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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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바여행 열아홉번째, 집으로 돌아가는 길
여행기의 마지막을 쓰기 위해 맥주를 꺼내왔다. 여행 내내 물처럼 마셨던 맥주가 생각난다. 여름 여행과 맥주는 아주 잘 어울린다. 떼어 놓고 생각하기 힘들다. 볕은 뜨겁고, 땅은 달아오른다. 그늘을 따라 걸으려 해도, 햇살을 피하기 어렵다. 콧잔등에선 땀이 맺히고, 지나치게 잘 익은 얼굴은 한 겹 더 그을린다. 그러다 늦은 오후쯤 되면, 갑자기 짙은 회색의 구름이 낮게 드리워진다. 산에서 밀려내려오는 그 구름들. 곧 이어 한바탕 소나기가 퍼붓고, 나는 빨래를 서둘러 걷어와야 했다. 낡은 선풍기가 털털거리며 돌고, 곳곳에 습기 찬 공기가 가득하다. 구색 맞추기로 둔 것 같은 에어컨은 비 포 사이즈 만하다. 미약한 냉기와 우람한 소음이 함께 한다. 좁은 철판을 이어 만든 창문은, 쇠로 만든 손잡이를 젖히면 방향에

쿠바여행 열여덟번째, 호텔 안에서 여행하는 법
방문을 열고 들어서면 오른편에 조그만 욕실이 있다. 욕실 세면대 위에는 작은 창문이 하나 있는데, 그 너머로 건물 외벽의 어둡고 거친 벽이 보였다. 수도관 등이 얽힌 모습이 영 스산했다. 욕실 문 앞에는 조그만 탁자와 거울이 있다. 그리고 방 가운데에 덩그러니 놓인 더블 침대. 달과 묵던 모든 숙소에는 침대가 두 개씩 있었다. 처음엔 싱글 침대가 왠말이냐던 달은, 작은 침대에선 껴안고 자야하니 더 좋다 말했다. 침대 옆에는 낡은 서랍장과 낡은 구형 티비가 있었다. cnn과 카툰네트워크도 나오던 티비. 나는 뉴스도 조금 보고, 축구도 조금 봤다. 몹시 지지직거리는 중국 티비는 제쳤다. 디카와 동행 없는 사람의 사진. 골고루 잘 그을린 이마와 어깨, 팔. 표정 하나 나오지 않았지만, 혼자의 외로움이 느껴진다.

쿠바여행 열일곱번째, 웨얼 이즈 유어 차코
비냘레스에서 머무는 시간은 조용하고 잔잔했다. 에코 투어로 돌아다닌 날을 빼고는 계속 쉬엄쉬엄 노는 날들이었다. 어디 시골집에 요양이라도 하는 느낌. 늦은 밤, 서울의 시간을 점치면서 달을 생각하기도 하고 그 마음을 일기로 쓰기도 했다. 그러다 걸려온 전화. 무슨 전화지? 하고 받았더니 낯익은 한국말이 들려온다. 여기는 서울지방검찰청입니다. 지금이라면야 콧방귀 흥 뀌면서 단박에 끊을테지만, 그때 나의 귀는 얇고 말랑말랑해져 있었다. 아니 이게 무슨 말인가. 내가 거래한 적도 없는 모 은행과 모 은행에서 내 명의의 통장을 사용한 범죄가 일어났다구요? 거듭된 추궁에 나는 진땀을 빼며 대답을 이어갔다. 정말 통장 개설한 적 없습니까? 카드도요? 네.. 네. 저는 없어요. 저는 거기 은행들 이용 안 해요..

쿠바여행 열여섯번째, 시골 마을의 밤
잠시 쉬는 시간, 마당에 나와 주변을 둘러본다. 꼬맹이는 닭들을 쫓아 마당을 휘젓고, 할아버지는 칡이나 마처럼 생긴 것들을 쉭쉭 깎아 닭들에게 던져준다. 시가를 물고 무심하게 칼질을 한다. 집 뒤편에서 칠면조들이 꾸룩꾸룩 운다. 가이드 아저씨는 칠면조 울음소리를 기가 막히게 낸다. 그 소리에 칠면조들이 화답할 정도다. 그에 웃는 우리들을 모아두고, 이제 갈 곳들에 대해 알려준다. 그러더니 지나치게 가까이 선 모고테에 대고 크게 야호를 외친다. 야호는 모고테에 부딪쳤다 다시 돌아와 메아리친다. 아저씨가 말씀하신다. 이게 바로 '에코' 투어죠. 여러모로 웃긴 아저씨다 정말.정말이지 '에코'한 투어다. 우리는 풀섶을 헤치며 걷는다. 아저씨는 틈틈이 멈춰서 이건 무슨 꽃이고, 이건 무슨 열매고 하며 알려준다. 알알

쿠바여행 열다섯번째, 쿠바산 시가를 물고서
아침 나절, 시골길을 걸어 비냘레스의 마을 광장으로 간다. 주유소를 끼고 돌면 작은 읍내가 나타난다. 가운데에 시골 교회가 있다. 그 옆으로 단층짜리 건물들이 줄 지어 있다. 어제 이곳 여행사에서 투어 프로그램을 알아보았다. 두툼한 파일철에는 끼워진 광고지들을 뒤적였다. 근처 바닷가에 가서 스노클링을 하고 돌아오는 프로그램부터 동굴을 방문하는 투어도 있다. 나는 오전에 시작해 점심께 끝나는 워킹 투어를 신청했다. 자연 경관으로 유명한 작은 도시니만큼, 그 일대를 살랑살랑 걸으며 구경하는거겠지 싶었다. 내일 이 시간에 여기서 모이면 출발해, 라며 손으로 적어준 바우처를 들고 여행사 앞에 갔을 때, 이미 많은 사람들이 그곳에 모여 있었다. 그런데 뭔가 이상하다. 다들 등산화, 아니면 워킹화, 적어도 최소한 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