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주부의 미국 여행과 생활 V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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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0 posts크리스마스 트리와 장식, 타이슨스코너 AMC 극장에서 영화 <아바타: 물의 길> 관람과 생일 축하 등
반응형 올해 미국의 크리스마스 시즌에는 겨울폭풍 엘리엇(Elliott)이 몇 십년만의 한파를 몰고왔고, 주식시장에도 산타 할아버지 대신에 녹색괴물 그린치가 와서 꽁꽁 얼어붙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여기 버지니아는 폭설은 아직 내리지 않고 겨울비만 왕창 온 후에 기온이 떨어지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주말과 겹치는 크리스마스나 연말에는 추위와 눈비 때문에 어디 다녀오기 어려울 것 같으니까, 아마도 이 글이 연말결산 포스팅 정도가 되지 않을까 생각된다. 12월이 되자마자 아내와 둘이서 크리스마스 트리를 만들었었다. 밖에서 잘 보이도록 리빙룸 창문에 딱 맞춰 세우면서, 올해는 고급스럽게 실버와 골드로만 장식을 해봤다. (거실은 원래 카페트가 깔려 있었는데, 위기주부가 직접 저 마루바닥과 몰딩을 다 깔았음) 그런데, 이게 전부가 아니다... 안쪽 패밀리룸 벽난로 옆에 만든 우리집의 두번째 트리... 이런걸 '듀얼트리'라고 한다.^^ 초여름에 중고시장에 싸게 나온 트리와 장식을 아내가 또 샀던 것인데, 살 때는 반대했지만 만들어 놓으니 괜찮은 것 같다. 집 밖에도 간단한 전구장식은 했는데, 근처에 다른 장식한 집들과 함께 소개하는 것은 내년을 기약해야 할 것 같다. 위기주부가 밥하기 귀찮아서 아내와 저녁을 먹으러 갔었던 우리동네 쇼핑몰의 화려한 연말장식이다. 겨울방학을 한 지혜가 보스턴에서 비행기를 타고 와서 공항에 마중을 나갔었다. 짐을 찾는 곳 위에 바람을 불어넣는 인형을 가져다 놓아서 한 장 찍었는데, 옛날 살던 LA 국제공항에도 이렇게 크리스마스 장식을 했었나? 기억에 없는게 아마도 그 때는 연말연시에 공항에 간 적이 없어서 그런 것 같기도 하다. 케이크를 사러 한인타운 센터빌의 파리바게뜨 빵집에 들렀었다. 오른쪽의 펭귄들은 작년에 샀던 케잌과 함께 우리집에 와서 지금도 벽난로 위에 잘 놓여져 있다. (작년에 이글루는 없었음) 그래서 이번에는 왼편에 집과 나무 장식이 있는 케익을 살까 하다가, 그냥 평범한 다른 디자인으로 골랐다. 그리고 하루 종일 겨울비가 내린 어저께, 가족 3명이 함께 북버지니아(Northern Virginia)에서 가장 유명한 쇼핑몰인 타이슨스코너(Tysons Corner)에 갔다. 이 곳은 1968년에 오픈할 당시에 세계최대의 실내 쇼핑몰이었으며, 2001년 5월에 세계최초의 애플스토어가 문을 연 장소로도 유명하다. (구글맵으로 위치를 보시려면 클릭) 우리의 첫번째 목적은 13년만에 개봉한 시리즈의 2편 영화인 을 여기 3층의 AMC 극장에서 관람하는 것이다. 영화 포스터라도 하나 있으면 크게 찍어서 홍보 좀 해주려고 했는데, 마케팅비를 2억불이나 들였다면서 커다란 조형물이나 그림은 하나도 없었고, 저 왼쪽 쓰레기통의 랩핑이 극장 안에서 유일하게 아바타와 관련된 것이었다.^^ 아내의 강력한 주장에 따라서 우리가 관람한 아이맥스(IMAX) 레이저 3D 상영관의 입구가 오른쪽에 보인다. 아이맥스 극장이 크기는 컸다~ 비싼 예매비를 들여가며 가장 중앙의 J열 가운데로 미리 예약한 자리를 찾아가는 아내와 지혜의 뒷모습이다. 예고편 상영전에 극장에서는 처음 보는 플로리다 디즈니월드 애니멀킹덤의 Pandora – The World of Avatar 광고가 나왔는데, 아마도 아바타 상영관에만 특별히 광고를 하는 것으로 생각된다. 위를 클릭하시면 우리 가족이 올해 여름휴가로 직접 판도라를 방문했던 여행기를 보실 수 있는데, 이 때 이크란을 타고 하늘을 나는 라이드를 타면서 아내와 지혜가 아바타의 팬이 되었고, 연말에 이 2편을 꼭 3D로 같이 보기로 했던 것이다. 무려 3시간 동안 판도라의 바닷속을 지겹도록(?) 구경하고 나와보니 지구의 하늘은 벌써 깜깜해졌고 배가 고파왔다. 평소같으면 여기 3층 푸드코트에서 각자 먹고싶은 메뉴를 골랐겠지만, 오늘은 특별한 날이니까... 아내와 지혜가 미리 함께 찾아둔 1층의 코스탈플랫(Coastal Flats) 레스토랑으로 향했다. 평일 저녁이었는데 큰 식당이 꽉 차서 45분 정도 기다려야 한다고 해서, 대기를 걸어두고는 생일선물을 사러 돌아다녔다. 한국에 계신 부모님과 간단히 화상통화도 식당에서 하고, 각자 주문한 메뉴가 나와서 모녀의 사진 한 장 찍어주고는 요리들을 함께 나누어 먹었다. 그리고 빗길을 운전해 집으로 돌아와 전날 사서 냉장고에 넣어두었던 케이크를 꺼내서 불을 붙였다. 케잌을 살 때 직원이 초가 몇 개 필요하냐고 해서 5개만 달라고 했더니... "어머, 아이가 다섯살인가 봐요?" "아니요, 마누라가 오십입니다." P.S. 이 자리를 빌어서 우리집 사모님의 50번째 생신을 다시 한 번 축하드리고, 올 한 해 위기주부의 블로그 방문해주신 모든 분들께도 감사드리며, 즐겁고 안전하고 따뜻하고 행복한 2022년 크리스마스와 연말을 보내시기를 바랍니다. 아래 배너를 클릭해서 위기주부의 유튜브 구독하기를 눌러주시면 정말 감사하겠습니다.^^ 반응형
주도 리치먼드(Richmond)에 있는 작지만 오래된 역사를 가진 버지니아 주청사(Virginia State Capitol)
반응형 미국에 이사와서 처음 14년을 살았던 캘리포니아 주에서는, 떠나기 1년전에야 겨우 주도인 새크라멘토를 방문해서 주청사를 구경할 수 있었는데, 당시 코로나 때문에 내부투어는 불가해서 외관만 슬쩍 구경을 했었다. (여행기를 보시려면 여기를 클릭) 그러나 작년에 이사를 온 여기 동부 버지니아의 주청사는, 1년도 되지않은 지난 9월의 남부 1박2일 여행의 마지막에 주도인 리치먼드(Richmond)를 지나며 잠깐 방문해서 내부까지 둘러보았다. 뭐, 특별히 캘리포니아보다 버지니아 주정부를 좋아한다거나 주행정에 더 관심이 있어서 그리 된 것은 아니고, 그냥 집에서 2시간 거리로 가까운 위치에 주도가 자리하고 있었기 때문일 뿐이다. 네비게이션이 알려주는데로 시내 한가운데서 고속도로를 빠져나와 일방통행 도로를 조금 더 운전하니까, 정면에 커다란 동상이 보이는 곳이 주청사라서 길가에 주차를 했는데, 종탑이 세워진 도로변의 건물은 세인트폴 교회(St Paul's Episcopal Church)라고 한다. (구글맵으로 위치를 보시려면 클릭) 캐피톨스퀘어(Capitol Square)의 첫번째 기념물로 1858년에 만들어졌다는 워싱턴 기마상을 비롯해서 주청사 건물도 보수중인지 가림막으로 많이 가려져 있었다. 뒤로 보이는 멋진 고딕 양식의 건물은 옛시청(Old City Hall)인데 역시 리모델링 중이었다. 광장 뒷마당의 중앙에 자리잡고 있는 동상은 남북전쟁 당시에 최고의 기병대 지휘관으로 평가받는 남군의 토머스 "스톤월" 잭슨(Thomas "Stonewall" Jackson)이다. 이 사람이 '돌담 장군'으로 불리게 된 연유는 여기를 클릭해서 올해 초에 집 근처 전쟁터 한 곳을 방문했던 후기를 보시면 된다. 버지니아 민권운동 기념물(Virginia Civil Rights Memorial)은 2008년에 건립되었는데, 이러한 1960년대 공민권 운동과 관련된 기념물들은 당연히 흑인에 대한 인종차별이 극심했던 미국 남부의 주들에 많이 있다고 한다. 광장 바로 옆으로 1813년부터 지금까지 200년 넘게 계속 사용되고 있어서, 미국에서 가장 오랫동안 유지되고 있는 주지사 관저라고 하는 이그제큐티브 맨션(Executive Mansion)이 자리잡고 있다. 즉, 작년에 선거로 당선이 되었던 공화당의 글렌 영킨(Glenn Youngkin) 버지니아 주지사 가족도 공식적으로 저 집에 살고있다는 뜻이다. 그 옆으로 언덕의 내리막길을 따라 만들어진 이 노란 건물은 주정부가 사용하는 사무실들이 입주한 건물이고, 여기서 뒤를 돌아서 내려온 언덕을 돌아보면 이것과 모양이 별반 다르지 않은... 하얀색의 버지니아 주청사(Virginia State Capitol)가 철망과 까만 가림막 너머로 보였다. 제2대 주지사인 토머스 제퍼슨(Thomas Jefferson)이 1780년에 주도(state capital)를 윌리엄스버그에서 리치몬드로 옮기고, 그가 프랑스 대사로 가있는 동안에 직접 설계해서 보내온 도면에 따라 1785년에 공사가 시작된 이 건물은 신대륙에 지어진 최초의 로마 신전(Roman temple) 스타일의 건축물이라고 한다. 정문으로 올라가는 계단은 철망으로 막아놓아서 여름 동안 자란 잡초가 무성했다. 안으로 들어가는 문을 찾아서 광장을 빙 돌아 왔는데, 언덕 아래에 입구가 있는 지하의 비지터센터도 폐쇄된 상태였고, 맨 처음 주차하고 걸어왔던 쪽의 옆문이 당시 유일한 출입구였다. 마주보고 있는 언덕 아래로는 바로 도로가 가로지르고 다른 건물들이 빼곡했는데, 정면에 보이는 것은 연방항소법원(US Court of Appeals)이라 적혀 있다. 한바퀴를 완전히 돌아서 다시 언덕을 올라가는 계단에서는 처음 소개했던 워싱턴 기마상의 하단부가 정면에 보이는데, 기단을 돌아가며 미국독립에 기여한 버지니아 출신 6명의 인물상이 만들어져 있다. 그 중 정면에 양팔을 벌리고 있는 사람이 미국의 독립을 논의한 1775년의 버지니아 식민지 회의에서 "자유가 아니면 죽음을 달라(Give me liberty, or give me death!)"고 포효했던 패트릭 헨리(Patrick Henry)로 이듬해 초대 버지니아 주지사에 선출된다. 내부를 구경하러 들어가기 전에 마지막으로 "Votes for Women" 깃발을 든 사람을 포함해 11명 여성의 동상이 모여있는 2019년에 만들어진 버지니아 여성 기념물(Virginia Women's Monument)을 구경했다. 400여년 전 제임스타운 시절부터 1920년에 미국 수정헌법 제19조의 통과로 여성 참정권(Women's suffrage)이 보장되기까지, 시대를 초월한 여러 여성운동가들이 한자리에 모여있는 것이다. 아담한 실내로 들어가서 가장 눈길을 끈 것은 무엇보다 이 체크무늬 바닥이었다. 월요일 오후 4시가 좀 지난 시각이었는데, 입구 경비실에 두세명을 제외하고는 돌아다니는 동안에 다른 사람은 전혀 보지 못했다는...^^ 홀 중앙에 세워진 조지 워싱턴의 대리석 조각은 당대 최고의 조각가였던 프랑스인 장-앙투안 우동(Jean-Antoine Houdon)이 직접 미국을 방문해서 워싱턴을 만나고 돌아가 제작한 원본으로, 그를 가장 정확히 묘사한 조각으로 인정을 받는다. 그래서 지금까지 이 조각으로 본을 뜬 틀을 이용한 청동상과 석고상이 공식적으로만 30개 이상 제작되어서, 미국 전역은 물론 영국 런던과 페루 리마에서도 볼 수 있다는데, 워싱턴DC의 국회의사당 로툰다와 워싱턴 기념탑 내부에서 봤던 청동상이 모두 이 대리석상의 복제품이다. 동상 뒤쪽으로 입구가 보이던 Old House Chamber는 1788년부터 1904년까지 사용된 최초의 회의실로, 1861년에 이 방에서 버지니아의 미연방 탈퇴도 결정되었던 역사적인 장소이다. 책상 위에 놓여진 메이스(Mace)는 1930년대 영국에서 만들어 버지니아 주의회에 선물한 것으로, 옛날 식민지 시절부터 이어지는 영국과 버지니아의 정치적 유대를 상징하는 것이라 한다. (실제 1700년대 초부터 영국 국왕이 임명한 식민지 총독의 권위를 상징하는 비슷한 메이스가 전해져 왔는데, 독립혁명 후에 더 이상 의미가 없으니까 그냥 팔아버렸다고 함. 지금 그 물건은 어디 있을까?) 본관 좌우로 보이던 건물은 1906년에 추가로 증축되어서 현재 사용하는 상하원 회의실이 들어서 있다. 먼저 주하원 회의실인데 좌우 책상에 지키는 사람은 없었지만 이 때는 그냥 여기서 멀직히 한 번 바라보고 돌아섰고, 반대편 주상원 회의실은 잠긴 문까지 걸어가서 유리창 너머로 연단과 내부를 둘러봤다. 미국 연방이야 50개 주의 인구수 차이에 따른 문제 등으로 상원과 하원의 양원제를 하는 것이 이해되지만, 각각의 주들도 상원과 하원이 따로 있는게 그냥 멋있게 보여서 따라 하는건지? 아니면 다른 구체적인 이유가 있는건지? 윗층의 사각형 발코니 벽에는 역대 주지사들의 초상화가 빙 돌아가며 걸려있고, 주지사실(Governor's Office)이 정문 위쪽으로 중앙에 만들어져 있었다. 그리고 밖에서는 보이지 않았지만 작고 동그란 돔 형태의 지붕 가운데에 채광창이 만들어져 있는 것도 특이했다. 이렇게 현재 살고 있는 주의 스테이트하우스(statehouse) 구경을 후다닥 마치고 북쪽으로 2시간여 운전해 집으로 돌아가는 것으로 1박2일의 남부 버지니아 여행을 마쳤다. 갯수 정리하기 좋아하는 위기주부가 그냥 넘어갈 수는 없으니... 여기가 블로그에 소개된 미국의 6번째 주청사이다. (내부까지 들어가본 것으로는 뉴멕시코 산타페(Santa Fe)와 캔사스 토피카(Topeka)에 이어서 3번째) 그런데 집에서 차로 3~4시간 거리에 아직 직접 보지 못한 다른 주의 청사가 6개나 더 있고, 코네티컷과 로드아일랜드의 주도는 차로 그냥 지나갔던 경우도 많아서, 아마도 조만간에 그 중 몇 곳은 외관만이라도 블로그에 더 등장을 하게될 것 같다. 아래 배너를 클릭해서 위기주부의 유튜브 구독하기를 눌러주시면 정말 감사하겠습니다.^^ 반응형
미동부에서 가장 놀라운 자연경관 중의 하나로 생각되는 버지니아 주의 내츄럴브리지(Natural Bridge)
반응형 옛날에 미국 출장와서 처음 만났던 요세미티 폭포, 이민 전 미국여행에서 마주한 그랜드캐년 협곡, 그리고 LA로 이사와서 둘러본 세쿼이아 나무와 데스밸리 사막 등등 미서부에는 놀라운 자연경관들이 가득한 반면에, 작년에 이사 온 미동부에는 그렇게 눈이 휘둥그래지는 자연적인 풍경들을 찾기 어렵다. 넓게 봐줘서 미동부라 할 수 있는 나이아가라 폭포 정도가 그러한 곳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는데 자주 가기에는 좀 멀다. 이제 소개하는 버지니아(Virginia) 주에 있는 이 곳이 규모는 작지만, 자연적인 풍경으로는 지난 1년 동안 미동부에서 여행한 곳들 중에서 가장 놀라움을 우리에게 선사했던 곳이다. 2차 대륙횡단 이사의 마지막 날 오후, 웨스트버지니아에서 I-64를 동쪽으로 달려 버지니아로 들어와서 I-81을 만난 후에, 최종 목적지와는 반대방향인 남서쪽으로 15분 정도를 거슬러 운전해서 내츄럴브리지 주립공원(Natural Bridge State Park)에 도착을 했는데, 건물이 참 "남부스럽다"는 생각이 들었던 기억이 난다. (구글맵으로 위치를 보시려면 클릭) 버지니아 주에서 첫번째로 방문하는 주립공원 비지터센터의 내부는 다소 황량한(?) 느낌이었는데, 아마도 이 건물은 원래 호텔이나 연회장 용도로 지어졌던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사진찍는 아이들 옆에 적힌 공원 이름의 아래에는 여기가 '국립공원청과 제휴한 곳(Affiliated Unit of the National Park Service)'이라고 되어 있다. 이 곳은 토머스 제퍼슨을 시작으로 200년 이상 개인소유의 관광지로 운영이 되다가, 상당히 최근인 2016년에야 연방정부 NPS의 도움을 받아서 버지니아 주립공원으로 지정이 되었다고 한다. 당시 1인당 $9의 입장료를 냈는데, 주립공원이 되면서 가격이 많이 내려간 것이라 한다. 표를 사서 비지터센터의 옆문으로 나와 계곡 아래로 조금 걸어서 내려가야 하는데, 평일이라서 그런지 저 게이트나 다 내려가서도 표를 검사하는 사람은 없었다. 이 내려가는 트레일이 버지니아 주의 공원부(Department of Conservation and Recreation, DCR)에서 관리하는 Cave & Karst Trail의 일부인 모양이었다. 14년을 살았던 캘리포니아에서는 약 280개의 주립공원 중에서 56개를 방문했었는데, 여기 버지니아에서는 이 곳을 시작으로 과연 몇 곳의 주립공원을 방문하게 될까? (홈페이지에 따르면 버지니아 주에는 현재 41개의 스테이트파크가 있다고 함) 작은 강까지 내려오면 커다란 설명판이 하나 세워져 있는데 확대하면 직접 모두 읽으실 수 있다. 지질학적 설명이나 원주민 전설은 생략하고, 가장 흥미있는 내용들을 알려드리면... 1750년에 젊은 조지 워싱턴(George Washington)이 탐험대의 일원으로 이 곳을 방문해 바위에 그의 이니셜 "G.W."를 새겨놓은 것이 아직도 남아있으며, 1774년에 토머스 제퍼슨(Thomas Jefferson)이 당시 모든 임자없는 식민지 땅의 주인이라 할 수 있는 영국 King George III로부터 다리와 주변 땅을 20실링에 구입하는 계약을 체결하면서 이 '절묘한(sublime)' 암석육교의 첫번째 개인 소유주가 된 것이다. 무심코 설명판을 지나 강가에서 이 풍경을 처음 봤을 때, 저 위에 떠있는게 '자연적(natural)'으로 만들어졌다는 사실이 한동안 믿기지가 않았다. 정신을 차리고 대륙횡단 여행지에서 빠질 수 없는 커플셀카 한 장 찍고는 조금 더 가까이 걸어가봤다. 단단한 석회암(limestone)으로 만들어진 아치는 떠있는 높이가 215피트(66 m)에 그 걸쳐진 길이도 90피트(27 m)에 이른다. 가장 놀라운 사실은 저 위로 아스팔트로 포장된 왕복 2차선의 미국 11번 국도인 Lee Highway 자동차 도로가 만들어져 있어서, 매일 수 많은 자동차들이 지나다니는 진짜 '다리(bridge)'로 이용된다는 것이다! 내츄럴브리지 아래를 지나와서 역광인 반대편에서 바라 본 모습인데, 바로 아래에서 올려다 보는 광경은 나중에 소개할 동영상을 클릭해서 보시면 된다. 제임스 강의 지류인 시더크릭(Cedar Creek)을 건너오면 넓은 공간에 굉장히 많은 벤치들이 만들어져 있다. 1927년에 당시 캘빈 쿨리지(Calvin Coolidge) 대통령이 참석해서 전기조명 점등식이 열렸는데, 단순한 조명이 아니라 성경 창세기 내용을 상징하는 라이팅쇼(lighting show)였다고 하며, 설비와 내용은 바뀌었지만 지금도 밤에 조명쇼가 진행되어서 미국에서 가장 오래 이어지는 기록을 가지고 있단다. 그 벤치에 아내가 앉아서 쉬는 동안에 내츄럴브리지의 바로 아래까지 걸어가면서 천천히 구석구석을 찍은 동영상을 클릭해서 보실 수 있다. 눈이 좋으신 분은 앞서 이야기했던 워싱턴이 약 7미터 높이에 새겨놓았다는 "G.W." 이니셜을 한 번 찾아보시기 바란다. 다시 처음 봤던 쪽으로 돌아와서 올려다 보는데, 정말 이 놀라움은 유명한 미서부 아치스 국립공원의 델리키트아치나 또는 공원의 이름 자체가 내츄럴브리지 준국립공원(Natural Bridge National Monumet)인 곳의 '브리지 삼총사'에 비해서도 결코 뒤지지가 않았다. 그래서 잘 안하는 짓인, 나가다 말고 다시 앉아서 멍때리기를 잠시 시전했다.^^ 서부의 자연경관이 널리 알려지기 전인 1800년대 초반에는 나이아가라 폭포와 더불어 북미대륙에서 가장 유명한 볼거리로 많은 풍경화에 등장하기도 했으며, 허먼 멜빌의 소설 에도 "a high arch, like Virginia's Natural Bridge"라는 비유가 등장을 한단다. 주차장에서 바라보이는 야트막한 언덕에는 지금도 운영을 하는 내츄럴브리지 호텔(Natural Bridge Hotel)이 위용을 자랑하는데, 이처럼 200년 이상 관광지로 개발이 된 곳이라서 주변에 작은 동굴과 동물원 등 잡다한 볼거리들이 많이 만들어져 있다. 하지만 11월의 짧은 해가 금방 떨어지기 전에 여기서 3시간 거리의 최종 목적지에 도착하는 것이 좋을 것 같아서, 인터스테이트 81번 고속도로에 다시 차를 올렸다. 그렇다고 도중에 자리잡고 있는 국립공원을 그냥 지나칠 수는 없는 일이라서, 석양의 드라이브를 할 대륙횡단의 마지막 관광지를 잠시나마 들렀다 가기로 했다. 아래 배너를 클릭해서 위기주부의 유튜브 구독하기를 눌러주시면 정말 감사하겠습니다.^^ 반응형
제임스타운과 요크타운 등 미국 식민지시대의 시작과 끝이 모여있는 콜로니얼(Colonial) 국립역사공원
반응형 1607년 5월 13일에 대서양을 건너서 신대륙 버지니아 식민지(Colony of Virginia)의 작은 섬에 도착한 영국인들이 그 곳에 처음으로 성공적인 정착촌인 제임스타운(Jamestown)을 만들었다. 그로부터 약 174년 후인 1781년 10월 19일에 거기서 동쪽으로 불과 약 20 km 정도 떨어진 요크타운(Yorktown)에서, 5년전에 독립을 선언한 미국과 이를 돕는 프랑스의 연합군이 식민지배를 이어오던 영국군의 항복을 받아내며 독립혁명의 종지부를 찍는다. 이렇게 미국 역사에서 식민지 시대(Colonial Era)의 시작과 끝을 상징하는 두 장소와 함께, 그 두 곳을 연결하는 옛날 도로를 묶어서 국립공원청이 콜로니얼 국립역사공원(Colonial National Historical Park)으로 관리하고 있다. 그 제임스타운 섬(Jamestown Island)과 요크타운 전쟁터(Yorktown Battlefield), 그리고 둘을 이어주는 콜로니얼 공원도로(Colonial Parkway)를 함께 보여주는 국립역사공원의 지도이다. 우리는 남쪽에서 64번 고속도로를 따라 올라오면서 요크타운을 먼저 들렀는데, 결론부터 말하자면 예습부족 및 시간부족 등의 이유로 가장 중요한 기념물이나 동상 등은 모두 직접 보지를 못하고, 그냥 여러 비지터센터만 잠깐씩 들러서 분위기 파악에 그친 방문이었다. 요크타운 배틀필드 비지터센터에 도착을 하니 파란색 트롤리 버스가 사람들을 태우고 있었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볼거리인 요크타운 승전기념비(Yorktown Victory Monument)는 저 셔틀을 타거나 차를 몰고 시내로 들어가야 볼 수 있는 것을 당시에는 몰랐었다. 레인저에게 중요 포인트를 물어보지도 않았던 것을 생각하면, 남부 버지니아 1박2일 여행에서 무려 5번째로 방문하는 국립공원청의 비지터센터라서 아마도 긴장이 풀어졌었나 보다~ (구글맵으로 위치를 보시려면 클릭) 기다란 복도를 지나오면 미국 독립군의 총사령관인 워싱턴(Washington)과 프랑스 원정군의 사령관인 로샹보(Rochambeau), 그리고 그들에게 항복을 한 영국의 콘월리스(Cornwallis) 장군의 배너가 걸려있다. 그 아래 놓여진 대포의 파랗게 녹이 슨 포신은 "Lafayette Gun"으로 불리는데, 실제 요크타운 전투 당시에 라파예트(Lafayette)가 이끈 부대가 노획한 영국의 대포로, 미군이 재사용 후 보관하다가 여기에 전시된 것이란다. 전시실에는 워싱턴의 야전막사를 재현해 놓았는데, 그 입구의 높이를 일부러 워싱턴의 키와 같은 6피트 2인치(188 cm)로 만들어 놓고는, 당신이 워싱턴보다 크다면 머리를 조심하라고 안내판을 세워 놓았다. 그리고 로샹보가 프랑스에서 타고 온 군함의 내부도 구경하고는, 제법 긴 길이의 요크타운 전투에 관한 안내영화를 잘 관람한 후에 기념품가게(Museum Shop)로 들어갔다. 많은 책들 중에 여기 요크타운의 또 다른 주인공인 해밀턴(Hamilton)의 이름과 얼굴이 많이 보인다. 특히 오른편 아래에 쌓아놓은 노란색의 엄청나게 두꺼운 책이 바로 린-마누엘 미란다(Lin-Manuel Miranda)가 우연히 읽고나서 뮤지컬 을 만들게 되었다는 바로 그 책이다. 2017년에 LA에서 관람하고 뮤지컬을 소개한 내용을 클릭해서 보실 수 있다. 요크타운에서 독립혁명을 승리로 끝내는 장면을 묘사한 "Yorktown (The World Turned Upside Down)" 노래를 시작하면서, 해밀턴과 라파예트가 손을 잡으며 아래의 대사를 하는 그 실제 역사의 현장에 잠시 들렀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만족한다. "Immigrants, we get the job done." 지난 봄에 방문했던 게티스버그 국립군사공원(Gettysburg National Military Park)을 생각하며 자동차로 배틀필드투어(Battlefield Tour) 코스를 돌아보았지만, 큰 전투 없이 영국이 바로 항복을 해서 그런지 그 때처럼 많은 대포나 동상 등을 볼 수는 없었고, 유일하게 잠시 차를 세웠던 여기는 Moore House라고 항복협상이 벌어졌던 장소라고 한다. 이제 워싱턴과 로샹보가 여기 요크타운으로 마지막 진군을 해왔던 옛날 길을 따라서 윌리엄스버그로 향한다. 요크타운-윌리엄스버그-제임스타운을 잇는 길이 23마일의 콜로니얼 파크웨이(Colonial Parkway)는 국립공원청이 직접 관리하는 미국 전역에 11개뿐인 공원도로들 중의 하나이지만, 독립적인 유닛은 아니고 처음 설명처럼 콜로니얼 국립역사공원의 일부로 포함된다. 월요일이라 사모님은 조수석에서 '업무'에 바쁘셨기 때문에, 당시와 가장 비슷한 느낌의 사진을 한 장 가져왔다. 도로는 속도를 내지 못하도록 일부러 거친 자갈 콘크리트로 포장을 해놓고, 바닥에 아무 표시도 해놓지 않아서, 나무에서 떨어져 가운데 모인 낙엽들이 중앙선을 대신하고 있었다. 무엇보다 교차하는 일반 도로를 사진처럼 빨간 벽돌의 고가차도로 지나가도록 해놓아서 정말로 운전하는 내내 공원을 지나가는 특별한 느낌이었다. 점심도 먹어야되고 해서 윌리엄스버그 마을의 입구에서 인터체인지를 나와 Colonial Williamsburg Regional Visitor Center를 찾아왔는데 주차장이 정말 어마어마하게 넓었다. 길을 따라가면 이렇게 커다란 비지터센터 건물이 나오는데, 쉽게 간단히 설명을 하면... 윌리엄스버그 마을의 구시가지 전체를 식민지 시대를 재현한 '민속촌'으로 만들어 놓았으니, 여기에 차를 세워두고 유료 셔틀버스를 타고가서 구경을 하라는 것이었다. 인디언들에 의한 학살로 제임스타운을 떠난 백인들이 1632년에 여기 윌리엄스버그(Williamsburg) 마을을 만들었고, 1600년대 말부터 약 백년 동안 사실상 버지니아 식민지의 수도 역할을 한 곳이다. 특히 구시가지와 캠퍼스가 붙어있는 윌리엄&메리 대학(College of William & Mary)은 1693년에 개교해서 미국에서 두번째로 오래된 대학으로 제퍼슨(3대), 먼로(5대), 타일러(10대)의 미국 대통령 3명을 배출하기도 했다. "그럼, 미국에서 제일 첫번째로 오래된 대학은 어디?" 처음 지도에서 약간 붉게 표시된 콜로니얼 윌리엄스버그(Colonial Williamsburg) 모형의 좌우 벽에는 그 '민속촌'에서 일하시는 분들이 식민지 시대의 복장으로 돌아다니는 모습의 큰 사진이 보인다. 여기서 비싼 티켓을 사서 셔틀을 타고 가면 Governor's Palace나 Art Museum에 들어가보고, 간단한 공연 등도 볼 수 있다고 하는데, 티켓 없이 그냥 대학 캠퍼스 부근에 차를 대고 걸어가도 바깥 거리의 풍경은 모두 볼 수가 있다고 한다! 대부분이 연세 지긋한 백인 부부들이었던 티켓 창구를 한 번 바라보고는, 우리는 윌리엄&메리 대학의 바로 근처에 있는 한식당을 검색해서 찾아갔다. 밥을 잘 먹고 올드타운까지 걸어가볼까 잠깐 생각했으나 바로 포기하고, 국립공원청이 운영하는 히스토릭 제임스타운(Historic Jamestowne)의 비지터센터를 네비게이션에 찍고 찾아갔는데, 마지막에 보여드릴 커다란 주차장을 지나서 국립공원 입구로 생각되는 곳에 도착했는데, 중앙분리대 오른편의 입구는 아예 막아놓았고 왼편에도 출입금지 표지판을 세워 놓았다! 분명 안쪽으로 국립공원청 로고도 보이는데 왜 못 들어가게 하지? 그런데 걸어서 나오는 사람들이 있어서, 일단 우리도 바깥에 차를 세워놓고 걸어 들어가보기로 했다. (구글맵으로 위치를 보시려면 클릭) 이러한 도로로 육지와 연결된 섬에 있는 비지터센터까지는 1마일 정도의 거리였지만, 1607년에 정착민들을 태우고 온 스미스 선장과 그를 죽음에서 구해줬다는 포카혼타스의 동상을 직접 보기 위해 땡볕에 이 길을 걸어서 왕복할 필요는 없을 것 같아 그냥 돌아나왔다. 분명 저 안쪽에 연방정부의 비지터센터와 주차장이 만들어져 있는데, 자동차 진입을 계속 막아놓았던 정확한 이유는 지금도 궁금하다... 차를 몰고 나오다 처음 지나쳤던 커다란 주차장에 세우고 제임스타운 세틀먼트(Jamestown Settlement)라 되어있는 큰 건물에 들어가서 그 이유를 약간 짐작할 수 있었다. 여기서 티켓을 사서 건물을 통과해 나가면 대서양을 건너왔던 범선과 정착지(settlement)를 재현해 놓은 것을 구경할 수 있다는데, 이 곳은 요크타운 시내에 있는 미국혁명 박물관(American Revolution Museum)과 함께 버지니아 주 산하의 재단에서 운영을 하는 것이었다. 참고로 진짜 제임스타운 마을이 있던 지역은 국립역사공원 안이지만 여전히 버지니아 주 소유인 것으로 봐서, 일부러 진짜를 가보기 어렵게 만들어 놓고 가짜를 돈 내고 보게 하려는 것은 아닌지 살짝 의심이 든다. 물론 우리 부부는 쿨하게 바로 뒤돌아 나오는 것으로 "수박 겉핧기" 콜로니얼(Colonial) 국립역사공원 둘러보기를 마치고, 계속 64번 고속도로를 북서쪽으로 달려서 현재 주도인 리치몬드(Richmond)를 향해 달렸다. 중요한 기념비와 동상을 모두 놓쳤지만 그걸 직접 보기 위해서 역사공원을 다시 갈 생각은 별로 없으나, 첫번째 지도의 한가운데에 작게 적혀있는 부시가든 놀이공원(Busch Gardens Amusement Park)은 아무래도 한 번은 가봐야 할 것 같아서, 그 때 윌리엄스버그의 식민지 시대 민속촌은 겉모습만이라도 잠깐 구경할 기회가 또 올 것으로 생각된다. P.S. 지난 6월에 네이버가 뽑는 '이달의 블로그' 세계여행 분야에 선정되었었는데, 오늘 이메일을 확인해보니 연말결산에서 세계여행 분야의 주목할 만한 블로거로 위기주부가 뽑혔습니다! 세계여행 분야는 6월에 10명, 12월에 8명이 소개가 되었으니, 그 예선을 통과한 18명 중에서도 저를 콕 찝어주신 네이버 블로그팀 관계자 여러분께 이 자리를 빌어서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언제 미국 출장이라도 오시면 연락주세요~^^ (여기나 아래를 클릭 또는 터치하시면 블로그팀 공식블로그의 공지 포스팅을 직접 보실 수 있음) 첫번째로 '여행/맛집'에 국내여행 프림커피님, 맛집 비밀이야님과 함께 소개가 되었는데, 그 동안 자기만족(自己滿足)을 위해 미국 여행에 관한 '고급 지식을 아낌없이 대방출'한 보람이 살짝 느껴지구요, 무엇보다 지난 15년간 제 블로그를 조용히 다녀가셨던 많은 분들께 이 영광을 돌립니다. 감사합니다. (무슨 연말 연기대상 수상소감인 듯 ㅎㅎ) 아래 배너를 클릭해서 위기주부의 유튜브 구독하기를 눌러주시면 정말 감사하겠습니다.^^ 반응형
뉴욕 허드슨강 국가유산지역의 밴더빌트맨션 국가유적지(Vanderbilt Mansion National Historic Site)
반응형 미동부에서 고속도로를 달리다 보면, 관광지를 알리는 갈색 도로표지판에 무슨 'National Heritage Area' 또는 'National Heritage Corridor'라고 적힌 것을 가끔 보게 된다. 현재 미국에 55개가 있는 이러한 "국가유산지역"은 의회가 통과시킨 법률에 대통령이 서명해서 지정되는데, 역사와 문화적으로 가치가 있는 특정 지역을 국립공원청의 자문과 협력을 받아서 여러 기관이나 개인의 보존 및 개발을 유도하는 역할을 한다. 11월말에 추수감사절 연휴를 집에서 함께 조용히 보낸 딸을 다시 학교에 차로 데려다주고 내려오면서 잠깐 구경한 곳이, 이러한 국가유산지역에 포함되는 뉴욕주의 국립 공원이었다. 허드슨리버밸리 내셔널헤리티지에리어(Hudson River Valley National Heritage Area)는 위의 지도와 같이, 뉴욕시(New York City) 북쪽에서 주도인 올버니(Albany)까지 이어지는 허드슨 강의 계곡 지역으로, 그 안에 약 100개에 달하는 역사/문화/자연 관광지가 모여있다고 한다. 그 중에서 글자 배경을 노란색으로 칠한 6곳이 국립공원청이 직접 관리하는 장소인데, 지도를 확대하면 가운데 쯤에 위치한 하이드파크(Hyde Park) 마을에 3곳이 모여있는 것을 보실 수 있다. (지도에 Val-Kill로만 표시된 곳도 NPS의 독립적인 유닛인 Eleanor Roosevelt National Historic Site임) 밴더빌트맨션 국가유적지(Vanderbilt Mansion National Historic Site)의 주차장에서 조금 걸어가면 나오는 이 건물은 본채가 아니고, 미혼 남성을 위한 게스트하우스로 지어져서 지금은 비지터센터로 사용되는 곳이다. 맨션투어는 목~월요일 하루 4번 정해진 시간에 선착순으로 진행되는데, 1인당 $10의 유료라고 되어있지만... 국립공원 연간회원권을 소지한 경우에는 4명까지는 무료이다. 그래서 우리 부부 2명은 FREE~ ㅎㅎ 작은 전시실 왼편에는 여기서 조금 아래쪽에 살았던 루즈벨트 대통령 부부의 이야기와 함께 하이드파크 동네의 역사 등이 소개되어 있다. 제일 오른쪽에 보이는 이 맨션의 역사는 나중에 소개하기로 하고, 그 옆으로 여성분이 보고 계시는 밴더빌트 패밀리(Vanderbilt Family)의 가계도를 확대해서 보도록 하자. 제일 위 흑백사진의 Commodore Cornelius Vanderbilt와 그의 맏손자가 지은 제일 왼쪽 사진에 보이는 집인 '브레이커스(Breakers)'에 대해서는 얼마 전 여행기에서 설명을 드렸다. (CNN의 간판 앵커인 앤더슨 쿠퍼의 어머니로 유명인이었던 Gloria Vanderbilt가 브레이커스를 지은 코넬리우스 2세의 손녀딸) 할아버지에 이이서 미국 최고의 부자였던 아버지의 유산을 골고루 나눠받은 장성한 8명의 자녀들은 미동부에 도합 40채가 넘는 대저택들을 새로 지었는데, 이 곳은 여섯째인 Frederick William Vanderbilt가 1899년에 완공한 곳으로 유일하게 현재 연방정부가 소유해서 국립 공원으로 개방이 된다. 투어시간이 되어 실내에서 이상과 같은 설명을 레인저로부터 들은 후에, 비지터센터의 옆문을 나서서 맨션쪽으로 걸어가고 있는데, 월요일 아침 10시의 첫번째 투어에 참가한 사람들은 우리 부부를 포함해 총 7명이었다. 자기 집은 아니지만 이런 대저택의 열쇠를 들고 다니며 정문을 열어주는 레인저의 기분도 괜찮을 듯...^^ 건물의 전체 모습은 내부투어를 마치고 나와서 보여드리기로 하고, 일단 사람들과 함께 안으로 들어가보자~ (구글맵으로 위치를 보시려면 클릭) 2층까지 천정이 뚫려있는 Entrance Hall에서 레인저가 기본적인 설명을 한 후에, 사방의 방들을 자유롭게 둘러보는 식으로 투어가 진행되었다. 앞서 가계도를 자세히 다시 보시면 유산을 나눠받은 8명의 형제자매들 중에서 이 부부만 유일하게 자녀가 없었고, 그래서 아내와 사별하고 혼자 살던 Frederick은 아내의 조카 Margaret Louise Van Alen에게 이 집을 유산으로 남겨주고 1938년에 죽었다. 원래 왠만큼 부자였던 그녀는 바로 이 집을 시장에 내놓았지만 가격을 낮춰도 팔리지 않았고, 결국 이웃에 살던 루즈벨트 대통령의 권유에 따라 국립공원청에 그냥 기증을 했던 것이다. 입구 왼편부터 차례로 돌아보면, 제일 작은 이 방은 프레더릭이 업무를 보는 서재(Office)였다고 한다. 그 옆으로 덴(Den)이라고 된 이 방은 남자 손님들을 맞는 용도로 주로 사용된 곳 답게, 동물 머리의 박제와 그 아래에 엽총 등이 전시가 되어 있다. 주 응접실인 리빙룸(Living Room)에는 예쁜 크리스마스 트리가 불을 밝히고 있는데, 여기서 가장 놀라운 사실을 알려드리면... 이 맨션은 부부가 함께 봄과 가을철에만 짧게 머물렀던 별장이기 때문에, 실제로 사람이 이 집에 거주할 때는 한 번도 크리스마스 장식을 한 적이 없고, 늦가을에 주인이 뉴욕 맨하탄 5번가의 저택으로 돌아가면 겨울내내 굳게 잠겨있었다고 한다! 당시의 화려한 길디드에이지(Gilded Age), 즉 '도금시대(鍍金時代)'라는 이름에 걸맞게 벽과 천장에 진짜 금박을 입혀서 사치스럽게 장식한 리셉션룸(Reception Room)의 모습이다. 홀을 건너서 다이닝룸(Dining Room)의 식탁 위에는 "Vanderbilt Holiday"라는 이름으로, 실제 밴더빌트 가문이 맨하탄에서 연말파티를 할 때 준비했던 뷔페 음식의 모형이 차려져 있었다. Grand Staircase의 레드카펫을 밟으며 아내가 1등으로 올라가는데, 저 계단을 두 바퀴를 돌아야 2층이 나왔다. 안주인의 침실인 Mrs. Vanderbilt's Room으로 침대 주위를 대리석 난간과 기둥으로 둘러싼 이유는, 프랑스 왕실의 궁전에서 여왕의 침실을 저런 식으로 만든다고 해서 그대로 따라한 것이라고 한다. 모든 방은 이렇게 입구에서만 볼 수 있고, 안으로 들어가서 구경할 수는 없는 것이 조금 아쉬웠다. 침실과 연결된 옷을 갈아입는 용도로 사용하는 방인 듯 한데, 이런 내실을 부드와(Boudoir)라 부르는 모양이다. 그리고 남편의 침실은 당연히 별도로 있는데, 내부 보수중이라 가구를 다 빼놓아서 따로 사진은 찍지 않았다. 맞은편에 있는 가장 넓은 손님방인 블루룸(Blue Room)의 모습 등을 구경하고는 하인들이 이용하는 별도로 만들어진 좁은 나무계단을 이용해서 지하로 내려갔다. 지하에는 물품을 보관하는 곳과 함께 하인들의 방이 만들어져 있는데, 주인 부부 두 명이 여기에 머물 때 보통 약 20명의 하인이 함께 살면서 시중을 들었다고 한다. 지하와 연결된 주방을 잠깐 구경하고는 하인들이 다니던 반지하의 옆문을 통해서 밖으로 나갔다. 밴더빌트 맨션(Vanderbilt Mansion)의 전체 모습인데, 올라가보지 않은 3층까지 포함해서 54개의 방과 21개의 벽난로가 있고, 당시로는 최신의 전기 시설과 중앙 난방장치를 갖추었단다. 특히 철도회사를 운영했던 가문답게 이 곳에 맨션을 지으면서, 하이드파크 마을에 철로와 기차역까지 만들었다고 한다. 우리는 허드슨 강을 따라 좀 걸어서 이 저택의 정원인 Formal Gardens를 찾아 와봤다. 입구에 세워진 4개의 흉상은 19세기 미국의 풍경을 묘사한 Hudson River School 운동의 대표적 화가들인 Thomas Cole, Thomas Moran, Albert Bierstadt, 그리고 Sanford Gifford로 최근에 만들어 세운 것이다. 스미소니언 미국 미술관의 까만 커튼이 쳐진 독실에 그의 대표적인 작품이 걸려있는 Albert Bierstadt (그림을 보시려면 클릭!) 흉상 뒤로 보이는 이층집은 정원사의 오두막이란다. 꽃이 다 떨어진 늦가을이라서 그런지 투어를 한 사람들 중에서도 정원까지 걸어 온 것은 우리 부부 뿐이었다. 저 아래쪽으로도 다른 정원과 함께 조각이 있는 연못도 만들어져 있다고 하지만, 더 걸어가볼 필요가 없을 것 같아서 우리도 그만 돌아섰다. 나중에 꽃 피는 봄이나 단풍이 든 가을에, 우리도 밴더빌트 부부처럼 뉴욕에서 출발해 이 곳을 다시 찾아오기로 하고, 처음 달려보는 고속도로로 펜실베니아 주를 가로질러 버지니아의 집으로 돌아갔었다. 미래의 그 때에는 허드슨 강변을 따라 계속 걸어서 루즈벨트 대통령 부부의 생가와 도서관도 방문해보고, 또 하이드파크(Hyde Park)에 본교가 있는 세계적인 CIA(Culinary Institute of America) 요리학교의 학생들이 직접 음식을 만들어 내놓는다는 카페에서 식사도 꼭 해보기로 했다. 아래 배너를 클릭해서 위기주부의 유튜브 구독하기를 눌러주시면 정말 감사하겠습니다.^^ 반응형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