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량
Posts
167 posts삼청동 자기만의 방
늦봄부터 지금까지 여러 일들이 겹쳐 일어난다. 덕분에 오랜만에 만난 친구 앞에서, 나는 지지난 계절부터의 이야기를 늘어놓는다. 마음 좋은 친구는 그 모두를 잘 들어준다. 적당히 고개를 끄덕거리며, 알맞은 추임새를 곁들여 가며. 오늘은 어제의 결과, 오늘은 내일의 원인. 인과론에 충실한 날들이다. 새로운 도전이라면 도전일까, 어쩌면 모험이 될 수도 있는 일들도 몇 있다. 나 홀로 하는 것도 있고, 같이 주거니 받거니 하며 만드는 일도 있다. 소포를 받고 또 택배를 부치다 끙끙대며 원고를 쓴다. 떨리는 마음으로 파일 첨부한 메일을 보낸다. 무엇보다 나는 공손한 협력자가 되려 노력한다. 성실하고 젠틀한 모습을 보이고 싶은데, 그전에 미리 깨닫는다. 성실하고 젠틀한 모습을 보이려면, 먼저 내가 그런 사람이어야 한다
식탁 위에는 그보다 더 풍성한 이야기가
일요일 아침. 일찍 일어난 새가 되어, 얼음 띄운 오렌지 주스와 어젯밤 포장해 온 하몽을 먹는다. 짠맛과 상큼함이 잘도 어우러진다. 그걸 주워 먹으며 키보드를 두드린다. 두드리는 시늉만 하지 않기 위해, 미간에 주름도 잡아본다. 하루에 정해둔 페이지만큼 규칙적으로 작업하자는 다짐은 살포시 흩어진 지 오래. 시간 내어 공들여 들여다보고 있기엔 바깥의 날씨가 아깝다. 결국 결론은 하나. 작업 시간에 연연하지 말고, 틈틈이 짬을 내어 집중력을 퍼붓기로 한다. 어째 어릴 적 눈높이 수학을 풀던 때와 다르지 않다. 훔쳐볼 정답지가 없다는 것만 빼고. 그러니 나가기 전 잠깐, 낮잠을 자는 대신 또 잠깐, 밤에 잠이 오지 않으면 다시 잠깐. 스타카토로 짜내는 원고다. 오늘은 저녁에 갈 곳이 있다. 그러므로 그 언저리
축제 너머의 삶
블럭으로 깔끔하게 구획된 바르셀로나를 위에서 들여다보면, 곳곳에 푸른 영역이 있다. 크고 작은 공원들이 즐비한 도시. 구글맵으로 보고 있노라면, 공원과 공원 사이를 한 발 뛰기로 건너다닐 수 있을 것 같다. 연두색 보도블럭만 밟기 놀이처럼. 미로 공원을 나서 맥주공장까지 걸음을 재촉한다. 그러나 오늘은 무슨 날인지, 여간해서 쉽게 가기 어렵다. 골목골목에서 일어나는 일들이 우리의 눈과 발을 붙잡는다. 요란한 음악 소리가 들리기에 고개를 돌리니, 도로를 막아놓고 행사가 한바탕이다. 무대 위에는 에너지 넘치는 분들이 음악에 맞춰 댄스를 선보이고, 그 앞에는 동작을 따라하는 사람들이 모여있다. 어른들부터 꼬마들까지, 팔을 접었다 펴고 다리를 구르며 박자를 맞춘다. 무대 옆, 작은 입간판에는 줌바댄스라 쓰

거짓말 같은 시간
때는 일요일 오후. 오늘 갈 곳은 맥주 공장이다. 그곳에서 갓 만든 맥주를 마음껏 먹는 것이 우리의 목표다. 예전에 달이 출장길에 근처 브루어리에 들러 맥주를 사 온 적이 있다. 상표도 없는 커다란 페트병에 든 맥주들. 갓 만들어낸 맥주의 맛은 놀랍도록 좋았다. 그리 민감하지 않은 혀로도 좋은 것은 좋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때 처음 흑맥주의 맛에 빠지기도 했다. 그 이후로 선택지가 있다면 흑맥주를 고르게 된 나다. 물론 더울 때는 도수가 낮고 쨍한 맛의 동남아 맥주를 마시고, 이도 저도 고를 수가 없다면 카스도 달게 마시는 나지만. 그래도 오늘 밤은 기대가 된다. 술을 콸콸 마실 예정이므로 어디서 시간을 좀 보내다 이른 저녁에 가자며 고른 곳은 호안 미로 공원. 맥주 공장까지의 동선에 있기도 하고, 앞

여행에서 가장 중요한 것
오늘의 일용할 양식. 아침나절 달이 사 온 크로아상을 먹는다. 과일과 오렌지 주스도 빠지지 않고 식탁에 오른다. 부엌 창으로 내려다보이는 중정은 조용하다. 가끔 새들만 날아간다. 둘러선 다른 건물의 테라스에서 누군가 빨래를 넌다. 우리도 창 바로 밑에 걸린 빨랫줄에 우리의 빨래들을 널기로 한다. 엘리가 꺼내준 바구니엔 집게가 한가득이라 아낌없이 넉넉히 널 수 있다. 그러다 옆 건물 일층에서 길게 뺀 처마를 본다. 그 위엔 빨래집게들이 여럿 떨어져 있다. 알록달록한 실수들. 귀여워서 웃다가 행여 같은 실수를 할까 싶어 조심조심 집게를 꽂는다. 쨍쨍한 볕에 빨래를 말리는 것. 그리고 잘 마른 빨래에 스민 햇볕 냄새를 맡는 것. 내가 좋아하는 일들 중 하나다. 공기가 좋은 이 도시에서 마음껏 부릴 수 있는 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