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ELL ME YOURS I WILL TELL YOU MINE

Sources

Posts

298 posts
여름이 되어 끝나버린 그의 계절, 레토

여름이 되어 끝나버린 그의 계절, 레토

영하 2도, 한 겨울에 '레토'를 본다. '레토'는 80년대 러시아의 록커 빅토르 최의 이야기고 '레토'는 러시아어로 '여름'이다. 처음 영화의 제목을 들었을 때, 나는 어쩌면 나처럼 작을지 모를 고독을 느꼈고, 러시아어를 조금도 모르면서 이 영화의 계절을 몹시 기다렸다. 레닌그라드 시대, 폭력과 억압에 시름하는 러시아의 흑백 영화같은 청춘을, 영화는 지치지 않고 노래한다. 영화를 보기 전 나는 저항의 시대를 사는 록 스토리 정도만 생각했지만, 누군가는 로큰롤 엘레지라 영화를 수식했고, 나는 그 곁에 바닷가에 홀로 남은 비트, 빅토르 최의 모습을 더하고 싶다. 많은 순간 자신의 자리에서 주저하는 빅토르 최(유테오)의 고독이 나는 좋았다. 애절하게 좋았다. 영화는 80년대 잿빛 시대를 펑크의 폭발하는 컬

새해의 바램, 한국 TV의 전원을 껐다

새해의 바램, 한국 TV의 전원을 껐다

새해 첫 날이 반이나 지나고, 레슬리 키가 페이스 북에 올린 유민(ユーミン)의 '함께 살아요(一緒に暮らそう)'를 보다 그제서야 새해가 시작함을 느낀다. 종각의 '제야의 타종 행사' 같은 거창한 흥분은 내게 어울리지 않고, 1986년, 이미 30년 도 전에 만들어진 일본의 퍼포먼스에 새로움이 몽글몽글 솟는다. 일본의 무대 연출, 기술은 화려하고, 놀랍고, 기발하다 부러워하곤 하지만, 그들에게 그건 그저 장식이고, 나는 늘 일본의 엔터테인먼트에서 사람의 체온을 느낀다. 코카콜는 시부야 스크램블 쿄차로에 대형 스크린을 여러 대 설치하고, 거리에 모인 수 만 명의 사람들, 라이브 중계를 보는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누군가의 2018년을 축하했다. 스다 마사키, 요시자와 료, 아야세 하루카와 함께 거2019년을 '함

밤의 현실, 꿈의 흔적, '잘 때도 깨어 있을 때도'

꿈의 도중 잠이 깨어 다시 눈을 감아도 돌아갈 수 없다. 조금 전까지 선명했던 그림은 흐릿한 방 풍경 너머 어딘가로 사라졌다. 이런 며칠, 이런 몇달, 이런 나날을 보내고, 상수동 어느 언덕길을 걷다 이런 노랫말을 만났다. 우타다 히카루가 8년의 공백을 지나 만든 앨범 'Fantome'의 수록곡, 제목은 이 겨울에 '한 여름에 스쳐가는 비(真夏の通り雨).' 고작 40 년을 조금 모자라게 살았지만, 이제야 문득 뒤를 돌아본다. 왜인지 도쿄행 비행기를 끊고, 왜인지 오래 전 살던 동네를 걷고, 왜인지 아늑했던 기억 속 극장에 가 영화를 보았다. 어쩌면 기회는 여러 번 있었을지 모르지만 내게는 보이지 않았고, 누구도 이런 말을 해주지 않았다. 그저 노래를 듣고, 무언가를 쓰는 나날 속에. 나는 '어쩌면'

가장 매력적인 도망, '로마'

첫 장면에서 거의 모든 게 알 것 같은 영화가 있다. 빤한 줄거리가 예상되거나, 흔해 빠진 구도가 보이는 얘기같은 걸 하는 건 아니다. 이창동 감독의 영화 '버닝'에서 트럭 뒤로 담배 연기가 새어 나왔을 때, 홍상수 감독의 영화 '풀잎들'에서 아무런 이유없이 카메라가 초라한 풀잎들을 바라볼 때, 나는 왜인지 이 영화들을 알 것 같았다. 생각해보면 그 느낌은 어쩌면 제목의 한 자락인 것 같기도 싶지만, 나는 이 영화들을 생각하면 아직도 그 첫 장면의 희미하고 선명한 기운이 떠오른다. 요 며칠 동안 '하마구치 류스케'의 '잘 때도 깨어있을 때도(寝ても覚めても)'를 보고 눈물을 흘렸다. 알포손 쿠아론 감독의 '로마'를 보고 무력한 아침의 빛 같은 걸 느꼈다. '잘 떄도 깨어있을 때도'는 어린 남자들이 폭죽 놀

나와 닮아 슬픈 도쿄, 아리가또

이 보다 사람이 많이 모여 사는 도시는 없다. 옆에 두었던 가방을 누군가를 위해 치우고, 노래가 몇 곡 흘러간 뒤 그와의 거리는 한층 가까워진다. 시부야 교차로 귀퉁이에서 함께 담배를 피우던 남자는 저녁을 먹기 위해 간 곳 구석에 앉아있었고, 연일 아침을 먹었던 가게의 사람들은 다른 듯 변함이 없다. 인구 천만, 세계에서 가장 인구가 많은 나라 같은 걸 애기하는 건 아니다. 나는 도쿄에서 가장 사람을 느낀다. 같은 시간, 같은 장소에서, 같은 영화를 기다리고, 같은 장면에 눈물을 흘리거나 졸음에 고개를 꾸벅이는 사람들, 라이브 공연의 순서가 110번이거나 308번인 사람들, 새로 산 피어스를 하고 나선 거리에서 마주친 어쩌면 똑같은 피어스의 남자와 극장을 들어서려던 순간 문을 열고 나오는 고레에다 히로카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