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와 앨리스를 위한 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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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0 posts5. 16.
자유로움에 대해 생각한다. 그 전에, 자유로움에 대해 생각하는 것보다 자유로움에 대해 생각하지 않는 편이 자유롭다는 사실을 덧붙여야 할 것이다. 만약 혹자가 자유롭다면 내가 '자유로워야 한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것이기에. 6화까지 봤다. 90년대의 좋은 것들과 "좋은 사람들"이 좁은 애니메이션의 프레임 속에 응축되어 있으므로, 이야기는 부득이하게 세 사람의 관계성을 부각시키는 전개로 나가면서, 애니메이션의 동선도 우오즈미(남자 주인공)가 일하는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하는 아틀리에, 좁은 자취방, 그리고 모리노메의 집(우오즈미의 집보다 좋은)을 왕복한다. 여기서 발생하는 문제는 토우메 케이의 원작 만화에서 추억하는 과거가 얼마나 매력적이었는지 시청자에게 어필하는
추억은 방울방울 (1991)
스무 날만에 돌아온 집에서는 전등을 갈아 끼우는 공사가 한창이었다. 거실의 식탁 위에서 전등을 교체하는 전기기사는 천장에 붙어 있던 낡은 샹들리에의 프레임을 떼어 내고, 그 자리에 넓은 정사각형 모양의 엘이디 전등을 부착하는 작업에 열중하고 있었다. 나는 그를 바라보며 여러 가지 생각에 잠겼다. 이를테면 저 전등은 우리가 아파트에 들어오기 전부터 같은 자리를 지키고 있었고 샹들리에는 이전에 살던 부부가 달았다는 것과, 노란색 조명이 수명을 다하고 새로운 하얀색 조명이 전자의 자리를 대체하는 순간을 직접 목격하게 된다는 작은 기쁨과, 그리고 공교롭게도 가족 중에서 오직 나만 조명의 세대교체를 두 눈으로, 새로운 조명이 헌 조명을 대체하는 광경을 두 눈으로 보았다는 사실에 대한 오묘한 감정들. 여동생과 함께
최애가 부도칸에 가 준다면 난 죽어도 좋아(오시부도) 감상
라프텔에서 를 2화까지 보았다. 몇 가지 떠오르는 생각을 자유롭게 적어 본다. 1. 마이나 오시인 에리피요(빵 공장에서 일하는 프리터)를 보면서 내가 알고 있는 여덕들을 떠올렸다. 일단 네이버에서 열심히 패러디 만화를 그리는 옆집아저씨 님이 생각나고, 트위터를 하고 있을 때 알고 지내던 레타님이 생각나고, 그리고 현실에서 만나본 적이 있는 몇몇 아이돌 오타쿠들이 생각나기도 했다. 당장 멀리 갈 필요도 없다. 여동생이 엑소의 팬(엑소를 좋아하기 전에는 워너원을 좋아했던 것 같다)이니 나중에 성인이 되어서 좋아하는 아이돌에게 몇십 만원씩 쓰는 모습을 상상하기란 어렵지 않다. 그런데 만화가 애니메이션이 되어서 웃긴 점은, 화장을 하지 않은 에리피
B면: 엘사 도프먼의 폴라로이드
넷플릭스에 처음 올라왔을 때 한번 보고, 2년 뒤에 다시 본다. 예술가의 자기 실현이라는 이야기를 부담스럽지 않은 촬영과 훌륭하게 찍은 사진들이 대신 말하게 만드는 연출로, 조곤조곤 말한다. 모두가 엘사 도프먼의 다큐멘터리를 보고 교육적인 의미에서 감상문을 쓴다면 세상은 적어도 지금보다 나아지지 않을까 싶지만, 현재 트럼프가 이란을 공격하겠다고 말하고 이란은 피의 보복을 다짐하는 시점에서, 내가 블로그에 쓰는 말은 참으로 공허하게 들린다. 중간에 나온 앨런 긴즈버그의 라는 시가 인상깊었다. 아주 훌륭한 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