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ELL ME YOURS I WILL TELL YOU M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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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라카미 하루키의 라디오, 기무라 타쿠야의 라디오, 그리고 나의 라디오
처음 회사에 들어가고, 처음 인터뷰를 하고, 처음으로 녹음을 풀며, 나는 놀랐다. 분명 몇 시간 전 내가 누군가에게 했던 이야기일텐데, 왜인지 나 같지 않았다. 미묘한 생겸함, 결코 기분 좋지 않은 낯섬이 들려왔다. 거울 속에 비친 자신과 타인이 보는 자신은 다르다고, 누군가가 말했다. 어쩌면 그런 걸까 싶었지만 그저 내 목소리가 싫었다. 그렇게 10년을 일했다. 하지만 말 하는 게 좋았고, 마음 맞는 사람을 만날 때면 떠들기가 바빴다. 그럼에도, 글과 말, 그렇게 사람을 나눌 수 있다면 、나는 어김없이 글에 가까운 사람이다. 글자에 숨어, 문장 뒤로 몸을 감추고, 그렇게 살았다. 회사를 그만두고 2년, '도너츠 라디오'란 팟빵을 시작했다. 아마도 스다 마사키의 라디오 '올 나이트 니뽄' 이후의 시간

현실 벼랑 끝의 일본, 어쩌면 대역전
‘어쩌면 51번째 도쿄’란 글을 쓰고 ‘광복절에 경우가 아니죠’란 댓글을 받았다. 며칠 전 축구 경기에선 황희찬이 지금 일본에서 신드롬이 된 Da Pump의 ‘USA’를 연상케 하는 세레머니를 했다. 한국에선 그닥 인기가 있는 것도 아니고, 그 어떤 국내의 웹에서도 본 적이 없어, 묘하게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누군가 알아챈 이가 있다면 역시나 ‘경우가 아니죠’라 얘기를 할 지 모른다. 하지만 노래는 각자의 노래, 댄스는 각자의 댄스. 한일전이거나 일한전이거나. 한국의 대부분이 마음에 들지 않는 나는 어김없이 답답한 90분에 열을 내고 있었다. 그렇게 세상은 어쩌면 생각보다 복잡할지 모른다. 얼마 전 개봉한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영화 ‘만비끼 가족’은 일본에서 1주일만에 100만 관객을 동원했다. 하지만
황희찬의 세레머니, 황희찬의 USA
어제 밤 황희찬의 세러머니, 지금 일본에서 신드롬 수준이 된 Da Pump의 USA 댄스. 내겐 연장의 시원한 두 골만큼 답답했던 90분을 홀가분하게 날려주었던 순간. 알아챈 누군가는 어쩌면 또 경우가 아니라고 볼멘 소리를 하겠지만, 노래는 결국 각자의 노래, 댄스는 결국 각자의 댄스, 한일전이거나 일한전이거나. 사는 건 사실 뭐 이런 거.
'서치'와 '휘트니', '휘트니'와 '서치'
영화 '서치'는 어쩌면 끝이 없는 미로 이야기다. 영화 '휘트니'는 어쩌면 집에 돌아가지 못한 미아 이야기다. 물론 둘은 아무런 관계도 없고 그저 나는 '서치'를 보고 이틀 후 '휘트니'를 보았을 뿐이다. 어김없이 개인적인 이야기, 나는 그저 오늘도 개인적인 이야기를 한다. 딸의 실종을 둘러싼 아빠의 애절함을 온갖 SNS와 컴퓨터 화면으로 끌고가는 '서치'에서 유일하게 내게 울림을 준 건 선뜻 쓰지 못해 화면 바닥에서 꿈틀대는, 채워지지 못한 말풍선이었다. 영화에서 만든 이의 의도가 너무나 선명하게 보일 때, 나는 왜인지 그 영화가 진짜처럼 느껴지지 않는다. 드랙(drag)과 카피, 그리고 페이스트의 무수한 반복 속에 영화는 내게서 멀어져 갔다. 사실 '서치'는 꽤 그럴싸한 아이디어였을지 모른다. 모두가
어쩌면 오십 한 번째 도쿄
이런 도쿄는 처음이다. 여행도, 일도 아닌 도쿄를 다녀왔다. 사실 딱히 도쿄를 여행했던 적은 별로 없다. 그저 가던 곳을 다녔고, 가던 길을 걸었고, 항상 비슷한 자리였다. 하지만 오래 전 구입한 무인양품의 수트케이스를 제외하면 모든 게 왜인지 달랐다. 가기 전날, 한숨도 자지 못했다. 밤보다 아침이 가까워질 즈음 그냥 자는 걸 포기했다. 가기 전에 꽤나 설레던 사람이었는데 어쩌면 변했다. 오래 전 쓰던 지갑에서 필요한 것들을 지금 쓰는 지갑에 채워 넣었다. 몰랐던 엔화가 얼마 있었고, 아마도 쓰지 않을 이세탄 백화점 카드가 두 개 있었다. 미타카에 살기 시작할 무렵 샀던 스이카(suica)를 확인하니 마지막 사용일부터 10년간 유효하다. 도쿄에서의 1년을 뒤로하고 돌아온 게 10년 정도 됐으니, 그러니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