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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만화를 베고 잘 필요가 있다, '이 만화가 대단해'

나쁜 일은 왜 나쁠 때 더 자주 찾아오는지, 이보다 더 할 수 없다는 말은 왜 무색해지는지, 우울은 어디에서 오고, 최악은 왜 최악이 아닌지. 아무것도 알 수 없는 상황에서 나는 그저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바라본다. 노기 아키코의 드라마 '짐승이 되지 못하는 우리들'에서 코세이(마츠다 류헤이)가 얘기한 '누구에게 화를 내야할지 모르겠다'는 대사는 후쿠시마 재난 이후 해체된 나날에 대한 초라한 한숨이었지만, 아픔을 이겨내는 건 어쩌면 지친 한숨을 외면하는 도망, 우울을 살아가는 건 아마도 얼마 남지 않은 용기를 지켜내는 일일지 모른다. 올해 가을부터 방영 중인 심야 드라마 '이 만화가 대단해(この漫画がすごい)'는 누구나 간직하고 있는, 서랍 깊숙이 넣어둔 작은 용기, 부스러지지 않은 마음에 관한 이야기다

IMF는 ing... 국가 부도의 날

그럭저럭 일어나 그럭저럭 아침을 먹고 그럭저럭 버스를 탄 날의 이야기. 오랜만에 울린 전화벨에 모르는 번호를 받으니 스팸이다. 소심하지만 어김없이 B형인 나는 '번호를 어떻게 알았냐'고 물었고, 상대는 '이거 광고인데요'라며 시치미를 뚝 뗀다. 질문의 물음표를 무색하게 하는 한 마디, 조금의 망설임도 없는 당당하고 떳떳한 한 마디. 점점 화가 나기 시작한 나는 '동의한 적 없다고' 항의했고, 전화는 '이거 광고라고, 바보야'란 말을 던지고 끊겼다. 그냥 혼자 한 번 욕을 해버리고 끊어버렸으면 될 전화, 그저 그러려니 흘려버렸으면 될 이야기. 애초에 '후후' 어플을 설치했으면 면할 수도 있었을 일. 하지만 나는 이렇게 그냥, 그저 흘려버리고 말아야 하는 일들이 산재하는 이 나라가 싫다. 그럭저럭 무너져내린

우울할 때 나는 춤을 춘다, 해피 댄싱

산드라(이멜다 스턴톤)는 가정을 잃었다. 나는 직장을 잃었다. 산드라는 한적한 마을 저택에서 허르슴한 동네 공영 주택으로 떠나왔고, 나는 신사동의 작은 원룸에서 엄마가 계시는 인천의 아파트로 옮겨왔다. 산드라는 중년을 넘긴 할머니고, 나는 서른 중턱을 넘은 독신 남자다. 비슷해 보이지만 어김없이 다르고, 어디 하나 같은 구석 없지만 닮아 보이는 이 이야기에, 나는 주책맞게도 눈물을 흘렸다. 6,70을 넘은 노인들이 추는 춤에 한없는 눈물을 흘렸다. 늦은 나이에 시작하는 새로운 삶이, 죽음이 아른거리는 내일을 이겨내는 힘겨운 용기가 슬퍼서 흘린 눈물은 아니다. 아픔에, 슬픔에, 외로움에 가려졌던 날들이, 어쩔 수 없이 기대곤 했던 또 하나의 아픔, 또 한 번의 우울이 나는 하염없이 슬펐다. 그렇게 발자국을

지나간 시간을 주워 담을 순 없지만, '친애하는 우리 아이'

영화 '친애하는 우리아이'는 제목부터 이상하다. 좀처럼 쓰지 않는 수식어, 왜인지 현재형이 아닌 듯한 뉘앙스, 원제를 찾아보니 히게마츠 키요시의 소설은 '어린 아이 우리 집에 태어나(幼な子われらに生まれ). 어딘가 시간을 멈춰 세우고, 시작 아니면 끝, 현재에 남아있는 듯한 지난 날의 시간을 암시하는 불안한 기운이 영화엔 흘러간다. 주인공 타나카(아사노 타다모부)의 출퇴근 길엔 하루도 빠지지 않고 엘레베이터의 도착 아나운스가 들려오고, 카메라는 왜인지 엘레베이터 옆 길고도 긴 계단을 바라본다. 단란한 가정의 그저 일상적인 장면으로 스쳐가는 이 대목은 이상하리만치 반복되며, 타나카가 선택하지 않은 또 하나의 갈림길, 삶의 이곳이 아닌 저곳의 시간을 떠올리게 한다. 그러니까 선택이 남기고 간 포기의 시간. 타

고인 시간의 엘레지, 군산-거위를 노래하다

군산은 고여있다. 일제 시대 반세기 이전의 시간이 그곳에 고여있다. 일본식 주택, 단정한 마을이 이제야 관광지로 이야기되곤 하지만, 군산은 아픔의 기억이 부유하는, 시간 속 섬 같은 도시다. 장률 감독의 영화 '군산: 거위를 노래하다'를 보며 어김없이 그의 전작 '경주'를 떠올렸다. 7년 전 춘화의 기억을 찾아 그보다 더 깊은 시간을 서성이던 하염없는 고독은 '경주'를 지나 '군산'에서 쓸쓸함을 배회한다. 나란히 늘어선 집들, 무언가를 숨긴 듯 굳게 닫힌 문들, 결코 수평을 포기하지 않는 집념의 앵글. 그만큼 소외되고 고립된 도시, 군산. 하지만 영화에 흐르는 건 '와본 적 있는', '본 적 있는 얼굴'의 알 수 없는 기시감이고, 영화는 공포와 희망, 어제와 내일이 뒤섞인, 그렇게 시를 닮은 골목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