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와 앨리스를 위한 방

Sources

Posts

110 posts

너의 췌장을 먹고 싶어 (2018) 감상

** 스포일러 있습니다. ** 영화를 끝까지 보고 영화관에서 나왔을 때, 나는 한 가지 위화감을 느꼈다. 그리고 위화감을 정확한 언어로 묘사할 수 없다는 사실에 놀랐다. 그건 나보다 먼저 극장에서 나온 할머니, 할아버지가 할머니는 만화 같다고 말하면서 할아버지는 좋았다고 말했기 때문만은 아니고, 전체적으로 이 극장만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남성 관객이 여성 관객보다 많기 때문도 아니며, 아니 어쩌면, 거기서부터 시작된 의구심일지도 모르겠지만, 나의 위화감은 집으로 돌아와서 영화의 스토리를 반추하기 전까지는 구체적인 형상을 띠지 못했다. 그래서 조금 더 생각해 보았다. 그러다 문득, 몇 년 전에 읽었던 배명훈의 소설 『타워』가 떠올랐다. 나는 외쳤다. 유레카! 아르키메데스가 유레카를 외친 이

[수학] superpermutations의 해결책이 익명 애니메이션 팬에 의해 발견

제목 그대로입니다. 사건의 전개 과정을 3줄로 요약하자면,수학 & 과학 wiki에 "The Haruhi Problem"의 lower bound(하한) 증명이 올라옴 -> 7년간 묻혀 있다가 발굴됨 -> Robin Houston이라는 사람이 증명이 옳다는 사실을 확인함 -> 수학자와 오타쿠(...)들 사이에서 화제가 됨. 자세한 증명은 이곳에서 볼 수 있습니다. 어느 정도 수학적 지식이 있어야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Robin과 같이 작업하던 Jay Pantone이라는 사람이 증명을 간결한 수식으로 재서술(rewriting)한 증명은 여기서 볼 수 있습니다. 정말 놀라운 일이군요! 오늘도 애니메이션 팬을 무시하면 안 된다는 중요한 교훈을 깨닫고 갑니다. 엘 프사

무라카미 다카시의 새로운 도전

미술세계 2017년 3월호에 기고한 글. 오랜 시일이 흘렀기에 블로그에 각주를 제외한 전문을 싣는다.(혹시 졸저를 인용할 생각이라면 아래 글이 아니라 dbpia의 링크를 참조하기를 부탁드린다. 링크) 현대 미술가이자 팝 아티스트로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진 무라카미 다카시(村上隆, b. 1962)가 TV용 애니메이션을 제작한다고 발표했을 때, 사람들의 반응은 대체로 극과 극으로 나뉘었다. 한쪽—주로 미술을 전공한 사람들이나 미술가, 해당 업계인들—에서는 무라카미 다카시의 새로운 시도에 기대했고, 다른 한쪽—애니메이션 업계 관계자나, 소위 오타쿠라 불리는 애니메이션 애호가들—은 무라카미 다카시의 시도에 어렴풋한 기대가 섞인 불안을 품고 있었다. 작품 방영 이전까지 수많은 이야기들이 트위터 타임라인과 마

2시간 31분의 다이내믹스 - 더 스퀘어 감상

영화 더 스퀘어는 스톡홀름 역과 그 주변에서 구걸하는 다양한 거지들의 모습을 비추며 시작합니다. 그리고 더 스퀘어(the square)라는 제목이 문자 그대로 말하는 작은 사각형의 공간, 즉 미술관 바로 앞에 설치된 가로세로 2미터의 평면 공간은, 화면 속에서 거듭해 나타나는 거지의 공간과는 철저히 분리되어 있습니다. 영화의 주인공인 크리스티안은 스웨덴 왕족 궁전을 개조한 미술관의 수석 큐레이터로 일하고 있습니다. 현대 미술에 대한 지식이 있는 사람이라면 익숙하겠지만, 개념 미술과 설치 미술이 영화 속에서 중요하게 묘사되고 있습니다. 이야기로 돌아와서, 그는 ‘더 스퀘어’란 이름의 설치 작품—과 그에 수반하는 전시—을 홍보하기 위해 홍보 대행사를 고용하는데요, 이들이 유튜브에서 대형 사고를 치면서 크리스

<버닝> 감상

<버닝> 감상

이 영화를 보아야 하는 이유도 찾을 수 없었고, 그렇다고 보지 말아야 하는 이유도 찾을 수 없었다. 그래서 나는 개봉한 지 조금 지난 뒤에 을 보았다. 밑은 영화 의 감상이지만, 어떻게 보면 영화 의 감상이 아닌 것 같고, 그렇다고 해서 영화 을 아예 이야기하지 않느냐고 하면 그렇지도 않다. 한 마디로 말해서, 버닝은 참 재미없는 영화였다. 재밌는 영화가 왜 재미있는지 이야기하는 건 그렇게 어렵지 않다. 이를테면 내가 미야자키 하야오의 작품(천공의 성 라퓨타! 바람이 분다! 등)이나 노아 바움백의 영화(에 대해 이야기하려면 사흘 밤낮을 새워도 모자랄 것이다), 그리고 홍상수의 영화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