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ELL ME YOURS I WILL TELL YOU MINE

Sources

Posts

298 posts

카페에서 홍상수는, 홍상수의 놀랄 변화 '풀잎들'

'좋아보인다', '좋아보이세요.' 홍상수 감독의 영화, '풀잎들'은 제목 그대로 길가의 풀잎들로 시작한다. 흔해빠진, 별 거 아닌, 그저 초라한 풀잎들을 아무런 이유없이 쳐다본다. 그냥 지나치고 마는, 이름조차 없는 그 잎들을 왜인지 오래동안 바라본다. 그의 영화 제목이 어느 하나 비범하지 않았던 적은 없지만, '풀잎들'은 그저 복수형의 명사이고, 유일하게 추상이 아닌 현실 구석에 자리한다. 묘한 단어의 조합으로 여기 너머를 은유하거나('극장전 前,傳)', '생활의 발견', '클레어의 카메라'), 애써 의미를 밀어내며 보이지 않는 세계에 접근하려 하지 않는다('당신 자신과 당신의 것', '지금은 맞고 그 때는 틀리다'). 오히려 홍상수의 스물 두 번째 영화 '풀잎들'은 어느 시점부터 그의 영화에 자주 등

체온 36℃의 사회 드라마, 노기 아키코의 부끄럽지 않은 도망

90년대 일본 드라마의 영광이 로망으로만 남은 지금, 희미해진 일드의 자리에서 유독 빛나고 있는 건 노기 아키코란 이름 다섯 자다. 물론 독특한 리듬의 코미디로 이야기를 버무리는 쿠도 칸쿠로, '파트너', '리걸 하이' 등 시리즈물만 두 개 갖고 있는 요시자와 료타, '버저 비트, 벼랑 끝의 히어로'의 야마시타 토모히사, '런치의 여왕'의 츠마부키 사토시, 그리고 '롱 러브레터-표류교실'의 쿠보즈카 요스케 등 당대의 청춘을 부지런히 빚어냈던 오오모리 미카가 펜을 놓은 건 아니지만, 노기 아키코의 드라마는 TV의 안보다는 바깥, 90년대의 로망 보다는 NHK 아침 드라마, 노지마 신지 보다는 사카모토 유지의 드라마 곁에서 안방 스크린을 채운다. 얼핏 서툰 남녀의 사랑으로 보이지만 '도망치는 건 부끄럽지만

Unknown, 그 문턱에서. '퍼스널 쇼퍼'

셀 수 없이 많은 노래를 들으며 착각의 눈물을 흘렸다. 셀 수 없이 많은 영화를 보며 거짓된 위안을 받았다. '내 얘기 같은 것', '나에게 말하는 듯한 느낌.' 어디에도 풀어놓지 못하는, 그저 작고 부끄럽고 유치한 망상을 셀 수도 없이 많이 했다. 어차피 노래일 뿐이고, 어차피 영화일 뿐이라며 혼자 민망함을 지우려 애쓴 시간은 헤아릴 수도 없이 길다. 하지만 그 보잘 것 없는, 그 볼품 없는 또 한 번의 망상에서 나는 편안함을 느낀다. 감정을 이입한다는 건 누군가의 상황에 자신을 비추어 보는 것이기도 하지만, 내 안에 있던 어느 감정을 만나는 일이고, 갇혀있지만 어디보다 넓은 세계를 사는 일이다. 고작 노래 한 곡, 고작 영화 한 편일 수 있는 나와 닮은 무언가에 나는 이제야 기도를 시작한다. 올리비에 아

기괴한 삶의 단면, '양의 나무'

'좋은 마을이에요. 사람도 착하고, 생선도 맛있고.' '양의 나무'는 이 세 문장 안에 있다. 작은 어촌 마을에 새로 이주해온 사람들을 안내하며 시청 직원 츠키스(니시키도 료)가 건네는 문장들은 정해진 공무원의 매뉴얼 같은 말들이겠지만, 어딜 찾아보아도 마침표가 찍혀있지 않다. 여섯 명의 이주민과 만나며 여러번 반복되는 이 말들은 분명 어딘가 불안하고 위태롭다. 심지어 이주민 모두가 살인자란 사실이 밝혀지면서 영화는 초반부터 팽팽한 긴장 위에 올라선다. '양의 나무'는 어쩌면 가장 위험한 영화일지 모른다. 작은 시골 마을의 이주민 모두가 살인자란 설정은 그저 조금 과격한 범죄물의 전형일지 모르지만, 영화는 우오부카(魚深)라는, 이름도 묘한 어촌을 선과 악, 악과 선이 서로 기생하는 시간의 현장으로 만들어간다

사람이 착해지는 시간, 일본의 아침

사람이 착해지는 시간, 일본의 아침

일본에도 아침 드라마가 있다. 국내에선 대략 9시 즈음 시작하는 드라마를 그냥 아침 드라마라 부르지만, 일본에선 아침 8시 15분부터 15분간, 30분까지 방영되는 NHK의'연속 테레비 소설'을 그냥 '아사도라(朝ドラ)', 아침 드라마라 부른다. 매회 15분밖에 되지 않는 분량이지만 주 6회 방영되고, 그렇게 반년을 지속해, 대개 작품당 150회를 넘긴다. 일년에 두 편, 서로 다르지만 어딘가 마음이 착해지는 아침이 일본엔 찾아온다. 주로 불륜에서 시작해 치정극에 다다르는 질펀한 이야기가 다수인, 그렇게 가정 주부의 스트레스 해소용 도구가 되고마는 국내의 아침과 달리, 일본은 어제의 피로를 일으키고, 하루의 시작에 조금의 활기를 더하는 아침을 만든다. 먹구름 가득찬 우중충한 하늘과 맑게 개인 파란 하늘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