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임스타운과 요크타운 등 미국 식민지시대의 시작과 끝이 모여있는 콜로니얼(Colonial) 국립역사공원
1607년 5월 13일에 대서양을 건너서 신대륙 버지니아 식민지(Colony of Virginia)의 작은 섬에 도착한 영국인들이 그 곳에 처음으로 성공적인 정착촌인 제임스타운(Jamestown)을 만들었다. 그로부터 약 174년 후인 1781년 10월 19일에 거기서 동쪽으로 불과 약 20 km 정도 떨어진 요크타운(Yorktown)에서, 5년전에 독립을 선언한 미국과 이를 돕는 프랑스의 연합군이 식민지배를 이어오던 영국군의 항복을 받아내며 독립혁명의 종지부를 찍는다. 이렇게 미국 역사에서 식민지 시대(Colonial Era)의 시작과 끝을 상징하는 두 장소와 함께, 그 두 곳을 연결하는 옛날 도로를 묶어서 국립공원청이 콜로니얼 국립역사공원(Colonial National Historical Park)으로 관리하고 있다.
그 제임스타운 섬(Jamestown Island)과 요크타운 전쟁터(Yorktown Battlefield), 그리고 둘을 이어주는 콜로니얼 공원도로(Colonial Parkway)를 함께 보여주는 국립역사공원의 지도이다. 우리는 남쪽에서 64번 고속도로를 따라 올라오면서 요크타운을 먼저 들렀는데, 결론부터 말하자면 예습부족 및 시간부족 등의 이유로 가장 중요한 기념물이나 동상 등은 모두 직접 보지를 못하고, 그냥 여러 비지터센터만 잠깐씩 들러서 분위기 파악에 그친 방문이었다.
요크타운 배틀필드 비지터센터에 도착을 하니 파란색 트롤리 버스가 사람들을 태우고 있었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볼거리인 요크타운 승전기념비(Yorktown Victory Monument)는 저 셔틀을 타거나 차를 몰고 시내로 들어가야 볼 수 있는 것을 당시에는 몰랐었다.
레인저에게 중요 포인트를 물어보지도 않았던 것을 생각하면, 남부 버지니아 1박2일 여행에서 무려 5번째로 방문하는 국립공원청의 비지터센터라서 아마도 긴장이 풀어졌었나 보다~ (구글맵으로 위치를 보시려면 클릭)
기다란 복도를 지나오면 미국 독립군의 총사령관인 워싱턴(Washington)과 프랑스 원정군의 사령관인 로샹보(Rochambeau), 그리고 그들에게 항복을 한 영국의 콘월리스(Cornwallis) 장군의 배너가 걸려있다. 그 아래 놓여진 대포의 파랗게 녹이 슨 포신은 "Lafayette Gun"으로 불리는데, 실제 요크타운 전투 당시에 라파예트(Lafayette)가 이끈 부대가 노획한 영국의 대포로, 미군이 재사용 후 보관하다가 여기에 전시된 것이란다.
전시실에는 워싱턴의 야전막사를 재현해 놓았는데, 그 입구의 높이를 일부러 워싱턴의 키와 같은 6피트 2인치(188 cm)로 만들어 놓고는, 당신이 워싱턴보다 크다면 머리를 조심하라고 안내판을 세워 놓았다.
그리고 로샹보가 프랑스에서 타고 온 군함의 내부도 구경하고는, 제법 긴 길이의 요크타운 전투에 관한 안내영화를 잘 관람한 후에 기념품가게(Museum Shop)로 들어갔다.
많은 책들 중에 여기 요크타운의 또 다른 주인공인 해밀턴(Hamilton)의 이름과 얼굴이 많이 보인다. 특히 오른편 아래에 쌓아놓은 노란색의 엄청나게 두꺼운 책이 바로 린-마누엘 미란다(Lin-Manuel Miranda)가 우연히 읽고나서 뮤지컬 <해밀턴>을 만들게 되었다는 바로 그 책이다.
2017년에 LA에서 관람하고 뮤지컬을 소개한 내용을 클릭해서 보실 수 있다. 요크타운에서 독립혁명을 승리로 끝내는 장면을 묘사한 "Yorktown (The World Turned Upside Down)" 노래를 시작하면서, 해밀턴과 라파예트가 손을 잡으며 아래의 대사를 하는 그 실제 역사의 현장에 잠시 들렀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만족한다.
"Immigrants, we get the job done."
지난 봄에 방문했던 게티스버그 국립군사공원(Gettysburg National Military Park)을 생각하며 자동차로 배틀필드투어(Battlefield Tour) 코스를 돌아보았지만, 큰 전투 없이 영국이 바로 항복을 해서 그런지 그 때처럼 많은 대포나 동상 등을 볼 수는 없었고, 유일하게 잠시 차를 세웠던 여기는 Moore House라고 항복협상이 벌어졌던 장소라고 한다. 이제 워싱턴과 로샹보가 여기 요크타운으로 마지막 진군을 해왔던 옛날 길을 따라서 윌리엄스버그로 향한다.
요크타운-윌리엄스버그-제임스타운을 잇는 길이 23마일의 콜로니얼 파크웨이(Colonial Parkway)는 국립공원청이 직접 관리하는 미국 전역에 11개뿐인 공원도로들 중의 하나이지만, 독립적인 유닛은 아니고 처음 설명처럼 콜로니얼 국립역사공원의 일부로 포함된다.
월요일이라 사모님은 조수석에서 '업무'에 바쁘셨기 때문에, 당시와 가장 비슷한 느낌의 사진을 한 장 가져왔다. 도로는 속도를 내지 못하도록 일부러 거친 자갈 콘크리트로 포장을 해놓고, 바닥에 아무 표시도 해놓지 않아서, 나무에서 떨어져 가운데 모인 낙엽들이 중앙선을 대신하고 있었다. 무엇보다 교차하는 일반 도로를 사진처럼 빨간 벽돌의 고가차도로 지나가도록 해놓아서 정말로 운전하는 내내 공원을 지나가는 특별한 느낌이었다.
점심도 먹어야되고 해서 윌리엄스버그 마을의 입구에서 인터체인지를 나와 Colonial Williamsburg Regional Visitor Center를 찾아왔는데 주차장이 정말 어마어마하게 넓었다.
길을 따라가면 이렇게 커다란 비지터센터 건물이 나오는데, 쉽게 간단히 설명을 하면... 윌리엄스버그 마을의 구시가지 전체를 식민지 시대를 재현한 '민속촌'으로 만들어 놓았으니, 여기에 차를 세워두고 유료 셔틀버스를 타고가서 구경을 하라는 것이었다.
인디언들에 의한 학살로 제임스타운을 떠난 백인들이 1632년에 여기 윌리엄스버그(Williamsburg) 마을을 만들었고, 1600년대 말부터 약 백년 동안 사실상 버지니아 식민지의 수도 역할을 한 곳이다. 특히 구시가지와 캠퍼스가 붙어있는 윌리엄&메리 대학(College of William & Mary)은 1693년에 개교해서 미국에서 두번째로 오래된 대학으로 제퍼슨(3대), 먼로(5대), 타일러(10대)의 미국 대통령 3명을 배출하기도 했다. "그럼, 미국에서 제일 첫번째로 오래된 대학은 어디?"
처음 지도에서 약간 붉게 표시된 콜로니얼 윌리엄스버그(Colonial Williamsburg) 모형의 좌우 벽에는 그 '민속촌'에서 일하시는 분들이 식민지 시대의 복장으로 돌아다니는 모습의 큰 사진이 보인다. 여기서 비싼 티켓을 사서 셔틀을 타고 가면 Governor's Palace나 Art Museum에 들어가보고, 간단한 공연 등도 볼 수 있다고 하는데, 티켓 없이 그냥 대학 캠퍼스 부근에 차를 대고 걸어가도 바깥 거리의 풍경은 모두 볼 수가 있다고 한다!
대부분이 연세 지긋한 백인 부부들이었던 티켓 창구를 한 번 바라보고는, 우리는 윌리엄&메리 대학의 바로 근처에 있는 한식당을 검색해서 찾아갔다. 밥을 잘 먹고 올드타운까지 걸어가볼까 잠깐 생각했으나 바로 포기하고, 국립공원청이 운영하는 히스토릭 제임스타운(Historic Jamestowne)의 비지터센터를 네비게이션에 찍고 찾아갔는데,
마지막에 보여드릴 커다란 주차장을 지나서 국립공원 입구로 생각되는 곳에 도착했는데, 중앙분리대 오른편의 입구는 아예 막아놓았고 왼편에도 출입금지 표지판을 세워 놓았다! 분명 안쪽으로 국립공원청 로고도 보이는데 왜 못 들어가게 하지? 그런데 걸어서 나오는 사람들이 있어서, 일단 우리도 바깥에 차를 세워놓고 걸어 들어가보기로 했다. (구글맵으로 위치를 보시려면 클릭)
이러한 도로로 육지와 연결된 섬에 있는 비지터센터까지는 1마일 정도의 거리였지만, 1607년에 정착민들을 태우고 온 스미스 선장과 그를 죽음에서 구해줬다는 포카혼타스의 동상을 직접 보기 위해 땡볕에 이 길을 걸어서 왕복할 필요는 없을 것 같아 그냥 돌아나왔다. 분명 저 안쪽에 연방정부의 비지터센터와 주차장이 만들어져 있는데, 자동차 진입을 계속 막아놓았던 정확한 이유는 지금도 궁금하다...
차를 몰고 나오다 처음 지나쳤던 커다란 주차장에 세우고 제임스타운 세틀먼트(Jamestown Settlement)라 되어있는 큰 건물에 들어가서 그 이유를 약간 짐작할 수 있었다.
여기서 티켓을 사서 건물을 통과해 나가면 대서양을 건너왔던 범선과 정착지(settlement)를 재현해 놓은 것을 구경할 수 있다는데, 이 곳은 요크타운 시내에 있는 미국혁명 박물관(American Revolution Museum)과 함께 버지니아 주 산하의 재단에서 운영을 하는 것이었다. 참고로 진짜 제임스타운 마을이 있던 지역은 국립역사공원 안이지만 여전히 버지니아 주 소유인 것으로 봐서, 일부러 진짜를 가보기 어렵게 만들어 놓고 가짜를 돈 내고 보게 하려는 것은 아닌지 살짝 의심이 든다.
물론 우리 부부는 쿨하게 바로 뒤돌아 나오는 것으로 "수박 겉핧기" 콜로니얼(Colonial) 국립역사공원 둘러보기를 마치고, 계속 64번 고속도로를 북서쪽으로 달려서 현재 주도인 리치몬드(Richmond)를 향해 달렸다. 중요한 기념비와 동상을 모두 놓쳤지만 그걸 직접 보기 위해서 역사공원을 다시 갈 생각은 별로 없으나, 첫번째 지도의 한가운데에 작게 적혀있는 부시가든 놀이공원(Busch Gardens Amusement Park)은 아무래도 한 번은 가봐야 할 것 같아서, 그 때 윌리엄스버그의 식민지 시대 민속촌은 겉모습만이라도 잠깐 구경할 기회가 또 올 것으로 생각된다.
P.S. 지난 6월에 네이버가 뽑는 '이달의 블로그' 세계여행 분야에 선정되었었는데, 오늘 이메일을 확인해보니 연말결산에서 세계여행 분야의 주목할 만한 블로거로 위기주부가 뽑혔습니다! 세계여행 분야는 6월에 10명, 12월에 8명이 소개가 되었으니, 그 예선을 통과한 18명 중에서도 저를 콕 찝어주신 네이버 블로그팀 관계자 여러분께 이 자리를 빌어서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언제 미국 출장이라도 오시면 연락주세요~^^ (여기나 아래를 클릭 또는 터치하시면 블로그팀 공식블로그의 공지 포스팅을 직접 보실 수 있음)
첫번째로 '여행/맛집'에 국내여행 프림커피님, 맛집 비밀이야님과 함께 소개가 되었는데, 그 동안 자기만족(自己滿足)을 위해 미국 여행에 관한 '고급 지식을 아낌없이 대방출'한 보람이 살짝 느껴지구요, 무엇보다 지난 15년간 제 블로그를 조용히 다녀가셨던 많은 분들께 이 영광을 돌립니다. 감사합니다. (무슨 연말 연기대상 수상소감인 듯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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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동네의 덜레스 엑스포 센터(Dulles Expo Center)에서 열린 '캠핑카' 박람회인 RV쇼 잠깐 구경하기
옛날에는 외동딸이 대학만 들어가면 바로 지를 줄 알았는데... 그래도 졸업하고 취직까지는 기다려야지 했다가... 이제 좋은 직장까지 구해 잘 다니고 있으니... 진짜 슬슬 구체적으로 알아보기라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일생일대의 지름신 품목은 바로 '캠핑카'인데, 마침 우리 동네에서 전시회가 열린다고 하길래 토요일 오후에 잠깐 들러서 구경을 했다. 전시장 방문기를 시작하기 전에 그 옛날 10년 전에 캠핑카를 몰고 떠났던 여행의 추억을 잠깐 떠올려 본다.
LA에서 미국여행 블로거로 한창 주가를 올리고 있었던 위기주부가 캠핑카USA의 협찬을 받아서, 추수감사절 연휴에 이웃 가족들과 함께 데스밸리 국립공원으로 떠났던 2박3일 여행기 4편을 클릭해서 차례로 보실 수 있다. 이 때가 미국 이민 후에 가장 즐겁고 특별한 기억으로 계속 남아있는 이유는... 5가족 17명의 단체 자동차캠핑을 이끌었던게 첫번째지만, 처음으로 경험했던 캠핑카에 대한 기억도 뇌리에 남았기 때문이리라~^^
둘루스 국제공항 바로 아래의 챈틀리(Chantilly)에 여러 행사가 열리는 덜레스 엑스포 센터(Dulles Expo Center)가 있다길래, 국제적인 규모의 박람회장을 기대하고 찾아갔지만... 외관과 입구는 그냥 딱 동네 쇼핑몰 수준이었다.ㅎㅎ 그러나 주차와 입장이 모두 무료인 공짜 전시회라서 그런지, 흐린 겨울 날씨에도 불구하고 찾아온 사람들은 아주 많았다. (구글맵으로 위치를 보시려면 클릭)
그래도 미리 표를 예약하고 QR코드까지 받아서 준비했지만, 체크인 줄이 길어지니까 직원이 그냥 들어가도 된다고 해서 바로 우르르~ "앞사람 티셔츠가 콜로라도 관광도시인 볼더(Boulder) 기념품이네! 캠핑카를 몰고 대륙횡단하며 록키 산맥을 넘는 날이 과연 올까?"
이 사진을 카톡으로 딸에게 보내줬더니, 당장 RV를 사는거냐며 우리보다 더 흥분하더라는...^^ 미국에서는 차박을 할 수 있도록 개조된 차량을 통틀어 '레크리에이셔널 비클(recreational vehicle, RV)'로 부르지만, 이 글에서는 한국에서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캠핑카'로 쓰기로 한다.
캠핑카는 흔히 3개의 클래스로 분류되는데, 이렇게 대형 버스를 개조한 가장 크고 비싼게 Class A로 신차 가격은 대략 20만~30만불 정도가 된다. 이 급은 대부분이 차체가 돌출되는 트랜스포머 스타일로 제작이 되어서, 주차 후에 확장하면 넓은 실내 공간을 이용할 수 있다.
그 중에 상대적으로 저렴한(?) 버스의 운전석에 한 번 앉아봤다. 소유주 같지가 않고 관광버스 운전기사인 듯한 느낌... T_T
거의 왠만한 작은 아파트 수준의 주방과 거실, 그리고 통로 좌우로 풀사이즈 냉장고와 화장실 및 2층 침대와 옷장이 나오고, 끝까지 걸어가면...
별도의 전용 화장실과 킹사이즈 침대가 고정으로 설치된 마스터룸이 나온다! 이 정도면 그냥 바퀴달린 움직이는 집이라고 할만한 수준이라서, 미국에서는 캠핑카를 '모터홈(motorhome)'이라고도 많이 부른다. 이렇게 큰 버스형 RV는 운전도 힘들 것 같아 줘도 안 탈 것 같고,
위기주부가 마음에 둔 것은 흔히 '캠퍼밴(campervan)'으로 불리는 이런 Class B 모델이다. 오지 캠핑을 위해서 4WD 즉 사륜구동은 필수이고, 기본 차체도 이왕이면 디젤유를 사용하는 벤츠 스프린터로 이미 결정은 다 끝났다~
"내 차에 앉은 듯한 이 편안한 기분은 뭐지? ㅎㅎ" 차체 폭을 확장한게 아니라서 내부가 좁고, 다른 관람객들이 계속 있어서 뒤쪽 사진은 찍지를 못 했는데, 차체 길이에 따라서 달라지는 실내 디자인 등을 직접 확인하려면 아마 대리점에 가봐야 할 듯...^^
중형 트럭이나 밴의 뒤쪽을 각지게 개조해서 내부를 넓힌 Class C가 미국 여행지 도로와 캠핑장에서 제일 많이 보이는 일반적인 캠핑카이다. 그런데 옛날부터 항상 궁금했던게 자동차 크기나 내부 공간으로 순서를 따지자면, 이 급이 B가 되고 개조를 안한 캠퍼밴이 C가 되어야 할 것 같은데 둘이 바뀌었다. 혹시 이유를 아시는 분?
비록 구형 모델이기는 하지만, 위기주부가 데스밸리에 몰고 갔던 캠핑카가 내부가 확장되는 Class C였으므로, 실내의 모습이나 기본적인 RV 시스템에 대해서 궁금하신 분은 위의 사진을 클릭해서, 당시의 소개 포스팅을 보시면 된다.
또 트럭이나 SUV의 뒤에 연결해서 끌고 다니는 '트래블 트레일러(travel trailer)'도 전시되어 있었지만, 우리 스타일이 아닌 듯 해서 따로 구경하지는 않았다. 참고로 대형 트레일러 중에 트럭 짐칸에 설치하는 큰 원형의 히치(hitch)로 연결되어서, 무게를 배분하고 안정적인 견인이 가능하도록 만든 것을 따로 '핍스휠(fifth wheel)'이라 부른다.
RV 외에 이런 골프카트 같은 '사발이'들도 많이 전시되어 있어서 번쩍이는 바퀴로 관심을 끌고 있었다. 큰 캠핑카 뒤쪽에 이런거나 작은 짚차 등의 별도 교통수단을 끌고 다니는 경우도 자주 볼 수 있지만, 오프로드 캠퍼밴을 사면 그냥 그걸로 어디든 다 가니까 필요가 없다. (캠핑장에서 마트갈 때 필요한 자전거 한 대는 뒷문에 달아야 함^^)
별로 "ultimate" 하지는 않았던 이 RV Show는 캠핑월드(Camping World)에서 여러 도시를 돌며 진행하는데, 옷을 맞춰 입은 직원들이 아주 많은 이유는 저 너머 테이블에서 바로 구매상담을 하는 손님들 때문이었다. 빈 테이블만 있었어도 우리도 바로...ㅎㅎ 사실 서두에 딸 핑계를 대기는 했지만, 캠핑카를 집앞에 장식용으로 세워둘게 아니라면, 우리 부부가 진짜 떠나기 위한 여러 준비가 되는 날이 와야된다. 그 날이 수 년 내로 가능할 지, 십 년은 더 지나야 될 지는 모르겠지만, 매일 하루하루 가까워 지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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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치먼드(Richmond)의 침보라소(Chimborazo) 의료박물관과 매기 워커(Maggie Walker) 국립사적지
미국 남북전쟁 1861~65년 기간에 남부연합의 수도였던 리치먼드(Richmond)는 워싱턴 남쪽 자동차로 2시간 거리에 위치해서, 우리에게는 마치 '서울-평양'과 같은 느낌을 준다. 재작년에 그 도시에 있는 버지니아 주청사만 잠깐 방문해서 소개를 한 적이 있는데, 거기와 다른 남부 버지니아 지역의 국립 공원들 총 5곳을 묶어서 '1탄 펜실베니아'에 이은 3~4시간 거리의 별볼일 없는 곳들 찾아다니기 시리즈 2탄으로 또 다녀왔다.
지도에 표시된 5곳을 북쪽 집에서 출발해 반시계 방향으로 돌아서, 리치먼드 시내의 2곳은 마지막에 잠깐씩만 들렀기에 묶어서 제일 먼저 소개한다. 이 여행은 블로그 역사상 처음으로 경로의 역순(逆順)으로 글을 쓰는데, 그 이유는 이어질 시리즈 내용을 차례로 잘 읽어보시면 알게 된다.
리치먼드와 그 외곽의 남북전쟁 관련 장소들이 리치먼드 국립전장공원(Richmond National Battlefield Park)으로 지정되어 있는데, 여기는 시내 공원에 위치한 비지터센터로 간판 아래쪽에 의료박물관(Medical Museum)이라 씌여있다. 일단 '침보라소(Chimborazo)'는 여기 야트막한 언덕과 공원의 이름이기도 한데, 생뚱맞게도 중미 에콰도르(Ecuador)의 가장 높은 해발 6,310 m 성층화산의 이름에서 따왔다고 한다.
전체 공원 지도를 예의상 올려보는데, 도시 외곽에 1862년의 7일 전투(Seven Days' Battle)와 1864년 콜드하버 전투(Battle of Cold Harbor) 유적지들이 메인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시간관계상 4곳의 비지터센터들 중에서 시내에 있는 여기 하나만 잠깐 들리는 것으로 위기주부의 국립 공원들 방문 리스트에 추가하기로...^^
남북전쟁 기간 동안에 부상당한 남군 병사들의 치료를 위한 군사병원(military hospital)이 이 언덕에 만들어졌었는데, 목재로 만들었던 150동의 건물은 현재 하나도 남아있지 않고, 비지터센터로 사용되는 이 건물은 1900년대 초에 연방정부가 기상관측용으로 지은 것이라 한다. (구글맵으로 위치를 보시려면 클릭)
여기에 있던 병원에서 전쟁기간 동안에 76,000명 이상의 부상병을 치료하며 사망률은 10% 미만이라서, 당시로는 전세계에서 가장 규모가 크면서 치료수준도 높았던 병원이라 할 수 있단다.
목수(carpenter)의 연장 가방이 아니라, 19세기 중반 외과의사(surgeon)의 치료 가방이란다.
남군 군의관의 복장과 무기를 비롯해 그들의 활약상에 대한 소개 등도 전시되어 있었다.
위기주부는 의대 진학은 꿈도 꿔본 적이 없고, 피를 보면 약간의 경기도 일으키는 체질이라서, 당시의 의료상황 등을 소개하는 전시들이 눈에 잘 들어오지가 않았다.^^ 여기에는 또 활톱(hacksaw)이 전시된 것이 보이는데, 이런 도구들로...
당시 어떻게 부상당한 다리를 절단했는지 친절하게 그림으로 설명을 해놓았다. 이 정도로 리치먼드 국립전장공원에 속하는 침보라소 의료박물관(Chimborazo Medical Museum) 구경은 마치고, 밖으로 나가서 공원을 잠깐 둘러보았다.
사진 가운데 실루엣으로 보이는 동상이 여기서 유명하다고 해서 찾아가는 길인데, 그 동상은 바로 무엇인고 하니...
자유의 여신상이다~ㅎㅎ 1950년에 시작된 미국 보이스카웃 연맹의 'Strengthen the Arm of Liberty'라는 캠페인으로 미국 전역에 높이 2.5 m의 이런 동상이 약 200개나 세워졌는데, 현재 약 100개 정도가 남았다고 한다.
캠페인 제목에 따라 일부러 그렇게 만들었는지 모르겠지만, 횃불을 들고 있는 팔이 약간 비정상적으로 길어 보였다. 전체적으로 심하게 때가 탄 것은 물론이고 왕관도 일부 부러져 있어서, 청소와 보수가 좀 필요해 보였다.
나무들 너머로 제임스 강(James River)이 살짝 내려다 보이는 언덕의 끝쪽으로 걸어가면, 여기에 앞서 설명한 침보라소 병원(Chimborazo Hospital)이 있었다는 동판을 볼 수 있다. 이제 북부 버지니아와는 뭔가 살짝 분위기가 다른 남부 리치먼드 시내를 운전해서 마지막 목적지를 급하게 찾아갔다.
구글 네비게이션이 알려주는데로 찾아왔는데, 공원 홈페이지에 나온 건물 모습과는 살짝 다른 여기는 매기워커 국립사적지(Maggie L Walker National Historic Site)이다.
입구가 어딘지 두리번거리다가 비지터센터는 건물 사이 통로를 이용해 안뜰로 들어가라는 표지판을 겨우 찾았다. (구글맵으로 위치를 보시려면 클릭)
비지터센터가 5시가 아니라 4시반까지만 운영한다고 되어 있는데, 이 때는 이미 그 시간을 살짝 넘기고 있었지만 문이 잠기지는 않았었다. 그래서 열고 들어갔더니, 국립공원청 파크레인저 예닐곱명이 모여서 퇴근 준비를 하면서 화기애애하게 담소를 나누고 있다가, 갑자기 들어오는 동양남자 한 명을 보고는 상당히 놀라더라는...ㅎㅎ
매기 워커(Maggie Lena Walker)는 흑인 노예의 딸로 태어난 교육자 겸 사업가로, 1903년에 미국 최초의 여성 은행장이 되어서 흑인들의 자립을 도운 것으로 유명하다. 또한 모든 여성과 장애인들의 인권신장에도 기여해서 그녀가 살았던 집이 1975년에 국립사적지로 지정되었는데, 여기는 옆건물에 만들어진 비지터센터고 다른 외관의 보존된 집은 주차한 곳 반대쪽인데 늦어서 들어가볼 수는 없었다.
이 날 하루 이미 계기판에 찍힌 누적 운전시간이 9시간이었지만, 또 2시간을 더 운전해 집으로 돌아가기 전에 마지막으로 길 건너편 소방서 건물에 그려진 벽화를 감상했다. 다른 파크레인저 한 명이 또 모임에 참여하려고 비지터센터로 들어가는 모습인데, 참 팔자 좋은 연방 공무원이라는 생각이 든다... 시간을 거슬러서 이 날 이전에 방문했던 다른 국립 공원들을 소개하며 남북전쟁과 흑인 지도자의 이야기가 계속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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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웰컴 투 버지니아(Welcome to Virginia)" 닭살 돋는 환영간판으로 시작된 우리의 버지니아 주 이야기
작년 10월초에 이삿짐을 싣고 캘리포니아 주 LA에서 출발한지 7일만에 버지니아 주에 도착을 했었다. 물론 목적지는 워싱턴DC와 접한 버지니아의 제일 북쪽이고, 우리는 노스캐롤라이나와 접한 남서쪽 시골 산길에서의 첫만남이었지만 말이다. 원래는 대륙횡단기 전편에 아래 환영간판 이야기만 덧붙이고 7일째는 포스팅은 하나로 끝낼까 하다가... 환영간판 말고도 이제 4개월째 살고 있는 버지니아 주에 대해서 이것저것 알아보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아서, 따로 본 포스팅으로 몇가지 시시콜콜한 이야기들을 적어본다. 그래서 이 글은 특정 장소에 대한 여행기가 아니라서, 오래간만에 '미국에 관한 도움말' 카테고리에 넣기로 한다.
그 산길로 주경계를 통과할 때 처음 보게된 "VIRGINIA IS FOR LO♥ERS"라는 정말 오글거리는 문구가 씌여진 환영간판의 사진 하나를 인터넷에서 가져왔다. 이게 어떤 느낌이었냐면 한국에서 경기도로 들어가는데, 커다한 하트와 함께 "경기도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사랑꾼을 위한 경기도"라고 써놓은 것 같았다~
옛날에는 위와 같이 벚꽃(?)이 핀 나무에 주조(state bird)인 빨간 홍관조가 앉아있는 그림의 환영간판이 사용되었다는데 (파란 바탕에 글씨가 크게 씌여있고, 같은 그림은 작게 들어간 버전도 있음), 2015년 1월에 민주당 주지사였던 Terry McAuliffe가 현재의 디자인으로 변경을 했다고 한다. (슬로건 “Virginia Is for Lovers”는 버지니아 관광청이 1969년부터 사용해왔던 문구라고 함)
많은 한국분들은 비행기로 버지니아 주에 도착하니까 주경계에 있는 이 '닭살문구'를 피할 수 있다고 생각하시면 오산이다. 대한항공이 도착하는 덜레스 국제공항(Dulles International Airport)을 나가는 도로 옆에 아주 크게, 폭설이 내리던 날씨에도 불구하고 주지사가 직접 나와서 제일 먼저 세워놓았으니까...^^ 그런데 주지사(governor) 이야기가 나왔으니, 작년인 2021년 11월 2일에 치러졌던 버지니아 주지사 선거 이야기를 잠깐 해보자~ (참고로 우리 부부는 공식적으로 11월 3일부터 버지니아 주민이 되어서 투표는 할 수 없었음)
빨간색으로 표시된 공화당의 글렌 영킨(Glenn Youngkin)이 재임에 도전한 민주당 테리 매컬리프(Terry McAuliffe)를 2% 차이로 이겼고, 같이 치러진 검찰총장과 주 하원의원 선거에서도 모조리 승리하면서 12년만에 공화당이 주정부를 탈환했다. 특이한 것은 버지니아 주 헌법은 주지사가 재임(再任)은 할 수 있어도 연임(連任)은 안 되기 때문에, 이미 2014~2018년에 주지사를 하면서 위의 환영간판을 바꿨던 Terry McAuliffe가 민주당 후보로 다시 나왔지만 공화당 정치신인에게 패했던 것이다.
선거결과 그림의 제일 위에 작게 보이던 버지니아 주기(state flag)를 크게 보여드리면, 파란 바탕에 주를 상징하는 동그란 문양(seal)이 들어있는 단순한 모습이지만 그림이 재미있다. 창을 든 '덕(Virtue)의 여신'이 폭군을 발로 밟고 서있고, 그 아래에 라틴어 "Sic semper tyrannis"라고 씌여있는데, 직역하면 "thus always to tyrants(그러므로 언제나 폭군에게는)"으로 그 뒤에 "죽음이 기다리고 있다"는 말이 생략된 셈이다. 특이한 사실은 여전사 아마조네스처럼 그려진 여신의 한 쪽 가슴이 노출되어 있어서, 미국 50개의 주깃발들 중에서 유일하게 누드화가 들어있는 깃발이라고...^^
"Sic semper tyrannis!"는 한글로 간단히 "독재자에게 죽음을!"로 많이 번역되는데, 기원전 로마에서 브루투스(Marcus Brutus)가 시저(Julius Caesar)를 암살하고 처음으로 그렇게 말했다는 전설이 있다. 위의 1864년 셰익스피어의 역사극 흑백사진에서 이 말을 들으며 칼에 찔려 죽는 시저 역할을 연기했던 제일 왼쪽에 존 부스(John Booth)가...
다음해인 1865년에 워싱턴DC의 포드 극장에서 링컨 대통령에게 총을 쏘면서 라틴어로 "Sic semper tyrannis!"라고 외쳤다는 기록이 있다. 또 대륙횡단 여행기에서 소개해드렸던 1995년 오클라호마 연방청사 폭탄테러의 범인인 티모시 맥베이(Timothy McVeigh)가 체포될 때 이 문구가 씌여진 티셔츠를 입고 있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처음에는 식민지배를 하는 영국의 폭압에 반대한다는 좋은 의도로 버지니아 주의 문양에 사용된 글이 후대에는 급진주의자들에 의해서 악용되는 이러한 일은, 아래에 또 소개할 다른 사례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다시 현실로 돌아와서, 산길을 벗어나 버지니아 주의 서쪽 경계를 따라 북동쪽으로 올라가는 81번 고속도로를 탔는데, 퇴근길 정체를 만난건지 좀처럼 속도가 나지 않았다. 결국 5시간 가까이 쉬지 않고 운전만 해서 겨우 스톤튼(Staunton)에 도착해 태국식당에서 저녁을 먹고 숙박했었다. (중간에 하나 더 구경하려다 못한 곳은 2차 대륙횡단에서 결국 방문하게 됨)
버지니아 주깃발에 이어서, 당시 꽉 막힌 고속도로 앞에 있던 자동차의 버지니아 번호판 이야기를 또 해보자~ 노란 바탕에 똬리를 틀고있는 방울뱀 아래에 "나를 밟지마라(DONT TREAD ON ME)"라고 씌여있는 특별 번호판은, 같은 그림의 개즈던 플래그(Gadsden flag)를 상징하는 것으로 미국내 11개 주가 유사한 디자인의 공식 번호판을 제공한다. 사우스캐롤라이나 출신의 독립전쟁 지도자인 Christopher Gadsden이 1775년에 만든 이 깃발은, 역시 영국에 저항하는 의미로 만들어져 초기에는 거의 미국의 국기처럼 대우를 받았고, 초창기 해병대와 해군이 유사한 깃발을 공식적으로 사용을 했을 정도이다.
하지만 1970년대부터 자유지상주의자(Libertarian)들이 개즈던 깃발을 정부에 반대하는 의미로 사용하기 시작하고, 2009년부터 극우 티파티(Tea Party) 세력도 그들의 상징으로 사용한다. 그러다가 위와 같이 2017년 버지니아 샬롯츠빌 차량돌진 사건의 원인이 된 백인우월주의자 집회에 남부연합기 및 나치깃발과 함께 뉴스에 나오면서 그 의미가 완전히 달라지게 된다. 참고로 샬롯츠빌(Charlottesville)은 앞서 보여드린 주지사 선거결과의 카운티별 득표현황 지도의 한가운데 혼자 파랗게 표시된 곳으로, 제퍼슨이 만든 버지니아 대학교(University of Virginia)가 위치해 민주당 지지율이 80%가 넘는 진보적인 교육도시이다.
급기야 작년 1월 6일의 국회의사당 습격에 트럼프 지지자들이 대거 들고 나오면서, 지금은 완전히 '극우 또라이들'의 상징으로 변절되어 버렸다. 그렇다고 개즈던 번호판을 단 오래된 짚(Jeep)의 주인이 100% 극우파나 '트럼피'라는 것은 아니고, 남부 버지니아에서는 비교적 흔히 볼 수 있는 번호판이라고 한다. 그 이유는 버지니아의 주도인 리치먼드(Richmond)가 남북전쟁 당시에 남부연합의 수도였던 만큼, 지금 위기주부가 살고있는 북부 버지니아(Northern Virginia, NOVA)의 워싱턴 메트로폴리탄 지역과는 정치문화적으로 큰 차이가 있기 때문인데, 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남북전쟁 역사공부가 필요하다.
미국 남북전쟁 말기의 전황을 보여주는 지도로 버지니아만 확대지도로 설명하는 것에서 알 수 있듯이, 그 만큼 치열하게 남북이 피를 흘리며 싸운 전쟁터들이 버지니아에 많이 있다. 더 거슬러 올라가면 1781년 독립전쟁을 승리로 이끈 요크타운(Yorktown)과 1607년에 건설된 최초의 영국 식민지인 제임스타운(Jamestown)이 모두 버지니아 동남쪽 체사피크 만의 입구에 있는데, 이러한 역사와 문화, 정치에 대해서는 앞으로 그 장소들을 방문한 후에 여행기를 쓰면서 조금씩 계속 알아보기로 하고, 이 글에서는 소위 '알쓸미잡'이라 할 수 있는 버지니아가 1등인 특이한 두 가지에 대해서만 여담으로 소개하며 끝낸다.
필립모리스에서 1968년에 세계 최초로 가늘고 긴 담배를 출시하면서 그 이름을 '버지니아슬림(Virginia Slims)'이라고 붙인 이유가 다 있었다. 식민지 시절부터 담배농장이 많이 운영되어서 지금도 미국내 담배 생산량이 1등이고, 말보로(Marlboro)를 만드는 Philip Morris의 모회사로 세계 최대의 담배회사인 알트리아(Altria)의 본사가 버지니아의 주도인 리치몬드에 있단다. 그래서 버지니아 주는 미국에서 담배 가격이 가장 싼 주로 유명해서, 말보로 1갑의 가격이 뉴욕 주의 1/3 수준이라고 한다. 하지만 위기주부가 담배는 안 피니까 이건 생계에 별 도움은 안 된다...
또 다른 1등은 미국에서 가장 번개가 많이 치는 곳이라는데, 위 사진의 로이 설리번(Roy Sullivan, 1912~1983)은 버지니아 주의 쉐난도어 국립공원에서 근무하던 1942~1977년 사이에 무려 7번이나 번개를 맞아서 기네스북에 올랐다. (레인저 모자의 윗부분이 번개를 맞아서 까맣게 탔음) 별명이 '인간피뢰침(Human Lightning Rod)'이라서 비 오는 날에는 주변 사람들이 모두 피했다고 하는데, 번개를 7번이나 맞고도 살아남은 그는 아이러니하게도 71세의 나이에 권총자살로 생을 마감했다고 한다. 이번 1등은 직접적으로 우리에게 관련이 있는데, LA에서 DC까지 1차 대륙횡단의 마지막 8일째인 다음 날에 우리가 그 쉐난도어 국립공원을 방문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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