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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나는 길이 아닌, 돌아오기 위한 '가이드 북'

2021이 되어버린 올림픽은 잘 모르겠지만, 2020을 준비하던 가이드북은 이렇게 만들어진다. 제작 소요기간 1년 4개월, 에도 시대를 기점으로 망라한 페이지 수는 512쪽. 맘놓고 비행기도 타지 못하는 시절에 이 책은 굳이 말하면 국내 여행용이겠지만, 누구나 다 아는 도쿄의 기본 생활 팁들도 빠짐없이 적어놓고 있다. '지구를 걷는 법'의 역사는 올해로 40년. 창간 당시부터 모토는 '이 책 한 권으로 공항에서 출발해 다시 공항으로 무사히 돌아오게 하는 것'이었다. 어쩌면 떠나기 위한 가이드가 아닌 돌아오기 위한 가이드. 발매 석달 만에 7쇄를 찍었고, 8만부 정도가 팔렸다. "올림픽 해에는 서점에 올림픽 관련 진열대가 생겨요. 여행 가이드북이 참가할 수 있는 건 2020년 뿐. 창간 40주년을

세상 가장 아름다울 '상처'의 오늘, 란도리

아마도 내가 아는 작고, 또 작은 영화. 보니 핑크의 2002년 곡 'under the sun'과 함께 흘러가는 '란도리'는 그야말로 노래 한 곡 만큼의 영화인지 모른다. 어릴적 사고를 당해 어딘가 굼뜨고 어리숙한 주인공 테루오, 하지만 모두가 테루라 부르는 쿠보즈카 요스케가 스물 여섯의 나이로 10대 소년같은 걸음을 걷는다. 대부분의 이야기는 시골 마을 코인 란도리 앞에서 '망'을 보는 테루오와 그곳을 오가는 사람들의 별 거 아닌 하루와 하루. 몇 번의 결혼식 장면을 제외하면 등장하는 사람 수도 극히 작고, 또 작다. 자기 소개를 하는 듯한 테루오의 말로 시작해 영화는 테루가 바라본 사람, 거리, 하늘, 그리고 아마 그만 느끼고 감각했을 사소함으로 채워지고, 그만큼 작고도 작은 우주가 탄생한다. 영화의

포틀랜드에 에이스 호텔이 있다면, 도쿄엔 캡슐 호텔이 있었다

캡슐 호텔엔 별 다섯 개 호텔과는 다른 보이지 않는 긴장감, 불안의 벽이 있었다. 꽤나 해묵은 이야기지만 샤워는 커녕 세수는 어떻게 할 것인지, 최소한 20kg짜리 캐리어를 끌고 가는 처지에 그 많은 짐들은 다 어디에 숨길 것인지, 매일매일 입은(을) 옷을 꺼내고 집어 넣는 건 얼마나 번거로운 4박5일의 루틴일지...배 이상은 저렴한 요금에 맘이 흔들리다가도 이내 어김없이 신주쿠 비지니스 호텔에 짐을 풀었다. 지금 내 방의 절반도 되지 않는 크기에 창밖은 다른 건물의 뒷벽이고, 그래도 녹초가 다 된 몸을 이끌고 그 풍성하고 새하얀 매트리스에 털썩 주저앉고 나면, 새삼 착한 아이가 된 것처럼 '세상에 내 한 몸 거둘 곳의 소중함'같은 걸 절감하기도 한다. 그러니까 도쿄를 수 십, 백여 번 오가면서도 캡슐,

미래는 어느새 여자가 되어버렸다. 홍상수의 24번째 장편 '도망친 여자'

아침에 암탉이 울면 집안이 망한다고, 홍상수의 새 영화 '도망친 여자'엔 몇 번의 새벽을 울리는 닭 울음 소리가 들려온다. 단순히 '집안이 망한다'란 오랜 속담 속 한 구절에 '도망친 여자'라는 파괴된 가정을 암시하는 타이틀을 엮어붙인 조악한 문장이지만, 그의 이번 영화, 스물 네 번째 장편 '도망친 여자'를 보면 새벽의 암탉, 암탉의 울음 소리를 간과할 수 없는 모티브가 가득하다. 다만, 여기서 암탉은 오랜 세월 속 성차별적 비유로 굳어진 남자의 대립항이 아니라, 어제와 다른 아침을 열어젖히는, 도망의 형식을 취하고는 있지만 현실에 새로운 파장을 불러일으키는, 조금 다른 표정의 아침이다. 수탉 한 마리와 여러 마리의 암탉의 별 거 아닌 장면을 지나 영화는 밭일을 하는 영순(서영화)의 뒷모습을 보여주고,

도쿄의 밤이 말을 걸어왔다 : 캡슐 호텔이 이야기하는 커뮤니티

캡슐 호텔엔 별 다섯 개 호텔과는 다른 보이지 않는 긴장감의 벽이 있었다. 어느덧 20년을 거슬러 올라가는 이야기인데, 먼저 샤워는 커녕 세수는 어떻게 할 것인지, 최소한 20kg짜리 캐리어를 끌고 가는 처지에 그 많은 짐들은 다 어디에 숨길 것인지, 매일매일 입을 옷과 입은 옷을 꺼내고 집어 넣는 건 얼마나 번거로운 4박5일의 루틴일지...배 이상은 저렴한 요금에 맘이 흔들리다가도 이내 어김없이 신주쿠 비지니스 호텔에 짐을 풀었다. 지금 내 방의 절반도 되지 않는 크기의 싱글룸, 그래도 녹초가 다 된 몸을 이끌고 그 풍성하고 새하얀 매트리스에 털썩 주저앉고 나면, 새삼 착한 아이가 된 것처럼 '세상에 내 한 몸 거둘 곳의 소중함'같은 걸 절감하게 된다. 그러니까 도쿄를 수 십, 백여 번 오가면서도 캡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