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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랫동네 페어팩스 카운티의 센터빌에 위치한 엘레노어 C 로렌스 공원(Ellanor C. Lawrence Park) 산책
작년에 집에서 5분 거리에 새로 커다란 한인마켓도 생기기는 했지만, 그래도 아직 미장원 등은 없어서 이발을 하려면 아랫동네로 가야한다. 버지니아 최대의 신흥 한인타운인 센터빌(Centreville)에 모처럼 혼자 내려가, 종씨(宗氏)가 운영하는 카센터에서 자동차 정기검사도 받고 머리도 짧게 깍은 후에 시간이 좀 남아서, 그 북쪽에 고속도로를 품고 길게 만들어진 공원인 페어팩스 카운티의 엘레노어 C 로렌스 파크(Ellanor C. Lawrence Park)를 잠깐 들렀다. 공원 남쪽 입구의 도로변 주차장에 차를 세웠는데, 챙이 넓은 하얀 모자를 맞춰 쓴 꼬마 3명이 보호자를 따라 산책을 하는 모습이 귀여웠다. 지난 늦가을에 아내와 함께 방문했을 때는 못 본것 같은 연꽃이 넓은 연못을 가득 덮고 있었다. 연못을 가로지르는 도보다리를 건너서 공원 가운데쯤에 위치한 비지터센터까지 걸어가보기로 한다. 연못을 만드는 빅록키런(Big Rocky Run)을 건너서 트레일은 숲속으로 이어지는데, 이 개울은 계속 남쪽으로 흘러서 3년전에 예쁜 마을과 함께 소개했던 오코콴 강(Occoquan River)으로 합류해 체사피크 만으로 흐른다. 공원지도를 자세히 보면 왕복 6차선의 고속도로인 설리로드(Sully Rd)가 남북으로 관통하고 그 왼편에는 야구장과 축구장 등의 스포츠 시설이 만들어져 있다. 그리고 옛날 길인 월니로드(Walney Rd)를 기준으로 서쪽과 공원의 남쪽은 센터빌에 속하고, 도로의 동쪽 및 공원의 북쪽은 챈틀리(Chantilly, 섄틸리)이다. 녹색으로 표시된 공원의 면적은 640에이커로 직전에 소개했던 우리 동네 클로드무어 공원(Claude Moore Park)의 두 배에 가까운 넓이다. 표지판을 보고 '직진'에 가까운 왼쪽 길로 조금 걸어갔지만, 비지터센터는 오른쪽인 것을 알고 다시 돌아 나왔다. 아무래도 저 표지판을 만든 사람은 숲속 트레일을 많이 해보지 않은 분인 듯...^^ 아주 잘 관리해 놓은 월니 비지터센터(Walney Visitor Center)로, 너머에는 넓은 주차장도 만들어져 있다. (구글맵으로 위치를 보시려면 클릭) 박제와 함께 다양한 살아있는 동물들도 전시되어 있고, 안내 직원도 상주하는 제대로 된 비지터센터였다. 동부로 이사와 트레일을 하다가 몇 번 마주친 적이 있는 거북이도 있고, 이 종류보다 훨씬 큰 다른 거북이도 별도의 수조에 있었다. 그리고 정말로 숲속에서는 마주치고 싶지 않은 커다란 뱀... 이 정도 굵기는 아니지만, 조금 작은 뱀을 동네 트레일에서 본 적도 물론 있다. 옆으로는 이 지역의 남북전쟁 당시 역사와 함께 젖소들을 키우던 농장이었던 것에 대한 설명이 있고, 여름방학을 맞아서 무슨 활동에 참가한 듯한 아이들도 있었다. 건물 벽난로 위에는 마지막으로 이 땅을 1935년부터 소유했던 로렌스 부부의 초상화가 걸려있는데, 남편 David Lawrence는 당시 유명한 작가 겸 저널리스트로 지금도 전세계 대학순위 등을 매기는 것으로 유명한 잡지인 잡지를 창간한 인물이란다. 비지터센터 주변으로 옛날 농장의 모습 등을 복원해놓았지만, 꼼꼼히 둘러보기에는 날씨가 너무 무더웠기 때문에, 바로 주차한 곳으로 다시 돌아가서 근처에 있는 방앗간 건물만 잠깐 둘러보기로 했다. 로렌스 부부가 1944년에 추가로 사들인 카벨스밀(Cabell's Mill)의 현재 모습으로, 이 개울가에는 1746년부터 방앗간이 만들어졌던 기록이 남아있단다. 하지만 20세기초부터 이미 더 이상 방앗간으로 사용되지 않았기 때문에, 지난 가을 락크릭 공원에서 봤던 물레방아 등은 남아있지가 않았다. 로렌스 부부의 말년 모습으로 1969년에 아내가 먼저 사망하자, 둘이 생전에 이미 약속한데로 남편은 이 모든 땅을 1971년 페어팩스 카운티에 기증을 했고, 건물과 시설을 보수한 후인 1982년에 공식적으로 아내의 이름을 따서 엘레노어 C 로렌스 공원(Ellanor C. Lawrence Park)이 된 것이다. 지금은 공원관리소로 사용된다는 바로 옆에 있는 미들게이트 농장(Middlegate Farm)의 이 집이 부부의 숙소 겸 사교장으로 사용되었는데, 여기서 열린 파티에 당시 루즈벨트 대통령 부부가 참석을 하기도 했단다! (네바다 주 사막을 가로지르는 '미국에서 가장 외로운 도로'를 달리다 만났던 '미들게이트'의 모습을 보시려면 여기를 클릭) 걸어 나오면서 공원간판 사진 하나 찍어주고, 저 멀리 도로변에 세워둔 차로 가서, 퇴근하는 사모님 픽업을 하러 출발했다. 위에 언급했던 우리 동네 공원과 여기를 보면 정말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아니 이름만 남기는 것 같은데... 위기주부도 지극히 물욕(物慾)이 없는 편에 속하기에 아내 이름의 공원 하나 정도는 만들어 주고 싶지만, 사소한 문제는 공원부지로 기증할 땅이 없다는 사실이다.^^ 아래 배너를 클릭해서 위기주부의 유튜브 구독하기를 눌러주시면 정말 감사하겠습니다.^^

우리 동네의 작은 '센트럴파크'라 할 수 있는 클로드무어 공원(Claude Moore Park) 한여름 김밥 나들이
미서부 LA 지역에서 마지막으로 엔시노(Encino)에 살 때, 소위 '밸리의 센트럴파크'라 불리는 BTS가 뮤직비디오를 찍은 댐이 있는 공원을 아침산책으로 찾아가 소개한 적이 있다. 지금 미동부 버지니아로 이사와서 살고 있는 우리 동네에도 사방이 집과 건물들로 둘러싸인 제법 넓은 공원이 있어서, 처음으로 아주 잠깐 방문을 했던 이야기를 쓰며 제목을 이렇게 거창하게 뽑은 것 뿐이니... 특별한 기대는 하지 말고 보시기 바란다~^^ 우리집이 속하는 라우던(Loudoun) 카운티의 PRCS(Park, Recreation & Community Services) 부서에서 관리를 하고, 버지니아 주의 야생동물 보호구역으로도 지정되어 있다는 표지가 붙어있는 클로드 무어 파크(Claude Moore Park)의 환영간판이다. 오른편으로 도로변 정비를 하고있는 캐스케이드 파크웨이(Cascades Pkwy)를 거의 매일 지나다니며 간판만 3년 가까이 보다가 마침내 안으로 들어가 보는 날이었다. 위성사진으로 보면 공원의 남동쪽은 주택가, 북서쪽은 상업지구가 감싸고 있고, 우리집에서 5분 거리인 코스트코가 공원의 바로 북쪽에 보인다. 동쪽 아래의 초등학교와 그 위에 바로 붙어있는 고등학교와 커뮤니티센터를 포함해서, 비스듬히 대략 동서 1km, 남북 2km의 넓은 면적이 자연상태로 보호되고 있었지만, 코스트코의 오른쪽 주황색과 그 아래 연두색으로 보이는 구역은 최근에 아파트와 주택단지로 또 개발이 되었다. (구글맵 지도를 보시려면 클릭) 입구를 지나서 바로 주차장과 헛간 모양으로 지은 비지터센터가 나왔지만, 직원이 점심시간이라고 자리를 비워서 문은 잠겨 있었다. "그래요, 우리도 여기 점심 먹으러 왔어요~" 그래서 바로 건너편에 지붕이 잘 만들어진 단체 피크닉 시설로 향했다. 테이블 옆으로 설치된 바베큐 그릴을 보니까, 이런 곳에서 마지막으로 고기를 구웠던게 참 오래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냉동실에 작년에 남아서 얼려둔 스테이크 덩어리 2개도 있는데... 하지만 이 날 우리의 점심 메뉴는 김밥! 전날 저녁으로 싸서 먹고 남은 것을, 마침 둘 다 쉬는 날이라 꼭 밖에서 먹기로 하고, 고른 장소가 여기였던 것이다. 재료도 빠진게 많은 '냉파' 김밥 4줄을 각각 랩으로 싸와서 사진은 볼품이 없지만, 이런 풍경을 전세낸 나들이에서 먹는 김밥이 맛이 없을 수가 없었다. 문제는 이 오리 녀석... 혼자 풀을 뜯으며 바로 테이블 앞까지 다가오더니, 위기주부가 흘린 단무지 한조각 맛을 보더니 갑자기 고개를 꼿꼿이 쳐들고는 우리 부부의 먹는 모습을 계속 째려본다! 그와 동시에 무슨 텔레파시라도 날렸는지... 다른 놈들까지 갑자기 우르르 몰려와서, 마지막 김밥 몇 조각은 급하게 먹고 자리에서 일어설 수 밖에는 없었다. ㅎㅎ 그렇게 식사를 마치고 조금 안쪽으로 걸어 들어가니, 그 오리들이 떼거지로 몰려있는 작은 연못이 나왔다. 지도에 표시된 이름이 프로그섀클 폰드(Frogshackle Pond)로 직역하면 '개구리 족쇄'라는 참 특이한 뜻이다. 물가에 만들어 놓는 전망대까지 가보고 싶었지만, 많은 수의 오리들이 무섭기도 하고, 풀밭에 저 분들의 배설물로 추정되는 물체들이 너무 많아서 후퇴~ 공원 안에는 옛날 길과 건물들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는데, 공원지도에 네이쳐센터(Nature Center)라고 되어있는 이 통나무집은 1700년대 초에 이 자리에 처음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고 하며, 동서로 공원을 가로지르는 길은 베스탈갭 로드(Vestal's Gap Road)라 불렸던 식민지 시대에 만들어진 통행로로, 이 곳이 포토맥 강가의 알렉산드리아(Alexandria)에서 출발해, 올해 초에 잠깐 구경을 갔던 웨스트버지니아 찰스타운(Charles Town)까지의 중간 지점이라는 뜻이란다. 그 옆으로는 조지 워싱턴(George Washington)도 이 길을 자주 애용했다는 설명과 함께, 그가 버지니아 민병대 대령이던 1772년에 그려진 첫번째 초상화가 빛이 바래져 있다. 특히 지난 4월에 위기주부가 직접 다녀와 소개했던 펜실베니아 너세서티 요새(Fort Necessity)까지 그가 1753년부터 여러차례 행군을 했을 때도 이리로 지나갔었다고 한다. 원래 여기는 레인스빌(Lanesville)이란 마을로 1779년에 지어진 이 집은 여행자들을 위한 숙소 겸 우체국으로 사용이 되었고, 왼편 뒤쪽으로는 커다란 마굿간도 그대로 남아있다. 그래서 집 앞에 세워진 안내판에는 반가운 NPS 로고와 함께 국립공원청이 지정한 국가사적지(National Register of Historic Places)라는 설명을 볼 수 있었다. 마을 남쪽에는 비교적 최신의 농기계들이 세워진 헤리티지팜 뮤지엄(Heritage Farm Museum)을 카운티에서 운영하고 있는데 성인 5불의 입장료가 있어서 그냥 겉모습만 잠깐 구경하고 돌아섰다. 사진들을 보니까 DC 교외인 여기 북버지니아 지역이 주택가로 개발되기 전인 1900년대 중반까지 운영되던 농장의 모습을 보여주는 박물관이었다. 박물관 뒷문과 연결된 작은 체험 농장도 있어서, 어디 유아원 아이들이 견학을 와서 재잘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한여름의 낮기온이 급격히 높아져서 이만 차로 돌아가 코슷코와 다른 가게 몇 곳을 들린 후에 집으로 돌아갔는데, 여기서도 이틀 후 미국의 독립기념일 축하 행사가 열리는 모양이었다~ Dr. Claude Moore는 군의관으로 제1차 세계대전에 참전하고 돌아와 DC의 조지워싱턴 대학병원의 초대 방사선과장으로 일한 후에, 개인 클리닉을 열어서 번 돈으로 1931년부터 북버지니아에 많은 땅을 샀다. 그는 1975년에 여기를 National Wildlife Federation에 기증했는데, 그 단체가 1986년에 개발업자에 땅을 팔아버리자 무효 소송을 했지만 패소하고, 라우던 카운티가 다시 매입을 해서 1990년에 현재의 공원이 되었다. 그는 1956년에 은퇴한 후에 줄곧 이 공원 안의 집에서 살다가 1992년에 98세로 사망했는데, 그가 자신의 전재산으로 1987년에 설립한 자선재단은 지금도 활발히 운영되고 있으며, 지금까지 9천만불이 넘는 금액을 500개 이상의 비영리단체에 지원해왔단다. PS. 독립기념일에는 조촐하게 미국의 생일을 축하하는 의미로, 앞서 언급한 냉동실에 초장기로 보관되어 있던 두꺼운 스테이크를 꺼내서 오후 소나기에도 불구하고 아래와 같이 그릴에 숯불로 구워서 먹었습니다. 저녁에는 비가 그쳐서 밤새 동네 여기저기서 폭죽을 터트리는 소리가 잠결에 들렸는데, 혹시 불꽃놀이 포스팅을 기대하신 분이 계실까봐 2년전에 직접 구경했던 워싱턴DC의 독립기념일 축하 '내셔널 불꽃놀이(National Fireworks)' 관람 포스팅을 아래에 링크합니다. 위 대표사진을 클릭이나 터치하면 여러 비디오도 차례로 보실 수 있는데, 방탄소년단 BTS의 다이너마이트 노래가 당시에 히트했던 것도 새삼 다시 확인할 수 있네요~^^ 아래 배너를 클릭해서 위기주부의 유튜브 구독하기를 눌러주시면 정말 감사하겠습니다.^^

우리 동네의 작은 '센트럴파크'라 할 수 있는 클로드무어 공원(Claude Moore Park) 한여름 김밥 나들이
미서부 LA 지역에서 마지막으로 엔시노(Encino)에 살 때, 소위 '밸리의 센트럴파크'라 불리는 BTS가 뮤직비디오를 찍은 댐이 있는 공원을 아침산책으로 찾아가 소개한 적이 있다. 지금 미동부 버지니아로 이사와서 살고 있는 우리 동네에도 사방이 집과 건물들로 둘러싸인 제법 넓은 공원이 있어서, 처음으로 아주 잠깐 방문을 했던 이야기를 쓰며 제목을 이렇게 거창하게 뽑은 것 뿐이니... 특별한 기대는 하지 말고 보시기 바란다~^^ 우리집이 속하는 라우던(Loudoun) 카운티의 PRCS(Park, Recreation & Community Services) 부서에서 관리를 하고, 버지니아 주의 야생동물 보호구역으로도 지정되어 있다는 표지가 붙어있는 클로드 무어 파크(Claude Moore Park)의 환영간판이다. 오른편으로 도로변 정비를 하고있는 캐스케이드 파크웨이(Cascades Pkwy)를 거의 매일 지나다니며 간판만 3년 가까이 보다가 마침내 안으로 들어가 보는 날이었다. 위성사진으로 보면 공원의 남동쪽은 주택가, 북서쪽은 상업지구가 감싸고 있고, 우리집에서 5분 거리인 코스트코가 공원의 바로 북쪽에 보인다. 동쪽 아래의 초등학교와 그 위에 바로 붙어있는 고등학교와 커뮤니티센터를 포함해서, 비스듬히 대략 동서 1km, 남북 2km의 넓은 면적이 자연상태로 보호되고 있었지만, 코스트코의 오른쪽 주황색과 그 아래 연두색으로 보이는 구역은 최근에 아파트와 주택단지로 또 개발이 되었다. (구글맵 지도를 보시려면 클릭) 입구를 지나서 바로 주차장과 헛간 모양으로 지은 비지터센터가 나왔지만, 직원이 점심시간이라고 자리를 비워서 문은 잠겨 있었다. "그래요, 우리도 여기 점심 먹으러 왔어요~" 그래서 바로 건너편에 지붕이 잘 만들어진 단체 피크닉 시설로 향했다. 테이블 옆으로 설치된 바베큐 그릴을 보니까, 이런 곳에서 마지막으로 고기를 구웠던게 참 오래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냉동실에 작년에 남아서 얼려둔 스테이크 덩어리 2개도 있는데... 하지만 이 날 우리의 점심 메뉴는 김밥! 전날 저녁으로 싸서 먹고 남은 것을, 마침 둘 다 쉬는 날이라 꼭 밖에서 먹기로 하고, 고른 장소가 여기였던 것이다. 재료도 빠진게 많은 '냉파' 김밥 4줄을 각각 랩으로 싸와서 사진은 볼품이 없지만, 이런 풍경을 전세낸 나들이에서 먹는 김밥이 맛이 없을 수가 없었다. 문제는 이 오리 녀석... 혼자 풀을 뜯으며 바로 테이블 앞까지 다가오더니, 위기주부가 흘린 단무지 한조각 맛을 보더니 갑자기 고개를 꼿꼿이 쳐들고는 우리 부부의 먹는 모습을 계속 째려본다! 그와 동시에 무슨 텔레파시라도 날렸는지... 다른 놈들까지 갑자기 우르르 몰려와서, 마지막 김밥 몇 조각은 급하게 먹고 자리에서 일어설 수 밖에는 없었다. ㅎㅎ 그렇게 식사를 마치고 조금 안쪽으로 걸어 들어가니, 그 오리들이 떼거지로 몰려있는 작은 연못이 나왔다. 지도에 표시된 이름이 프로그섀클 폰드(Frogshackle Pond)로 직역하면 '개구리 족쇄'라는 참 특이한 뜻이다. 물가에 만들어 놓는 전망대까지 가보고 싶었지만, 많은 수의 오리들이 무섭기도 하고, 풀밭에 저 분들의 배설물로 추정되는 물체들이 너무 많아서 후퇴~ 공원 안에는 옛날 길과 건물들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는데, 공원지도에 네이쳐센터(Nature Center)라고 되어있는 이 통나무집은 1700년대 초에 이 자리에 처음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고 하며, 동서로 공원을 가로지르는 길은 베스탈갭 로드(Vestal's Gap Road)라 불렸던 식민지 시대에 만들어진 통행로로, 이 곳이 포토맥 강가의 알렉산드리아(Alexandria)에서 출발해, 올해 초에 잠깐 구경을 갔던 웨스트버지니아 찰스타운(Charles Town)까지의 중간 지점이라는 뜻이란다. 그 옆으로는 조지 워싱턴(George Washington)도 이 길을 자주 애용했다는 설명과 함께, 그가 버지니아 민병대 대령이던 1772년에 그려진 첫번째 초상화가 빛이 바래져 있다. 특히 지난 4월에 위기주부가 직접 다녀와 소개했던 펜실베니아 너세서티 요새(Fort Necessity)까지 그가 1753년부터 여러차례 행군을 했을 때도 이리로 지나갔었다고 한다. 원래 여기는 레인스빌(Lanesville)이란 마을로 1779년에 지어진 이 집은 여행자들을 위한 숙소 겸 우체국으로 사용이 되었고, 왼편 뒤쪽으로는 커다란 마굿간도 그대로 남아있다. 그래서 집 앞에 세워진 안내판에는 반가운 NPS 로고와 함께 국립공원청이 지정한 국가사적지(National Register of Historic Places)라는 설명을 볼 수 있었다. 마을 남쪽에는 비교적 최신의 농기계들이 세워진 헤리티지팜 뮤지엄(Heritage Farm Museum)을 카운티에서 운영하고 있는데 성인 5불의 입장료가 있어서 그냥 겉모습만 잠깐 구경하고 돌아섰다. 사진들을 보니까 DC 교외인 여기 북버지니아 지역이 주택가로 개발되기 전인 1900년대 중반까지 운영되던 농장의 모습을 보여주는 박물관이었다. 박물관 뒷문과 연결된 작은 체험 농장도 있어서, 어디 유아원 아이들이 견학을 와서 재잘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한여름의 낮기온이 급격히 높아져서 이만 차로 돌아가 코슷코와 다른 가게 몇 곳을 들린 후에 집으로 돌아갔는데, 여기서도 이틀 후 미국의 독립기념일 축하 행사가 열리는 모양이었다~ Dr. Claude Moore는 군의관으로 제1차 세계대전에 참전하고 돌아와 DC의 조지워싱턴 대학병원의 초대 방사선과장으로 일한 후에, 개인 클리닉을 열어서 번 돈으로 1931년부터 북버지니아에 많은 땅을 샀다. 그는 1975년에 여기를 National Wildlife Federation에 기증했는데, 그 단체가 1986년에 개발업자에 땅을 팔아버리자 무효 소송을 했지만 패소하고, 라우던 카운티가 다시 매입을 해서 1990년에 현재의 공원이 되었다. 그는 1956년에 은퇴한 후에 줄곧 이 공원 안의 집에서 살다가 1992년에 98세로 사망했는데, 그가 자신의 전재산으로 1987년에 설립한 자선재단은 지금도 활발히 운영되고 있으며, 지금까지 9천만불이 넘는 금액을 500개 이상의 비영리단체에 지원해왔단다. PS. 독립기념일에는 조촐하게 미국의 생일을 축하하는 의미로, 앞서 언급한 냉동실에 초장기로 보관되어 있던 두꺼운 스테이크를 꺼내서 오후 소나기에도 불구하고 아래와 같이 그릴에 숯불로 구워서 먹었습니다. 저녁에는 비가 그쳐서 밤새 동네 여기저기서 폭죽을 터트리는 소리가 잠결에 들렸는데, 혹시 불꽃놀이 포스팅을 기대하신 분이 계실까봐 2년전에 직접 구경했던 워싱턴DC의 독립기념일 축하 '내셔널 불꽃놀이(National Fireworks)' 관람 포스팅을 아래에 링크합니다. 위 대표사진을 클릭이나 터치하면 여러 비디오도 차례로 보실 수 있는데, 방탄소년단 BTS의 다이너마이트 노래가 당시에 히트했던 것도 새삼 다시 확인할 수 있네요~^^ 아래 배너를 클릭해서 위기주부의 유튜브 구독하기를 눌러주시면 정말 감사하겠습니다.^^

국립묘지 언덕에 있는 알링턴하우스 겸 로버트 리 기념관(Arlington House, The Robert E. Lee Memorial)
1759년에 26세의 조지 워싱턴은 한 살 많은 과부 마사 커스티스(Martha Custis)와 결혼을 하는데, 그녀의 전남편은 버지니아 최고의 부자였으나 일찍 급사를 했다. 둘 사이에는 자식이 없었고 아내가 낳은 전남편의 아들과 딸을 키웠지만, 딸은 17세에 간질로 사망하고 결혼한 아들도 1781년 요크타운 전투 직후에 4명의 자녀를 남기고 병사한다. 그래서 워싱턴 부부는 그들 중 어린 손녀와 손자를 데려와 직접 키우는데, 미국의 초대 대통령이 되면서 뉴욕과 필라델피아의 관저에서 함께 살았으며, 나중에는 유산을 상속해주기 위해 법적으로 딸과 아들로 입양을 한다. 알링턴 국립묘지의 케네디 대통령 무덤을 둘러본 후에 좁은 산책로인 Custis Walk를 따라 언덕을 오르니, 꼭대기에 누리끼끼한 색깔의 그리스 신전같은 건물이 나온다. 바로 위에 설명한 워싱턴의 양아들인 조지 커스티스(George Washington Parke Custis)가 자신이 물려받은 플랜테이션에, 워싱턴을 기리는 의미로 웅장하게 만든 알링턴 하우스(Arlington House)로 1802년에 공사를 시작했지만 1818년에야 완공되었다. 1789년에 그려진 것으로 추정되는 "The Washington Family"라는 이 그림에서 왼쪽의 남자 어린이가 조지 커스티스인데, 어릴 때는 여러모로 워싱턴의 기대에 미치지 못해서 한 때는 재혼한 친어머니 집으로 돌려보내지기도 했단다. 하지만 그는 키워주신 할아버지 워싱턴에 대한 감사와 존경을 잊지 않았기에, 성인이 되어서 땅과 재산을 물려받은 동시에 이 집을 짓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런데 자세히 보면 뭔가 좀 이상한게, 거대한 기둥이 나무계단 위에 세워져 있고, 그 바닥도 빨간 벽돌이다... 당시 의사당을 설계한 최고의 건축가를 고용해서 야심차게 공사를 시작했지만, 그는 땅과 노예만 많지 현금은 없었고 1812년 전쟁으로 물자부족까지 겹치면서, 결국은 벽돌로 지은 건물의 기둥과 벽면을 매끈하게 바른 후에 대리석처럼 보이게 칠을 한 것이란다. 뒤돌아 동쪽 아래로 내려다 보면, 국립묘지의 정문에서 이어지는 알링턴 기념교(Arlington Memorial Bridge)로 포토맥 강을 건너서 바로 링컨 기념관이 나오고, 오른편으로는 워싱턴 기념탑이 우뚝 솟아있다. (구글맵으로 위치를 보시려면 클릭) 안으로 들어가서 오른편 가족실(Family Parlor)의 좌우 벽난로 위에는 이 집에 마지막으로 살았던 부부의 초상화가 각각 걸려있다. 왼쪽이 조지 커스티스의 유일하게 장성한 자손으로 알링턴 플랜테이션을 물려받은 딸인 메리 커스티스(Mary Anna Randolph Custis)이고, 1831년에 이 집에서 그녀와 결혼식을 올린 오른쪽의 남편이 바로... 로버트 E. 리(Robert Edward Lee)로 1838년에 그려진 초상화이다. 그의 아버지도 독립전쟁에 참전했었고 1799년의 워싱턴 장례식에서 추도사를 할만큼 이미 명문가의 자제였는데, 법적으로 치자면 워싱턴 대통령의 손녀 사위가 후에 남북전쟁에서 남군을 이끌었던 리(Lee) 장군인 것이다.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한 군인이라서 결혼 후 대부분 떠돌며 살았지만, 1857년에 장인이 사망하자 유산 집행을 위해 여기로 돌아온다. 결국 1861년 남북전쟁이 발발하고 버지니아가 연방을 탈퇴하자, Lee는 이 집에서 고민을 거듭한 끝에 남군에 가담하기로 결정하고 부부가 함께 리치먼드로 떠나서 다시는 돌아오지 않았다. 식탁이 차려진 다이닝룸(Dining Room)의 벽에는 조지 커스티스의 초상화가 걸려 있는데, 그는 할아버지이자 양아버지인 워싱턴 대통령의 소지품 보존과 기념사업 등을 위해 노력했고, 역사 희곡과 책을 쓰기도 하는 등 말년까지 활발히 활동했단다. 신전같은 외관과 달리 내부는 거주용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이런 침실과 주방 등의 모습도 옛날 생활상 그대로 복원을 해 놓았다. 실내 투어코스의 마지막인 모닝룸(Morning Room)에 꾸며진 스튜디오인데, 조지 커스티스가 직접 저 그림을 그리기도 했단다. 여기서 뒷문을 통해 밖으로 나가게 되는데, 그 통로의 벽에 국립공원청이 관리하는 이 집의 공식 명칭인 알링턴 하우스, 로버트 리 기념관(Arlington House, The Robert E. Lee Memorial) 명칭이 붙어있다. 박물관 전시는 노예들의 숙소를 복원한 별도의 뒷채에 작게 만들어져 있지만 들어가 보지 않았기 때문에, 공원 홈페이지에서 사진과 그림만 몇 장 가져와서 설명을 드린다. 리 부부가 떠난 후에 이 언덕은 수도 방어를 위한 전략적 요충지였기 때문에 바로 연방군이 점령을 했고, 농장에는 자유 흑인들의 정착촌과 흑인 병사들의 훈련을 위한 군부대가 임의로 설치된다. 결국 위 사진이 찍힌 1864년에 세금체납을 이유로 공식적으로 연방정부가 이 땅을 몰수한 후에 남북전쟁에서 사망한 북군 병사들을 여기 매장하기 시작해서, 지금의 알링턴 국립묘지가 만들어진 것이다. 전후 1877년에 부부의 장남인 조지 리(George Washington Custis Lee)가 소송을 해서, 몰수가 부당했다는 대법원의 판결을 받아내었지만 이미 농장은 묘지로 바뀌어 있었고, 어차피 현금 보상을 원했던 그는 결국 15만불에 다시 모든 건물과 땅을 연방정부에 매각을 했다. 지난 5월초에 직접 방문했던 애퍼매톡스 코트하우스(Appomattox Court House)에서 남군의 항복문서에 서명한 리(Lee)가 북군 총사령관 그랜트(Grant)와 악수하는 모습의 "Let Us Have Peace" 그림이다. 부하 장군들 중의 일부가 후퇴가 불가하니 뿔뿔이 흩어져서 게릴라전을 계속하자고 제안했지만, 그는 국가가 하나로 회복되는데 수 년이 더 걸리는 무의미한 짓이라며 거부하고 깨끗한 항복을 결정했다. 그리고 그 후에도 남북의 평화와 재결합을 위해서 노력했기 때문에, 한 때 미국에 맞서 싸웠던 인물을 기리는 유일한 연방정부 지원의 국가기념관이 만들어진 것이다. 전쟁이 끝나고 그는 버지니아 렉싱턴(Lexington)의 워싱턴 대학교 총장이 되었고, 위 사진의 1869년에 대통령이 된 그랜트의 초청으로 백악관을 방문하고 이듬해 사망해서, 그의 사후에 Wasington and Lee University로 이름이 변경된 대학의 예배당 옆 묘지에 묻혔다. 남부연맹 가담자들은 전후 미국 정부에 충성을 맹세하는 사면선서(Amnesty Oath)를 제출해야만 복권이 되었는데, 리도 당연히 서명해서 우편으로 보냈지만 남부에 반감을 가진 어떤 이가 고의로 누락했단다. 그래서 이 집은 1925년부터 문화재로 관리는 되었지만 그냥 Custis-Lee Mansion으로 불리다가, 1972년에 문서보관소에서 리의 사면선서가 발견된 이후에야 공식적으로 시민권이 회복되고 현재와 같이 그의 이름이 들어간 메모리얼이 될 수 있었단다. 맨션의 남쪽에 있는 정원을 지나면 나오는 남북전쟁 무명용사묘를 잠깐 구경하고는 다시 언덕을 걸어 내려가 알링턴 국립묘지 구경을 마저 했었다. 옛날 한국에서는 청바지 브랜드로, 또 세쿼이아 국립공원에 있는 나무 이름으로 '리(Lee)'가 원래 미국에도 있는 성씨라는 것을 알았던 기억이 나는데, 그 동안 남북전쟁 관련 포스팅에 수 없이 등장했던 로버트 E. 리(Robert Edward Lee) 장군의 국립 기념관을 마침내 둘러봤고, 이로써 집에서 1시간 이내 거리에 있는 NPS Official Unit들은 빠짐없이 모두 방문한 것이 되었다. 아래 배너를 클릭해서 위기주부의 유튜브 구독하기를 눌러주시면 정말 감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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