 영미권 드라마들을 관심있게 섭렵했다면 누구나 눈치챌 수 밖에 없는 사실이지만, 이 드라마, [블랙 미러]를 상당히 공격적으로 벤치마킹하고 있다. 굵직한 것만 보더라도, 인간을 별점으로 평가하는 세태는 [추락] 편에서, 인간의 감정과 고통 까지 그대로 복제하는 디지털

나의 아저씨 (2018)

멧가비|2022년 5월 8일

영상을 진짜 잘 찍는다. 드라마 도입부의 겨울은 TV 화면을 뚫고 나와 내 손 까지 시리게 만든다. 그렇게 서러울 정도로 추운 겨울에서 시작해 쓸쓸함을 치유하고 결국은 화사한 봄에 마무리 되는 구조가 좋다. 기획마저 섬세하고 따뜻해. 아저씨 동훈은 모든 것을 혼자 다 짊어진 채로 자기 자신도 너무 아픈데 남의 아픔까지 봐 줄 수 있는 "어른"이고, 지안은 남들이 아프다고 주저앉을 만한 모든 일들을 작은 몸의 여력까지 쥐어 짜내 견디고 있는 야생 동물 같다. 그 둘이 만나 서로의 공허함을 발견해 준다. 공감,공감한다라는 단어가 실제로는 얼마나 무의미하고 공허한지를 역설적으로 증명하는 셈이다. 지금 당장 아프지 않은 사람은 아픔을 공감할 수 없다. 그들의 관계는 서로로 하여금 편안함과 행복의 인과관계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