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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posts뉴욕 맨하탄에도 개선문이 있다? 초대 대통령 취임 100주년을 기념하는 아치가 있는 워싱턴스퀘어 공원
제목에 '개선문'이라 써놓고 보니 이야기를 안 할 수가 없는데... 대연회장을 짓겠다고 절차도 무시하고 백악관 이스트윙(East Wing)을 철거했고, 케네디센터에 마음대로 자기 이름을 넣었다 관객이 급감하니까 2년간 개보수를 한다며 올여름부터 폐쇄하겠다는 트럼프가, 이번에는 알링턴 국립묘지 입구에 올해 미국독립 250주년을 기념해 높이 250피트(76m)의 세계 최대 독립 개선문(Independent Arch)을 만들겠단다. 이러다가 수도 이름도 '트럼프DC'로 뺏길지 모르는 초대 대통령 워싱턴을 기리는 뉴욕 맨하탄에 있는 아치 방문기가 좀 엉뚱하게 시작됐다~ 지난 가을 북부 뉴욕주 2박3일 혼행의 마지막 날, 평소처럼 새벽에 눈이 떠져서 딸의 맨하탄 아파트를 나와 아침을 먹으러 왔다. 뉴욕 대학교(New York University, NYU)가 위치한 옆동네 노호(NoHo) 지역의 24시간 맥도널드였는데, 입구쪽 테이블에 홈리스 두 명이 엎드려 자고 있었지만 직원이 내쫓지는 않았고, 제일 안쪽 테이블에서 간단하게 아침을 해결하는데 뭐 큰 문제는 없었다. 거기서 서쪽으로 조금 걸으면 나오는 그리니치빌리지(Greenwich Village)의 한가운데 워싱턴스퀘어 공원(Washington Square Park)이 널직하게 자리잡고 있다. 뉴욕시 공원국의 로고가 동그란 원 안에 단풍잎 하나가 그려진 모양이라 자꾸 캐나다를 떠올리게 된다.^^ 공원에서 처음 만나는 동상은 이탈리아 통일의 영웅인 주세페 가리발디(Giuseppe Garibaldi)로 사후 6주년인 1888년에 이탈리아계 이민자들이 성금을 모아 만들었는데, 그가 망명중이던 1850년대에 뉴욕시에 거주했던 인연이 있기 때문이란다. 자세히 보면 특이한 모자를 쓰고 판초를 입은 상태로 칼을 뽑는 순간을 묘사한 굉장히 특이한 복장과 자세의 동상이다. 공원 중앙에 분수대를 중심으로 넓은 원형 광장이 만들어져 있고, 그 북쪽에 '맨하탄의 개선문'이 있다. (구글맵으로 위치를 보시려면 클릭) 조지 워싱턴의 미국 초대 대통령 취임 100주년을 기념해 1889년에 나무와 석고로 임시 아치를 만든 것이 시민들의 인기를 얻자, 기금을 모금해 대리석으로 1892년에 완공한 높이 77피트(23.5m)의 워싱턴스퀘어 아치(Washington Square Arch) 뒷면 모습이다. 제일 상단에는 "현명하고 정직한 이들이 모일 수 있는 기준을 세우자. 결과는 신의 손에 달려 있다."라는 워싱턴의 말이 새겨져 있고, 이 아치를 시작점으로 북쪽으로 뻗은 도로가 미드타운의 명품거리로 유명한 5번가(5th Ave)이다. 정면에서 바라보면 로마의 원조 '개선문(Triumphal Arch)'인 티투스 아치와 파리의 샹젤리제 거리 개선문과 똑같은 익숙한 디자인이다. 참고로 1836년에 완공된 세계적으로 유명한 파리 개선문의 높이는 50미터이고, 1982년에 더 높은 60미터로 평양에 개선문이 비슷한 모습으로 만들어졌는데, 이제 워싱턴DC에 76미터 짜리를 자기가 만들겠다고 하니, 어쩌면 하는 짓이 북한하고 이렇게 똑같은지... 좌우 기둥 정면의 조각은 1910년대에 따로 추가되었는데, 먼저 왼편(동쪽)은 '전쟁의 워싱턴(Washington at War)'으로 배경의 인물들은 명예(Fame)와 용기(Valor)를 각각 상징하고, 오른편(서쪽)은 '평화의 워싱턴(Washington at Peace)'으로 역시 지혜(Wisdom)와 정의(Justice)를 상징하는 인물들을 배경으로 세웠다. 이런 식으로 추상적인 덕목들을 표현한 것을 보니까, 예전에 '워싱턴DC 하이킹'에서 특별히 자세히 소개했던 미드 기념물이 떠오르는데... 여기서 '미드'가 미국 드라마를 말하는 것은 아니니까, 뭔지 궁금하신 분은 여기를 클릭해서 글의 끝부분을 보시면 된다.^^ 따님이 정식으로 취직하고 직장에서 받은 첫월급으로 엄빠에게 빨간 내복 대신에 저 빌딩 꼭대기에서 밥을 사준 것도 벌써 3년이 다 되어간다...ㅎㅎ 개선문 구경은 마쳤으니 이제 공원의 다른 곳들도 좀 둘러보자~ 일요일 아침을 맞아서 개를 산책시키는 뉴요커들이 많았는데, 어떤 여성분은 커다란 개와 함께 옐로캡을 타고 이 공원을 찾아오기도 했다. 왠지 빛이 바랜 듯이 나온 사진의 가운데 멀리 뒷모습이 보이는 흉상은 미국 '철강의 아버지'라는 알렉산더 홀리(Alexander Holley, 1832~1882)를 기념해 1890년에 만들어졌다. 그의 기술혁신으로 현대적인 제강법이 완성되어 철강의 대량생산이 가능해져 미국의 철도와 선박 산업이 비약적으로 발전하는 계기가 되었기에, 관련 엔지니어들의 기부금으로 당시 진보적인 지식인들이 모이던 이 공원에 기념물을 세운 것이란다. 서쪽 끝에 서있는 '집행인 느릅나무(Hangman's Elm)'는 수령이 약 330년으로 맨하탄에서 가장 오래된 나무로 여겨지며, 독립전쟁 시절부터 수 많은 교수형이 치러졌다는 전설이 있다. 그것은 지금의 공원 부지가 1797년부터 공식적으로 범죄자와 무연고자 및 전염병 사망자를 마구 매장했던 뉴욕시의 공동묘지로 운영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군대에서 대충 밀어버리고 연병장으로 잠깐 사용한 이듬해인 1827년에 공원이 되어서, 지금도 20,000구 이상의 시신이 땅속에 그대로 있는 상태라 밤이면 유령들이 드글드글 한다고... 다행히 아침이라 귀신들 대신에 노숙자 서너명만 주변 벤치를 지키고 있었고, 그 아래쪽에 세계적으로 유명한 기사들도 거쳐간다는 체스 플라자(Chess Plaza)의 체스판이 각인된 테이블들도 잠깐 구경하고는 중앙 광장으로 돌아왔다. 낮이 되면 거리의 연주자들과 예술가들이 모여 들고, 또 많은 집회와 행사가 열리는 장소로도 유명한 이 공원이 지난 겨울 뉴스에 자주 나왔던 이유는 맨하탄에 눈이 내리면 대규모 집단 눈싸움이 여기서 항상 벌어지기 때문이다. 위 사진을 클릭하면 2월말에 올해 두번째 폭설이 내렸을 때의 짧은 영상을 인스타로 보실 수 있는데, 이 때 사고예방을 위해 출동한 경찰들에게 '적대적'으로 눈덩어리를 던진 몇 명이 체포되어서 잠깐 문제가 되기도 했었다. 모처럼 구경하는 DSLR 카메라를 든 사진사(친구?)를 대동하고 촬영을 하는 한국인 커플을 지나서 이제 돌아가는데, 바닥애 'Good Luck Spot'이라 표시된 작은 원이 그려져 있어서 살짝 발을 걸쳐봤다. 그리고 바로 옆에는 'Bad Luck Spot'이라고 훨씬 더 크게 동그라미를 그려놓는 바람에 빙 돌아 피해서 걸어갔다는...ㅎㅎ 작년 여름에 이미 대표사진으로 보여드린 적이 있는 '큐브'의 사진도 똑같은 구도로 직접 하나 찍어보고는 딸의 아파트 앞길에 주차해둔 차로 돌아가서 2박3일 여행의 마지막 목적지로 출발했다. 그 곳은 몇 년전의 봄방학 가족여행에서 방문하려고 했다가, 날씨가 안 좋아서 건너뛰었던 장소로 여기를 클릭해서 보실 수 있는 여행기의 첫번째 경로지도와 댓글에 잠깐 이름만 등장했었다. 아래 배너를 클릭해서 위기주부의 유튜브 구독하기를 눌러주시면 정말 감사하겠습니다.^^

뉴저지 모리스타운(Morristown) 국립역사공원과 필라델피아 교외의 페들러스빌리지(Peddler's Village)
미국의 첫번째 국립공원(National Park)은 1872년의 옐로우스톤, 준국립공원(National Monument)은 1906년의 데블스타워인 것은 많이 알고들 계시고, 이제 소개하는 장소는 1933년에 미국 최초의 국립역사공원(National Historical Park)으로 지정되었다. 물론 그 이전에도 역사적인 제임스타운 정착지와 요크타운 전쟁터가 대통령 직권으로 내셔널모뉴먼트로 보호가 되었지만, 하원을 통과한 법률에 의거해서 내셔널파크와 동등한 권위를 가지는 국립역사공원은 모리스타운이 첫번째이다. 1박2일 뉴욕여행의 둘쨋날 오후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마침 아내가 가보고 싶다는 예쁜 마을이 내륙에 있길래 조금 더 우회해서 뉴저지(New Jersey) 주의 모리스타운 국립역사공원(Morristown National Historical Park)을 찾았다. 공원은 시내의 워싱턴 지휘본부 박물관(Washington's Headquarters Museum)과 외곽의 병력 주둔지인 자키할로우(Jockey Hollow) 지역으로 나뉘어 있는데, 비지터센터를 겸하는 여기 박물관만 잠깐 둘러보기로 했다. (구글맵으로 위치를 보시려면 클릭) Washington-Rochambeau Revolutionary Route National Historic Trail 배너로 알 수 있듯이, 모리스타운은 미국의 독립전쟁과 관련된 장소이다. 특히 1937년에 완공된 이 건물은 국립공원청(National Park Service)이 직접 만든 최초의 박물관이라는 타이틀도 가지고 있는데, 그에 걸맞게 식민지 혁명 당시의 많은 역사적 유물을 소장하고 있는 것으로 유명하단다. 거기에는 아내가 관심있게 구경했던 소위 '아메리칸 스타일(American Style)'의 상류층 의복과 장신구 등도 많이 있었고, 별도의 전시실에는 미국독립혁명과 관련된 서신과 책, 팜플렛(pamphlets) 등의 원본을 소장하고 있는데, 그 전시규모가 아주 방대했다. 지도 가운데 까만 점이 모리스타운(Morristown)이고 제일 오른쪽에 뉴욕 맨하탄이 보인다. 독립혁명을 진압하기 위해 대서양을 건너온 영국군이 뉴욕을 점령하자. 후퇴한 워싱턴의 대륙군 약 1만명이 1779-80년의 겨울을 보낸 장소라고 한다. 독립선언 이듬해인 1777년초에도 약 3천명 정도를 데리고 여기 잠깐 주둔했으며, 1777-78년 겨울은 2년전에 방문했던 펜실베니아 밸리포지(Valley Forge)에서 보냈다. 전투가 벌어졌던 곳이 아니라서 전황도같은 것은 없는 대신에 다른 전시물들이 많았다. 조지 워싱턴의 1772년 최초 초상화는 모사품이지만, 유리상자 안에 전시된 칼은 1789년 첫번째 대통령 취임식 때 찼던 진품이란다. 그리고 그의 맞은편에는 다른 '조지'의 초상화가 걸려있는데... 바로 아메리카 식민지를 잃은 영국왕으로 기억되는 조지3세(George III)로 그의 실제 얼굴은 처음 보는 듯 했는데, 위기주부에게는 '조지3세'하면 아래와 같이 왕관을 쓰고 "다다다닷 다닷다다 다다야다, 다다닷 에브리바디!" 노래를 부르는 모습이 바로 떠오른다~ 7년전에 LA에서 관람했던 뮤지컬 의 브로드웨이 오리지널 캐스팅에서 조지3세 역을 맡았던 배우의 모습으로 살짝 닮은 것 같기도 하고...ㅎㅎ 극중에서 뉴욕을 빼앗긴 직후에 알렉산더 해밀턴이 워싱턴의 '오른팔(Right Hand Man)'이 되는 장면이 있는데, 그래서 해밀턴도 여기서 워싱턴과 함께 겨울을 보냈다. 그외 많은 전시들 중에서 기억에 남는 것은 당시에 사용된 소총인 머스킷(Musket)을 한 번 발사하기 위해서 13번의 단계가 필요하다는 설명이었다. 1779-80년 겨울은 가장 혹독한 추위로 유명해서 워싱턴의 대륙군은 무려 27번이나 눈폭풍을 견뎌야 했단다. 그래서 공원 홈페이지에 들어가면 나오는 첫문장과 안내영화의 제목이 모두 "Where America Survived"이다. 참고로 실제 워싱턴 부부가 지냈던 포드맨션(Ford Mansion)은 박물관 맞은편에 남아있는데, 우리가 방문했을 때는 주변이 공사중이라서 직접 볼 수 없었기 때문에 인터넷에서 사진을 가져와 보여드리고 다음 방문지로 넘어간다. (내부는 무료 가이드투어를 이용해서 구경할 수 있음) 202번 국도로 주경계인 델러웨어 강(Delaware River)을 건너 펜실베니아 주로 들어와서, 라하스카(Lahaska)라는 특이한 이름의 마을에 있는 페들러스빌리지(Peddler's Village)를 찾아왔는데, 위키피디아에 따르면 필라델피아 광역도시권에서 세번째로 방문객이 많은 유명 관광지라 한다. 관광안내소 앞의 공터에는 일요일을 맞아서 거품으로 만든 가까 눈을 뿌려주고 있었다. (구글맵으로 위치를 보시려면 클릭) 도로를 건너자 처음 시선을 끈 것은 이 내륙의 산골마을과는 어울리지 않아서 뜬금없어 보이는 모래조각이었다! ㅎㅎ 예쁜 가게와 식당들이 모여있는 이런 아기자기한 동네를 많이 다녀봤지만, 여기 페들러스빌리지가 특히 마음에 들었던 것은 중앙 잔디밭을 중심으로 대부분의 건물들이 모여있고, 도로 건너편에 아주 넓은 무료주차장이 잘 만들어져 있는 점이었다. 즉, 직선의 도로를 따라 가게들이 있어서 왕복으로 발품을 팔아야 하는 다른 곳들과는 달리, 공원을 한바퀴 도는 기분으로 여러 가게들을 편리하게 구경할 수 있었다. 다른 모래조각 작품으로 메이저리그 야구팀 필라델피아 필리스(Philadelphia Phillies)의 팬이 만든 모양이다. 아마도 이 조각은 땅콩회사 또는 가게가 제작을 협찬해서 미스터피넛(Mr. Peanut)이 등장을 한 모양이고, 필리스의 마스코트는 녹색 털복숭이인 패너틱(Phanatic)이다. 나름 오래되어 보이는 물레방앗간의 내부도 상점으로 잘 꾸며져 있었다. 잔디밭 가장자리에 꽃들을 아주 예쁘게 심어놓아서 통째로 뽑아가고 싶었다는...^^ 야트막한 언덕 위에 만들어진 정자에서는 일요일을 맞아서 밴드와 가수가 생음악 공연도 하고 있었고, 여기 바로 뒤쪽에 있는 가게가 이 마을에서 가장 중심이 되는 곳이라 할 수 있다. 바로 연중내내 크리스마스 장식과 소품들을 파는 로 페들러스빌리지가 크리스마스 시즌에 특히 더 예쁜 것으로 유명하기 때문이란다. 그렇다고 버지니아에 사는 우리가 여기를 연말에 일부러 찾아올 일은 없겠지만, 혹시 겨울철에 필라델피아를 또 지나가게 된다면 잠깐 구경을 해도 좋겠다는 생각을 하며 1박2일 여행을 모두 마치고 집으로 돌아갔다. 아래 배너를 클릭해서 위기주부의 유튜브 구독하기를 눌러주시면 정말 감사하겠습니다.^^

뉴저지 모리스타운(Morristown) 국립역사공원과 필라델피아 교외의 페들러스빌리지(Peddler's Village)
미국의 첫번째 국립공원(National Park)은 1872년의 옐로우스톤, 준국립공원(National Monument)은 1906년의 데블스타워인 것은 많이 알고들 계시고, 이제 소개하는 장소는 1933년에 미국 최초의 국립역사공원(National Historical Park)으로 지정되었다. 물론 그 이전에도 역사적인 제임스타운 정착지와 요크타운 전쟁터가 대통령 직권으로 내셔널모뉴먼트로 보호가 되었지만, 하원을 통과한 법률에 의거해서 내셔널파크와 동등한 권위를 가지는 국립역사공원은 모리스타운이 첫번째이다. 1박2일 뉴욕여행의 둘쨋날 오후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마침 아내가 가보고 싶다는 예쁜 마을이 내륙에 있길래 조금 더 우회해서 뉴저지(New Jersey) 주의 모리스타운 국립역사공원(Morristown National Historical Park)을 찾았다. 공원은 시내의 워싱턴 지휘본부 박물관(Washington's Headquarters Museum)과 외곽의 병력 주둔지인 자키할로우(Jockey Hollow) 지역으로 나뉘어 있는데, 비지터센터를 겸하는 여기 박물관만 잠깐 둘러보기로 했다. (구글맵으로 위치를 보시려면 클릭) Washington-Rochambeau Revolutionary Route National Historic Trail 배너로 알 수 있듯이, 모리스타운은 미국의 독립전쟁과 관련된 장소이다. 특히 1937년에 완공된 이 건물은 국립공원청(National Park Service)이 직접 만든 최초의 박물관이라는 타이틀도 가지고 있는데, 그에 걸맞게 식민지 혁명 당시의 많은 역사적 유물을 소장하고 있는 것으로 유명하단다. 거기에는 아내가 관심있게 구경했던 소위 '아메리칸 스타일(American Style)'의 상류층 의복과 장신구 등도 많이 있었고, 별도의 전시실에는 미국독립혁명과 관련된 서신과 책, 팜플렛(pamphlets) 등의 원본을 소장하고 있는데, 그 전시규모가 아주 방대했다. 지도 가운데 까만 점이 모리스타운(Morristown)이고 제일 오른쪽에 뉴욕 맨하탄이 보인다. 독립혁명을 진압하기 위해 대서양을 건너온 영국군이 뉴욕을 점령하자. 후퇴한 워싱턴의 대륙군 약 1만명이 1779-80년의 겨울을 보낸 장소라고 한다. 독립선언 이듬해인 1777년초에도 약 3천명 정도를 데리고 여기 잠깐 주둔했으며, 1777-78년 겨울은 2년전에 방문했던 펜실베니아 밸리포지(Valley Forge)에서 보냈다. 전투가 벌어졌던 곳이 아니라서 전황도같은 것은 없는 대신에 다른 전시물들이 많았다. 조지 워싱턴의 1772년 최초 초상화는 모사품이지만, 유리상자 안에 전시된 칼은 1789년 첫번째 대통령 취임식 때 찼던 진품이란다. 그리고 그의 맞은편에는 다른 '조지'의 초상화가 걸려있는데... 바로 아메리카 식민지를 잃은 영국왕으로 기억되는 조지3세(George III)로 그의 실제 얼굴은 처음 보는 듯 했는데, 위기주부에게는 '조지3세'하면 아래와 같이 왕관을 쓰고 "다다다닷 다닷다다 다다야다, 다다닷 에브리바디!" 노래를 부르는 모습이 바로 떠오른다~ 7년전에 LA에서 관람했던 뮤지컬 의 브로드웨이 오리지널 캐스팅에서 조지3세 역을 맡았던 배우의 모습으로 살짝 닮은 것 같기도 하고...ㅎㅎ 극중에서 뉴욕을 빼앗긴 직후에 알렉산더 해밀턴이 워싱턴의 '오른팔(Right Hand Man)'이 되는 장면이 있는데, 그래서 해밀턴도 여기서 워싱턴과 함께 겨울을 보냈다. 그외 많은 전시들 중에서 기억에 남는 것은 당시에 사용된 소총인 머스킷(Musket)을 한 번 발사하기 위해서 13번의 단계가 필요하다는 설명이었다. 1779-80년 겨울은 가장 혹독한 추위로 유명해서 워싱턴의 대륙군은 무려 27번이나 눈폭풍을 견뎌야 했단다. 그래서 공원 홈페이지에 들어가면 나오는 첫문장과 안내영화의 제목이 모두 "Where America Survived"이다. 참고로 실제 워싱턴 부부가 지냈던 포드맨션(Ford Mansion)은 박물관 맞은편에 남아있는데, 우리가 방문했을 때는 주변이 공사중이라서 직접 볼 수 없었기 때문에 인터넷에서 사진을 가져와 보여드리고 다음 방문지로 넘어간다. (내부는 무료 가이드투어를 이용해서 구경할 수 있음) 202번 국도로 주경계인 델러웨어 강(Delaware River)을 건너 펜실베니아 주로 들어와서, 라하스카(Lahaska)라는 특이한 이름의 마을에 있는 페들러스빌리지(Peddler's Village)를 찾아왔는데, 위키피디아에 따르면 필라델피아 광역도시권에서 세번째로 방문객이 많은 유명 관광지라 한다. 관광안내소 앞의 공터에는 일요일을 맞아서 거품으로 만든 가까 눈을 뿌려주고 있었다. (구글맵으로 위치를 보시려면 클릭) 도로를 건너자 처음 시선을 끈 것은 이 내륙의 산골마을과는 어울리지 않아서 뜬금없어 보이는 모래조각이었다! ㅎㅎ 예쁜 가게와 식당들이 모여있는 이런 아기자기한 동네를 많이 다녀봤지만, 여기 페들러스빌리지가 특히 마음에 들었던 것은 중앙 잔디밭을 중심으로 대부분의 건물들이 모여있고, 도로 건너편에 아주 넓은 무료주차장이 잘 만들어져 있는 점이었다. 즉, 직선의 도로를 따라 가게들이 있어서 왕복으로 발품을 팔아야 하는 다른 곳들과는 달리, 공원을 한바퀴 도는 기분으로 여러 가게들을 편리하게 구경할 수 있었다. 다른 모래조각 작품으로 메이저리그 야구팀 필라델피아 필리스(Philadelphia Phillies)의 팬이 만든 모양이다. 아마도 이 조각은 땅콩회사 또는 가게가 제작을 협찬해서 미스터피넛(Mr. Peanut)이 등장을 한 모양이고, 필리스의 마스코트는 녹색 털복숭이인 패너틱(Phanatic)이다. 나름 오래되어 보이는 물레방앗간의 내부도 상점으로 잘 꾸며져 있었다. 잔디밭 가장자리에 꽃들을 아주 예쁘게 심어놓아서 통째로 뽑아가고 싶었다는...^^ 야트막한 언덕 위에 만들어진 정자에서는 일요일을 맞아서 밴드와 가수가 생음악 공연도 하고 있었고, 여기 바로 뒤쪽에 있는 가게가 이 마을에서 가장 중심이 되는 곳이라 할 수 있다. 바로 연중내내 크리스마스 장식과 소품들을 파는 로 페들러스빌리지가 크리스마스 시즌에 특히 더 예쁜 것으로 유명하기 때문이란다. 그렇다고 버지니아에 사는 우리가 여기를 연말에 일부러 찾아올 일은 없겠지만, 혹시 겨울철에 필라델피아를 또 지나가게 된다면 잠깐 구경을 해도 좋겠다는 생각을 하며 1박2일 여행을 모두 마치고 집으로 돌아갔다. 아래 배너를 클릭해서 위기주부의 유튜브 구독하기를 눌러주시면 정말 감사하겠습니다.^^

국립묘지 언덕에 있는 알링턴하우스 겸 로버트 리 기념관(Arlington House, The Robert E. Lee Memorial)
1759년에 26세의 조지 워싱턴은 한 살 많은 과부 마사 커스티스(Martha Custis)와 결혼을 하는데, 그녀의 전남편은 버지니아 최고의 부자였으나 일찍 급사를 했다. 둘 사이에는 자식이 없었고 아내가 낳은 전남편의 아들과 딸을 키웠지만, 딸은 17세에 간질로 사망하고 결혼한 아들도 1781년 요크타운 전투 직후에 4명의 자녀를 남기고 병사한다. 그래서 워싱턴 부부는 그들 중 어린 손녀와 손자를 데려와 직접 키우는데, 미국의 초대 대통령이 되면서 뉴욕과 필라델피아의 관저에서 함께 살았으며, 나중에는 유산을 상속해주기 위해 법적으로 딸과 아들로 입양을 한다. 알링턴 국립묘지의 케네디 대통령 무덤을 둘러본 후에 좁은 산책로인 Custis Walk를 따라 언덕을 오르니, 꼭대기에 누리끼끼한 색깔의 그리스 신전같은 건물이 나온다. 바로 위에 설명한 워싱턴의 양아들인 조지 커스티스(George Washington Parke Custis)가 자신이 물려받은 플랜테이션에, 워싱턴을 기리는 의미로 웅장하게 만든 알링턴 하우스(Arlington House)로 1802년에 공사를 시작했지만 1818년에야 완공되었다. 1789년에 그려진 것으로 추정되는 "The Washington Family"라는 이 그림에서 왼쪽의 남자 어린이가 조지 커스티스인데, 어릴 때는 여러모로 워싱턴의 기대에 미치지 못해서 한 때는 재혼한 친어머니 집으로 돌려보내지기도 했단다. 하지만 그는 키워주신 할아버지 워싱턴에 대한 감사와 존경을 잊지 않았기에, 성인이 되어서 땅과 재산을 물려받은 동시에 이 집을 짓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런데 자세히 보면 뭔가 좀 이상한게, 거대한 기둥이 나무계단 위에 세워져 있고, 그 바닥도 빨간 벽돌이다... 당시 의사당을 설계한 최고의 건축가를 고용해서 야심차게 공사를 시작했지만, 그는 땅과 노예만 많지 현금은 없었고 1812년 전쟁으로 물자부족까지 겹치면서, 결국은 벽돌로 지은 건물의 기둥과 벽면을 매끈하게 바른 후에 대리석처럼 보이게 칠을 한 것이란다. 뒤돌아 동쪽 아래로 내려다 보면, 국립묘지의 정문에서 이어지는 알링턴 기념교(Arlington Memorial Bridge)로 포토맥 강을 건너서 바로 링컨 기념관이 나오고, 오른편으로는 워싱턴 기념탑이 우뚝 솟아있다. (구글맵으로 위치를 보시려면 클릭) 안으로 들어가서 오른편 가족실(Family Parlor)의 좌우 벽난로 위에는 이 집에 마지막으로 살았던 부부의 초상화가 각각 걸려있다. 왼쪽이 조지 커스티스의 유일하게 장성한 자손으로 알링턴 플랜테이션을 물려받은 딸인 메리 커스티스(Mary Anna Randolph Custis)이고, 1831년에 이 집에서 그녀와 결혼식을 올린 오른쪽의 남편이 바로... 로버트 E. 리(Robert Edward Lee)로 1838년에 그려진 초상화이다. 그의 아버지도 독립전쟁에 참전했었고 1799년의 워싱턴 장례식에서 추도사를 할만큼 이미 명문가의 자제였는데, 법적으로 치자면 워싱턴 대통령의 손녀 사위가 후에 남북전쟁에서 남군을 이끌었던 리(Lee) 장군인 것이다.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한 군인이라서 결혼 후 대부분 떠돌며 살았지만, 1857년에 장인이 사망하자 유산 집행을 위해 여기로 돌아온다. 결국 1861년 남북전쟁이 발발하고 버지니아가 연방을 탈퇴하자, Lee는 이 집에서 고민을 거듭한 끝에 남군에 가담하기로 결정하고 부부가 함께 리치먼드로 떠나서 다시는 돌아오지 않았다. 식탁이 차려진 다이닝룸(Dining Room)의 벽에는 조지 커스티스의 초상화가 걸려 있는데, 그는 할아버지이자 양아버지인 워싱턴 대통령의 소지품 보존과 기념사업 등을 위해 노력했고, 역사 희곡과 책을 쓰기도 하는 등 말년까지 활발히 활동했단다. 신전같은 외관과 달리 내부는 거주용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이런 침실과 주방 등의 모습도 옛날 생활상 그대로 복원을 해 놓았다. 실내 투어코스의 마지막인 모닝룸(Morning Room)에 꾸며진 스튜디오인데, 조지 커스티스가 직접 저 그림을 그리기도 했단다. 여기서 뒷문을 통해 밖으로 나가게 되는데, 그 통로의 벽에 국립공원청이 관리하는 이 집의 공식 명칭인 알링턴 하우스, 로버트 리 기념관(Arlington House, The Robert E. Lee Memorial) 명칭이 붙어있다. 박물관 전시는 노예들의 숙소를 복원한 별도의 뒷채에 작게 만들어져 있지만 들어가 보지 않았기 때문에, 공원 홈페이지에서 사진과 그림만 몇 장 가져와서 설명을 드린다. 리 부부가 떠난 후에 이 언덕은 수도 방어를 위한 전략적 요충지였기 때문에 바로 연방군이 점령을 했고, 농장에는 자유 흑인들의 정착촌과 흑인 병사들의 훈련을 위한 군부대가 임의로 설치된다. 결국 위 사진이 찍힌 1864년에 세금체납을 이유로 공식적으로 연방정부가 이 땅을 몰수한 후에 남북전쟁에서 사망한 북군 병사들을 여기 매장하기 시작해서, 지금의 알링턴 국립묘지가 만들어진 것이다. 전후 1877년에 부부의 장남인 조지 리(George Washington Custis Lee)가 소송을 해서, 몰수가 부당했다는 대법원의 판결을 받아내었지만 이미 농장은 묘지로 바뀌어 있었고, 어차피 현금 보상을 원했던 그는 결국 15만불에 다시 모든 건물과 땅을 연방정부에 매각을 했다. 지난 5월초에 직접 방문했던 애퍼매톡스 코트하우스(Appomattox Court House)에서 남군의 항복문서에 서명한 리(Lee)가 북군 총사령관 그랜트(Grant)와 악수하는 모습의 "Let Us Have Peace" 그림이다. 부하 장군들 중의 일부가 후퇴가 불가하니 뿔뿔이 흩어져서 게릴라전을 계속하자고 제안했지만, 그는 국가가 하나로 회복되는데 수 년이 더 걸리는 무의미한 짓이라며 거부하고 깨끗한 항복을 결정했다. 그리고 그 후에도 남북의 평화와 재결합을 위해서 노력했기 때문에, 한 때 미국에 맞서 싸웠던 인물을 기리는 유일한 연방정부 지원의 국가기념관이 만들어진 것이다. 전쟁이 끝나고 그는 버지니아 렉싱턴(Lexington)의 워싱턴 대학교 총장이 되었고, 위 사진의 1869년에 대통령이 된 그랜트의 초청으로 백악관을 방문하고 이듬해 사망해서, 그의 사후에 Wasington and Lee University로 이름이 변경된 대학의 예배당 옆 묘지에 묻혔다. 남부연맹 가담자들은 전후 미국 정부에 충성을 맹세하는 사면선서(Amnesty Oath)를 제출해야만 복권이 되었는데, 리도 당연히 서명해서 우편으로 보냈지만 남부에 반감을 가진 어떤 이가 고의로 누락했단다. 그래서 이 집은 1925년부터 문화재로 관리는 되었지만 그냥 Custis-Lee Mansion으로 불리다가, 1972년에 문서보관소에서 리의 사면선서가 발견된 이후에야 공식적으로 시민권이 회복되고 현재와 같이 그의 이름이 들어간 메모리얼이 될 수 있었단다. 맨션의 남쪽에 있는 정원을 지나면 나오는 남북전쟁 무명용사묘를 잠깐 구경하고는 다시 언덕을 걸어 내려가 알링턴 국립묘지 구경을 마저 했었다. 옛날 한국에서는 청바지 브랜드로, 또 세쿼이아 국립공원에 있는 나무 이름으로 '리(Lee)'가 원래 미국에도 있는 성씨라는 것을 알았던 기억이 나는데, 그 동안 남북전쟁 관련 포스팅에 수 없이 등장했던 로버트 E. 리(Robert Edward Lee) 장군의 국립 기념관을 마침내 둘러봤고, 이로써 집에서 1시간 이내 거리에 있는 NPS Official Unit들은 빠짐없이 모두 방문한 것이 되었다. 아래 배너를 클릭해서 위기주부의 유튜브 구독하기를 눌러주시면 정말 감사하겠습니다.^^

![[CV] [Comi] 'ファイブスター物語'(더 파이브 스타 스토리즈) 19권. 연재분에서 벌어지는 '검성 대 검성'](https://img.zoomtrend.com/2026/06/06/1780766083-ECB2ABEB93B1EC9EA5EB8DB0ECBD94EC8AA4.jpg)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