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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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여름 麥秋 (1951)
가족이라는 것이 돌아가는 매커니즘이야 새삼 새로울 게 없는 일이겠다만, 오즈는 언제나 같은 이야기를 하면서도 아주 조금씩의 변주를 통해 가족 안에서 세상을 읽는다. 낡은 것은 남고 새로운 것은 새 그릇을 찾아 떠난다. 그것이 생로병사이고 삼라만상이다, 라며 말하기 위해 전후(戰後)의 오즈는 카메라를 일본식 다다미 집에 눌러 앉힌 것이다. 이른바 '노리코 삼부작' 중 두 번째 영화. 이 다음인 [동경 이야기]에서는 유일하게 노리코가 가족이 아니다. 하지만 노리코는 가족 아닌 자들을 가족으로 여기고 있다. 때문에 前 시아버지인 류 치슈는 노리코에게, 노리코가 차마 떠나지 못하는 그 가족이 사실은 이미 해체되었다는 것을 확인시켜준다. [만춘]에 이어 딸의 이름은 또 노리코다. 여지없이 하라 세츠코가

만춘 晩春 (1949)
내가 이 영화에 대해 늘 중첩해 떠올리는 건 오 헨리의 영원한 레퍼런스 [크리스마스 선물]이다. 딸은 혼자 남을 아버지 생각에 독신을 주장한다. 아버지는 딸이 혼기를 놓칠까봐 재혼하겠다는 거짓 선언을 한다. 부녀가 서로를 걱정하고 배겨하는데 그 걱정해주는 방식이 서로에게는 스트레스인 교착 상황. 결국 어느 한 쪽이 자신을 접고 상대방의 배려를 받아들일 때 까지 빙글빙글 쳇바퀴 돌아가는 갈등 뿐. 내가 아버지를 위해 남아주는 게 아닌, 아버지만의 인생을 내가 방해하는가, 라는 질문을 딸 노리코가 스스로 품은 순간 매듭은 풀린다. 오즈 영화니까 결론은 딸이 시집가는 거고, 오즈 영화니까 정작 결혼식 장면은 없는 거고. 영화네느 만고불변 두 가지의 가족 거짓말이 나온다. 첫째, 나는 이제 살 만큼
움 Womb (2010)
복제인간의 윤리적 문제는, 엄연히 자아를 가진 "인간"을 도구로 사용하는 부분에 대해서만은 아닐 것이다. 이 영화가 제시하는 문제의식은 클론을 하나의 인간으로 받아들이되 "어떠한 인간"으로 받아들일 것인가에 방점을 두고 있다. 죽은 연인 토미1의 유전자를 복제해 인공수정, 출산을 거쳐 아들로 기른 여인 레베카가 있다. 아들인 토미2는 레베카가 토미1을 처음 만나 사랑에 빠졌던 유년기의 얼굴을, 토미1을 불의의 사고로 잃었던 청년기의 모습을 완벽하게 닮은 얼굴로 자라난다. 영화가 끝난 후 곱씹다가 문득 뜨악해진 건, 레베카의 얼굴에서 그 어떤 혼란과 윤리적 고민을 단 한 번도 읽을 수 없었다는 점이다. 레베카가 토미1의 유전자를 복제하기로 결정한 시점에서 이미 출산이라는 생물학적 과정이 주는 의미 따
맨체스터 바이 더 씨 Manchester by the Sea (2016)
영화의 제목은 단순히 '지명'만이 아닐 것이다. '맨체스터 바이 더 씨'라는 마을 이름은, 모두가 자신을 알아보고 그 날의 일을 기억하고 있는 그 마을의 이름이란, 주인공 리에게는 다시 꺼내어 차마 정면으로 마주할 수 없는 죄책감의 거대한 덩어리 그 자체다. 형의 죽음은, 날이 채 풀리지 않아 당분간은 주검인 채로 냉동 닭 신세를 견뎌야 하는 형의 그 죽음은, 냉동 닭처럼 얼려 눈에 안 보이게 쑤셔 쳐박아두었던 리의 기억들을 억지로 꺼내어 강제로 해동해 버린다. 마음을 닫고 감정을 차단한 채 비루한 일상을 반복하던 리의 삶은 그것이 고통을 견뎌내는 방식이 아니라 그저 못 본 척 모르는 척 회피하는 방식이었기에, 이 날에 대해 전혀 대비할 수 없었던 것이다. 얼어붙었던 기억은 '맨체스터 바이 더

![[CV] [Comi] 'ダンダダン'(단다단) 24권. 레드 바론](https://img.zoomtrend.com/2026/06/11/1781228393-EB829CED8380.jpg)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