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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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리
시작은 달이 물어온 소식이었다. 무슨 카드를 만들면, 항공권이 원 플러스 원이 되는데 하고 시작된 이야기. 그리고 발권이 적용되는 가장 먼 곳은, 발리였다. 이왕 가는 거 뽕을 제대로 뽑겠다는 의도도 조금은 녹아있었나. 발리에 대해서 아는 것은 하나도 없고, 어렴풋하게 떠오른 이미지는 신혼 여행으로 많이 가는 곳 정도. 그래서 구글에서 발리를 찾아보았다. 적도 밑에 위치해 있다. 직항으로 일곱 시간이 걸리지만, 시차는 한 시간. 그러니까 남쪽으로 멀리 멀리 내려가면 있는 섬. 놀라웠던 건 여름철이 건기다. 여기에 확 끌렸다. 한낮엔 화끈하게 더우나 그늘은 시원하고, 밤은 청명하고 선선한. 그리고 빨래가 잘 마르는. 그런 바삭바삭함을 몹시 좋아하기 때문에, 나의 마음은 찬성 쪽으로 기울기 시작했다. 발리에

발리에서 3
난생 처음 한 플라이 요가는 우붓에서였다. 창문 없이 트인 창 너머로 나무가 넘실거리고. 노란 철제빔이 대들보처럼 천장을 가로질렀다. 거기에 마치 그네처럼 매달린 줄들. 요가 수업을 들으러 온 사람들은, 각자의 그네 아래에 매트를 깔고 눕거나 앉았다. 이윽고 선생님이 들어와 제일 먼저 한 일은, 조그만 신상(나중에 말해주기론 시바)앞에 초를 켜는 것이었다. 그리고 길다란 향에 불을 피워 창 앞에 꽂아두었다. 우리는 얌전히 그네의 구조에 대한 설명을 들었다. 세계 각국의 사람들의 손때가 묻은 낡은 줄은, 천이 조금 뜯어지기도 했고 실밥이 비어져나오기도 했다. 몇 년 전에 설치한 것입니다. 란 설명을 하자, 앞줄에 앉은 사람이 조심스레 묻는다. 아무 일도 없었나요? 그래서 모두 픽하고 웃었다. 아무 일도 없었어

발리에서 2
떠나기 전날 밤, 엄청난 빅 이벤트가 있었다. 나는 평소처럼 삼층에서 밍기적대고 있는데, 늦은 시각 현관문 도어락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휴가 전 처리할 일들을 마무리하느라 이제야 왔나 보다, 하고 내려가려던 찰나. 앓는 소리가 계단을 타고 먼저 올라왔다. 일층으로 향하는 계단참에서 돌아온 달을 보고 나는 그만 주저앉았다. 셔츠에 양복 바지 차림으로 퇴근한 것은 같은데, 바지가 문제였다. 양쪽 정강이 부분이 길게 다 뜯어져, 무릎을 굽히면 마름모 꼴로 살이 드러나는 모습이었다. 그리고 그 마름모 안의 속살은, 두꺼운 반창고로 덧대어진 상태. 이게 무슨 일이냐며 놀란 마음 추스리고 자초지종을 들어보니, 아침 출근길에 바이크 사고가 났더란다. 급히 튀어나오던 택시를 피하려고 브레이크를 밟았는데, 물 고인 돌바

발리에서
남반구에서 길찾기 능력이 높아지는 것은, 이전에도 경험한 적이 있다. 이번에도 그렇다. 나는 감과 본능에 따라 어두운 밤거리를 걸어다니는데, 그것이 놀랍도록 들어맞는다. 저기가 마사지 가게야! 저기가 집으로 가는 방향이야! 본능이 무서운 것이, 쥐뿔도 모르고 예약한 집이 이 동네 일 순위의 스파샵과 걸어서 오 분 거리다. 역시 몸이 원하는 바를 따라야 해. 이렇게 보면 굉장히 여기저기 뽈뽈거리며 다닌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거의 집에서 죽치고 놀았다. 여행을 떠나기 전, 푹푹 찌는 더위에 지쳐 거실 바닥에 드러누우면, 마당 앞산의 우거진 나무들이 보였다. 발리나 여기나 비슷하지 않을까? 했는데, 백퍼센트 오산이었다. 공기가 다르다. 칠 월 말의 한여름에, 여행 무드의 붉은색 립스틱을 바르며 입가의 각질을
여행임박
때 아닌 여름 감기로, 코 찡찡이와 걸걸한 목소리를 오가고 있는 요즘. 메일함엔, 여정이 곧 시작됩니다! 와 같은 알림 메일들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원래 한 군데 숙소를 길게 잡고 머무는 것을 좋아하는데, 이번엔 여행 날짜에 가까워져 알아보다보니, 몇 군데로 쪼개지게 되었다. 더위 먹지 말고 잘 찾아다녀야 할 텐데. 주문한 필름의 배송 문자는 어제 받았다. 부엌에는 컵라면과 도시락김이 놓여있다. 튜브형 고추장도. 별 생각 없이 산 고추장 겉면엔 샤이니가 그려져 있다. 둘의 상관관계는 무엇이람. 그리고 또 무엇이 필요하더라. 빨래는 떠나기 전날 돌리기로 했고, 내일은 도서관에 들려 정보 서적 몇 권을 빌리기로 했다. 참으로 빠르기도 하지! 요 며칠 너무 무더워서 이래저래 녹아내린지라, 예전의 준비만큼 빠릿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