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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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느다란 실로 연결된 한 꾸러미의 이야기
정독도서관과 미술관 사잇길, 작은 골목으로 숨어든다. 전에 지나다니며 어여쁘다 했던 곳이 오늘 갈 곳이다. 아담한 한옥에 자리한 갤러리. 입구에 자리한 방명록에 글을 남긴다. 초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라고. 유리 너머로 작은 마당이 보인다. 그 마당을 에워싼 네 개의 긴 복도에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다. 잠시 작품들을 살피다 작가님을 만나 뵙는다. 언제나 반갑게 맞아주는 얼굴. 작가님은 축하해주러 온 지인들에게 우릴 소개한다. 제가 요즘 이분들 댁에서 아주 잘 머물고 있어요, 라고. 우린 그렇게 만난 사이다. 한참도 전인 어느 날, 메시지가 날아왔다. 예약을 하며 게스트는 여행의 목적을 담은 짧은 소개글을 보내오기 마련이다. 날아온 메시지의 내용은 이러했다. 이번에 한국에서 전시를 열게 되었다고,
옥상 위의 저녁 식사
서산에 해가 걸리니 때가 되었다. 우리는 테이블을 착착 펴고, 버너를 비롯한 살림살이들을 그 위에 차린다. 처음엔 자꾸 빼먹고 온 것이 생각나, 그때마다 후다닥 계단을 뛰어내려 가곤 했다. 키친타월! 아 맞다, 집게! 이런 식으로. 이제는 요령이 좀 생겼다. 쌈야채와 김치 종지, 쌈장 종지, 젓가락과 집게, 가위, 그리고 후라이팬과 접시까지. 마지막으로 주머니에 맥주 두 캔을 쑤셔 넣고 두 손 무겁게 계단을 오른다. 그렇게 차려낸 테이블 위 가장 중요한 것은 고기, 바로 고기다. 집에서 가장 가까운 정육점은 팔판 정육점. 산책 코스로 그 앞을 지나다니곤 했는데, 알고 보니 아주 유서 깊은 집이다. 대를 이어받은 사장님 역시 나이가 지긋하시다. 알만한 유명 고깃집과 청와대에도 고기를 납품한다는 그곳. 우리
친구네 집에 다녀왔습니다.
정확히 말하자면 달의 친구네 집에 다녀왔다. 새 집을 지었다는 소식은 예전에 들었고, 숲처럼 가꾼 마당에 작은 별채를 짓는다는 말도 전해들었다. 그곳은 게스트를 위한 공간으로 꾸리려 한다는 소식. 그리고 완성된 후, 제일 먼저 우리를 초대하고 싶다고도 했다. 그건 아주 기쁜 말이다. 가방을 당장 꾸릴 수 있는 말. 달과 철희 오빠의 사이가 얼마나 되었는가 헤아려 보려는데, 길게 생각할 것도 없다. 오빠는 원서동과 구기동, 그리고 삼청동까지 다녀간 적이 있으니. 원서동에 머물다 간 후엔 네 폭의 광목 커튼을 선물로 보내왔다. 삼청동에 올 땐 푸른빛 색실로 짠 매트를 가져왔다. 아, 책장 위 나란히 놓은 컵들 역시 그렇다. 둘이 개인적으로 주고받는 것들은 잔잔한 선물을 넘어, 길고 긴 이야기로 이어진다. 불
어쩌면 베이스 캠프
프라하에 살고 있다는 프랑스 커플, 엘리제와 폴. 집 근처에 도착했다는 전화는 택시 기사님이 대신해 주었다. 서둘러 나가 보니 건너편 길에 여행자 둘이 보인다. 아주 길고 커다란 배낭, 그리고 촘촘하게 묶은 등산화 차림이다. 그 신발 덕에 폴은 언제나 현관에 주저앉아 끈을 묶었다 풀었다 했다. 한국을 방문하는 것은 처음, 2주 동안 한국 곳곳을 둘러보려 한다고 했다. 우리 집에서 묵은 다음엔 어디를 갈 예정인지 물으니, 서투른 발음의 도시들이 줄을 잇는다. 수원, 부산, 해-인사, 그리고 설-악산. 정말 제대로 둘러보고 가려는구나 싶어, 서울에서의 일정도 물어보니 폴은 역시나 눈을 빛내며 말한다. 산. 산에 가고 싶어. 엘리제는 말한다. 전통차를 사고 싶어. 나는 걸어서 갈 수 있는 조계사에 대해 말해준
봄을 맞이하는 호스트의 자세
먼지와 바람과 사투를 벌이는 사이에도 잎에는 물이 오른다. 어제보다 좀 더 통통해진 꽃눈을 관찰하며 마스크 줄을 매만진다. 숨쉬기 너무 가쁘던 날에는 어쩔 수 없이 런닝머신 위를 달렸다. 속도를 늦추지 않으려 애쓰며 한 손으론 모니터의 채널을 바꿔댔다. 어딜 틀어봐도 모여서 요리하고 모여서 먹는 방송들이다. 그런 걸 보다 나오는 길엔, 정량보다 많은 밥을 먹게 되었다. 삼십 분 달렸으니까 이 정도도 괜찮겠지. 안일도 이런 안일이 없다. 그러나 역시 뜀박질은 밖이 최고다. 시시각각 변하는 풍경, 얼굴로 들이닥치는 바람. 지난가을엔 굴러 떨어진 은행알을 피해 뛰느라 옛날 게임 속 주인공이 된 기분이었다. 지금은 그래, 하루하루 색이 달라지는 잎들을 본다. 몇 번의 비가 내리고 나면, 후다닥 짙어질 이파리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