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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권 지갑 속 조그만 부적

여권 지갑 속 조그만 부적

한량|2018년 7월 9일

인천-뮌헨-바르셀로나로 가는 여정. 좌석에 앉아 자일리톨 껌을 꺼냈다. 비닐을 벗기고 껌 하나를 꺼내려는데 종이 포장지의 문구가 눈에 들어온다. '매사 순조롭게 풀리게 되리라'. 껌종이에 쓰인 글귀치곤 엄중한 어조다. 문득 이 예언적 글귀에 의미를 부여하고 싶어졌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그저 순리대로 순조롭게 별 탈 없이. 그런 여행이 된다면 얼마나 좋으랴. 구겨 버리는 대신 여권지갑에 소중히 끼워 넣는다. 조그만 부적이 생겼다. 먹고 자고 먹고 자고 하다 보니 뮌헨이다. 비행기에서 내리려는데 루프트 한자 어플에서 알림이 온다. 환승편인 바르셀로나 행 비행기가 취소되었다고. 그리고 이어 대체된 편명이 뜨는데 어쩐지 이상하다. 뮌헨에서 브뤼셀에 가란다. 그리고 거기서 다시 바르셀로나로 가는 비행기를 타라고

백 투 더 베이직, 바르셀로나

백 투 더 베이직, 바르셀로나

한량|2018년 7월 6일

이 도시를 처음 방문한 것은 팔 년 전이다. 걱정하는 엄마에게 넷이서 함께 가니 염려하지 말라고 큰 소리를 쳤으나, 사실 나 혼자의 여행이었다. 바르셀로나-마드리드-세비야-그라나다-말라가-리스본-포르투.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던 한인민박에서부터 겹겹이 들어찬 혼성 도미토리까지. 무섭거나 어려울 것은 하나도 없었다. 소매치기로 악명 높다는 도시들에서도 나는 지극히 안전했다. 헐렁한 에코백을 매고 간밤에 얼려둔 이 리터짜리 생수병을 한 팔에 안고 다녔다. 가방은 무거운데 그건 다 필름카메라와 두꺼운 론리플래닛 탓이었다. 스페인&포르투갈 편을 들고 나선 첫날, 숙소로 돌아온 나는 커터칼로 책을 난도질했다. 굽은 어깨를 펴며 앞으로 갈 도시별로 나눠 테이프로 분철했다. 그러니까 돈은 없는데 트렁크에 커터칼과 테

가방을 꾸리는 마음

가방을 꾸리는 마음

한량|2018년 7월 6일

말도 많고 탈도 많은 계절이었다. 이것이 몇 번째 사춘기쯤 되려나. 연초에 찾은 병원에선 비타민 디 결핍이라 했다. 늦겨울 해가 질 무렵이면 나는 서쪽 창가에 기대 지는 햇살을 일부러 맞았다. 별 효용이 없었을까. 자주 울던 날들이었다. 고민은 깊었는데 실행은 한순간이었다. 반나절만에 비행기표를 끊고 첫 번째 도시의 집과 두 번째 도시의 집을 정해버렸다. 첫 번째 도시에서 두 번째 도시로 넘어가는 비행기표도 예약했다. 세 번째 도시의 집들을 둘러보다 노트북을 닫았다. 뭐 어떻게든 되겠지. 내게는 그런 마음과 자세가 절실했다. 될 대로 되라지의 뻔뻔함. 표를 끊었으니 어떻게든 가게 되지 않겠나의 자세로 시간이 흘러갔다. 그러는 사이 네 번째 도시, 그러니까 서울의 집에도 게스트가 도착했다.창덕궁 앞 버스

꼬리에 달을 매단 밤

꼬리에 달을 매단 밤

한량|2018년 7월 3일

포르투에서 뮌헨을 거쳐 인천으로 향하는 길. 동유럽을 지나 몽골과 러시아 상공을 거치는 항로. 총 비행 시간은 아홉 시간 오십 분이라 했다. 게이트 앞 줄이 줄어들기를 기다려 비행기에 오르니, 먼저 탄 승객들의 눈은 죄다 모니터에 꽂혀있다. 대한민국과 독일의 경기가 실시간으로 중계되고 있었다. 나는 한 눈을 팔다가도 기내에서 함성이 일면 모니터를 바라보았다. 엎치락 뒤치락 모두들 애를 쓰는 사이 비행기는 이륙했다. 그리고 경기 막바지에 이르러 얻은 두 골. 사람들은 박수를 치고 휘파람을 불고는 잠시 웃었다. 우리가 탄 비행기가 루프트 한자여서 더욱 그랬을 것이다. 좌석 지정을 미리 안 한 덕에 창가 쪽 세 자리 중 가운데 자리에 앉을 수 있었다. 복도 쪽 좌석에 앉은 분이 화장실에 가시면, 그 틈을 타서

고양이 과의 인간, 개 과의 인간

고양이 과의 인간, 개 과의 인간

한량|2018년 6월 18일

밤 늦게 집으로 돌아오면, 자던 오또가 일어나 짖었다. 가끔은 나와서 우리를 확인하기도 했다. 그러다 우리인 것을 알면 조용히 다시 침대로 돌아갔다. 저 쪼맨한 강아지도 집을 지키겠다고 짖는 줄 아는구나, 생각했다. 엘리와 엘리의 친구 안나, 그리고 우리 둘 사이를 오고가며 저 좋은대로 어리광을 부렸다. 아침에 일어나면 집안 구성원들을 만나는 순서대로 다가가 손이나 발을 핥았다. 오또의 머리를 쓰다듬으면 조그만 머리뼈가 만져졌다. 늘어진 귀는 가끔 절로 뒤로 젖혀졌다. 달이 말한대로 뒷목이나 턱 아래를 만져주면 오또는 얌전해졌다. 길다란 등도 쓰다듬는다. 엘리는 오또가 마사지를 좋아한다고 말했다. 달은 강아지를 키워본 적이 있다고 했다. 그래서 개와 놀아주는 것에 스스럼이 없다. 오또가 입을 부벼도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