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수도 워싱턴의 중심가에서 남쪽으로 7마일(11 km) 떨어진, 버지니아 주에 속하는 포토맥 강의 서안에 위치한 알렉산드리아(Alexandria)는 미국 독립전인 1749년에 생긴 유서깊은 마을이다. 현재는 약 16만명이 거주하는 행정구역 상 독립된 시(independent city)인데, 버지니아 주에서 가구당 평균소득이 가장 높은 도시이며, 바로 북쪽에 펜타곤이 있어서 국방부와 관련 분야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많이 거주하고 있단다. 그리고 도시의 이름은 이집트의 고대도시 알렉산드리아에서 따온 것은 아니고, 마을이 만들어질 당시에 그 땅의 소유주였던 John Alexander의 이름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하지만 도시를 내려다보는 언덕에 우뚝 서있는 이 타워는, 동명의 그 이집트 항구도시 알렉산드리아에 있었다고 전해지는 고대 7대 불가사의 중의 하나인 파로스 등대(Pharos Lighthouse)로부터 영감을 받은 것이라고 한다. 전체 높이도 333피트(101 m)로 역사학자들이 추정하는 알렉산드리아의 등대 높이와 비슷하게 만든 이 건물은, 미국의 프리메이슨(Freemason) 조직이 1932년에 완공한 조지워싱턴 매소닉 내셔널메모리얼(George Washington Masonic National Memorial)이다.
북쪽 주차장과 연결된 이 육중한 옆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면, 정면에 양복을 입은 두 명의 남성이 중앙홀로 들어가는 입구를 지키고 있었다. 내부는 유료투어로만 관람이 가능한데, 우리는 시간이 맞지 않아서 그냥 기념품 가게만 잠깐 둘러보기로 했다. (구글맵으로 위치를 보시려면 클릭)
가게의 벽에 그려진 저 그림이 당시에는 무슨 의미인지 몰랐는데, 프리메이슨은 옛날 솔로몬의 신전을 건설하는 석공(mason)들에서 자신의 기원을 찾고 있단다. 일루미나티와 함께 각종 음모론에 자주 등장하는 조직인 프리메이슨의 로고가 새겨진 옷과 각종 소품들을 일반인들도 여기서 살 수가 있고,
프리메이슨의 리더를 상징하는 앞치마(?)를 두르고 있는 미국의 초대 대통령 조지 워싱턴(George Washington)의 그림과 관련 서적 등도 판매를 하고 있었다. 이와 같이 제1대 워싱턴을 시작으로 제38대 제럴드 포드(Gerald Ford)까지 14명의 미국 대통령이 공식적으로 프리메이슨 조직원(?)이었다고 하니 막강한 비밀결사처럼 보이지만, 지금은 페이스북으로 신규 회원모집을 광고해야할 정도로 그 영향력이 점점 쇠퇴하고 있단다.
유명한 프리메이슨의 엠블럼(Emblem of Freemasonry)에 관한 그들의 설명이 왼편에 씌여있는데, 나름대로 간단히 요약하자면... 직각자(The square)처럼 똑바르게, 원을 그리는 컴파스(The compass)처럼 둥글게, 그리고 이러한 기하학(Geometry)적인 이해를 바탕으로 신(God)을 중심에 두고 살자는 뜻이란다.
안내판 아래쪽으로 그 상징을 콘크리트로 커다랗게 만들어 놓았는데, 여기서는 제대로 보이지 않으니까 잔디밭 사이로 만들어 놓은 산책로를 따라서 언덕 아래로 내려가 보기로 했다.
마지막 계단을 내려오니까 정문 간판이라고 할 수 있는 벽에 워싱턴의 얼굴 부조와 기념관 이름을 적어놓았는데, 청소를 한 지가 제법 오래되어 보였다. 특히 부조 아래의 워싱턴의 어록과 서명이 붙어있는데, 쇠로 만든 서명은 부러져서 아래 화단에 떨어져 있는 상태였다...
이 장소는 이름에 '내셔널(National)'이라는 말이 들어가지만 정부와 전혀 관계가 없는 사유지에 만들어진 기념관으로, 그 규모가 미국에서 가장 큰 곳들 중의 하나라고 한다. 그래서 비교적 최근인 2015년에 미국의 국가유적지(National Historic Landmark)로도 지정이 되었다.
기념관의 내부는 9층으로 되어있고 단순히 조지 워싱턴에 관한 전시만 있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지금도 프리메이슨 조직이 회합을 가지는 롯지(Lodge)와 특이한 벽화 및 성전기사단(Knights Templar)을 기리는 예배당 등을 볼 수 있다고 하므로, 이런 류에 관심이 있으신 분들은 투어를 해보시면 흥미가 있으실거다. 관심은 있지만 시간이 없는 위기주부는 주차장으로 돌아가서 이제 언덕 아래에 위치한 알렉산드리아 시내로 향했다.
알렉산드리아 시청 앞 광장에서 올해 처음 크리스마스 트리를 만났는데, 장식이 아직 다 안 끝난건지? 아니면 노란 전구로만 장식을 끝낸 미니멀리즘인지? 트리 장식이 아주 단순했다~^^
시청에서 강가로 뻗어있는 킹스트리트(King Street)는 식당과 가게들이 좌우로 늘어선 보행자 도로로 꾸며져 있는데, 여기 올드타운 알렉산드리아(Old Town Alexandria)에는 1700년대에 지어진 벽돌 건물들이 그대로 남아있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워싱턴을 지나서 흘러 온 포토맥 강(Potomac River)과 만나는 곳에 워터프론트 공원(Waterfront Park)이 나온다. (구글맵으로 위치를 보시려면 클릭)
작은 배들이 정박되어 있는 강물 위로 늦가을 맑은 날씨의 붉은 노을이 참 멋있었다~
사모님이 너무 웃기게 나왔다고 공개하지 말라고 하셨지만... 우리 부부가 이러면서 노는 것은 이미 다들 아시는 사실이고, 영하의 기온이 추워서 모자를 뒤집어 쓴 것 뿐이니까, 그냥 결혼 23주년 기념 나들이의 추억으로 올려놓는다.
남쪽으로는 강을 건너는 우드로윌슨 기념다리(Woodrow Wilson Memorial Bridge)가 보이고 그 뒤로 작게 회전관람차와 컨벤션센터 건물이 보이는 곳이, 작년 크리스마스 당일에 방문했었던 메릴랜드 주의 내셔널하버(National Harbor)이다. (여행기를 보시려면 여기를 클릭) 그 때 사진 왼쪽의 고층빌딩인 MGM 카지노호텔도 한 번 가보겠다고 해놓고, 벌써 1년이 다되어 가는데 아직 못 가봤으니까... 올해 크리스마스에는 저기를 가볼까?
강가를 따라 북쪽으로 조금 걸으니까 노란 수상택시(water taxi)와 선상 카지노처럼 보이는 배가 정박되어 있었다. 부두에 고급 식당들이 많이 있었지만 저녁을 먹기에는 좀 이른 것 같아서, 따뜻한 음료수 한 잔만 마시고 강가를 따라 운전해서 집으로 돌아가기로 했다.
킹스트리트를 따라 주차한 곳으로 돌아가다가 들어간 '별다방'도 벌써 크리스마스 분위기였다. 핫초콜렛을 하나 사고 운 좋게 자리가 난 작은 테이블에 앉아서 나누어 마셨는데, 아래에 인터넷에서 가져온 이 가게의 다른 내부 사진을 한 장 보여드린다.
벽난로 위에 Seaport Inn & Restaurant 간판과 함께 엄청 낡아보이는 벽과 천장이 보인다. 즉, 이 건물은 1760년대에 지어진 여관과 식당이 영업을 하던 곳으로, 아마도 미국의 스타벅스들 중에서는 가장 오래된 건물에 입점한 가게일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
다시 밖으로 나오니까 가로등과 나무에 장식한 조명이 들어와서 때 이른 연말 분위기가 팍팍 느껴졌다. 다음 날 사모님의 지시에 따라 우리 동네에서 1등으로 집밖에 크리스마스 전구를 설치해서 불을 밝혔고, 화요일 저녁에는 딸아이가 비행기를 타고 집으로 왔다. 미국에 계신 이웃분들은 모두 추수감사절 연휴 잘 보내시기 바라며, 지금 진행되고 있는 카타르 월드컵에서 한국 축구팀도 잘 싸웠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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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초에 2022년 새해 첫날의 여행기를 쓰면서, 워싱턴DC 지역은 미동부라고 해도 바다에서 뜨는 일출을 바로 볼 수는 없다고 말씀을 드렸었다. 대서양 망망대해에서 뜨는 일출을 보기 위해서는 차를 몰고 동쪽으로 3시간 정도 또는 남동쪽으로 4시간을 달려서 대양과 접한 바닷가를 찾아가야 하는데, 지난 9월말의 1박2일 여행에서 마침내 그 중 한 곳에서 숙박을 하면서, 바다에서 떠오르는 일출을 제대로 감상할 수가 있었다.
새벽 4시에 집에서 출발해서 무려 9시간반 동안 500마일, 즉 800 km 이상을 운전하면서, 미국 국립공원청이 직접 관리하는 3곳의 공원을 돌아보고 이 호텔방에 도착했을 때가 오후 5시반이었는데... 이렇게 좋은 전망의 숙소를 예약해놓고는, 쓸데없는 곳들 뺑뺑이를 돌렸다면서 엄청 구박하시던 사모님의 목소리가 아직도 들리는 듯 하다~
9층의 발코니에서 북쪽으로 내려다보는 버지니아비치(Viginia Beach) 해안의 끝이 보이지가 않는데, 정확한 근거는 모르겠지만 남북으로 뻗은 길이가 35마일(56 km)로 기네스북에 '세계에서 가장 긴 해수욕장(the longest pleasure beach in the world)'으로 이름을 올렸단다!
(그렇게 혼나고도 좋다고 웃으며 V자를 하는 그대는 혹시...?) 사진에 보이지는 않지만 남쪽으로도 계속 직선으로 뻗어있는 바닷가는 주경계를 넘어서, 이 날 오후에 자동차로 달렸던 노스캐롤라이나의 아우터뱅크스(Outer Banks)와도 연결이 된다.
피곤해서 침대에 드러눕고 싶은 유혹을 뿌리치고, 밖으로 나와서 이 곳에서 가장 유명한 곳을 찾아간다. 참고로 여기 바닷가 도시의 이름이 버지니아비치(Virginia Beach)로, 약 46만명이 거주해서 버지니아 주에서 가장 인구가 많은 '독립된 시(independent city)'라고 한다. (구글맵으로 위치를 보시려면 클릭)
커플셀카를 찍고 있으니까, 동상 바로 옆에서 폴라로이드 즉석사진을 유료로 촬영해주는 여성분이 사진을 찍어주겠다고 해서 핸드폰을 건넸었다. 사진 장사를 하시는 분이라서 그런지, 뭔가 잘 찍은 느낌이 드는 것 같기도...
버지니아비치의 상징이 된 이 킹넵튠(King Neptune) 동상은 비교적 최근인 2005년에 만들어졌는데, 왠지 포세이돈이 손에 잡은 거북이를 삼지창으로 찔러서 구워먹을 것 같다는 생각이 자꾸 들었던 것을 보면 배가 고팠었나 보다.^^
백사장에 벌써 그늘이 든 9월말의 늦은 오후였지만, 아직도 물에 들어가서 노는 꼬마들이 남쪽으로 보였고,
북쪽 해변을 따라 늘어선 호텔들 위로 날아가는 갈매기들도 사진에 담겼다. 이 풍경을 전에 어디서 본 듯해서 생각해보니... 2013년의 플로리다 여행에서 방문했던, 역시 대서양과 접한 마이애미비치(Miami Beach) 바닷가의 모습과 비슷했다.
새벽부터 뺑뺑이를 너무 심하게 돌면서 밥도 제대로 못 먹었기 때문에, 저녁은 최대한 좋은 곳에서 잘 먹기로 했는데, 예습없이 온 곳이라서 적당한 식당을 찾는게 한 참 걸렸었다.
우왕좌왕한 끝에 여기 The Atlantic on Pacific 레스토랑을 골랐는데, 갑자기 미동부에서 '태평양'이 등장을 한 이유는 남북으로 이어진 가게앞 중심가 도로의 이름이 퍼시픽애비뉴(Pacific Ave)였기 때문이다.
해산물 식당이라서 모처럼 생굴을 포함해 이것저것 시켜 맛있게 잘 먹었는데, 양이 좀 부족했던 듯한 기억이 난다.
저녁 식사를 잘 마치고 다시 바닷가로 걸어와보니, 검푸르게 어두워진 하늘에 구름들이 좀 보였다. "내일 일출을 잘 볼 수 있을까?" 그렇게 길고 긴 하루가 끝나고, 호텔로 돌아가서는 그대로 곯아 떨어졌다.
알람이 울리기도 전에 눈이 떠져서 침대에 누운 상태로 고개를 돌리니, 커튼을 통해서 대서양 바닷가의 붉은 여명이 그대로 보인다. 침대에 누워서도 일출을 볼 수 있겠다는 생각을 잠깐 했지만, 겉옷을 입고 베란다로 나가봤다.
잠결에 핸드폰을 밑으로 떨어뜨릴라~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에서 완벽한 바다일출을 볼 수 있겠다고 생각했지만,
저 멀리 수평선 부근에는 구름이 좀 있어서, 이렇게 구름 위로 떠오르는 해를 보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시야에 보이는 끝까지 구름이 전혀 없어서 해가 물 위로 떠올라야만, 옛날에 국어 고전시간에 배웠던 '의유당관북유람일기(意幽堂關北遊覽日記)'에 묘사된 것 같은 일출을 볼 수 있는데 말이다...
"일색(日色)이 조요(照耀)하며 물결의 붉은 기운이 차차 가시며, 일광(日光)이 청랑(淸朗)하니, 만고천하(萬古天下)에 그런 장관은 대두(對頭)할 데 없을 듯하더라."
줌으로 당겨보니 아직은 물결의 붉은 기운이 느껴진다~ 잠이 다 깼으니 내려가서 호텔 조식을 먹은 후에, 바로 바닷가로 잠시 나가서 구경을 하고는 다시 돌아와 체크아웃을 하기로 했다.
반바지같은 것은 전혀 가져오지 않았기 때문에, 둘 다 청바지를 무릎까지 걷어 올리고는 바닷물에 발을 담궈보기로 했다.
파도소리와 함께 버지니아비치(Virginia Beach) 바닷가를 푸른 하늘 아래에서 한바퀴 둘러본 풍경을 비디오로 보실 수 있다. 마지막에 나오는 누구의 발은 편집해서 뺄까 하다가 현장감 있는 기록을 위해서 남겨두었으니 양해를...^^
이런 사진도 한 장 들어가줘야 분위기가 살 것 같아서~ ㅎㅎ
쪼리를 들고 물 속에서 벌을 서는 모습을 움짤로 만들어 봤다.
커플셀카도 한 장... 그냥 바닷가에서 노는 모습들이라, 사진 설명을 위해 공부할 필요도 없고 정말 편하네~
이번에는 반대 방향으로 사모님 움짤인데, 파도가 세게 쳐서 바지 젖었다.
그렇게 30분 정도 놀다가 곳곳에 잘 만들어 놓은 수도에서 발을 씻은 후에 호텔로 돌아가서 체크아웃을 했는데, 내년 여름에는 정말 가족 3명이 함께 튜브(집에 있나?) 가지고 해수욕을 한 번 하러 와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1박2일 여행의 릴렉스는 이것으로 끝이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또 미국 역사공부를 해야할 장소를 3곳이나 더 들리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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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과 거의 똑같은 사계절이 있는 여기 미동부 버지니아(Virginia) 주로 작년 가을에 이사를 왔었는데... 겨울, 봄, 여름이 차례로 지나고 다시 또 가을이 되었다. 미국 와서 14년 동안 살았던 LA에서는 가을단풍을 보려면 멀리 높은 산으로 가야했지만, 여기서는 집에서 커튼만 열면 앞뒤로 온통 노랗고 빨갛다~ 그래서 굳이 단풍구경을 따로 갈 생각이 오히려 들지 않았지만, 그래도 예의상 가을이 다 가기 전에 우리 동네의 이 곳은 한 번 찾아가줘야 할 것 같아서 10월의 마지막 일요일에 느지막히 집을 나섰다.
(과속으로 붙잡히거나, 움직이며 찍은 것은 아니니까 놀라지 마시고) 경찰차 문짝에 작게 씌여진 프론트로열(Front Royal)이라는 독특한 이름의 마을까지 집에서 1시간여 걸렸는데, 단풍놀이를 나온 차들이 너무 많아서 교차로에서 경찰들이 교통통제를 하고 있었다. 십여분 걸려서 빨간불을 지나 다음 신호에서 좌회전을 하니까,
쉐난도어 국립공원(Shenandoah National Park)의 북쪽 입구를 알리는 표지판이 등장을 하고, 그 옆으로 차들이 한 줄로 길게 늘어서서 또 엉금엉금 기어가고 있었다. "늦게 나와서 이렇게 기다리는건 우리 스타일이 아닌데..."
조금 가면 나오는 Front Royal Entrance의 3개 게이트 중에서 가운데는 직원이 막고 서있어서, 이렇게 차가 많은데 왜 다 열지 않았는지 잠깐 불평을 했는데... 좌우에 줄을 선 차들 중에서 우리처럼 연간회원권이 있는 경우에는 확인 후에 바로 가운데로 앞질러 지나갈 수 있게 해주기 위해서였다. (구글맵으로 위치를 보시려면 클릭)
집앞에도 낙엽이 쌓이기 시작해서 셰넌도어에 단풍구경을 가기에는 너무 늦은 것이 아닐까 걱정했는데, 아직은 산이 많이 높지 않아서 그런지 노란 단풍길이 이뻐서 찾아온 보람이 있었다.
북쪽 입구에서 제일 먼저 나오는 안내소인 Dickey Ridge Visitor Center에 들렀는데, 이 곳은 현재 연재중인 2차 대륙횡단 이사의 마지막 날에 들러서 일몰을 봤던 장소라서, 조만간 블로그에 이 곳의 1년전 모습이 또 등장을 할 예정이다. 그 때는 지금과 반대로 아래쪽에서 올라오며 여기를 들린 후에 프론트로열 게이트로 나갔었다.
작년에 산 너머로 지는 일몰을 보며 신기해 했던 바로 그 장소에 정확히 1년만에 다시 서니까 감회가 새로웠다.
좀 늦은 단풍구경을 나온 많은 사람들과 함께 주변의 풍경을, 한바퀴 돌면서 찍은 동영상으로 보실 수 있다.
비지터센터 건물로 향하는 아내의 옆으로 인도 전통의상을 입은 여성분 3명이 보인다. 서부에서는 저렇게 입고 나들이를 나오는 사람은 못 본 것 같은데, 동부에서는 은근히 자주 보는 것 같다. 한국으로 치자면 한복을 입고 단풍놀이를 나오신거니까 1970년대의 향수를 떠올리게 해서...
갑자기 이 흑백사진이 기억이 나길래, 앨범에서 꺼내어 여기에 올려본다~ 부산 어린이 대공원...^^ 사진에 날자도 없고, 흑백이라 나무의 색깔도 알 수 없지만, 이 때도 가을이었던 것 같다.
전시실에 남북으로 길쭉한 셰넌도어 국립공원의 모형이 만들어져 있는데, 아내가 버튼을 누르자 능선을 따라 만들어진 전체길이가 약 170 km나 되는 경관도로인 스카이라인 드라이브(Skyline Drive)에 불이 들어왔다. (공원지도를 보시려면 여기를 클릭해서 1차 대륙횡단 여행기를 보시면 됨)
다시 출발해서 서쪽으로 내려다보는 전망대에 잠시 섰는데, 벌써 단풍은 피크를 지나서 갈색으로 바뀌는 듯 했다.
노란 단풍이 절정인 숲을 지날 때는 좌우로 차들이 세워져 있고, 사람들이 내려서 숲속 낙엽을 밟고 있었다. "우리집에 베란다 문만 열고 나가면, 낙엽이 저 정도 쌓여있어... 내일은 그 낙엽들 긁어서 치워야돼~"
햇살의 방향과 도로의 미세한 높낮이에 따라서 단풍이 절정인 구간도 있고, 벌써 다 떨어져서 앙상한 나뭇가지만 보이는 곳들도 있었다. 하루이틀만 더 지나면 저 노란색과 주황색의 잎들도 모두 떨어질 듯 아슬아슬했다.
산맥 동쪽을 향하는 Indian Run Overlook에서 멀리 바라보이는 언덕들도 모두 울긋불긋했다.
여기가 베스트라고 생각되어 커플셀카도 한 장 찍었는데... 사모님 머리에 뿔났다~^^
계속 남쪽으로 달리다가 고도가 좀 높은 곳에서 다시 반대방향 서쪽으로 내려다 봤는데, 언덕 너머에 통행량이 많은 81번 고속도로가 산맥과 나란히 달리기 때문인지 스모그가 땅 위로 보이는 것이 예쁜 가을풍경과 어울리지가 않았다.
원래 출발할 때는 공원 중심부까지 내려가서 짧은 트레일이라도 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거기 높은 산은 단풍도 다 지고 없을 것 같고, 날씨도 갑자기 흐려지고, 무엇보다 김밥 도시락을 안 싸왔기 때문에... 그냥 위쪽 1/3만 드라이브를 하고 여기 211번 국도와 만나는 Thornton Gap 출입구를 통해서 공원을 나가 집으로 돌아가기로 했다.
단풍구경 시기가 늦었다 보니, 거꾸로 산을 내려갈 수록 색깔이 더 진하고 아름다워졌다. "그냥 우리동네 강가에 가볼걸~"
무엇보다 이렇게 짙은 빨간색으로 물드는 나무가 많이 없다는 것이, 미국에서 단풍으로 유명한 북동부 뉴잉글랜드 지역과는 차이점이었다. 그래서 내년 가을에는 꼭 뉴햄프셔(New Hampshire)로 단풍투어를 모시고 가겠다는 약속을 하고, 한인타운이 있는 센터빌(Centreville)에 들러 자장면을 사먹고는 집으로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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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남북전쟁은 링컨 대통령의 취임 직후인 1861년 4월 12일 새벽에, 이미 연방을 탈퇴한 남부 사우스캐롤라이나 주에서 계속 연방군이 주둔하고 있던 섬터 요새(Fort Sumter)를 남군이 공격하면서 시작되었다. 하지만 일방적인 포격을 받은 요새의 지휘관이 다음 날 오후에 남군에 항복을 하고 요새를 내어주었기 때문에, 남과 북 사이에 직접적인 교전은 없었다. (북군이 철수하는 과정에서 예포를 발사하다가 대포가 폭발하는 사고로 2명이 사망하고 4명이 부상한 것이 남북을 통틀어 첫번째 인명 피해임) 본격적인 전쟁의 시작은 그로부터 약 3개월 후에 북부 버지니아에서 시작되었다.
대지가 완전히 초록으로 물들기 시작했던 지난 4월에, 버지니아 최대의 한인타운인 센터빌(Centreville)의 서쪽에 있는 게인스빌(Gainesville)에 일이 있어서 다녀오는 길에 그 두 마을의 사이에 있는 매너서스 국립전장공원(Manassas National Battlefield Park)을 방문했는데, 집에서는 30분 정도 거리이다. 국립공원청에서 관리하는 군사공원의 한 종류인 배틀필드파크(Battlefield Park)는 전적지공원 또는 전쟁터공원으로 부를 수도 있지만, 이 블로그에서는 그냥 전장공원(戰場公園)으로 한 글자 줄여서 부르기로 한다.
나무들 사이로 보이던 하얀 건물은 헨리힐 비지터센터(Henry Hill Visitor Center)이다. (구글맵으로 위치를 보시려면 클릭) 이 전쟁터는 1861년 7월 21일에 미국 남과 북의 첫번째 불런 전투(First Battle of Bull Run)가 벌어진 곳으로, 황소가 달리는 곳이 아니라 미동부에서는 물이 흐르는 개울을 '런(run)'이라고 부른다. 그래서 번역하자면 황소개울 싸움...
안내데스크 뒤로 공원의 지도가 보이는데, 우리는 비지터센터 뒤쪽 들판만 돌아보는 짧은 트레일을 했기 때문에, 전체 공원지도를 따로 보여드릴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참고로 공원 서쪽에서 이듬해인 1862년 8월에도 전투가 벌어져서, 두 전쟁터를 묶어서 하나의 국립공원으로 관리가 되고 있다. 10시가 조금 지났는데 안내영화는 11시 정각에 시작한다고 해서, 트레일을 먼저 하고와서 보기로 했다.
비지터센터 뒷문으로 나오니 푸른 초원 너머로 옛날 건물들과 기념비가 나무 난간과 함께 만들어져 있고, 그 너머로는 하얀 천막들도 많이 보였다. 무엇보다도 우리 부부가 반가워 했던 것은...
이 대포들이다~ 지난 번 게티스버그 국립군사공원(Gettysburg National Military Park)에서 대포와 사랑에 빠지신 사모님... 안 말리면 그대로 주차장까지 끌고 가서 우리 차 뒤에 붙들어 메고 집으로 가지고 가실 것 같았다.^^
대포들이 잘 나와야 한다고, 커플셀카를 몇 번이나 찍었는지 모른다. 아내가 쓰고있는 모자는 "Parents of 23"이라는 뜻인데, 정말로 내년이면 벌써 딸이 대학교 졸업이다. (미국은 한국과는 달리 입학연도가 아니라 졸업연도로 학년을 구분함)
불런 기념비(Bull Run Monument)는 4년간의 남북전쟁이 끝난 직후인 1865년에 6월에, 여기 헨리힐의 유해를 수습하는 임무를 맡았던 연방군 병사들이 3주만에 만들어서 세운 것으로, 남북전쟁과 관련된 기념물로는 최초로 만들어진 것이라고 한다.
하얀 천막이 만들어져 있던 곳에는 이렇게 옛날 복장을 하고 마차를 끌고 나와서 무슨 장사를 하시는가 했는데, 과거에서 타임머신을 타고 오신 분들은 이 두 명만이 아니었다!
각양각색의 군복을 입고 머스킷 소총을 든 19세기 남부연합군 병사들이 20여명이나 모여 있었는데, 그들을 지금 지휘하고 있는 사람은 21세기의 국립공원청 파크레인저...^^ 마침 일요일이라서 'Living History: Civilian & Infantry' 행사를 하는 것인데, 여름철에 매주 일요일마다 진행이 되는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재연배우까지는 아니지만 진지한 모습의 사람들로 왠지 자원봉사같지는 않았다. 요 근래에 뮤지컬 해밀턴(Hamilton: An American Musical)이나 넷플릭스 드라마 브리저튼(Bridgerton) 등의 역사극과 디즈니 영화에서도 인종불문 캐스팅이 유행이던데, 미국 남북전쟁 모습의 재연에 동양인도 받아줄까?
남부연합군과 함께 진군(?)하는 아내의 모습을 클릭해서 동영상으로 보실 수 있다. 비디오에서는 북소리도 나오고 마지막에는 아메리카 연합국(Confederate States of America)의 펄럭이는 깃발도 보실 수 있다.
저 분은 업무시작과 동시에 잔디밭에 드러누웠는데, 아마도 누워서 휴식하는 병사가 자신이 맡은 배역일 수도 있겠다.^^ 조금 주변을 둘러보다가 루프트레일도 다 돌지 않고, 비지터센터 근처에 있는 가장 유명한 동상을 보러 가기로 했다. 참, 이 때는 몰랐는데 11시 정각에 병사들이 머스킷(musket) 소총을 실제로 발사하는 재연행사를 했다고 하는데 직접 못 봐서 아쉬웠다~
동상으로 걸어가는 길의 나무 아래에 있던 추모비 하나... 조지아 사바나(Savannah) 출신으로 켄터키 주의 부대를 이끌고 여기 버지니아에서 싸우다가, 이 자리에서 중상을 입고 사망한 Francis S. Bartow는 남북전쟁에서 최초로 사망한 남군의 장교라고 한다.
버지니아는 물론이고 미국 남부 곳곳에서 '스톤월(Stonewall)'이라는 단어를 자주 접할 수 있는데, 바로 그 주인공이자 이 전쟁터에서 탄생한 스타라고 할 수 있는 남부연합의 토마스 잭슨(Thomas 'Stonewall' Jackson)의 동상이다. 한국에서도 뉴스 등을 통해서 본명보다는 오히려 '스톤월 잭슨'으로 더 널리 알려져 있고, 석벽(石壁) 또는 돌담 장군으로 번역해서 쓴 뉴스 기사나 글들도 많이 볼 수 있다.
동상의 반대편에는 잭슨에게 그러한 별명을 안긴 유명한 말이 씌여있는데, 북군에게 밀려서 후퇴하던 남군의 제3여단장이던 비(Barnard Elliott Bee, Jr.) 준장이 뒤쪽에 있던 버지니아 출신으로만 구성된 제1여단을 이끄는 잭슨 준장을 바라보며 아래와 같이 말했단다.
"There is Jackson standing like a stone wall. Let us determine to die here, and we will conquer. Rally behind the Virginians!"
저기 잭슨이 돌담처럼 버티고 있다. 우리가 여기서 죽기를 각오하고 싸우면 반드시 이길 것이다. 버지니아인들을 지원하자!
돌담처럼 버티고 선 잭슨이 지휘한 남군은 지원군이 올 때까지 5시간 동안 북군의 공세를 막아낸 후 반격에 성공해서 남북전쟁 첫번째 전투는 남군의 승리로 끝나게 된다. 이 후 2년 동안 '스톤월 잭슨(Stonewall Jackson)'으로 불리며 셰넌도어 계곡 등에서 전설적인 지휘관의 면모를 보여주지만, 1863년 게티스버그 직전의 챈슬러스빌(Chancellorsville) 전투가 끝난 후에 어이없는 아군의 오인사격으로 사망한다. 만약 잭슨이 살아있었다면 게티스버그 전투의 첫날에 남군이 세메터리힐을 점령해서, 최소한 게티스버그 전투의 판도는 바뀌었을 수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많다.
아내가 동상 앞에서 찍은 사진의 왼편에 멀리 보이던 이 기념물은 바로 잭슨에게 '스톤월'이라는 별명을 선사한 비(Bee)의 추모비인데, 그는 위의 말을 한 직후에 여기서 사망했다. 일설에 의하면 그가 위와 같이 말한 것은 맞지만, 자신의 부대는 전방에서 싸우는데 잭슨은 도와주러 안 오고 뒤쪽에 "돌담처럼 우두커니 서있다"고 화가 나서 한 말이었다고 한다. 믿거나 말거나~^^
몸통이 비틀어지고 위쪽도 부러진게 수령이 2백년은 넘어 보이니, 아마도 이 나무는 160년 전에 이 언덕에서 있었던 남북전쟁 최초의 전투를 직접 목격했을지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며 비지터센터로 돌아갔다.
영화시간까지 좀 남아서 전시장을 먼저 둘러봤는데, 입구에는 남군 병사들의 순진한 얼굴이 부조로 새겨져 있고, 사진 왼쪽에 처참한 흑백사진과 함께 '순수의 종말(The End of Innocence)'이라고 씌여있다. 이 말은 잠시 후에 본 무려 45분 길이의 안내영화의 제목이기도 한데, 이 첫번째 전투에서 남과 북은 각각 약 3만명의 군인들이 동원되어서 연방군 약 3천명과 남부군 약 2천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전투에 참가했던 남북의 여러 부대의 군복을 모형으로 보여주고 있는데, 당시에는 남과 북 모두 통일된 군복이 없었기 때문에 200종에 가까운 유니폼이 등장을 했다고 한다. 하지만 군복보다 더 심각한 문제는 위 사진에서도 알 수 있지만 남부연합국의 깃발이 당시 미연방 국기와 크게 다르지 않아서, 아군인지 적군인지 멀리서는 도저히 구분이 불가능했단다. 결국 이 전투가 끝나고 남부연합은 군기를 새로 만들었는데, 그것이 지금도 남부지역이나 백인우월주의자들의 집회에서 볼 수 있는 X자 모양의 남부연합기(Confederate Flag)이다.
마지막으로 1차 불런 전투의 진행상황을 보여주는 LED가 깜박이는 지도인데, 인적물적 자원이 우세했던 북군이 첫 전투에서 참패하면서, 남북전쟁은 쉽게 끝나지 않는 장기전이 된 것이다. (상세한 전쟁사를 보시려면 여기를 클릭) 이듬해인 1862년 8월에 벌어진 2차 불런 전투의 비지터센터와 기념비 등도 공원 서쪽에 따로 만들어져 있는데, 집에서 가깝기는 하지만 언제 또 방문해서 거기도 가 볼 수 있게 될지는 잘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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