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팅의 제목이 이장호 감독, 안성기/이보희 주연의 1984년 영화 <무릎과 무릎사이>를 떠올리게 해서 좀 거시기 하지만... 출발한 곳으로 차를 몰고 돌아가는 왕복 대륙횡단의 가운데가 아니라, 같은 방향으로 별개의 대륙횡단을 연달아 했던 '두 횡단의 사이 기간'에 대한 이야기라는 것을 정확히 표현하고 싶었다. LA에서 이삿짐을 싣고 무작정 미대륙을 횡단해서 북부 버지니아에 도착한 우리 부부는 다음 날부터 앞으로 살 집을 찾아 돌아다녀야 했다. 그런데...!
블로그에 올릴까말까 조금 망설였지만, 기록 차원에서 사실대로 적어보면... 8일 동안 약 5천 km의 대륙횡단을 아무 문제없이 잘 달려준 차가 바로 다음날 오후에 집을 보러 다니다가 시동이 걸리지 않는 것이었다. 주행거리 25만 km의 17년된 차를 몰고 대륙횡단을 하겠다고 할 때, 많은 분들이 여행중에 고장이 나지 않도록 기도를 해주겠다고 하셨었는데, 이렇게 대륙횡단을 마친 바로 다음날에 문제가 터진 것은... 오직 그 분들의 '기도의 힘'이라고 밖에는 설명이 되지 않는다. 할렐루야~^^
자동차는 정비소에 맡기고 우버를 타고 하루 더 집을 보러 다닌 후에 몇 군데 오퍼를 넣은 다음날, 진인사대천명이라고 했으니 홀가분하게 워싱턴DC에 놀러가기로 했다. 공항 근처 숙소에서 여기 레스톤 타운센터(Reston Town Center)까지 우버를 타고와서 점심을 먹은 후에, 최근에 새로 개통되었다는 근처 지하철 역으로 걸어갔다. (구글맵으로 위치를 보시려면 클릭)
실버라인 제일 왼쪽에 우리가 출발한 Wiehle-Reston East 역이 보이는데, 이 노선은 올여름에는 덜레스 공항을 지나서 애쉬번(Ashburn)까지 연결이 된다고 한다. 야외 승강장에서 한참을 기다려 지하철을 타고는 워싱턴 내셔널몰에 있는 Smithsonian 역이 내렸다.
DC 시내의 방공호 겸용으로 설계되어서 굉장히 깊이 만들어져 있는 지하철역에서 땅 위로 올라오니, 바로 이렇게 10년만에 보는 '연필탑' 워싱턴 모뉴먼트가 보였다. 커플셀카를 찍는데 아내가 손가락을 뾰족하게 탑처럼 세워 보이고 있다.
맞은편에는 그 해 1월에 6일에 폭도들에게 점령당했다가 20일에 바이든 대통령의 취임식이 열렸던 미국 국회의사당이 좀 특별한 느낌으로 서있었다. 박물관이나 미술관을 하나 들어가 볼까 하다가, 앞으로 이제 이 근처에 살건데 뭐... 그냥 동네사람들 처럼 커피나 한 잔 마시면서 이 여유를 즐기기로 했다.
그래서 국립미술관 야외 조각정원의 카페에서 시원한 아이스커피 한 잔을 사서 마시는 것으로 10년만의 워싱턴DC 방문은 목적달성에 충분했다. (조각정원과 또 뒤로 보이는 국립문서보관소는 최근에 방문을 해서 별도의 포스팅으로 소개될 예정임)
지하철 역 입구에 국립공원청에서 세워놓은 내셔널몰(National Mall)의 안내판을 보며 여기 있는 곳들 빨리 다 가봐야겠다고 다짐했었다. 그러나 벌써 이 때로 부터 5개월이나 지났는데 당시 마음가짐보다는 별로 많이 둘러보지 않은 것 같다... 참, 지도 제일 오른쪽에 유명한 링컨기념관이 있는데, 올해 여름부터는 아래 사진과 같이 링컨 대통령의 좌상을 돌려서 뒷면이 밖으로 보이도록 전시할 계획이라고 한다.
지난 주 4월 1일에 NPS 내셔널몰 홈페이지에 발표된 내용에 따르면 (직접 기사를 보시려면 여기를 클릭), 정동쪽을 바라보는 링컨 대통령 조각의 정면 얼굴이 지난 100년동안 햇볕에 많이 손상이 되어서, 올여름부터는 180도 돌려서 전시하여 앞뒷면이 균일하게 되도록 할 예정이라고 하니까, 여름 이후로 링컨기념관을 방문하시는 분들은 위 사진처럼 링컨의 뒷통수와 뒤쪽에서 보이는 옆모습만 감상하실 수가 있다.
레스톤 전철역과 연결된 쇼핑몰로 돌아왔는데, 통로의 지붕에도 디스플레이 패널을 붙여서 파란 하늘을 보여주는 것 보고 처음에는 정말 깜박 속을 뻔 했다.^^ 이 날 저녁에 숙소에서 이주계획의 플랜B를 가동해야 하나 고민을 하고 있는데, 판매자 한 명이 우리의 오퍼를 수락했다는 연락을 받았다.
다음날 우리의 무모한 대륙횡단 이사가 성공한 것을 기념해 북버지니아 한인타운의 페어옥스몰(Fair Oaks Mall)에 있는 일식뷔페에서 둘이 자축을 했다. 딱 맞춰서 정비소에 맡겼던 자동차도 스타팅모터 교체를 끝냈다고 찾아가라는 연락이 왔는데, 그 정비소가 우리가 앞으로 살게 될 집의 바로 근처였다.
차를 찾아서 드라이브 삼아 동네 북쪽의 알공키안 공원(Algonkian Park)에 잠시 들렀었다. 옛날 블로그에 소개한 적이 있는 로스앤젤레스 강(Los Angeles River)과는 완전히 다르게 녹색으로 우거진 나무들 사이로 흐르는 넓고 푸른 강물... 바로 버지니아와 메릴랜드의 주경계를 따라 흘러서 워싱턴으로 흘러가는 포토맥 강(Potomac River)이었다. 이제 1차 대륙횡단의 목적이었던 집계약을 완료했으니, 다음날 LA로 돌아가는 비행기표를 예약했다.
아침 일찍 새 보금자리로 와서는 봇짐을 진 상태로 저 차는 차고 앞에 세워두고, 여행용 캐리어 하나만 챙겨서는 공항으로 가는 우버를 기다리는 모습이다. 캘리포니아 번호판을 단 이삿짐 차를 2주 정도 저기에 세워뒀더니, 나중에 만난 이 동네 이웃들이 우리가 캘리포니아에서 이사온 것을 전부 알고 있더라는...^^
작년 8월에 LA에서 비행기로 보스턴 방문했다가 돌아갈 때 잠시 경유한 적이 있는 덜레스 국제공항(Dulles International Airport)인데, 이제 앞으로는 우리 버지니아 거주 가족의 허브공항이 된 셈이다.
아메리칸에어 항공사의 저 비행기를 타고 텍사스 오스틴(Austin)을 경유해서, LA의 살던 집 주차장에 세워두었던 다른 차를 가지러 로스앤젤레스로 돌아갔다.
비행기 창문 밖으로 보이는 메마른 바둑판 위의 LA 다운타운과 그 너머의 샌가브리엘 산맥... 앞으로 당분간은 다시 보기 힘들거라는 것을 알기에, 왠지 조금은 뭉클하고 울컥했던 것 같기도 하고... 오래되어서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마치 동부에서 LA에 놀러온 사람인 것처럼 "Welcome to Los Angeles" 광고판 앞에서 사진도 한 장 찍었다.^^ 우리 부부가 1차 횡단을 마치고 다시 LA로 돌아온 것을 알고는, 저녁시간이니까 와서 밥 먹고 자고 내일 출발하라는 분들이 계셨다. 하지만, 그러면 고맙고 반갑겠지만 이미 했던 이별을 또 해야 하고, 왠지 오늘밤 LA를 벗어나지 않으면 발목이 잡힐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 거절을 했던 것이니 다시 한 번 양해를 구한다.
살던 집으로 돌아가서 하나 가지고 있던 차고 열쇠로 대륙횡단 이삿짐 2호차를 찾은 후에 열쇠는 집주인에게 전달하고, 자주 다니던 동네 한인마트에 가서 김밥 2개만 사서는 바로 출발을 했다. 이 101번 고속도로를 타고 동쪽으로 조금 달리니 그 전에 살던 집으로 가는 길 표지판이 나와서 아내가 한 장 찍었다. 그렇게 2021년 10월 중순의 달 밝은 밤에 우리는 14년 동안 살았던 미서부 LA를 영영(?) 떠났다~
2시간 정도를 쉬지 않고 달려서 밤 9시반 정도에 바스토우(Barstow)의 이 숙소에서 2차 대륙횡단의 첫밤을 보내기로 했다. 비록 1호차처럼 봇짐은 지지 않았지만 저 2호차도 트렁크는 당연하고 뒷자리의 바닥부터 천정과 뒷 유리창 아래까지 이삿짐을 최대한 꼭꼭 맞춰서 쑤셔 넣었는데, 이 사진으로도 뒤쪽 차체가 아래로 많이 내려가 있는 것이 보인다. "자, 또 가로질러 보는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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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대륙을 자동차로 누가 빨리 횡단하는 지를 겨루는 '캐논볼런(Cannonball Run)'이라는 불법적이고 비공식적인 기록도전이 있다. 뉴욕 맨하탄 Red Ball Garage에서 LA 레돈도비치 Portofino Hotel까지 2,906마일(4,677 km)을 특별 개조한 차량에 보통 3명이 탑승해서 달리는데, 작년 10월에 새로 수립된 최단기록이 25시간 39분으로 전구간을 무려 110 mph, 시속 180 km라는 믿기지 않는 평균속도로 계속 달린 것이다! 위기주부가 이 도전에 참가할 생각이 있는 것은 아니니까 걱정은 접어두시고, 자동차 대륙횡단이라고 하면 보통 LA와 뉴욕 사이를 달려줘야 한다는 것을 알려드리려 했다. 같은 작년 10월에 로스앤젤레스(Los Angeles)에서 출발했던 위기주부의 첫번째 자동차 대륙횡단은 비록 뉴욕(New York)까지 가지는 않고 워싱턴DC 부근에서 끝났는데, 이제 정확히 20번째 횡단여행기인 이 마지막 글로 대미를 장식할 차례이다.
특별 개조는 고사하고, 뒷자리와 트렁크도 모자라서 지붕 위까지 이삿짐을 가득 싣고 대륙횡단에 나섰던 우리집 차가 가운데 보인다. 대륙횡단 8일째 오후에 2시간 정도 거리에 최종목적지를 남겨두고서, 또 하이킹을 하기 위해 주차를 한 이 곳은 버지니아 주의 쉐난도어 국립공원(Shenandoah National Park)의 스카이랜드 리조트(Skyland Resort) 입구이다.
스토니맨(Stony Man) 트레일이 시작되는 곳의 안내판 옆에서 아내가 손을 흔들고 있다. (구글맵으로 위치를 보시려면 클릭) 오솔길 건너편 큰 나무에 흰색과 파란색의 페인트가 세로로 길쭉한 직사각형으로 칠해져 있는 것이 보이는데, 바로 이 길이 국립공원청이 관리하는 423개의 Official Units에 독립적으로 포함되는 애팔래치안 국립경관로(Appalachian National Scenic Trail)임을 알려주고 있다.
애팔래치안 트레일(Appalachian Trail, AT)은 지도와 같이 남쪽 조지아(Georgia) 주의 Springer Mountain에서 출발해, 미동부의 14개 주를 거쳐서 북쪽 메인(Maine) 주의 Mount Katahdin에서 끝나는 총길이 약 2,180마일(3,500 km)의 등산로로 1937년에 완성되었다. 흔히 미서부를 남북으로 종주하는 PCT(Pacific Crest Trail), 대륙경계를 따라가는 CDT(Continental Divide Trail)와 함께 묶어서 '하이킹의 3관왕(Triple Crown of Hiking)'으로 불린다.
예전에 PCT를 소재로 한 리즈 위더스푼(Reese Witherspoon) 주연의 2014년도 영화 <Wild>를 소개해드린 적이 있는데, 로버트 레드포드(Robert Redford)와 닉 놀테(Nick Nolte)가 출연한 2015년 영화 <A Walk in the Woods>는 애팔래치안 트레일이 무대다. 영화는 두 분 나이와 비슷해지면 보기로 하고, 그 전에 그들이 서있는 장소로 AT 전구간에서 가장 유명한 버지니아에 있는 바위산인 맥아피놉(McAfee Knob) 등산은 빨리 해보고 싶다.
노란 낙엽이 우수수 떨어지는 가을 정취가 느껴지시나요? (왼팔로 나뭇가지를 힘껏 흔드는 중...^^)
애팔래치안 트레일의 가을 단풍을 배경으로 커플셀카도 많이 찍었다.
다른 하이커들도 많이 없고 나무줄기가 검어서 약간 으스스한 느낌도 들었지만, 공기는 상쾌했던 듯... 기억이 가물가물~
그렇게 애팔래치안 트레일을 따라서 0.4마일 정도만 걸은 후에 갈림길에서 스토니맨(Stony Man) 정상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옛말에 시작이 반이라고 했으니 그러면 절반을 더해서 AT 전구간의 50.02%를 걸은 셈인가? ㅎㅎ
등산로를 따라 걸어가면 정상 조금 아래에 있는 여기 스토니맨 룩아웃(Stony Man Lookout)이 나온다. 등산로에서는 별로 보이지 않던 사람들이 전망좋은 바위에 많이 모여있어서 약간 놀랐던 기억이 난다.
서쪽 아래로 보이는 골짜기는 동굴로 유명한 루레이(Luray) 마을이 있는 페이지 밸리(Page Valley)이고, 그 너머를 가로막고 있는 산맥은 마사누텐 마운틴(Massanutten Mountain)으로 모두 북동쪽으로 나란히 뻗어있다.
전망대 바위에서 한바퀴 돌면서 찍은 360도의 풍경을 클릭해서 동영상으로 보실 수 있다.
우리가 지나왔던 블루리지 산맥(Blue Ridge Mountains)의 쉐난도어 국립공원의 언덕들을 배경으로도 한 장~
기억하시는 분은 없겠지만 대륙횡단 여행계획 포스팅에서 목표로 했던 6개의 내셔널파크에 여기 셰넌도어는 포함되지 않았었다. 앞으로 살 집에서 2시간 거리라서 이사 후에 홀가분하게 다녀오려고 했던 것인데, 이렇게 마지막 날에 두 곳의 하이킹까지 하면서 끝내 둘러보게 되다니... V자 하고 계신 분도 참 대단하십니다!
우리 동네에 왔으니 이 하이킹도 가이아GPS로 기록을 했다. A와 T를 세로로 합친 모양의 애팔래치안 트레일 로고와 함께, 우리가 걸었던 구간을 따라서 Appalachian Trail이라고 씌여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LA에서 DC까지 7박8일 1차 대륙횡단 이야기의 마지막 포스팅이다 보니, 자꾸 출발전 계획을 세울 때가 떠오른다. 맨아래 대륙횡단 배너를 클릭하시면 그 때 계획과 함께 20편의 여행기를 모두 차례로 보실 수 있는데, 그 글의 제일 마지막에 노란 단풍이 든 숲속 두 갈래 길의 사진이 있다... 그 중에서 선택한 이 하나의 길을 따라 주차장으로 돌아가서, 1차 대륙횡단의 마지막 도착지 주소를 네비게이션에 입력했다.
그곳은 바로 북부 버지니아에서 한국분들이 가장 많이 모여사는 곳인 센터빌(Centreville) 쇼핑몰의 파리바게트 빵집이었다. (구글맵으로 위치를 보시려면 클릭) 비록 주문은 영어로 했지만, 직원과 손님들 대부분이 한국사람이라서 마치 웜홀을 통해서 순식간에 LA 코리아타운의 마당몰로 돌아간 것으로 착각이 들 정도였다. 최초의 자동차 대륙횡단은 1915년에 Erwin George "Cannon Ball" Baker가 11일 7시간이 걸렸다는데, 우리 부부의 2021년 1차 대륙횡단 '캐논볼런'은 만으로 7일 6시간이 걸렸고, 주행거리는 LA에서 뉴욕까지보다 더 긴 3,045마일인 정확히 4,900 km로 기록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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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확히 10년전에 캘리포니아 주의 로스앤젤레스(Los Angeles)에서 살고 있을 때 "LA에서 가장 가까운 국립공원(National Park)은 어디일까?"라는 질문을 던진 적이 있다. 캘리포니아에는 국립공원이 주별로는 최다인 9개나 있어서 이러한 질문이 가능했었지만, 위기주부가 작년에 이사를 온 여기 버지니아(Virginia)에서는 그런 질문 자체가 무의미하고, 대신에 이렇게 물어봐야 한다... "버지니아 주의 유일한 내셔널파크는 어디일까요?" 참, 10년전 질문에 대한 '의외의 답변'은 여기를 클릭해서 설명과 함께 보실 수 있다.
작년 10월의 대륙횡단 이사 겸 여행의 마지막 날인 8일째, 버지니아 서쪽에 81번과 64번의 두 고속도로가 만나는 스톤튼(Staunton)에서 출발해 64번 고속도로를 동쪽으로 조금 달리다가 락피시갭(Rockfish Gap)에서 빠져서, 버지니아 유일의 내셔널파크인 쉐난도어 국립공원(Shenandoah National Park)에 들어서고 있다. 남쪽 노스캐롤라이나 주에서 시작되었던 755 km의 공원도로인 블루리지 파크웨이가 그 이름만 스카이라인 드라이브(Skyline Drive)로 바뀌면서 계속 북쪽으로 이어지는 곳이다.
블루리지 파크웨이(Blue Ridge Parkway)와 그 아래 그레이트스모키마운틴(Great Smoky Mountains) 국립공원은 입장료가 없지만, 여기는 공원으로 들어가는 모든 도로에 이렇게 게이트가 만들어져서 입장료를 받고 있다. 물론 우리는 여름에 캘리포니아 래슨볼캐닉 국립공원에서 샀던, 위기주부가 미국에 와서 11번째로 구입한 연간회원권을 보여주고 그냥 통과했다.
남쪽 공원입구는 해발 580 m 정도였지만 계속 고도를 높여서 다시 1천미터가 넘어가니까, 이렇게 도로변이 다시 노랗게 물들기 시작했다. 도로 옆의 주차장에 차를 세워놓고 하이킹을 하는 사람들을 많이 볼 수 있었는데, 다음 편에 자세히 소개하겠지만 동부 산악지역을 종주하는 Appalachian Trail이 Skyline Drive를 따라서 쉐난도어 국립공원을 남북으로 지나가기 때문이다.
전체 길이 105.5마일로 약 170 km인 스카이라인 드라이브의 거의 절반을 1시간20분 정도에 쉬지 않고 달려서 빅메도우(Big Meadows) 지역의 비지터센터를 찾아갔다. 아래의 공원지도를 보시면 블루리지(Blue Ridge) 산맥을 따라서 남북으로 이어진 국립공원을 1/3씩으로 나누면서 국도 33번과 211번의 두 도로가 동서로 관통하는데, 우리는 국도 33번을 건너서 공원의 거의 가운데까지 온 것이다. 그리고 공원의 북쪽은 역시 66번 고속도로가 산맥을 가로지르는 프론트로얄(Front Royal)을 만나면서 끝나게 된다.
위와 같이 남북으로 길죽한 형상의 쉐난도어 국립공원(Shenandoah National Park)은 1935년에 만들어졌는데, 이 지역을 국립공원으로 만들려는 시도는 1900년대 초부터 시작되었지만 사유지가 많아서 계속 지연된 것이라 한다. 결국 국립공원으로 지정된 땅 안에서도 40명 정도가 한동안 계속 거주를 했고, 대부분은 조용히 이사를 나갔지만 Annie 할머니는 1979년에 92세로 사망할 때까지 마지막으로 계속 집을 지켰단다.
비지터센터의 이름인 Harry F. Byrd Sr.는 버지니아 주지사를 역임하고, 연방 상원의원으로 쉐난도어 국립공원 법안 통과를 주도했는데, 우리집 앞의 가장 큰 길인 버지니아 7번 도로도 그의 이름을 따서 해리버드 하이웨이(Harry Byrd Hwy)라 부른다. 오른편에 보이는 웃통을 벗고 도끼를 들고 있는 동상은 그 주지사님은 아니고, 대공황 시절에 동원되었던 CCC(Civilian Conservation Corps) Workers로 1995년부터 미국전역에 세워지기 시작해서 지금까지 똑같은 동상이 전국에 76개나 만들어졌다고!
당시에는 오미크론 변종 코로나 바이러스가 나오기 전이라서, 레인저들이 야외에서 방문객들 안내를 하고 실내 전시장은 폐쇄된 상태였다. 이제는 사실상 모든 사람들이 알게 모르게 오미크론에 다 걸렸는지, 미국은 실내에서도 마스크를 벗으면서 팬데믹이 거의 끝난 분위기이다.
실내 전시실은 닫았지만 기념품 가게들은 항상 문을 열었었다는...^^ 입구 위쪽에 붙여놓은 클래식한 디자인의 포스터들이 마음에 들었는데, 현재 63개 국립공원들의 모든 포스터들을 작게 모아놓은 액자같은 것을 요즘 계속 살까말까 고민중이다. 참고로 이 때 쉐난도어는 그 중에서 위기주부가 당시 38번째로 방문한 내셔널파크(National Park)였다.
아직 공식적으로 버지니아 주민등록을 한 것은 아니었지만, 우리동네 국립공원에 처음 왔으니까 트레일을 해야지~ 그래서 비지터센터 조금 북쪽에서 시작되는 다크할로우 폭포(Dark Hollow Falls) 트레일이 시작되는 곳으로 왔다. (구글맵으로 위치를 보시려면 클릭)
해발 3,490피트(1,064 m)의 주차장에서 작은 개울을 따라서 밑으로 내려가는 등산로는 노란 단풍이 하늘을 덮고 있었다.
작은 연못을 만나서 '90년대 단풍놀이 감성'을 떠올리는 포즈로 사진 한 장~ 그런데 30년전에는 없던 아랫배가...^^
약간 경사가 있는 등산로를 사진을 찍으면서 천천히 30분 정도 걸려서 내려오니, 쉐난도어 국립공원에서 가장 인기있는 하이킹 장소들 중의 하나라는 다크할로우폴(Dark Hollow Falls)을 만날 수 있었다.
바로 앞에서 광각으로 찍은 이 사진으로는 그냥 짧은 급류같아 보일 수도 있지만, 저 꼭대기에서부터 떨어지는 전체 낙차가 70피트(21 m)로 제법 큰 폭포이다. 무엇보다도 눈이 내리기 전인 10월 중순이었는데도 이 정도의 수량이 있는 것을 보면서, 동부는 확실히 서부와는 다른 기후라는 것을 떠올렸었다.
대륙횡단 여행기에서 빠질 수 없는 '중년의 커플셀카'를 이 날은 10장 이상 찍었던 것 같다...
내려왔던 길로 다시 올라가면서는 이렇게 계곡물에 손도 담궈보고,
내려오면서도 지겹게 찍었던 단풍놀이 사진을 올라가면서도 찍고 또 찍었다. 나중에 컴퓨터로 사진들을 보는데, 다 그 사진이 그 사진으로 전부 노랗기만 하더라는...^^
우리동네에 도착했다는 느낌이 들어서 그랬는지, 대륙횡단 중의 짧은 트레일을 하면서는 켜지 않았던, 가이아GPS 앱으로 이 날의 하이킹을 처음 기록했다. LA를 떠나기 직전에 마지막으로 하이킹 포스팅을 올리면서 정리해보니까, 옛날 동네에 있던 산타모니카 산맥(Santa Monica Mountains)에서만 약 50곳의 하이킹 코스를 찾아다녔던데, 새로 이사를 온 여기 북부 버지니아의 집에서도 그렇게 구석구석 돌아다닐 수 있을까? 일단 쉐난도어 국립공원은 집에서 2시간 거리라서 자주 오기는 어려울 것 같은데다, 30분 이내의 거리에는 등산을 할만한 언덕은 하나도 없고, 강이나 개울을 따라서 걷는 작은 산책로(?)들 뿐이지만... 나무에 잎이 돋고 꽃이 피는 봄이 오면 쉬운 곳들 부터 조금씩 찾아 다녀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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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10월초에 이삿짐을 싣고 캘리포니아 주 LA에서 출발한지 7일만에 버지니아 주에 도착을 했었다. 물론 목적지는 워싱턴DC와 접한 버지니아의 제일 북쪽이고, 우리는 노스캐롤라이나와 접한 남서쪽 시골 산길에서의 첫만남이었지만 말이다. 원래는 대륙횡단기 전편에 아래 환영간판 이야기만 덧붙이고 7일째는 포스팅은 하나로 끝낼까 하다가... 환영간판 말고도 이제 4개월째 살고 있는 버지니아 주에 대해서 이것저것 알아보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아서, 따로 본 포스팅으로 몇가지 시시콜콜한 이야기들을 적어본다. 그래서 이 글은 특정 장소에 대한 여행기가 아니라서, 오래간만에 '미국에 관한 도움말' 카테고리에 넣기로 한다.
그 산길로 주경계를 통과할 때 처음 보게된 "VIRGINIA IS FOR LO♥ERS"라는 정말 오글거리는 문구가 씌여진 환영간판의 사진 하나를 인터넷에서 가져왔다. 이게 어떤 느낌이었냐면 한국에서 경기도로 들어가는데, 커다한 하트와 함께 "경기도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사랑꾼을 위한 경기도"라고 써놓은 것 같았다~
옛날에는 위와 같이 벚꽃(?)이 핀 나무에 주조(state bird)인 빨간 홍관조가 앉아있는 그림의 환영간판이 사용되었다는데 (파란 바탕에 글씨가 크게 씌여있고, 같은 그림은 작게 들어간 버전도 있음), 2015년 1월에 민주당 주지사였던 Terry McAuliffe가 현재의 디자인으로 변경을 했다고 한다. (슬로건 “Virginia Is for Lovers”는 버지니아 관광청이 1969년부터 사용해왔던 문구라고 함)
많은 한국분들은 비행기로 버지니아 주에 도착하니까 주경계에 있는 이 '닭살문구'를 피할 수 있다고 생각하시면 오산이다. 대한항공이 도착하는 덜레스 국제공항(Dulles International Airport)을 나가는 도로 옆에 아주 크게, 폭설이 내리던 날씨에도 불구하고 주지사가 직접 나와서 제일 먼저 세워놓았으니까...^^ 그런데 주지사(governor) 이야기가 나왔으니, 작년인 2021년 11월 2일에 치러졌던 버지니아 주지사 선거 이야기를 잠깐 해보자~ (참고로 우리 부부는 공식적으로 11월 3일부터 버지니아 주민이 되어서 투표는 할 수 없었음)
빨간색으로 표시된 공화당의 글렌 영킨(Glenn Youngkin)이 재임에 도전한 민주당 테리 매컬리프(Terry McAuliffe)를 2% 차이로 이겼고, 같이 치러진 검찰총장과 주 하원의원 선거에서도 모조리 승리하면서 12년만에 공화당이 주정부를 탈환했다. 특이한 것은 버지니아 주 헌법은 주지사가 재임(再任)은 할 수 있어도 연임(連任)은 안 되기 때문에, 이미 2014~2018년에 주지사를 하면서 위의 환영간판을 바꿨던 Terry McAuliffe가 민주당 후보로 다시 나왔지만 공화당 정치신인에게 패했던 것이다.
선거결과 그림의 제일 위에 작게 보이던 버지니아 주기(state flag)를 크게 보여드리면, 파란 바탕에 주를 상징하는 동그란 문양(seal)이 들어있는 단순한 모습이지만 그림이 재미있다. 창을 든 '덕(Virtue)의 여신'이 폭군을 발로 밟고 서있고, 그 아래에 라틴어 "Sic semper tyrannis"라고 씌여있는데, 직역하면 "thus always to tyrants(그러므로 언제나 폭군에게는)"으로 그 뒤에 "죽음이 기다리고 있다"는 말이 생략된 셈이다. 특이한 사실은 여전사 아마조네스처럼 그려진 여신의 한 쪽 가슴이 노출되어 있어서, 미국 50개의 주깃발들 중에서 유일하게 누드화가 들어있는 깃발이라고...^^
"Sic semper tyrannis!"는 한글로 간단히 "독재자에게 죽음을!"로 많이 번역되는데, 기원전 로마에서 브루투스(Marcus Brutus)가 시저(Julius Caesar)를 암살하고 처음으로 그렇게 말했다는 전설이 있다. 위의 1864년 셰익스피어의 역사극 흑백사진에서 이 말을 들으며 칼에 찔려 죽는 시저 역할을 연기했던 제일 왼쪽에 존 부스(John Booth)가...
다음해인 1865년에 워싱턴DC의 포드 극장에서 링컨 대통령에게 총을 쏘면서 라틴어로 "Sic semper tyrannis!"라고 외쳤다는 기록이 있다. 또 대륙횡단 여행기에서 소개해드렸던 1995년 오클라호마 연방청사 폭탄테러의 범인인 티모시 맥베이(Timothy McVeigh)가 체포될 때 이 문구가 씌여진 티셔츠를 입고 있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처음에는 식민지배를 하는 영국의 폭압에 반대한다는 좋은 의도로 버지니아 주의 문양에 사용된 글이 후대에는 급진주의자들에 의해서 악용되는 이러한 일은, 아래에 또 소개할 다른 사례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다시 현실로 돌아와서, 산길을 벗어나 버지니아 주의 서쪽 경계를 따라 북동쪽으로 올라가는 81번 고속도로를 탔는데, 퇴근길 정체를 만난건지 좀처럼 속도가 나지 않았다. 결국 5시간 가까이 쉬지 않고 운전만 해서 겨우 스톤튼(Staunton)에 도착해 태국식당에서 저녁을 먹고 숙박했었다. (중간에 하나 더 구경하려다 못한 곳은 2차 대륙횡단에서 결국 방문하게 됨)
버지니아 주깃발에 이어서, 당시 꽉 막힌 고속도로 앞에 있던 자동차의 버지니아 번호판 이야기를 또 해보자~ 노란 바탕에 똬리를 틀고있는 방울뱀 아래에 "나를 밟지마라(DONT TREAD ON ME)"라고 씌여있는 특별 번호판은, 같은 그림의 개즈던 플래그(Gadsden flag)를 상징하는 것으로 미국내 11개 주가 유사한 디자인의 공식 번호판을 제공한다. 사우스캐롤라이나 출신의 독립전쟁 지도자인 Christopher Gadsden이 1775년에 만든 이 깃발은, 역시 영국에 저항하는 의미로 만들어져 초기에는 거의 미국의 국기처럼 대우를 받았고, 초창기 해병대와 해군이 유사한 깃발을 공식적으로 사용을 했을 정도이다.
하지만 1970년대부터 자유지상주의자(Libertarian)들이 개즈던 깃발을 정부에 반대하는 의미로 사용하기 시작하고, 2009년부터 극우 티파티(Tea Party) 세력도 그들의 상징으로 사용한다. 그러다가 위와 같이 2017년 버지니아 샬롯츠빌 차량돌진 사건의 원인이 된 백인우월주의자 집회에 남부연합기 및 나치깃발과 함께 뉴스에 나오면서 그 의미가 완전히 달라지게 된다. 참고로 샬롯츠빌(Charlottesville)은 앞서 보여드린 주지사 선거결과의 카운티별 득표현황 지도의 한가운데 혼자 파랗게 표시된 곳으로, 제퍼슨이 만든 버지니아 대학교(University of Virginia)가 위치해 민주당 지지율이 80%가 넘는 진보적인 교육도시이다.
급기야 작년 1월 6일의 국회의사당 습격에 트럼프 지지자들이 대거 들고 나오면서, 지금은 완전히 '극우 또라이들'의 상징으로 변절되어 버렸다. 그렇다고 개즈던 번호판을 단 오래된 짚(Jeep)의 주인이 100% 극우파나 '트럼피'라는 것은 아니고, 남부 버지니아에서는 비교적 흔히 볼 수 있는 번호판이라고 한다. 그 이유는 버지니아의 주도인 리치먼드(Richmond)가 남북전쟁 당시에 남부연합의 수도였던 만큼, 지금 위기주부가 살고있는 북부 버지니아(Northern Virginia, NOVA)의 워싱턴 메트로폴리탄 지역과는 정치문화적으로 큰 차이가 있기 때문인데, 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남북전쟁 역사공부가 필요하다.
미국 남북전쟁 말기의 전황을 보여주는 지도로 버지니아만 확대지도로 설명하는 것에서 알 수 있듯이, 그 만큼 치열하게 남북이 피를 흘리며 싸운 전쟁터들이 버지니아에 많이 있다. 더 거슬러 올라가면 1781년 독립전쟁을 승리로 이끈 요크타운(Yorktown)과 1607년에 건설된 최초의 영국 식민지인 제임스타운(Jamestown)이 모두 버지니아 동남쪽 체사피크 만의 입구에 있는데, 이러한 역사와 문화, 정치에 대해서는 앞으로 그 장소들을 방문한 후에 여행기를 쓰면서 조금씩 계속 알아보기로 하고, 이 글에서는 소위 '알쓸미잡'이라 할 수 있는 버지니아가 1등인 특이한 두 가지에 대해서만 여담으로 소개하며 끝낸다.
필립모리스에서 1968년에 세계 최초로 가늘고 긴 담배를 출시하면서 그 이름을 '버지니아슬림(Virginia Slims)'이라고 붙인 이유가 다 있었다. 식민지 시절부터 담배농장이 많이 운영되어서 지금도 미국내 담배 생산량이 1등이고, 말보로(Marlboro)를 만드는 Philip Morris의 모회사로 세계 최대의 담배회사인 알트리아(Altria)의 본사가 버지니아의 주도인 리치몬드에 있단다. 그래서 버지니아 주는 미국에서 담배 가격이 가장 싼 주로 유명해서, 말보로 1갑의 가격이 뉴욕 주의 1/3 수준이라고 한다. 하지만 위기주부가 담배는 안 피니까 이건 생계에 별 도움은 안 된다...
또 다른 1등은 미국에서 가장 번개가 많이 치는 곳이라는데, 위 사진의 로이 설리번(Roy Sullivan, 1912~1983)은 버지니아 주의 쉐난도어 국립공원에서 근무하던 1942~1977년 사이에 무려 7번이나 번개를 맞아서 기네스북에 올랐다. (레인저 모자의 윗부분이 번개를 맞아서 까맣게 탔음) 별명이 '인간피뢰침(Human Lightning Rod)'이라서 비 오는 날에는 주변 사람들이 모두 피했다고 하는데, 번개를 7번이나 맞고도 살아남은 그는 아이러니하게도 71세의 나이에 권총자살로 생을 마감했다고 한다. 이번 1등은 직접적으로 우리에게 관련이 있는데, LA에서 DC까지 1차 대륙횡단의 마지막 8일째인 다음 날에 우리가 그 쉐난도어 국립공원을 방문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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