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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posts살인 나비를 쫓는 여자 (1978)
주인공 영걸에 대해 한 마디로 요약한다면, 죽음으로부터 사랑받는 남자. 죽음에게서 선택 받고, 죽음을 이기는 "의지"를 배우고, 죽음으로 하여금 사랑에 빠지게 만들도록 유혹해 죽음을 회피하고, 죽음으로 가는 길의 길잡이로 지목 당하지만 그 "의지"로서 마침내 죽음을 정복해버린다. 뭔가 추상적이고 장황한 얘기 같지만, 정확히 이 영화의 플롯이 그러하다. 그렇다고 영걸이 삶을 의미하는 역설적 캐릭터냐 하면 그건 또 아니다. 영걸은 숫총각, 삶을 생산하는 행위를 경험해 보지 못 한 자다. 그리고 영걸은 살려할 때 죽음을 만나고 죽으려 할 때 삶을 만나는 자. 즉, 인간 생명의 어떠한 교착 상태를 아이러니하게 상징하는 인물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도무지 결론 내릴 수 없는 플롯과 짐작 조차 못
공포의 보수 Le Salaire De La Peur (1953)
제목을 윤색하면 '공포의 댓가' 쯤 될텐데, 나는 오히려 반대로 '댓가라는 것의 공포'가 이 영화에 가장 잘 드러나 있다고 주장하는 쪽이다. 이 영화는 대체로 물질과 그에 대한 맹목적인 탐욕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으로 해석된다. 그리고 나는 그것에 "대체로" 동의하지 않는다. 영화에서 니트로글리세린을 싣고 두돈반을 질주하는 군상들은, 모두가 그럴만한 이유를 갖고 있다. 안 해도 될 일을 단지 황금만능주의에 입각해 굳이 발 벗고 나서서 하는 게 아니라는 말이다. 차라리 댓가와 목숨을 등가교환할 수 밖에 없게 만드는 함정같은 구조가 자본주의의 부분적인 본질이지 않나 하는 의문이 먼저 떠오른다. 영화는 소리를 기가막히게 쓴다. 음악은 거의 없고 생활 소음들만이 복작복작한데, 자동차 엔진소리에 가축들
캐리 Carrie (1976)
내가 생각하는 좋은 호러란 불특정 다수에게 무개성하게 어필하는 깜짝 쇼 같은 게 아니라, 특정 대상에게 최적화된 특정한 유형의 공포를, 통배권처럼 내장까지 사정없이 쑤셔넣는 것이다. 그리고 이 영화는 보편적인 연애의 경험이 있는 남성에게, 특히 무력했던 어느 순간들의 트라우마를 상기시키는 방식으로 좋은 호러다. 영화는 고교생 캐리의 늦은 초경으로 문을 연다. 내가 알고 있는 영화 중 가장 인상적인 프롤로그 중 하나다. 그리고 피칠갑을 한 캐리의 재앙적인 신경질로 영화의 클라이막스를 사정없이 조진다. 피에서 피로 끝나는 아찔한 수미쌍관. 즉 주인공 캐리는 어떤 면에서는 월경 그 자체를 의인화한 인물이다. 적어도, 평생 가도 그 격통을 직접 체험할 수 없으며 피와 신경질이라는 표면적인 "현상"만을 목격
선셋 대로 Sunset Boulevard (1950)
그건 사랑이었을까. '노마'가 '조'에게 그토록 집착했던 건 그의 말처럼 정말 사랑이었을까. 혹은 죽은 애완 침팬지를 대신할 말 하는 액세서리가 필요했던 걸까. 아니면 안 팔리는 작가라도 헐리웃 비즈니스와 희미하게는 연결고리가 있는 사람을 곁에 둠으로써, 미이라처럼 산 것도 죽은 것도 아닌 자신의 옛 영광에 수분을 공급할 요량이었던 건 아닐까. '베티'는 '조'를 사랑했을까. 무생물, 무형물에 대한 보상 없는 열정이 가끔 그것을 떠올리게 하는 어떠한 사람에게로 향하기도 하듯, 베티가 꿈꾸는 이상적인 작가주의에 조가 가장 근접했을 뿐이진 않을까. 헐리웃 비즈니스에 이제 막 입성한 신출내기에게, 성실하고 안전한 약혼자 대신 즐기는 밀회의 스릴이 필요했던 건 혹시 아닐까. '조'는 '베티'를 사랑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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