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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하지만 멀고 멀지만 친한 사이의 콰르텟

친하지만 멀고 멀지만 친한 사이의 콰르텟

사랑하지만 좋아하지 않는다. 사람은 팬티 없이 바지 입고 돌아다니는 존재일지 모른다. 세상엔 세 가지 길이 있는데 하나는 노보리사카(오르막길)고 둘은 쿠다리사카(내리막길)며 셋은 마사카(설마)다. 부부는 무언지 알 수가 없지만 확실한 건 헤어질 수 있는 가족이란 점이다. 사카모토 유지 각본의 드라마 을 보고있다. 노래방에서 우연히 마주친 게 계기가 되어 콰르텟을 꾸려 활동하는 네 남녀의 이야기를 그린 이 작품은 대사가 하나같이 주옥같아 마음을 저며온다. 하지만 여기서 우연은 표피일 뿐 실은 누군가의 의도이고 누군가의 계획이다. 드라마는 이러저러한 이유로 해매고 있는 남녀가 악기가 '라'음을 향해 조율해나가는 것처럼 하나의 앙상블을 이루는 과정을 그린다. 그런데 이 과정이 기승전결의

재꽃

재꽃

연약한 세계는 얼마나 가녀린가. 가녀린 세계는 얼마나 연약한가. 막막하고 출구 없는 질문을 은 던진다. 아무 것도 없고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는 시골 풍경이 시간이 흘러 드러내는 건 숨통 하나 찾을 수 없는 막막한 세계, 열 여섯 살 소녀의 세계다. 아침에 일어나 밥을 먹고 모자를 쓰고 밭에 나가 블루베리를 따며 살아가는 소녀는 현실을 버텨낸다. 너무나 조용해서 바람이 부딪히는 소리만이 존재하는 것 같은 공간은 소녀의 삶을 짖누르는 무게다. 그녀가 유일하게 생기를 띄는 건 아무런 목적 없이, 아무런 이유 없이 달릴 때 뿐이다. 소녀는 달린다. 달리고 또 달린다. 반겨주는 이 없어도, 도착할 안락한 품 없어도 그녀는 달린다. 그게 그녀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삶이다. 들판 너머 빌딩이

그 후

그 후

예고없는 등장이다. 영화는 아무런 준비도 없이 갑작스레 흑백의 주방을 비춘다. 웅장하고도 외로운 선율이 울리는 가운데 남자가 아무렇지 않은 듯 식탁에 앉아 밥을 먹고 있다. 별 거 없는 일상이다. 하지만 이 별 거 없는 일상의 풍경이 보는 이로 하여금 마치 다른 세계에 입장한 것 같은 이상한 기운을 느끼게 한다. 홍상수 감독의 스물 한번째 영화 의 시작이다. 를 처음 알았을 때, 영화의 제목을 처음 접했을 때 나는 '그 후'의 '후'가 궁금했다. 홍상수 감독은 항상 실체, 본질, 그러니까 보이지 않는 세계와 현실 이면의 곳을 느끼게 하는 작업을 해왔었다. 그리고 에서 변화가 보이기 시작했다. 그 변화는 이전의 세계에 대한 대답

박열

박열

. 부끄러운 얘기인지 모르겠지만 모르는 사람이다. 이제훈이 입을 크게 벌인 채 소리를 치고 있는 듯한 포스터를 봤을 땐 류승범의 새 영화가 나왔나 싶었다. 데뷔 초기부터 느꼈지만 이제훈의 얼굴엔 희미하게 류승범의 얼굴이 있다. 이게 이준익 감독의 영화란 사실을 알았을 땐 자연스레 가 떠올랐고 동시에 역사 속 인물을 다시 꺼내보는 시도의 연장이 아닐까 생각했다. 딱 그 정도다. 나는 영화가 조선을 배경으로 한다는 사실을 몰랐었고, 간토 대지진과 조선인 대학살이 모티브가 됐다는 사실 조차 알지 못했다. 그렇다. 나는 최소한의 정보만을 갖고 영화와 마주했다. 감독의 전작 레퍼런스만 갖고 영화를 본 셈이다. 는 실화를 소재로 한 영화다. 흔치 않지 않은

옥자

옥자

옥자. 순박하다. 순박한 얘기가 흘러나올 것 같다. 옥자와 미자가 함께 있는 스틸컷이 공개됐을 때 내 머리에 떠오른 건 미야자키 하야오의 였다. 는 토토로와 귀여운 소녀 메이의 끈끈한 우정 이야기고, 는 옥자와 미자의 끈끈한 우정 이야기다. 그래서 생겨난 궁금증은 동물과 사람 사이의 우정을 얘기하는데 있어 봉준호 감독이 무엇을 더 말할 수 있을까였다. 미야자키 하야오는 순수한 자연, 그러니까 누구의 손도 거치지 않고 누구의 손떼도 묻지 않은 본래의 자연이라면 토토로도, 쿠로쿠로쿠스케도 존재할 거라는 세계를 펼쳐냈었다. 이 단순하고도 선명한 주장이 너무도 혁신적이라 가슴을 울렸었다. 그런데 봉준호 감독은, 거의 30년이나 지난 지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