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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긋남, 어쩌면 영원함. 류이치 사카모토: 코다

어긋남, 어쩌면 영원함. 류이치 사카모토: 코다

모든 것이 사라진 자리에서 남겨진 것을 생각한다. 해가 저문 시간에서 남아있는 빛을 떠올린다. 사카모토 류이치의 삶을 스크린에 가져온 다큐멘터리 '류이치 사카모토: 코다'의 문을 여는 건 피아노 한 대다. 2011년 3월 11일 동일본 대지진에 의한 쓰나미로 바다에 떠내려갔다 돌아온 피아노 앞에 사카모토 류이치가 있다. 둔해진 건반, 뒤틀린 현, 남아있는 상처의 흔적과 그렇게 울리는 둥탁한 소리. 하지만 영화는 이 아픔의 소리에서 애절한 시간을 길어낸다. 쓰나미로 인해 상처를 받은 피아노의 소리는 고장난 소리가 아닌 어딘가 기묘한, 그저 다른 소리고, 한 피해 지역의 학교 강당에서 사카모토 류이치가 연주하는 'Merry Christmas Mr. Lawrence''는 단순히 아픔을 위로하는 선율이 아닌

지금 일본이 파랗게 물들어 간다

지금 일본이 파랗게 물들어 간다

하나 더 얹은 숟가락으로 완성되는 가족이 있다. 서로의 결핍이 맞물려 만들어지는 지붕도 있다. 한 지붕 한 가족이란 말은 옛말이 되었고 애초 가족이란 말은 혈연 위에 쓰여지지 않았다. 최근 일본에서 방영됐고 방영되고 있는 드라마들을 보며 이런 생각을 한다. 올해 초 TBS에서 방영된 '사토네 아침, 스즈키네 저녁(佐藤家の朝食、鈴木家の夕食)'에선 두 아빠를 가진 딸과 두 엄마를 가진 아들이 서로 마주보며 살고있고, 타가노 겐고로의 동명 만화를 원작으로 한 '남동생의 남편(弟の夫)'은 세상을 떠난 동생의 자리를 캐나다에서 건너 온 동생의 남편이 채운다. 심지어 '이웃집은 파랗게 보인다(隣の家は青く見える)'라는 제목부터 심상치 않은 후지 테레비의 드라마는 난임 부부와 배 다른 엄마를 가진 아들, 게이 커플과

부재를 망각하는 시간, 줄탁동시. 버닝

부재를 망각하는 시간, 줄탁동시. 버닝

찌는 듯한 도심의 여름 한복판, 트럭 뒤로 담배 연기가 일렁인다. 148분에 이르는 이창동 감독의 영화 '버닝'을 시작하는 건 일렁이다 아련하게 사라지는 담배 연기다. 화물 배달 일을 하며 생계를 꾸려가는 종수는 알 수 없는 세상을 산다. 아빠는 공무 집행 방해죄로 재판을 기다리고 있고, 남편의 폭력을 못이겨 집을 떠난 엄마는 무소식이며, 쓰고있는 소설은 좀처럼 나아가지 못한다. 현실의 부조리가 그저 수수께끼로 남아있는 상태. 출구 없는 청춘의 일상을 예상하지만 영화는 일찌감치 방향을 튼다. 트럭 너머 사라지는 담배 연기는 새 한 무리가 날개짓을 하며 보이는 세계, 아지랑이가 그려내는 여기가 아닌 어딘가의 세계를 응시하고, 영화는 그 수수께기 너머의 세상을 바라보는 종수의 얼굴로 진행된다. 85. 아마도

그들의 방에 밤이 찾아오면-일본의 '올 나이트 니뽄' 이야기

그들의 방에 밤이 찾아오면-일본의 '올 나이트 니뽄' 이야기

세상엔 어쩌면 시작과 끝이 없는지 모르겠다. 해가 떠서 하루가 시작되고 해가 저물어 하루가 끝나는 게 아닐지 모르겠다. 자정이 지나 책을 펼치는 날도 있고, 어둠 곁에서야 비로서 떠오르는 생각도 있으며, 밤이 되어서야 감각이 선명해지는 날도 있다. 하물며 술 한잔을 찾는 건 낮 보단 밤이고 어둠의 자락에서 우리는 꿈을 꾼다. 일본의 장수 라디오 프로그램 '올 나이트 니뽄(オールナイトニッポン)을 듣는다. 1967년 10월 2일 니뽄방송(ニッポン放送)에서 첫 방송을 시작한 이 심야 프로그램은 다수의 뮤지션, 배우, 그리고 개그맨들이 '퍼스널리티'란 자리에서 마이크를 잡고 밤의 시간을 제안하는 방송이다. 뮤지션 유즈와 아무로 나미에, 코부쿠로와 엑스재팬의 히데와 토시를 비롯 배우인 후쿠야마 마사하루와 스다

지금도 아니고, 그 때도 아니다. 클레어의 카메라

지금도 아니고, 그 때도 아니다. 클레어의 카메라

세상은 어쩌면 보이지 않는 한 뼘을 품고 있는지 모르겠다. 홍상수 감독의 영화를 보면 그렇다. 바람에 흔들리는 야자수 나무, 바다를 부유하는 부표 하나, 그리고 그저 '큰 거'라고밖에 지칭할 수 없는 무언가와 그렇게 연결되는 카페 앞의 커다란 개. 홍상수 감독의 영화 '클레어의 카메라'를 보았다. 영화는 사무실 안 무언가를 적고있는 만희의 장면으로 시작되는데 언어가 아닌 감각, 산문이 아닌 시, 장면보다 그 안에 담긴 섬세한 기운으로 흘러가는 시간은 여전하다. 영화의 줄거리는 단촐하다. 영화 수입 회사에서 일하는 만희가 출장 중 돌연 해고 통보를 받고 벌어지는 일의 조각들이 전부다. 하지만 홍상수 영화에서 줄거리가 중요했던 적은 없고, 언제나 줄거리 사이사이의 교차와 어긋남, 이야기 조각조각의 부딪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