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초에 여기 버지니아 알링턴의 펜타곤에 만들어진 9·11 테러 추모물을 소개하면서, 마지막 4번째로 납치된 여객기는 펜실베이니아 주의 외딴 벌판에 추락했다고 알려드렸었다. 그 비행기의 이야기는 2006년에 폴 그린그래스 감독의 영화 <플라이트93>으로도 제작되었는데, 추락한 지역은 사고 이듬해 플라이트93 내셔널메모리얼(Flight 93 National Memorial)로 지정이 되었고, 현재의 비지터센터와 추모광장 등은 2015년에야 완공되어서 일반에 공개되었다.
여기를 별볼일 없는 국립 공원이라 부르는 것은 좀 아닌 듯 하지만, 그 펜실베니아 시리즈의 4번째 목적지로 찾아왔다. 행정구역 상으로 국립기념관의 대부분은 스토니크릭(Stonycreek) 타운쉽에 속하지만, 가장 가까운 마을인 인구 200명의 섕크스빌(Shanksville) 들판에 추락한 것으로 더 잘 알려져 있다. (구글맵으로 위치를 보시려면 클릭)
2001년 9월 11일에 유나이티드 항공 93편의 비행경로와 타임라인을 보여주는 그림으로, 테러범들의 목적지였던 워싱턴DC까지 불과 18분을 남겨두고, 승객과 승무원들이 조종실을 다시 빼앗는 와중에 이 지점에 추락을 해서 승객 33명과 승무원 7명의 합계 40명이 모두 사망을 했다. (희생자에서 제외된 테러범 4명도 물론 사망)
입구에서 제법 운전해 들어오면 넓은 주차장과 엄숙한 외관의 건물이 만들어져 있는 비지터센터 컴플렉스(Visitor Center Complex)가 먼저 나온다.
비지터센터의 입구 사진만 또 올리는 이유는 이 곳의 내부는 추모 분위기를 헤치지 않기 위해서 사진촬영이 금지이기 때문이다. 뉴욕 세계무역센터 쌍둥이 빌딩에 처음 두 비행기가 충돌하는 영상부터, 납치 과정과 승객들의 통신 기록, 다시 탈취하는 순간의 실제 녹음, 추락한 잔해 수습 과정 등과 함께 마지막에는 희생자 40명의 사진으로 장식된 벽으로 끝났다. (전시의 대부분은 공원 홈페이지에서 보실 수 있음)
비지터센터와 연결된 콘크리트 벽이 끊어진 사이로 검은 통로가 만들어져 있어서, 저 끝까지 걸어가 보면...
충돌지점(Impact Site) 옆으로 만들어진 추모광장(Memorial Plaza)이 멀리 내려다 보이고, 마지막 유리에는 홈페이지 첫화면에도 등장하는 문구인 "A common field one day. A field of honor forever."라 씌여있다. 이 여행기를 쓰기 전까지도 무심코 '공포의 들판(field of horror)'이라 읽었는데... 그게 아니었다!
이해를 돕기 위해서 공원 브로셔에 인쇄된 지도를 추가로 보여드리는데, 허허벌판에 상당히 큰 규모로 만들어져서 추모광장까지는 40 Memorial Groves를 한바퀴 빙 돌아서 차로 이동을 하게 된다.
뒤돌아서 보이는 이 직선의 검은 통로가 그 날 플라이트93의 마지막 비행경로(Flight Path)를 나타내는 것이었다.
콘크리트 벽도 자세히 보면 모두 이렇게 나뭇결이나 오래된 목재와 같은 질감을 새겨 넣은 것이 특별했고, 멀리 검은색으로 툭 튀어나온 것은 비지터센터 전시관 마지막에 만들어져 있는 실내 전망대이다.
차를 타고 추모광장이 시작되는 Shelter가 있는 곳으로 왔다. 안내판의 사진은 추락 후 폭발의 검은 연기를 찍은 것이고, 테러범들이 충돌을 계획한 것으로 추정되는 의사당 모습도 보인다. (목표가 백악관이나 또는 DC 인근의 원자력 발전소였을 가능성도 있다고 함)
충돌 후 잔해가 수습된 지역인 Debris Field를 왼편에 두고 통로가 만들어져 있는데,
중간에 충돌지점이 정면에 보이는 난간에는 유가족 또는 방문객들이 두고 간 작은 기념물들이 놓여 있었다. 폭발 구덩이는 모두 메워져 평평한 초원으로 복원되었지만, 이 사진 왼편 1/4 지점에 살짝 보이는 큰 바위(Boulder)가 놓인 곳이 정확한 추락지점이란다.
그리고 그 통로의 끝에는 희생자 40명의 이름이 하얀 대리석에 하나씩 새겨진 Wall of Names가 나온다. 언덕 위에 보이는 비지터센터에서 바로 여기까지 걸어오는 산책로도 만들어져 있지만, 거리가 보기보다는 제법 되는 듯 했다.
FBI가 충돌 직후에 찍었던 사진 한 장을 홈페이지에서 가져와 보여드리는데, 시속 900 km의 속도로 거의 수직으로 땅에 부딪혔기 때문에, 띄엄띄엄 보이는 1~2미터 길이의 동체 파편 몇십 개를 제외하고는 남아있는게 거의 없었다고 한다. 그래도 몇달간 보존 수색을 해서 작은 뼛조각 하나도 모두 DNA 검사를 통해 각 유족에게 전달되었고, 짧은 전선같은 잔해 하나도 모두 버리지 않고 비지터센터에 전시를 하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공원 입구쪽에 2018년에 추가로 만들어진 '목소리의 탑(Tower of Voices)'을 구경하기 위해 잠시 들렀다.
편명에 맞춰서 높이가 93피트(28 m)로 제작된 콘크리트 타워의 내부에, 40명의 희생자를 상징하는 40개의 풍경(wind chime)을 설치해서, 바람이 불면 은은한 소리가 나도록 만들어졌다는데, 조금 전까지 거세던 바람이 갑자기 잦아들어서 직접 들을 수는 없었다.
홈페이지에서 제공하는 위의 동영상을 재생하면 풍경의 추가 흔들리면서 각기 다른 음의 '목소리'들이 울리는 것을 직접 들으실 수 있다.
바로 아래에서 종탑을 올려다 보는데, 오후의 햇살이 마치 천사의 후광처럼 뒤쪽을 밝히고 있었다... 그 날 플라이트93편의 평범한 남자와 여자들이 항복을 거부하고, 테러범들에 의해 잠긴 조종실 문을 기내식 카트로 들이받아 부수고 들어가서 싸웠던 것이다. 그래서 그들의 희생으로 또 다른 끔찍한 피해는 막을 수 있었다는 사실이, 여기 펜실베니아의 외딴 시골에 있는 '영광의 들판(field of honor)'에서 영원히 기억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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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초에 여기 버지니아 알링턴의 펜타곤에 만들어진 9·11 테러 추모물을 소개하면서, 마지막 4번째로 납치된 여객기는 펜실베이니아 주의 외딴 벌판에 추락했다고 알려드렸었다. 그 비행기의 이야기는 2006년에 폴 그린그래스 감독의 영화 <플라이트93>으로도 제작되었는데, 추락한 지역은 사고 이듬해 플라이트93 내셔널메모리얼(Flight 93 National Memorial)로 지정이 되었고, 현재의 비지터센터와 추모광장 등은 2015년에야 완공되어서 일반에 공개되었다.
여기를 별볼일 없는 국립 공원이라 부르는 것은 좀 아닌 듯 하지만, 그 펜실베니아 시리즈의 4번째 목적지로 찾아왔다. 행정구역 상으로 국립기념관의 대부분은 스토니크릭(Stonycreek) 타운쉽에 속하지만, 가장 가까운 마을인 인구 200명의 섕크스빌(Shanksville) 들판에 추락한 것으로 더 잘 알려져 있다. (구글맵으로 위치를 보시려면 클릭)
2001년 9월 11일에 유나이티드 항공 93편의 비행경로와 타임라인을 보여주는 그림으로, 테러범들의 목적지였던 워싱턴DC까지 불과 18분을 남겨두고, 승객과 승무원들이 조종실을 다시 빼앗는 와중에 이 지점에 추락을 해서 승객 33명과 승무원 7명의 합계 40명이 모두 사망을 했다. (희생자에서 제외된 테러범 4명도 물론 사망)
입구에서 제법 운전해 들어오면 넓은 주차장과 엄숙한 외관의 건물이 만들어져 있는 비지터센터 컴플렉스(Visitor Center Complex)가 먼저 나온다.
비지터센터의 입구 사진만 또 올리는 이유는 이 곳의 내부는 추모 분위기를 헤치지 않기 위해서 사진촬영이 금지이기 때문이다. 뉴욕 세계무역센터 쌍둥이 빌딩에 처음 두 비행기가 충돌하는 영상부터, 납치 과정과 승객들의 통신 기록, 다시 탈취하는 순간의 실제 녹음, 추락한 잔해 수습 과정 등과 함께 마지막에는 희생자 40명의 사진으로 장식된 벽으로 끝났다. (전시의 대부분은 공원 홈페이지에서 보실 수 있음)
비지터센터와 연결된 콘크리트 벽이 끊어진 사이로 검은 통로가 만들어져 있어서, 저 끝까지 걸어가 보면...
충돌지점(Impact Site) 옆으로 만들어진 추모광장(Memorial Plaza)이 멀리 내려다 보이고, 마지막 유리에는 홈페이지 첫화면에도 등장하는 문구인 "A common field one day. A field of honor forever."라 씌여있다. 이 여행기를 쓰기 전까지도 무심코 '공포의 들판(field of horror)'이라 읽었는데... 그게 아니었다!
이해를 돕기 위해서 공원 브로셔에 인쇄된 지도를 추가로 보여드리는데, 허허벌판에 상당히 큰 규모로 만들어져서 추모광장까지는 40 Memorial Groves를 한바퀴 빙 돌아서 차로 이동을 하게 된다.
뒤돌아서 보이는 이 직선의 검은 통로가 그 날 플라이트93의 마지막 비행경로(Flight Path)를 나타내는 것이었다.
콘크리트 벽도 자세히 보면 모두 이렇게 나뭇결이나 오래된 목재와 같은 질감을 새겨 넣은 것이 특별했고, 멀리 검은색으로 툭 튀어나온 것은 비지터센터 전시관 마지막에 만들어져 있는 실내 전망대이다.
차를 타고 추모광장이 시작되는 Shelter가 있는 곳으로 왔다. 안내판의 사진은 추락 후 폭발의 검은 연기를 찍은 것이고, 테러범들이 충돌을 계획한 것으로 추정되는 의사당 모습도 보인다. (목표가 백악관이나 또는 DC 인근의 원자력 발전소였을 가능성도 있다고 함)
충돌 후 잔해가 수습된 지역인 Debris Field를 왼편에 두고 통로가 만들어져 있는데,
중간에 충돌지점이 정면에 보이는 난간에는 유가족 또는 방문객들이 두고 간 작은 기념물들이 놓여 있었다. 폭발 구덩이는 모두 메워져 평평한 초원으로 복원되었지만, 이 사진 왼편 1/4 지점에 살짝 보이는 큰 바위(Boulder)가 놓인 곳이 정확한 추락지점이란다.
그리고 그 통로의 끝에는 희생자 40명의 이름이 하얀 대리석에 하나씩 새겨진 Wall of Names가 나온다. 언덕 위에 보이는 비지터센터에서 바로 여기까지 걸어오는 산책로도 만들어져 있지만, 거리가 보기보다는 제법 되는 듯 했다.
FBI가 충돌 직후에 찍었던 사진 한 장을 홈페이지에서 가져와 보여드리는데, 시속 900 km의 속도로 거의 수직으로 땅에 부딪혔기 때문에, 띄엄띄엄 보이는 1~2미터 길이의 동체 파편 몇십 개를 제외하고는 남아있는게 거의 없었다고 한다. 그래도 몇달간 보존 수색을 해서 작은 뼛조각 하나도 모두 DNA 검사를 통해 각 유족에게 전달되었고, 짧은 전선같은 잔해 하나도 모두 버리지 않고 비지터센터에 전시를 하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공원 입구쪽에 2018년에 추가로 만들어진 '목소리의 탑(Tower of Voices)'을 구경하기 위해 잠시 들렀다.
편명에 맞춰서 높이가 93피트(28 m)로 제작된 콘크리트 타워의 내부에, 40명의 희생자를 상징하는 40개의 풍경(wind chime)을 설치해서, 바람이 불면 은은한 소리가 나도록 만들어졌다는데, 조금 전까지 거세던 바람이 갑자기 잦아들어서 직접 들을 수는 없었다.
홈페이지에서 제공하는 위의 동영상을 재생하면 풍경의 추가 흔들리면서 각기 다른 음의 '목소리'들이 울리는 것을 직접 들으실 수 있다.
바로 아래에서 종탑을 올려다 보는데, 오후의 햇살이 마치 천사의 후광처럼 뒤쪽을 밝히고 있었다... 그 날 플라이트93편의 평범한 남자와 여자들이 항복을 거부하고, 테러범들에 의해 잠긴 조종실 문을 기내식 카트로 들이받아 부수고 들어가서 싸웠던 것이다. 그래서 그들의 희생으로 또 다른 끔찍한 피해는 막을 수 있었다는 사실이, 여기 펜실베니아의 외딴 시골에 있는 '영광의 들판(field of honor)'에서 영원히 기억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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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수도 워싱턴의 중심가에서 남쪽으로 7마일(11 km) 떨어진, 버지니아 주에 속하는 포토맥 강의 서안에 위치한 알렉산드리아(Alexandria)는 미국 독립전인 1749년에 생긴 유서깊은 마을이다. 현재는 약 16만명이 거주하는 행정구역 상 독립된 시(independent city)인데, 버지니아 주에서 가구당 평균소득이 가장 높은 도시이며, 바로 북쪽에 펜타곤이 있어서 국방부와 관련 분야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많이 거주하고 있단다. 그리고 도시의 이름은 이집트의 고대도시 알렉산드리아에서 따온 것은 아니고, 마을이 만들어질 당시에 그 땅의 소유주였던 John Alexander의 이름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하지만 도시를 내려다보는 언덕에 우뚝 서있는 이 타워는, 동명의 그 이집트 항구도시 알렉산드리아에 있었다고 전해지는 고대 7대 불가사의 중의 하나인 파로스 등대(Pharos Lighthouse)로부터 영감을 받은 것이라고 한다. 전체 높이도 333피트(101 m)로 역사학자들이 추정하는 알렉산드리아의 등대 높이와 비슷하게 만든 이 건물은, 미국의 프리메이슨(Freemason) 조직이 1932년에 완공한 조지워싱턴 매소닉 내셔널메모리얼(George Washington Masonic National Memorial)이다.
북쪽 주차장과 연결된 이 육중한 옆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면, 정면에 양복을 입은 두 명의 남성이 중앙홀로 들어가는 입구를 지키고 있었다. 내부는 유료투어로만 관람이 가능한데, 우리는 시간이 맞지 않아서 그냥 기념품 가게만 잠깐 둘러보기로 했다. (구글맵으로 위치를 보시려면 클릭)
가게의 벽에 그려진 저 그림이 당시에는 무슨 의미인지 몰랐는데, 프리메이슨은 옛날 솔로몬의 신전을 건설하는 석공(mason)들에서 자신의 기원을 찾고 있단다. 일루미나티와 함께 각종 음모론에 자주 등장하는 조직인 프리메이슨의 로고가 새겨진 옷과 각종 소품들을 일반인들도 여기서 살 수가 있고,
프리메이슨의 리더를 상징하는 앞치마(?)를 두르고 있는 미국의 초대 대통령 조지 워싱턴(George Washington)의 그림과 관련 서적 등도 판매를 하고 있었다. 이와 같이 제1대 워싱턴을 시작으로 제38대 제럴드 포드(Gerald Ford)까지 14명의 미국 대통령이 공식적으로 프리메이슨 조직원(?)이었다고 하니 막강한 비밀결사처럼 보이지만, 지금은 페이스북으로 신규 회원모집을 광고해야할 정도로 그 영향력이 점점 쇠퇴하고 있단다.
유명한 프리메이슨의 엠블럼(Emblem of Freemasonry)에 관한 그들의 설명이 왼편에 씌여있는데, 나름대로 간단히 요약하자면... 직각자(The square)처럼 똑바르게, 원을 그리는 컴파스(The compass)처럼 둥글게, 그리고 이러한 기하학(Geometry)적인 이해를 바탕으로 신(God)을 중심에 두고 살자는 뜻이란다.
안내판 아래쪽으로 그 상징을 콘크리트로 커다랗게 만들어 놓았는데, 여기서는 제대로 보이지 않으니까 잔디밭 사이로 만들어 놓은 산책로를 따라서 언덕 아래로 내려가 보기로 했다.
마지막 계단을 내려오니까 정문 간판이라고 할 수 있는 벽에 워싱턴의 얼굴 부조와 기념관 이름을 적어놓았는데, 청소를 한 지가 제법 오래되어 보였다. 특히 부조 아래의 워싱턴의 어록과 서명이 붙어있는데, 쇠로 만든 서명은 부러져서 아래 화단에 떨어져 있는 상태였다...
이 장소는 이름에 '내셔널(National)'이라는 말이 들어가지만 정부와 전혀 관계가 없는 사유지에 만들어진 기념관으로, 그 규모가 미국에서 가장 큰 곳들 중의 하나라고 한다. 그래서 비교적 최근인 2015년에 미국의 국가유적지(National Historic Landmark)로도 지정이 되었다.
기념관의 내부는 9층으로 되어있고 단순히 조지 워싱턴에 관한 전시만 있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지금도 프리메이슨 조직이 회합을 가지는 롯지(Lodge)와 특이한 벽화 및 성전기사단(Knights Templar)을 기리는 예배당 등을 볼 수 있다고 하므로, 이런 류에 관심이 있으신 분들은 투어를 해보시면 흥미가 있으실거다. 관심은 있지만 시간이 없는 위기주부는 주차장으로 돌아가서 이제 언덕 아래에 위치한 알렉산드리아 시내로 향했다.
알렉산드리아 시청 앞 광장에서 올해 처음 크리스마스 트리를 만났는데, 장식이 아직 다 안 끝난건지? 아니면 노란 전구로만 장식을 끝낸 미니멀리즘인지? 트리 장식이 아주 단순했다~^^
시청에서 강가로 뻗어있는 킹스트리트(King Street)는 식당과 가게들이 좌우로 늘어선 보행자 도로로 꾸며져 있는데, 여기 올드타운 알렉산드리아(Old Town Alexandria)에는 1700년대에 지어진 벽돌 건물들이 그대로 남아있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워싱턴을 지나서 흘러 온 포토맥 강(Potomac River)과 만나는 곳에 워터프론트 공원(Waterfront Park)이 나온다. (구글맵으로 위치를 보시려면 클릭)
작은 배들이 정박되어 있는 강물 위로 늦가을 맑은 날씨의 붉은 노을이 참 멋있었다~
사모님이 너무 웃기게 나왔다고 공개하지 말라고 하셨지만... 우리 부부가 이러면서 노는 것은 이미 다들 아시는 사실이고, 영하의 기온이 추워서 모자를 뒤집어 쓴 것 뿐이니까, 그냥 결혼 23주년 기념 나들이의 추억으로 올려놓는다.
남쪽으로는 강을 건너는 우드로윌슨 기념다리(Woodrow Wilson Memorial Bridge)가 보이고 그 뒤로 작게 회전관람차와 컨벤션센터 건물이 보이는 곳이, 작년 크리스마스 당일에 방문했었던 메릴랜드 주의 내셔널하버(National Harbor)이다. (여행기를 보시려면 여기를 클릭) 그 때 사진 왼쪽의 고층빌딩인 MGM 카지노호텔도 한 번 가보겠다고 해놓고, 벌써 1년이 다되어 가는데 아직 못 가봤으니까... 올해 크리스마스에는 저기를 가볼까?
강가를 따라 북쪽으로 조금 걸으니까 노란 수상택시(water taxi)와 선상 카지노처럼 보이는 배가 정박되어 있었다. 부두에 고급 식당들이 많이 있었지만 저녁을 먹기에는 좀 이른 것 같아서, 따뜻한 음료수 한 잔만 마시고 강가를 따라 운전해서 집으로 돌아가기로 했다.
킹스트리트를 따라 주차한 곳으로 돌아가다가 들어간 '별다방'도 벌써 크리스마스 분위기였다. 핫초콜렛을 하나 사고 운 좋게 자리가 난 작은 테이블에 앉아서 나누어 마셨는데, 아래에 인터넷에서 가져온 이 가게의 다른 내부 사진을 한 장 보여드린다.
벽난로 위에 Seaport Inn & Restaurant 간판과 함께 엄청 낡아보이는 벽과 천장이 보인다. 즉, 이 건물은 1760년대에 지어진 여관과 식당이 영업을 하던 곳으로, 아마도 미국의 스타벅스들 중에서는 가장 오래된 건물에 입점한 가게일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
다시 밖으로 나오니까 가로등과 나무에 장식한 조명이 들어와서 때 이른 연말 분위기가 팍팍 느껴졌다. 다음 날 사모님의 지시에 따라 우리 동네에서 1등으로 집밖에 크리스마스 전구를 설치해서 불을 밝혔고, 화요일 저녁에는 딸아이가 비행기를 타고 집으로 왔다. 미국에 계신 이웃분들은 모두 추수감사절 연휴 잘 보내시기 바라며, 지금 진행되고 있는 카타르 월드컵에서 한국 축구팀도 잘 싸웠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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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줄여서 '노바(NoVA)'라고 부르는 워싱턴DC 인근의 북부 버지니아(Northern Virginia)로 작년에 이사를 와서는, 계속 뉴욕과 보스턴이 있는 북쪽으로만 차를 몰고 올라갔었기 때문에, 그래서 9월에는 하루 휴가를 내서 처음으로 집에서 남쪽으로 자동차여행을 가보기로 여름부터 마음을 먹고 있었다. 최초 계획은 집에서 약 500마일 남쪽에 있는 미지의 국립공원과 그 아래 미국남부의 문화를 대표하는 도시인 사우스캐롤라이나(South Carolina) 주의 찰스턴(Charleston)을 2박3일로 여행하려고 했었다. 하지만 아무래도 제대로 구경을 하기에는 일정이 너무 빠듯한 것 같아서, 그냥 남부 버지니아의 역사 유적지들과 그 아래 노스캐롤라이나의 유명한 바닷가를 1박2일에 둘러보는 것으로 계획이 축소되었다.
이번 여행의 주요 방문지와 경로, 그리고 숙박을 한 도시인 버지니아비치(Virginia Beach)를 모두 지도에 표시해봤는데, 버지니아와 노스캐롤라이나의 주경계가 가로 점선으로 표시가 되어 있다. 제일 아래 등대까지 도로가 이어지는 노스캐롤라이나 바닷가의 가느다란 섬들이 넷플릭스 드라마의 제목이자 배경이기도 했던 '아우터뱅크스(Outer Banks)'이다. 이제 소개하는 여행지는 그 '바깥 제방'에 있는 라이트브라더스 국가기념물(Wright Brothers National Memorial)인데, 집에서 5시간이나 걸리는 곳이 첫번째 방문지가 된 이유는... 새벽 4시에 집에서 출발을 하는 바람에, 가는 중간의 장소들은 문을 안 열었기 때문이다. "요즘 밤잠이 없어서~"
비지터센터로 들어가기 전에, 여기 마을의 이름이 '키티호크(Kitty Hawk)'라는 것부터 알려드린다. 인류 최초의 동력비행이 성공한 여기 지명을 따서 미군이 항공모함 USS Kitty Hawk 등 여러 항공기와 함선을 명명했다고 하는데, 원주민들이 "거위를 사냥하는 장소"라는 뜻의 Chickahawk라 부른 것이 서양인들에게 '고양이+매' 즉 Kittyhawk로 와전된 것이라 한다. (구글맵으로 위치를 보시려면 클릭)
누구나 어릴 때 한 번쯤은 들어봤을 "최초로 비행기를 발명한 롸이트 형제"의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 보자~
오하이오 주의 데이턴(Dayton)이 고향인 형 윌버 라이트(Wilbur Wright)와 동생 오빌 라이트(Orville Wright)의 사진들인데, 가운데 보이는 흰색 종이는 둘의 고등학교 성적표였다.^^ 둘은 자전거 공장을 만들어서 사업에 성공한 후에, 신문 등을 통해서 사람이 타고 하늘을 나는 글라이더에 관심을 가지게 되어 함께 만들어 보기로 했단다.
그들은 1900년에 당시 오하이오에서 기차로 7일이나 걸리는 여기 노스캐롤라이나 시골에 와서는 그들의 글라이더를 처음으로 테스트하게 된다. 연고도 없는 멀리 대서양 바닷가까지 온 이유는 미국 기상청에서 바람이 강하면서 인적이 없는 넓은 모래사장이 있는 장소로 소개가 되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다음 해에도 방문해 임시 판자집을 지어 생활하면서, 저 큰 글라이더를 끌고 모래언덕을 올라간 후에, 사람이 타고 내려오는 것을 수백번 반복하며 기본적인 비행의 원리와 조종법을 연구했다고 한다.
그리고는 마침내 1903년 겨울에 소형엔진과 두 개의 프로펠러를 달고 평지에서 이륙할 수 있는 '동력 비행기'인 라이트플라이어(Wright Flyer)를 테스트하게 된다. 제비뽑기로 형인 윌버가 먼저 올라서 12월 14일에 비행을 시도했지만, 제대로 뜨지도 못하고 고꾸라지는 바람에 앞쪽을 수리해야 했다고 한다. 여기서 일단 실내 전시실의 이야기는 끝내고, 이 후의 스토리는 비지터센터 밖에서 계속 이어지는데, 나가기 전에 옆방으로 가보면...
세계최초 동력 비행기의 실물모형이 그 발전과정과 함께 전시되어 있는데, 클릭해서 동영상으로 전시내용과 함께 간단히 보실 수 있다. (다음 해 1904년부터는 고향인 오하이오에서 비행기 테스트를 계속했다고 하며, 연구실로 사용한 자전거 공장과 비행연습을 한 들판 등이 역시 국립공원청이 직접 관리하는 역사공원인 Dayton Aviation Heritage National Historical Park로 지정되어 있음)
밖으로 나오면 멀리 글라이더 연습을 위해 올랐던 모래언덕인 킬데블힐(Kill Devil Hill)에 기념비가 세워진 것과 오른편에 숙소로 사용했던 판자집이 보인다. 형제의 얼굴이 새겨진 동판의 제일 위에는 아래와 같은 문구가 씌여있다.
" THEY TAUGHT US TO FLY "
이 두 건물은 옛모습으로 복원을 한 것인데, 왼편의 텅 빈 건물은 비행기를 보관하는 격납고로 사용했단다. 오른편은 라이트 형제의 숙소였다고 하는데, 잠긴 문의 유리를 통해서 내부를 찍어보니까,
이렇게 여러 소품들을 이용해서 당시의 모습으로 복원을 해놓았다. 고향에서 편하게 살 수도 있었는데, 이렇게 일부러 바람부는 바닷가의 판자집에서 지내며 고생을 한 것을 보면, 정말 하늘을 날고 싶은 마음이 진심이었다는 것이 느껴진다~
형이 땅에 처박은 것을 수리해서 3일 후인 17일에, 이번에는 동생 오빌이 올라타서 비행을 시도하게 된다. 처음 3회는 10여초 동안 7~8미터를 나는데 그쳤지만, 4회째 시도에서 약 1분 동안 260미터를 날아서 인류 최초의 동력비행에 성공을 한 것이다! (안내판의 내용들은 모두 원본을 확대해서 직접 읽으실 수 있음) 들판에 세워놓은 앞쪽 3개의 표석과 멀리 보이는 1개가 이 4회의 비행에서 날았던 거리를 각각 표시해놓은 것이다.
라이트플라이어가 이륙했던 지점에 미국 항공협회에서 25주년이 되던 1928년에 만든 이정표를 아내가 읽어보고 있다. 그 아래에 놓여진 기다란 레일은 모래사장에서 이륙을 위해 라이트 형제가 고안했던 것으로 세계최초의 활주로라 할 수 있겠다. 멀리 마지막 착륙지점까지 가보는 사람들도 많이 있었지만, 우리는 그냥 뒤돌아서 기념비가 있는 언덕으로 향했다.
높이 90피트로 부근에서 가장 높은 모래언덕이었던 저 Big Kill Devil Hill에 글라이더를 들고 올라가는 모습의 사진이 안내판에 보이는데, 바닷가 인명구조대 등 동네사람들이 많이 도와주었다고 한다. 1929년부터 모래에 잔디와 식물을 심어서 언덕을 안정화시키며 꼭대기에 기념비 공사를 시작해서,
1932년에 높이 60피트의 이 기념탑(Memorial Tower)이 완성이 되었단다. 원래는 내부의 작은 전시실을 구경하고 탑의 꼭대기까지 올라갈 수도 있었는데, 지금은 특별한 날에만 개방을 하고 평소에는 문이 닫혀 있어서 아쉬웠다.
기념물의 가장자리에 서서 동쪽으로 대서양의 망망대해를 내려다 보시는 사모님의 뒷모습~
좌우에 세워진 두 형제의 흉상과 기념탑의 옆모습, 그리고 뒤쪽으로 내려다 보이는 벌판의 모습 등을 동영상으로 보실 수 있다.
비지터센터에서 격납고 판자집을 지나서 여기까지 우리가 걸어온 길이 가운데 일직선으로 보인다. 또 이 사진에는 안 보이지만 왼편으로는 실제로 경비행기가 이착륙을 할 수 있는 짧은 활주로가 있는 간이공항인 First Flight Airport도 공원 안에 만들어져 있다.
주차한 곳으로 돌아오니까, 막 가이드투어가 시작되어서 레인저가 많은 사람들 앞에서 설명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예습할 때 봤던 실물크기의 사람과 비행기를 금속으로 만든 조각을 못 본 것 같아서, 공원지도를 다시 봤더니 기념탑 뒤쪽에 만들어져 있길래, 차를 몰고는 그리로 향했다.
2003년에 비행 100주년 기념식이 당시 부시 대통령과 달에 착륙했던 닐 암스트롱 등의 유명인사들을 포함해 12만명이 이 곳에 모여서 개최되었는데, 그 때 노스캐롤라이나 주에서 제작한 이 동상들이 새로 일반에 공개되었다고 한다. 그늘이 져서 잘 보이지 않지만 올라타서 조종하는 동생 오빌이 비행기의 가운데에 엎드려 있고,
그 옆에서 달리던 형 윌버가 이륙 순간에 앞으로 손을 뻗으며 극적인 포즈를 취하고 있는 것을 아내가 따라하고 있다.
형제뿐만이 아니라 이륙 모습을 사진으로 찍은 John T. Daniels와 비행을 도운 인명구조대원 Willis Dough 및 동네 사람들도 현실감있게 조각으로 만들어져 있었다.
"윌리스씨, 사람이 저런 하늘을 나는 기계를 타고 여행을 할 수 있는 날이 올거라고 생각하세요?"
여기 미국 노스캐롤라이나 키티호크 마을의 한적한 바닷가 모래사장에서 처음 날아오른 저 라이트플라이어(Wright Flyer)에서, 지금 우리가 타고 다니는 여객기와 음속보다 훨씬 빠른 제트기는 물론이고, 우주왕복선과 로켓까지 인류의 모든 비행의 역사가 시작되었다. 그것을 기리기 위해서 1969년에 아폴로 우주선이 라이트 형제가 사용했던 천과 나무조각을 싣고 달에 착륙했으며, 작년 2021년에 화성에서 비행에 성공한 헬리콥터 '인제뉴이티(Ingenuity)'도 라이트플라이어의 날개 천조각을 품고 날았고, 지구밖에서 인류가 최초로 동력비행에 성공했던 그 붉은 땅을 Wright Brothers Field라고 명명했다는 뉴스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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