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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지리

한량|2017년 11월 8일

늦은 밤, 서울역으로 향한다. 일주일 전 방콕에서 온 나타폴을 데리러 간 길이기도 하다. 그 후에 부산 여행을 마치고 온 키아를 마중간 길이기도 하고. 밤이 이슥하기에 서부역 출구 앞에 잠깐 차를 댄다. 기차에서 쏟아져 나온 사람들이 만든 줄이 길게 늘어서 있다. 나타폴을 데리러 갔을 때 알게 된 것이기도 하다. 낮과 달리, 자정 즈음의 서울역엔 택시가 많이 없다. 갓길에 정차한 택시의 등은 꺼져있다. 승강장에 줄을 선 사람들의 표정엔 피곤이 역력하다. 그 근처로 낮은 목소리가 오고 간다. 안양, 안양 가실 분. 광명, 광명. 그렇게 등장하는 지명들로, 나는 그곳의 거리가 이곳으로부터 많이 멀다는 것을 안다. 차를 주차하고 역사 안에 들어서니, 아저씨 둘이 싸우고 있다. 서로의 팔을 붙들고 잡아끌고 있다

인연은 헝가리어로 뭘까

인연은 헝가리어로 뭘까

한량|2017년 10월 9일

늦여름 도착했던 페트라가 며칠 전 떠났다. 사십여일의 시간. 페트라는 몇 가지를 남겼다. 헝가리 관광청에서 만든 부다페스트 안내서, 부다페스트 가이드북, 그리고 빼곡하게 쓴 헝가리 디저트 레시피와 재료. 레시피로 만든 디저트도 선물로 남겨두었다. 오븐도 없는 집에서 어찌 이런 것을 다 만들어냈을까 싶은. 그리고 손으로 쓴 메시지와, 길고 긴 후기도 남겼다. 자기 대신 남산 타워와 인왕산에게 안부 인사를 전해달라고 했다. 매일 밤 그리고 매일 아침, 그들을 바라보는 것이 행복했다고. 무엇이 페트라를 이렇게 만들었을까. 부다페스트에 오게 된다면 꼭 연락하라는 말을 하며, 페트라는 마지막 말을 덧붙였다. 한국에 정착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고 있다고. 그러니 지금의 안녕은 영원한 안녕이 아니라고. 언젠가 다시

서울에 사는 것은 어떠니

서울에 사는 것은 어떠니

한량|2017년 8월 30일

사진은 김보리(@_kimbori). 흐릿한 부분을 옮겨 적자면 이렇다. 'A woman must have money and a room of her own if she is to write fiction.' 이프 쉬 이즈 투 다음엔 다른 여럿이 들어갈 수 있겠지. 무엇을 만들어내든, 어디를 돌아다니건, 구속 없이 존재할 수 있는 상태. 백 년 전에도 불가능했고, 지금도 완전하지 않은 명제. 그래서 나는 거기에 갈급함이 있다. 손수 문구를 골라 액자를 만들었다. 섬광처럼 다가온 이름을 기념하기 위해. 원서동의 A room of One's own. 위건 아래건 나이의 차는 중요치 않다. 국적과 하는 일의 여부도 물론. 혼자 온 여행자들을 마주할 때마다, 나는 들뜨고 설레는 마음을 감추기 바쁘다. 하지만

포트레이트 일기

포트레이트 일기

한량|2017년 8월 24일

달은 여행 전날 새로운 카메라를 사들고 왔다. 한 롤도 안 찍어보고 운에 맡기는 거야? 라고 물었는데, 다행히 좋은 사진들이 많이 나왔다. 미리 점검도 받고 수리도 했던 내 카메라는 니스에서 죽었다. 불쌍한 카메라. 더 불쌍한 나. 그런 슬픈 미래를 모르던 때, 우린 각자의 가방에 필름들을 챙겼다. 그 양은 제법 많아서 종군기자의 출장길 같기도 했다. 이건 다 너 찍을거야, 라고 달이 말했는데 결과물을 보니 정말 그런 것 같다. 개인 사진사를 대동한 여행. 그것도 많이 친밀한 사이의.그래서 무방비 상태에서 찍힌 사진들이 많다. 막 잠에서 깬 얼굴. 긴장해 각 잡지 않은 포즈. 나도 모르는 평범한 내 표정. 종종 신기해 한다. 난 이제 누구와도 이렇게 나란히 누워 잠들지 못할 것 같은데. 엄마와 누워도 불편할

노래들의 고향

노래들의 고향

한량|2017년 8월 12일

칠월이 되기 전이었나, 문득 용기를 내어 메시지를 보내보았다. 그리고 온 답장. 괜히 보낸 것일까 걱정하던 것이 무색해질만큼 반가워하는 내용이 담겨있었다. 몇 번의 메시지가 오고 간 후, 우리는 칠월의 금요일에 만나기로 했다. 내 얼굴을 모르니 드레스코드를 정해야 한다는 말에 나는 냉큼 레드라고 말했다. 부토니아 생각을 지우고, 더위를 무릅쓰고 긴 소매 블라우스를 입고 나선 길. 가슴이 두근거렸다. 그리고 곧 우리는 만났다. 두 종류의 파스타를 나눠먹으며, 샹그리아 잔도 부딪쳤다. 사적인 자리에서 처음 만난 가수와 팬이라기엔 너무 많은 이야기들이 터져나왔다. 우리는 서울의 집들에 대해 이야기했다. 거기엔 당연히 때 되면 이삿짐을 싸고 푸르는 지난 삶이 녹아있다. 부모 품을 떠나 살아온 사람이라면 누구나 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