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텅 빈 자리의 은총으로, '신의 은총으로'

세상의 질문되지 않는 물음들을 바라본다. 태초에 어떤 오랜 약속이라도 오고간 듯 답하지 않고 흘러가는 시간들을 돌아본다. 프랑소와 오종의 '신의 이름으로'와 안소니 홉킨스와 조나단 프레이스가 주연, 지난 칸느에서 뜨거웠던 '두 교황'은 왜인지 비슷하게 개봉했고, 고작 스크린을 마주하고 묻지 못한 질문들을 마주한다. 어릴 적 학교에 입학하듯 성당에 다니기 시작해 베드로란 세례명을 얻었고, 중학교 무렵 정해진 의례처럼 거행되는 경진성사라는 걸 문턱에 두고 돌아선 뒤 그 시간은 중단이 되어버렸지만, 성당에 다니는 걸, 교회에 나가 기도를 하고 신앙 생활을 한다는 걸, 설명할 법이 내겐 보이지 않는다 .어쩌면 '신의 이름으로' 무화되어 버리는 것들. 용서와 참회로 지워지는 기억들. 그렇게 질문의 의미를 잃는

잠들지 않는 노래, 파바로티

잠들지 않는 노래, 파바로티

2006년 토리노 올림픽에서의 '투란도트'를 기억한다. 8년만의 올림픽, 당시 안도 마키와 아사다 마오에 쏟아지던 주목 속 뒤로 밀렸던 아라카와 시즈카가 빙판에 그려낸 푸치니의 오페라는 아직도 그 때의 4분 남짓이곤 한다. 아직 이너바우어가 건재하던 시절, 점프 경쟁이 가속화하는 지금의 빙판으로부터 무려 10여 년 전, 그건 곧 아라카와의 삶, 그녀의 4분이기도 했다. 고작 노래 한 곡이지만, 사실 그 시간은 때로 영원하기도 해 아름다운 음악 앞에서 말은 별 힘을 갖지 못한다. 제목부터 명확한, 루치아노 파바로티의 이름을 그대로 가져온 론 하워드의 영화 '파바로티'는 그의 70여 년 생을 별 다른 수식없이 정리했고, 그건 사실 어찌할 수 없는 회고의 무능력한 오늘이기도 하다. 다소 복잡했던 여자 관계,

어제를 바라보는 건, 사람 뿐이다. '10년'

10년. 그저 숫자로 존재하는 이 말은 왜인지 미래를 암시한다. 2015년 반환 20주년을 기념해 제작된 홍콩에서 시작해 태국, 그리고 일본까지 옮겨간 소위 '10년 프로젝트'는 지금부터 10년 후, 조금 먼 미래 이야기다. 산다는 건 매일 같은 오늘을 더해가는 것이고, 남아있는 건 아직 오지않은 '미래'일 뿐이라, 10년이란 말 앞에 왜인지 먼 곳을 바라본다. 하지만, 고레에다 히로카즈가 총 지위한 일본의 '10년'엔 공통된 어제가 있다. 고령 인구를 줄이기 위해 정부 차원의 존엄사가 제도화되고, '프라미스'라는, 이름조차 이곳에 없는 사이버 멀티 콘트롤러는 내일의 주역이라 할, 어린이들을 지배하고, 원자력 사고 이후 방사능 공포가 현실이 된 곳엔 지하에서, 하늘을 가린 삶 만이 흘러가지만, 결국 남아

대한민국이 낳은 논픽션, '나를 찾아줘'

어제는 집에 앉아 한 문단 쓰고 낑낑대다, 안되겠다 싶어 오늘은 밖에 나와 카페에서 뒤적대다 맘에 들지 않는 문단 하나를 길게 쓰고, 예매해 둔 영화를 보았다. 이영애 주연, 신인 감독 데뷔작이라는 '나를 찾아줘.' 같은 제목의 데이비드 핀처 영화가 지난 해 있었고, 포스터만 보면 흡사 비슷한 무게의 톤으로 시작하지만 결론은, 아동 학대X여성 폭력X동물 학대. 결국 길거리에 나붙은 '우리 아이를 찾아주세요'인데, 스크린, 아니 도처에 깔린 괴물같은 타인에 고개를 돌리게 된다, 극장에선 여기저기 카톡, 뒤에선 여보세요. 영화가 영화일 수 없어서, 영화가 영화답지 못해서, 남는 건 폭력이고, 나를 피폐하게 하는 건 과연 뭘까라는, 영화와는 전혀 상관없는, 이상한 본질적인 물음을 떠올렸다. 아무리 오락이어도,

파르코란 도쿄. 이상한 동어반복.

오래 전, 정말 오래 전 우산도 없이 하라쥬쿠를 걷다 라포레에서 걸쳐 본 헬무트랑. 조금 더 옛날 혹시나 하고 입어봤던 존 로렌스 설리번. 파르코 언더커버는 매장도 작으면서, 겨우 팝업숍 크기면서 왜인지 항상 설레었고, 나 정도 몸을 하고도 팬츠가 수선없이 맞았다. 아마도 이런 게 연이겠지. 반 년간 문을 닫고 공사를 했던 시부야 파르코가 다시 문을 열었다고 연일 수선한데, 떠오르는 건 오래된 기억들 뿐이다. 첫 만남이란 건 항상 아무런 근거 없이 찾아와 시간과 함께 퍼즐을 맞춰가고, 그 계절을 이제는 알 것 같다. 지난 여름 WWW의 나토리 씨와 시부야 뒷골목에서 나눴던 시부야 이야기. 언더커버의 자수 반팔셔츠를 입고 언더커버 윈드 브레이크를 입은 점원에게 솔로이스트의 데님 셔츠를 샀던 지난 9월의 하라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