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주부의 미국 여행과 생활 V2
Posts
620 posts
캐피탈휠(Capital Wheel) 관람차와 조각작품 등으로 유명한 메릴랜드 내셔널하버(National Harbor)
캘리포니아 LA에서 살 때는 자동차로 다른 주(state)를 만나려면 동쪽으로 4시간쯤 달려서 아리조나 또는 네바다를 가거나, 북쪽으로 10시간 이상을 달려서 오레곤을 가야만 했다. (가장 가까운 경계인 남쪽으로 2시간 거리는 다른 나라인 멕시코^^) 그래서 로스앤젤레스에서는 다른 주를 자동차로 하루에 다녀온다는 것이 쉽지 않으니까, 주가 바뀌면 뭔가 거창한 여행을 한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여기 북부 버지니아에서는 앞으로 차례로 소개되겠지만, 다른 주들을 2시간 정도의 운전으로 갈 수가 있고, 특히 같은 생활권이라 할 수 있는 메릴랜드(Maryland) 주는 가까운 강만 건너면 된다. 수도 워싱턴에서 '내셔널' 크리스마스 트리를 구경하고는 남쪽으로 20분 정도 달려서, 이름만으로는 컨테이너들이 가득한 미국의 '국가적 항구'로 오해하기 십상인 메릴랜드 주의 내셔널하버(National Harbor)로 왔다. 먹구름 아래로 비추는 해질녁의 주황 햇살이 반사되는 저 수면은 바다가 아닌 포토맥 강(Potomac River)이고, 강 건너의 육지는 버지니아(Virginia)로, 처음에 내셔널하버라는 이름만 듣고는 LA의 롱비치같은 컨테이너 항구를 생각했다가 완전히 한 방 먹었다~ 물론 요트가 몇 척 떠있으니 항구(harbor)가 맞기는 하지만, 그 이름도 거창하게 '내셔널' 하버로 불리는 이유는... 1980년대까지 옛날 플랜테이션 농장이 남아있던 자리를 2000년대 들어서 강가의 리조트로 개발을 하면서, 이 소규모 개발지역의 공식적인 지명을 National Harbor로 새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대형 관람차 뒤쪽으로 포토맥 강을 건너는 큰 다리가 보이는데, 인터스테이트 95번 겸 495번 고속도로가 지나가는 Woodrow Wilson Memorial Bridge로 버지니아 출신의 제28대 대통령 우드로 윌슨의 이름을 딴 것이다. 이 쯤에서 이해를 돕기 위해서 아래의 지도를 한 장 보여드려야 할 것 같다. 파란색의 포토맥 강 동쪽에서 마름모로 밝게 표시된 영역이 미국의 수도, 워싱턴 DC(District of Columbia)이다. 그 외의 동쪽은 메릴랜드 주로 National Harbor가 지도 가운데 제일 아래에 보이고, 강의 서쪽은 버지니아 주이다. (구글맵 지도를 보시려면 여기를 클릭) 앞서 언급한 495번 고속도로가 DC를 완전히 감싸고 돌아서 캐피탈 벨트웨이(Capital Beltway)로 불리는데, 한국으로 치자면 서울의 외곽순환 고속도로라고 할 수 있다. 나들이를 다녀와서 이렇게 지도로 복습을 하니까, 이제 이 동네의 지리가 조금씩 이해 되는 것 같다. 관람차가 있는 부두로 연결되는 중심가로 걸어가는데 가로수에 연말 크리스마스 장식을 해놓았다. 처음에는 이 곳의 위치와 분위기를 보고 LA의 산타모니카 바닷가가 떠올랐지만, 내셔널하버는 계획적으로 리조트와 컨벤션센터로 개발된 곳이라는 큰 차이가 있다. 특히 멀리 정면에 유리로 만든 고층건물이 보이는데 2016년에 문을 연 MGM National Harbor 카지노호텔로, 메릴랜드는 미국에서 일반 카지노가 합법인 18개 주들 중의 하나이다. 원래 국가적인 역사나 의미가 있는 장소가 아니라서, 의도적으로 '내셔널'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국가적(또는 애국적?)인 동상과 조형물들을 많이 세워놓는 노력을 했다. 중심가의 아메리칸웨이 야외공원(American Way Outdoor Park) 입구에 해군, 해병대, 육군, 공군, 그리고 사진에는 안 보이지만 국경수비대까지 총 5명의 살아있는 것 같은 동상이 아주 잘 만들어져 있었다. 그 뒤로 바람에 펄럭이는 듯한 성조기 조형물 아래로 American Way를 따라서 여러 유명 인물의 실물 크기 청동조각이 또 서있어서, 강가로 나가기 전에 먼저 저 쪽으로 가서 잠시 둘러보기로 했다. 코로나로 함부로 여기저기 만질 수는 없지만, 그래도 워싱턴과 악수를 안 할 수 없었다...^^ 동상을 기단도 전혀 없이 잘 세워놓아서, 정말로 보도블럭 위에 서있는 워싱턴과 마주하고 있는 느낌이 들도록 한 것이 참신했다. 링컨과 나란히 선 지혜인데, 정말로 링컨이 키가 크기는 했나보다~ 사진 오른쪽에 살짝 보이는 책을 들고있는 동상은 메릴랜드 출신의 노예제 폐지론자인 프레더릭 더글라스(Frederick Douglass)로, 노예해방을 위한 웅변과 저술 및 신문발행을 통해 유명해져서, 남북전쟁 때는 링컨의 고문으로 흑인부대를 이끌었고, 미국 역사상 최초로 연방정부의 고위직에 임명된 흑인이다. DC에 있는 그의 집이 국가사적지로 지정이 되어 있어서, 언젠가 방문하게 되면 다시 상세히 소개를 할거라서 여기서는 반쪽짜리 사진으로 넘어간다. '자동차의 나라'답게 그 다음은 포드사의 모델T 실물과 함께, 맞은편에는 헨리 포드의 동상이 만들어져 있었다. 휠체어에 앉아있는 분은 미국 역사상 유일무이한 4선의 제32대 대통령인 프랭클린 루즈벨트(Franklin Roosevelt)인데, 그 옆에 영국인 윈스턴 처칠은 왜 뜬금없이 '미국의 길'에 등장하셨나? 그리고 사진 제일 오른쪽에 팔근육을 자랑하고 있는 여성분이 보이는데, 2차 세계대전 당시에 군수공장에서 일하시던 '로지더리베터(Rosie the Riveter)'의 동상이다. 리벳공 로지에 대해서 더 궁금하신 분은 여기를 클릭해서 샌프란시스코 지역에 있는 그녀들을 기리는 국립역사공원을 소개했던 퀵실버님의 여행기를 보시기 바란다. 계속해서 걸어가면 아이젠하워, 루이 암스트롱, 마릴린 먼로 등의 동상이 계속 나온다고 하지만, 어두워지려고 해서 방향을 돌려 저 커다란 크리스마스트리와 관람차를 구경하기 위해서 다시 강가로 향했다. 역시 떠나온 LA 그로브몰이 생각나게 만들었던, 커다란 원뿔형의 트리 앞에서 가족사진 셀카를 한 장 찍었다. 위기주부의 얼굴이 나온 김에... "블로그 방문하신 모든 분들, 2022년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부두로 나가기 전에 강가에 또 유명한 조각작품이 하나 있다고 해서 모래사장으로 내려가 봤는데, 여기서는 어떤 작품인지 한 번에 잘 보이지가 않는다... 왠지 '발꾸락'으로 불러야 할 것 같은 커다란 발가락들은 땅 밖으로 끝부분만 나온 오른발이고, National Harbor 간판 아래쪽에는 꼬마가 올라가 있는 세워진 왼쪽 무릎이 보인다. 오른팔이 땅에서 가장 높이 솟아있고, 덮수룩한 수염이 자란 거인의 얼굴이 겨우 땅밖으로 나와서 거친 숨을 쉬고 있다. "어이~ 까만 옷을 입은 꼬마야... 너 아저씨 눈 밟았어!" 그리고 왼팔은 손바닥만 겨우 모래 위로 올라와 있었다. 잠에서 깨어나 땅속에서 나오려는 거인의 모습을 묘사한 이 작품의 제목은 어웨이크닝(The Awakening)으로, 원래는 DC 내셔널몰 아래 East Potomac Park의 남쪽 끝인 Hains Point에 1980년에 설치가 되었던 작품인데, 2008년에 National Harbor 개발자가 70만불에 구매해서 이리로 옮겨서 설치한 것이라고 한다. 마지막으로 부두를 따라서 강 위에 설치된 캐피탈휠(Capital Wheel)이라 불리는 회전 관람차 가까이 가봤다. 최고 높이 180피트(55 m)의 꼭대기 높이에서는 워싱턴 기념탑까지 보인다고 하는데, 2014년에 설치되어서 나름 여기 DMV(DC-Maryland-Virginia) 지역의 명물로 자리를 잡았다고 한다. 이렇게 버지니아로 이사와서 첫번째 맞는 크리스마스의 오후에, 넓게 잡아서 우리 동네라 부를 수 있는 DC의 내셔널 트리와 메릴랜드의 내셔널 하버를 구경하고는, 495번 고속도로로 포토맥 강을 서쪽으로 건너서 버지니아의 집으로 돌아갔는데, 아무래도 여기 내셔널하버는 새해 돼지꿈을 꾸고 나서, MGM 카지노를 구경하러 한 번 더 와보게 될 것 같다. 아래 배너를 클릭해서 위기주부의 유튜브 구독하기를 눌러주시면 정말 감사하겠습니다.^^

미국의 '국립온천'이라고 부를 수 있는 아칸소 주의 핫스프링스 국립공원(Hot Springs National Park)
미서부를 떠나와서 앞으로 가장 그리워하게 될 것들 중의 하나가, 위기주부의 블로그에 여행기가 34편이나 있는 요세미티 국립공원이다. 그 중에서 12년전에 쓴 글을 클릭해서 보시면, 서두에 미국 최초의 국립공원은 1872년에 지정된 옐로스톤으로 알려져 있지만, 연방정부에서 법으로 특별히 보호한 역사는 요세미티가 1864년으로 더 빠르다고 알려드렸다. 그런데 그렇게 따지자면 훨씬 더 오래된 진짜 1등은 따로 있었으니... 바로 1832년에 미국 연방정부가 국가의 보호구역(Reserve)으로 지정하는 법을 통과시킨 미국남부 아칸소 주 핫스프링스(Hot Springs) 지역의 온천이다. (위키피디아의 해당 국립공원 설명에도 '설립된(established)' 일자가 1832년 4월 20일로 되어있음) 대륙횡단 4일째 아침을 맞은 이 곳은 아칸소(Arkansas) 주의 핫스프링스(Hot Springs)라는 이름의 도시에 있는 숙소인 해피할로우(Happy Hollow)로, 동명의 건물 뒤 약수터와 이 땅이 모두 핫스프링스 내셔널파크(Hot Springs National Park) 영역에 포함되는 국립공원 내의 숙소이다. 지난 3일 동안 모두 하루 9시간 이상을 운전했기 때문에, 이 날 오전은 온천욕을 하면서 릴렉스를 하기로 했다~ 숙소는 일단 체크아웃을 하고 목욕가방만 따로 챙겨서 시내로 걸어 내려오니 넓은 잔디밭이 나왔다. 뒤로 보이는 큰 건물은 1924년에 지어진 484개의 객실이 있는 알링턴 호텔(Arlington Hotel)로 1930년대에는 알카포네(Al Capone)가 단골손님이었고, 지금까지 4명의 미국 현직 대통령이 숙박한 기록을 가지고 있단다. 우리가 서있는 잔디밭에서부터 남쪽으로 배스하우스로우(Bathhouse Row), 즉 '온천장 길'이 시작되는데, 바로 뒤를 돌아보면... 이렇게 김이 모락모락 나는 노천온천탕이 잘 만들어져 있다. 이 곳의 온천수는 서양인들이 발견하기 훨씬 전부터 부근의 여러 원주민 부족들이 치료 등의 목적으로 이용했는데, 전해지는 말에 따르면 온천수가 흐르는 계곡에는 서로 적대적인 부족들도 무기를 놓고 들어와서 평화적으로 함께 이용하기로 약속을 했었다고 한다. 비디오를 클릭해서 보시면, 뜨거운 온천수가 산에서 바로 흘러내리는 모습과 함께 주변 풍경을 보실 수 있다. 1803년의 루이지애나 매입으로 이 곳이 미국땅이 되고, 1819년에 아칸소 준주(Arkansas Territory)가 만들어진 후에 온천수의 무분별한 개발을 막기 위해서 연방정부 차원의 보호를 요청했기 때문에, 1832년에 미국 최초로 '국립공원'이 될 수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아서 여러 시설들이 마구 들어서고 소유권 분쟁도 생겼는데, 1878년의 대화재로 대부분의 건물이 불탄 후에 하천을 복개하는 등 정부 주도로 체계적인 개발이 진행되게 된다. 20세기 들어서 현대식 건물들이 차례로 만들어져서 지금의 배스하우스로우(Bathhouse Row)가 형성되었고, 1921년에 당시로는 미국의 18번째 내셔널파크(National Park)로 지정이 되었는데, 이제 남쪽으로 걸어가면서 차례로 건물들을 소개해보자. 아쉽게도 첫번째로 나오는 1916년에 지어진 슈피리어(Superior) 건물은 모르고 그냥 지나쳤는데, 1983년에 온천이 문을 닫은 후에 지금은 미국 국립공원 내의 유일한, 또 세계적으로도 유일하게 온천수가 들어가는 맥주를 만드는 브루어리(brewery)로 운영이 되고 있단다. 가장 오래된 1892년 건물의 헤일(Hale)은 1978년까지는 온천탕으로 운영되다가, 리모델링을 해서 지금은 각 방에 온천수 욕조를 가진 호텔로 운영이 되고 있다. 전날 알아봤을 때 빈 방이 딱 하나 있어서, 여기서 자볼까 고민을 했었는데... 마지막에 소개하는 커다란 대중 온천탕을 이용해보는 것이 더 재미있을 것 같아서 처음의 숙소로 예약한 것이다. 그 아래 하얀 모리스(Maurice) 건물은 현재 비어있어서 일반에 공개되지는 않고, 대신에 건물 뒤쪽의 이 Maurice Historic Spring을 구경할 수 있다. 바위 속의 동굴과 벽에 만들어 놓은 샘에서 온천수가 조금씩 흘러 나오는 것을 볼 수 있었지만, 앞서 잔디밭의 커다란 야외 온천탕을 이미 봤기 때문에 감흥은 별로 없었다. 1915년에 만들어진 포다이스(Fordyce)는 1962년까지는 고급 온천으로 운영이 되었고, 그 후에는 국립공원의 비지터센터 겸 옛날 온천의 모습을 보여주는 박물관으로 사용이 되고 있는데, 온천욕 후에 둘러본 내부의 모습은 다음 편에서 소개를 해드릴 예정이다. (구글맵으로 위치를 보시려면 클릭) 짜잔~ 우리가 오늘 이용할 온천탕인 쿼포(Quapaw)로 중앙의 둥근 돔이 타일로 장식되어 있는 Bathhouse Row에서 가장 큰 건물이다. 1922년에 문을 열어서 1984년까지 옛날 스타일로 운영을 했고, 그 후에 내부 수리를 거쳐서 지금은 현대식 대중 온천탕과 스파(spa) 시설을 갖추고 2008년에 재개장을 했다고 한다. 목욕탕 앞에서도 커플셀카 인증샷 한 장 찍었는데, 쿼포(Quapaw)는 이 지역에 살던 원주민들의 이름이라고 한다. 목욕탕이 문을 열기 전에 줄을 서지 않으면 많이 기다려야 한다고 해서 일찍 왔지만, 아직 다른 기다리는 사람도 전혀 없고 해서 아래쪽까지 다 둘러보고 다시 오기로 했다. 오자크(Ozark)라는 지명은 지금은 넷플릭스에서 시즌3까지 나온 범죄드라마의 제목으로 유명해졌지만, 위기주부는 옛날에 월마트의 저렴한 캠핑용품 브랜드의 이름으로 처음 알았다. 항상 그 어원이 궁금했었는데 오자크(Ozark) 온천을 보면서 이번에는 꼭 찾아보겠다고 다짐했었다... 의외로 인디언 부족의 이름이나 말이 아니라, 프랑스어 "aux Arcs"에서 나왔는데, Arcs는 인디언 부족 Arcansas의 줄임말이라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원호(arc) 또는 아치(arch)를 의미할 수도 있다고 한다. 참, 1922년에 만들어져서 1977년까지 운영했던 이 온천은 지금은 무료인 미술 갤러리로 운영되고 있다는데 역시 들어가 보지는 못했다. 진짜 미국 국립온천의 진수를 오리지널로 느끼고 싶으신 분이 계시다면 여기 벅스태프(Buckstaff)를 이용하시면 된다. 1912년에 문을 열었고 유일하게 지금까지 옛날 방식 그대로 중단없이 운영을 해오고 있는 유서깊은 곳으로, 수영복 없이 발가벗고 온천탕에 들어가야 하며 당연히 남탕과 여탕이 분리되어 있다고 한다. "사모님, 우리 거기 들어가는 것 아니에요~" Bathhouse Row 제일 아래에 마지막으로 지어진 라마르(Lamar) 건물의 내부 로비의 모습으로, 지금은 핫스프링스 국립공원의 기념품가게로 운영이 되고 있다. 1923년에 문을 열어서 1985년까지 온천으로 운영을 했다고 하며, 건물의 이름은 국립공원청이 속한 내무부의 장관을 역임하고 나중에 대법관이 된 Lucius Quintus Cincinnatus Lamar의 성에서 따왔다고 한다. 국립공원 간판이 보이는 제일 남쪽까지 내려왔는데, 가운데 보이는 노란 2층 건물은 1936년에 국립공원 관리소로 지어진 것으로 온천은 아니다. 오른쪽 언덕 위에 거대하게 우뚝 서있는 건물은 1933년에 당시 전쟁부(War Department)에서 온천수를 이용한 부상병들의 치료와 휴양의 목적으로 건설한 육군/해군 종합병원(Army & Navy General Hospital)이었다. 지금은 아칸소 주정부 소유의 건물로 국립공원 밖이지만, 별도로 국가유적지(National Register of Historic Places)로 지정이 되어있다고 한다. 공원관리소였던 노란 건물 앞에는 이렇게 뜨거운 온천수가 나오는 분수가 만들어져 있다. 여기 핫스프링스 지역의 모든 온천수는 국립공원청에서 한 곳에 모아서 수질을 관리하고 온도를 낮춘 후에 앞서 소개한 온천장들로 공급을 했기 때문에, 온천의 수질은 어디를 가도 똑같다고 한다. 이렇게 시내 한가운데에 국립공원 간판이 있다는 것이 참 신기하고, 그래서 '접근성(accessible)'이 좋다고 공원안내에 되어 있지만 그것은 이 도시까지 왔을 때 이야기이고, 전체적으로 봐서는 미본토에서 가장 와보기 어려운 국립공원들 중의 하나가 아닌가 생각된다. 또한 2018년까지는 미국에서 가장 면적이 작은 내셔널파크(National Park)의 기록도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 "사모님, 이제 온천하러 가실까요?" '쿼포탕'으로 돌아와서 줄을 서러 가보니 다른 노부부가 우리보다 먼저 입구 의자에 자리를 잡고 있었다. 문을 여는 오전 10시까지 1시간 가까이 남았었는데 말이다... 우리도 그냥 기다리기로 했는데, 계속 사람들이 몰려서 입장을 기다리는 사람이 30명 정도 되니까, 직원이 조금 일찍 문을 열고 선착순 입장을 받아줘서 첫번째 팀으로 온천을 이용할 수 있었다. 연방정부 국립공원 내에 있는 '국립온천'이라서 혹시 코로나로 문을 닫았거나 또는 이 온천이 쉬는 날인 화요일과 겹치면 어떡하나 대륙횡단 계획을 세우며 걱정을 했었는데, 모든게 잘 맞아 떨어져서 지금 생각해도 운이 좋았던 것 같다. 미리 이삿짐에서 빼서 따로 챙겨놓고 준비해 간 수영복과 샌달을 신고 시원한 물 한 잔 들고 있는 아내의 모습이다. 탈의실에서 잠깐 핸폰을 들고 나와서 이렇게 내부 사진을 찍는 것도 가능했고, 직원이 물에 들어가 있는 모습을 찍어주기도 했다. 무엇보다 코로나로 온천탕에 한 번에 입장하는 이용객 수를 제한을 했기 때문에, 일단 들어가서는 아주 널널한 환경에서 원하는 만큼 온천을 즐길 수가 있어서 좋았다. 마지막으로 온천수 이야기를 하자면, 온천을 아주 좋아하는 아내의 말로는 유황 냄새도 전혀 안 나면서 온천수의 효능은 지금까지 들어가본 온천들 중에서 최고였다고 하면서, 정말로 괜히 미국의 '국립온천'으로 지정된 것이 아니라고 감탄을 하셨다! 30분 이상 모든 풀을 들락날락거리면서 충분히 릴렉스를 한 후에 쿼포탕을 나왔고, 그 후에 비지터센터 건물의 박물관을 구경한 것과 첫번째 사진에 살짝 보이는 전망탑을 올라간 이야기는 핫스프링스 국립공원 여행기 다음 편에서 계속 이어진다. P.S. 블로그 방문해주신 모든 분들 건강하고 즐거운 연말연시 보내시고, 2022년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아래 배너를 클릭해서 위기주부의 유튜브 구독하기를 눌러주시면 정말 감사하겠습니다.^^

우리 동네의 유명한 중국집에서 크리스마스 점심을 먹고, 화이트하우스와 내셔널크리스마트리 구경
일단 여기서 '우리 동네'는 조금 넓게 봐서 차로 1시간 정도면 갈 수 있는 거리까지를 포함한다는 것을 미리 말씀드린다. 이 넒게 잡은 우리 동네의 특징은 내셔널(National)이라는 단어가 들어가는 장소나 볼거리가 무척 많다는 것이다.^^ 북부 버지니아로 이사와서 첫번째 맞는 크리스마스의 오후에, 소위 DMV(D.C.-Maryland-Virginia)라 불리는 우리 동네의 '내셔널...'들을 둘러본 이야기를 두 편으로 나누어 소개하는데, 그 전에 금강산도 식후경이니 먼저 점심을 먹은 이야기부터 시작한다. LA에서 DC로 대륙횡단 이사계획 포스팅을 올렸을 때, 이웃님 한 분이 목적지에 도착하면 Peking Gourmet Inn에서 오리요리를 꼭 먹어보라는 댓글을 남겨주셨었다. 도착해서 잠시 잊어버리고 있었는데, 여기서 만난 한국분과 말씀을 나누다가 유명한 음식점이라는 이야기를 또 들어서, 가족이 크리스마스 런치를 여기서 먹어보기로 했다. 식당의 영어이름을 한글로 쓰기도 어렵고, 그냥 한국의 동네마다 있는 중국집 이름인 '북경반점'이라고 부르는게 편할 것 같다. 이 북경반점은 폴스처치(Falls Church)라는 마을의 비교적 허름한 상가건물에 들어서 있는데 (구글맵으로 위치를 보시려면 클릭), 프론트에서 까만 나비넥타이와 양복을 입은 직원을 마주친 순간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홀과 분리된 입구부터 사방에 수 많은 사진액자가 걸려있는데, 익숙한 얼굴이 살짝 보이는 왼쪽 벽을 자세히 보면... 미국의 대통령들과 급을 같이 하는 싸이가 가운데 보이는데, 옛날에 얼굴이 부딪힐 정도로 '가까이 스쳐지나간' 인연이 있어서 반가웠다.^^ 그 위쪽으로 제41대 '아버지' 부시(George H. W. Bush)와 오른쪽에 제43대 '아들' 부시(George W. Bush), 그리고 그 위에는 중국 알리바바 그룹의 창업자인 '호두왕자' 마윈의 모습도 보인다. 많은 다른 음식점들이 문을 닫는 크리스마스에 예약전화가 계속 불통이라 예약도 없이 인기있다는 중국집에 왔는데, 다행히 거의 기다리지 않고 빈자리가 나와서 앉을 수가 있었다. 일년에 딱 하루 유대인들이 중국인들에게 고마워하는 날이 바로 성탄절이라는 농담이 있다는데, 우리도 옛날 라스베가스에서 M호텔 뷔페를 먹으려다 줄이 너무 길어서 포기하고 판다익스프레스에서 크리스마스 저녁을 먹으며 감사해 했던 추억이 떠올랐다. 넓은 홀의 모든 벽에도 이 곳을 방문한 유명인들의 사진이 빼곡히 붙어있다. 1978년에 DC 외곽에 문을 연 허름한 중국집이 이렇게 유명해진 것은 오로지 앞서 소개한 '아버지 부시' 대통령 때문인데, 중국음식을 좋아하던 그는 1981년부터 8년간의 부통령과 연이어서 4년간의 대통령 재임기간에 50회 가까이 이 북경반점에서 식사와 연회를 즐겼다고 한다. 따라서 자연스럽게 '아들 부시' 등 공화당 정치인들도 자주 방문해서 사진을 남겼고, 뒤따라서 다른 연예인들도 이 곳을 찾게 된 것이다. 예약도 없이 와서 요리하는데 시간이 오래 걸린다는 북경오리를 시켰지만, 거의 바로 나온 것으로 봐서 그냥 그 날 장사할 만큼은 항상 미리 만들어두는 것으로 생각된다. 요리사같지는 않고 전문적으로 오리만 잘라주는 일을 하는 직원이 칼로 오리를 썰고 있는데, 일단 속이 좀 불그스레한 것이 생각보다는 조금 덜 구워진 느낌이 들었다. 오리의 껍질과 고기가 놓여진 접시를 놓고 모녀사진 한 장 더... 다른 간단한 아페타이저만 하나 더 시켜서 식탁이 좀 단조로워 보이기는 한다. 왠만해서 이런 음식 사진은 잘 안 찍는데, 밀전병에 고기와 파, 소스를 놓고 한 번 찍어봤다. 미국 대통령의 단골집이었고 그래서 전세계 많은 유명인들이 다녀간 북경오리 전문점이라고는 하지만, 우리집의 결론은 옛날 맛있게 먹었던 놀부 유황오리의 추억만 떠오르게 할 뿐이고, 몇 년전에 아내와 지혜가 한국에서 먹었던 북경오리 요리에도 훨씬 미치지 못한다고 했다. 여하튼 식사를 했으니 이제 금강산... 말고 백악관 구경을 하러 가보자~ 폴스처치에서 알링턴(Arlington)을 지나 20분 정도 달려서 백악관 남쪽 잔디밭 근처에 주차를 했다. 옛날에는 저 까만 높은 창살의 바로 앞까지 가서 사진을 찍을 수 있었는데 (보시려면 클릭) 언제부터인지 보행자 통행은 금지되었고, 자전거 등을 타고 멈추지 않고 지나갈 수만 있었다. 오늘의 목적지는 저 우리 동네 '하얀집'이 아니라 남쪽 잔디밭에 심어져 있는, 미국의 내셔널크리스마스트리(National Christmas Tree)를 직접 구경하는 것으로, 멀리 남쪽에 서있는 워싱턴 기념탑도 함께 보인다. 커다란 메인트리를 중심으로 그 둘레에 작은 트리들이 많이 심어져 있는데, 그 수는 58개라고 홈페이지에 안내되어 있다. 미국의 50개 주와 5개의 해외 영토 및 워싱턴DC의 56개에, 아메리카 원주민을 대표하는 Bureau of Indian Education과 해외에 주둔중인 미군을 대표하는 Department of Defense의 트리가 추가되어서 그렇다고 한다. 이 크리스마스트리가 서있는 타원형의 큰 잔디밭인 The Ellipse와 북쪽의 화이트하우스는 국립공원청에서 별도로 President's Park (White House)라는 독립된 오피셜유닛으로 관리를 하기 때문에, NPS에서 만들어 놓은 안내판도 볼 수가 있다. 미국에 와서 가장 놀랐던 것들 중에 하나가 사람들이 크리스마스 트리로 살아있는 나무를 잘라서 쓰고는 말라죽으면 버린다는 것이었는데 (제일 유명한 뉴욕의 록펠러센터의 커다란 트리도 살아있던 나무를 잘라서 세워놓은 것임), 안내판의 설명을 읽어보니 다행히 지금 여기에 있는 모든 나무들은 옮겨다 심어서 계속 살아있는 것이었다. 그러니까 또 궁금한 것이 내년에도 계속 이 나무를 크리스마스 트리로 쓰는 것인지? 아니면 매년 다른 나무를 옮겨다가 심고 뽑고 하는 것인지? 좀 더 자세히 알아봐야 할 것 같다... 주변에 작은 나무들이 서있는 둘레길의 이름은 Pathway of Peace로, 트리에 매달린 장식들은 모두 그 지역의 학생들이 직접 그림을 그린 것을 여기로 공수해와서 매달아 놓은 것이었다. 아무래도 캘리포니아 트리가 가장 눈에 들어왔는데, 특히 올해 선정된 학교가 3달전까지만 해도 위기주부가 살던 곳의 바로 옆인 사우전드오크 초등학교(Thousand Oaks Elementary)라서 더욱 반가웠다. "저 백악관 투어도 한 번 해봐야 되는데... 내년에는 정말 열심히 우리 동네 구석구석 구경을 해야지~ 합시다!" 앞서 설명한 것처럼 국방부(Department of Defense)의 트리가 있는데, 여기 장식은 독일, 한국, 푸에르토리코의 미군기지 내 학교의 학생들이 그려서 보낸 것이라고 되어있다. 이 사진 오른편 아래에 한국 Camp Humphreys의 고등학생이 그린 무궁화, 호랑이, 까치의 그림이 보이고, 위쪽에는 성조기와 태극기, 독수리와 무궁화가 짝을 이룬 그림과 조선시대 어좌 뒤에 놓여진 병풍의 일월오봉도가 있어서, 특히 연말을 맞아 고국을 생각나게 했다. 트리에 불이 들어오는 해질녁까지 기다리려고 했지만, 빗방울도 떨어지고 크리스마스라 다른 문을 연 곳도 없고 해서, 또 우리 동네 '내셔널 트리'는 내년에도 또 보러오면 되니까, 그냥 다른 곳에 또 멋지고 이쁜 '내셔널...'이 있다고 해서 구경하러 차를 몰고 출발했다. 아래 배너를 클릭해서 위기주부의 유튜브 구독하기를 눌러주시면 정말 감사하겠습니다.^^

미국의 서부개척과 인디언들의 한 맺힌 역사가 있는 아칸소 주의 포트스미스(Fort Smith) 국가유적지
미국의 50개 주들 중에서 남부 시골에 아칸소(Arkansas) 주가 있다는 것을 위기주부가 처음 알게 된 것은 1992년에 미국의 제42대 대통령에 당선된 빌 클린턴(Bill Clinton) 때문이다. 그는 아칸소 주에서 태어나서 결손가정에서 소년시절을 보냈지만, 1978년에 불과 32세의 나이로 미국 역사상 최연소 주지사가 되었고, 1993년 1월에 사상 3번째로 젊은 46세에 미국의 대통령에 취임했다. 자동차로 대륙횡단을 하지 않고서는 미국에서 평생을 살아도 왠만해서는 발을 들여놓기 어려운 그 아칸소 주의 이야기가 이제 시작된다. 오클라호마시티에서 인터스테이트 40번을 타고 2시간반 정도 동쪽으로 달리다가, 주경계를 만나기 직전에 64번 국도로 빠지니까 아칸소 주의 환영간판이 나왔다. 아내가 스마트폰으로 급하게 찍어서 화질이 좋지 않은데, 주 이름 바로 밑에는 "The Natural State"라고 작게 적혀 있다. 환영간판은 여기 서있지만 실제로는 미시시피 강의 지류인 아칸소 강(Arkansas River)을 건너는 멀리 보이는 다리를 넘으면 나오는 도시인 포트스미스(Fort Smith)부터 아칸소 주가 시작된다. 강을 건너 바로 오른쪽 강가에 대륙횡단 3일차의 마지막 목적지인 포트스미스 국가유적지(Fort Smith National Historic Site)가 있다. 역사상 최대의 부동산 거래의 하나인 1803년 루이지애나 매입(Louisiana Purchase)으로 미시시피 강의 서쪽이 미국땅이 된 후에, 백인 서부개척자(Western Frontier)들의 보호와 원주민들간의 분쟁 해결을 위해 1817년에 최초로 미군이 주둔하는 요새(fort)가 여기 아칸소 강가에 나무로 만들어졌다고 한다. (구글맵으로 위치를 보시려면 클릭) 1836년에 아칸소가 미국의 25번째 주가 된 후에, 강 건너 서쪽 인디언 영토(Indian Territory)의 원주민들이 혹시 도시를 침략할지 모른다는 걱정에, 사진 왼편의 막사(Barracks) 등을 지어서 튼튼한 요새를 다시 만들었다. 그 후 남북전쟁이 끝난 다음인 1871년에 군부대는 철수하고, 오른편 건물이 추가되어 연방법원(Federal Court)으로 1896년까지 사용되어서 약 80년의 격동의 역사가 남아있는 장소이다. 내부를 구경하려고 현관쪽으로 갔더니, 입구는 건물 왼쪽이라고 해서 급히 가봤는데... 나무그늘 아래로 보이는 건물 옆쪽의 비지터센터 입구의 철문을 잠그고 나오는 공원직원과 마주쳤다~ 시계를 보니까 4:50분... 아직 10분쯤 남은 것 아니냐고 하니까, 일찍 왔어도 지금은 코로나 때문에 건물 내부는 공개하지 않는다면서, 바깥만 마음껏 둘러보고 가라고 공원브로셔 하나만 쥐어주고는 칼퇴근을 하셨다.^^ 당시 예습이 전혀 없었기 때문에, 어디로 가야하나 두리번 거리고 있는데, 바로 뒤쪽에 왠지 서늘한 기운을 뿜으며 눈길을 확 끄는 곳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하얀색으로 깨끗하게 만들어진 교수대(Gallows)로, 1873년부터 1896년까지 24년간 86명이 여기서 교수형에 처해졌는데, 그 범죄자들의 이름이 안내판 아래에 순서대로 빼곡히 적혀있다. 단, 법원이 문을 닫은 후에 교수대가 바로 철거되었기 때문에, 지금 보이는 것은 옛날 사진을 바탕으로 복원한 것이라고 한다. 안내판 속의 인물은 "Prince of Hangman"으로 불리며 저 무대 위에서 올가미를 죄수 목에 걸고 절반 이상의 교수형을 직접 진행했던 사형집행인(hangman)인 George Maledon이다. 누군가가 몰래 찍었던 사진을 바탕으로 그린 교수형 집행 당시의 스케치와 설명이 옆 안내판에 있었다. (클릭해서 확대하면 읽으실 수 있음) 우측 위 사진의 Issac C. Parker는 이 법원의 판사로 21년간 재직하면서 160번의 사형선고를 내려서 "교수형 판사(The Hanging Judge)"라는 별명으로 불렸지만 그 중 79명만 실제로 처형되었으며, 당시 살인과 강간 등의 강력범죄 344건의 절반 미만만 사형선고를 했던, 오히려 사형제도에 반대하는 사람이었다고 한다. "I do not desire to hang you men. It is the law." 이제 강가쪽으로 좀 더 과거의 역사를 찾아서 거슬러 올라가보자. 안내판 제일 아래쪽에 보면 트레일오브티어스(Trail of Tears), 즉 번역하자면 '눈물의 길' 또는 '눈물의 여정'이라고 씌여있는 아메리카 원주민들의 슬픈 역사를 찾아가는 것이다. 그 전에 녹슨 화물열차가 서있는 철길을 배경으로 꼭 인물사진을 찍고 싶다고 하셔서 잠시 모델을 해야했다.^^ 여기 안내판은 백인들의 미서부 개척의 역사를 보여주고 있고 눈물의 길 전망대까지는 조금 더 가야 하지만, 빨리 차로 돌아가서 숙소를 예약한 곳까지 또 달려야 했기 때문에 여기까지만 둘러보기로 했다. 미국의 20달러 지폐 속 인물인 제7대 대통령 앤드류 잭슨(Andrew Jackson)의 주도로 1830년에 통과된 으로 미시시피 강 동쪽의 고향을 잃고 쫓겨난 원주민들이 저 너머 지금의 오클라호마 땅으로 강제 이주를 해야만 했는데, 아래의 지도를 보면서 그들의 눈물의 여정을 살펴보자. 지도에 다섯 색깔로 그려진 경로를 따라서 표시된 각각의 부족이 1830~50년 사이에 강제로 지금의 오클라호마 주인 Indian Territory로 추방되었는데, 도합 약 6만명의 인디언이 강제로 고향을 떠나야 했고 그 과정에서 많은 수가 길 위에서 죽었다. 특히 지금의 조지아(Georgia) 주의 북쪽에 모여살던 체로키(Cherokee) 족은 1938년 겨울에 약 1만3천명이 북쪽 육로로 이동을 하면서 혹독한 추위와 기근, 질병으로 약 4천명이나 객사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한다... 당시 인디언들이 눈물을 흘리며 걸었던 길들은 현재 Trail Of Tears National Historic Trail로 지정되어서 국립공원청에서 별도로 관리를 하고 있는데, 여기 미국남부 아칸소 주의 포트스미스 강가에서 위기주부는 처음으로 그들의 한 맺힌 역사를 가까이 접한 것이라서 자세히 소개를 해봤다. 국립공원청이 관리하는 국가유적지(National Historic Site)는 2021년 현재 74곳이 있는데, 여기는 그 중 위기주부가 7번째로 방문한 NHS인 셈이다. 동부로 갈수록 이런 미국의 역사 유적지는 점점 갈 기회가 많아지는 것 같고, 덩달아 포스팅을 쓰기 위해서 역사공부를 해야하는 시간도 늘어나고 있다~ 잔디밭 너머로 왠지 범선의 돛대같은 높은 기둥에 성조기가 걸려있고, 그 아래에 돌로 만든 2층 건물은 1838년에 만들어진 Commissary Building으로 1846~48년의 미국-멕시코 전쟁에서 중요한 보급창고 역할을 했던, 이 공원에 남아있는 가장 오래된 건물이다. 지금은 비지터센터로 사용되는 처음 소개했던 막사-법원 건물의 지하는 한동안 교도소(Jail)로 사용되었는데, 좁은 철창 안에 최대 50명까지 한 번에 감금하는 열악한 환경으로 인해서 "Hell-on-the-Border"라고 불렸다고 한다. 그런데, 사모님이 안 보여서 어디 가셨나 했더니... 그 '국경의 지옥'으로 끌려가는 사람들을 태웠던 법원의 죄수호송용 마차를 직접 끌고 계셨다~^^ 대륙횡단 여행기에서 빠질 수 없는 커플셀카 한 장 찍고는 서둘러 다시 차에 올랐다. 예약해놓은 숙소까지는 2시간반이나 더 달려야 했기 때문에, 도시 남쪽에 월마트(Walmart)에서 운영하는 주유소에서 기름을 넣었던게 신기한 경험이었다. 길은 오치타 국유림(Ouachita National Forest)을 관통해야 해서, 2번의 대륙횡단을 하면서 유일하게 완전히 깜깜한 산길을 운전해야 했던 날이다. 단풍으로 유명하다는 미국남부 이 숲의 이름은 부근에 살았던 원주민인 워시타(Ouachita) 부족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대륙횡단 3일째였던 이 날 9시간45분 동안에 596마일(960 km)을 달려서 최장기록을 세웠고, 3일을 연달아 밤까지 운전을 해서 합계 2,630 km를 이동해 전체 횡단거리의 60% 이상을 벌써 달렸기 때문에, 다음 날은 늦잠도 자고 오전에는 온천도 하면서 좀 쉬어갈 계획이다. 아래 배너를 클릭해서 위기주부의 유튜브 구독하기를 눌러주시면 정말 감사하겠습니다.^^

오클라호마시티 브릭타운(Bricktown)에서 점심을 먹고 오클라호마 연방청사 폭탄테러 추모공원 방문
LA에서 워싱턴DC까지의 대륙횡단 이사 3일째는 텍사스의 북쪽에 있는 오클라호마(Oklahoma) 주를 하루만에 완전히 통과하는 날이었다. 그래서 주도인 오클라호마시티(Oklahoma City)에서 점심을 먹은 1시간여가 관광의 전부였고 여행기도 이 한 편으로 끝나기 때문에, 이 생소한 주에 대해서 최대한 많은 이야기를 해드려야겠다는 생각이 앞서서 글을 시작하는 것이 참 힘들었다. "이게 얼마만에 보는 현대식 고층건물인가?" 아내가 점심을 먹을 장소로 선정한 오클라호마시티 다운타운의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내리면서 제일 먼저 든 생각이었다. 다운타운 남쪽에 브릭타운(Bricktown)이라 불리는 쇼핑몰과 레스토랑이 모여있는 곳에서, 우리는 저 간판에 보이는 텍사델피아(Texadelphia)라는 가게에서 점심을 먹기로 했다. '텍사스'와 '필라델피아'를 합쳐서 가게 이름을 만들었으니까. 그 단어들이 하나씩 들어간 메뉴 두 개에 커다란 생맥주도 한 잔 곁들여 야외 테이블에서 점심을 먹었다. 처음 와보는 미지의 땅에서 잠깐의 여유를 만끽하면서, 마침내 정말 대륙횡단을 하고 있음을 실감했던 당시의 느낌이 지금도 생생하다. 레스토랑 옆으로는 브릭타운 운하(Bricktown Canal)가 있어서, 관광객들을 태운 수상택시가 그 물길 위로 천천히 떠다니고 있는 평화로운 풍경이었다. (구글맵으로 위치를 보시려면 클릭) 뒤로 보이는 조명탑이 서있는 갈색 건물은 마이너리그 야구장인 Chickasaw Bricktown Ballpark인데, 홈팀 이름이 오클라호마시티 다저스(Oklahoma City Dodgers)란다~ 운하를 따라서 쇼핑몰이 있는 곳까지 걸어와서, 빠질 수 없는 커플셀카 한 장 또 찍었다. 오클라호마(Oklahoma)는 1830년대에 남동부에서 여기로 강제 이주된 다섯 부족 중의 하나인 촉토(Choctaw) 원주민의 언어로 '붉은 사람들' 즉 백인이 아닌 모든 인디언들을 뜻하는 말이라고 한다. 운하를 건너는 다리 위로도 올라가 보았는데, 뒤로 보이는 것은 미니 골프장이다. 한동안은 강제 이주된 원주민들만 살아서 인디언 준주(Indian Territory)로 불렸지만, 결국은 또 백인들이 땅을 차지하게 되면서 서쪽에 오클라호마 준주(Oklahoma Territory)가 생겼고, 결국은 두 지역이 하나로 합쳐져서 1907년에야 미국의 46번째 주가 되었다. 한국 속담에 "먼저 먹는 놈이 임자"라는 말이 있는데, 오클라호마에는 "쑤너(Sooners)"라는 말이 있다. 미국정부가 1889년 4월 22일 정오를 기해서, 오클라호마에서 비어있는 땅에 아무나 먼저 가서 깃발만 꼽으면 자기 땅이 되도록 했는데, 미리 알고 빈 땅에 '더 먼저(sooner)' 가있다가 땅주인이 된 사람들을 말하는데 일종의 새치기라고 할 수 있겠다. 지금은 오클라호마 주민들을 부르는 애칭으로, 또 오클라호마 대학교의 미식축구팀을 부르는 말로 사용된다. 반대방향으로도 운하를 따라 좀 걸어보고 싶었지만, 꼭 들러봐야 할 곳이 하나 있어서 주차장으로 돌아갔다. 주의 북동부 중심도시인 털사(Tulsa)는 '20세기 원유의 수도'라고 불리며 석유산업이 성장했고, 텍사스 아마리요(Amarillo)에서 오클라호마시티를 지나서 털사까지 루트66(Route 66) 구간이 1927년부터 최초로 건설된 후에 동쪽으로는 시카고, 서쪽으로는 로스앤젤레스까지 연결이 되어 미국의 '마더로드(Mother Road)'가 되었다. 주차장 옆 건물 꼭대기에 유홀(U-Haul) 이사트럭이 놓여있는게 재미있어서 사진을 찍고 있는데, 우리 차의 캘리포니아 번호판을 보고 여행객이라 생각했는지, 지나가던 사람이 토네이도가 불어서 트럭이 저기까지 날려서 올라갔다고 친절히 설명을 해주었다.^^ 잠깐 운전을 해서 찾아간 곳은 오클라호마시티에서 꼭 방문해야 하는 장소로, 미국에 오클라호마 주가 있다는 것이 전세계에 뉴스로 알려진 오클라호마 연방청사 폭탄테러 사건이 터졌던 곳이다. 1995년 4월 19일 아침에 미국 연방정부 사무실이 있는 오클라호마시티의 Alfred P. Murrah Federal Building에 폭탄테러가 발생해서 168명이 사망하고 600명 이상이 부상하는 참극이 발생했는데, 이는 2001년 9·11 테러가 발생하기 전까지는 미국 영토에서 발생한 가장 심각한 폭탄테러 사건이었다. 추모공원의 서쪽 출입구 역할을 하는 까만 벽에는 아래와 같은 글귀가 위에 새겨져 있다. (구글맵으로 위치를 보시려면 클릭) "We come here to remember those who were killed, those who survived and those changed forever. May all who leave here know the impact of violence. May this memorial offer comfort, strength, peace, hope, and serenity." 안쪽으로 들어가면 동서로 좁고 길게 만들어진 얕은 리플렉팅풀(Reflecting Pool)이 나오고, 그 동쪽끝에도 까만 벽이 세워져 있다. 이 물이 채워진 풀이 있는 위치는 당시에 9층 건물의 북쪽 출입구와 접한 도로가 있던 곳으로, 범인인 티모시 맥베이(Timothy McVeigh)가 2톤이 넘는 사제폭발물을 실은 트럭을 주차해놓고 폭파시킨 장소이다. 리플렉팅풀의 남쪽을 따라서 걸어가고 있는데, 오른편으로 보이는 잔디밭이 연방청사 건물이 서있던 장소이다. 그 잔디밭에는 사망자 168명을 상징하는 168개의 빈 의자가 놓여있어서 'Field of Empty Chairs'라고 부른다. 의자는 9줄로 배열되어 있는데 1층부터 9층까지 각 층에서 희생된 사람들의 이름이 각각 새겨져 있다고 한다. 리플렉팅풀의 북쪽에는 당시 폭발로 피해를 입었던 다른 건물을 보수해서 Oklahoma City National Memorial Museum이 별도로 운영되고 있다. 참고로 이 추모공원은 참사 5주년인 2000년에 문을 열때는 국립공원청이 직접 관리하는 내셔널메모리얼(National Memorial)에 포함되었지만, 2004년부터는 추모재단의 소유로 운영되고 국립공원청은 협조만 하기 때문에, 현재 NPS 오피셜유닛 423개에 포함되지는 않는다. 동쪽 출입구의 안쪽에는 9:01 시간이 새겨져 있고, 반대편 서쪽 출입구에는 9:03 시간이 새겨져 있는데, 우리는 지금 그 사이의 폭발이 일어났던 순간인 오전 9:02분에 서있는 것이다. 청동으로 만든 두 문을 Gates of Time이라 부르는데 9:01은 폭탄테러 이전의 평화롭고 순수했던 시간을, 9:03은 그 후에 치유와 회복이 시작되는 시간을 각각 의미한단다. 풀 북쪽의 박물관은 유료입장이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우리는 내부를 둘러볼 시간이 없었기 때문에, 다시 왔던 길로 돌아서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빈 의자들을 한 번 더 바라보면서 주차해 놓은 곳으로 돌아가기로 했다. 중간에 걸음을 멈추고 360도 비디오를 찍은 것을 클릭해서 보실 수 있다. 이 야외 추모공원은 24시간 개방을 하며 연간 35만명 이상이 방문을 하고, 미국의 국가사적지(National Register of Historic Places)로 지정이 되어 있다. 빈 의자들 중에는 작은 의자도 많은데, 168명의 희생자 중에는 건물 안의 탁아소에 있던 영유아가 19명이나 포함되었기 때문이다... 연방정부에 대한 반감으로 폭탄테러를 일으킨 극우주의자 티모시 맥베이는 2001년 6월에 독극물 주입으로 사형되었는데, 1963년 이후 38년만에 연방정부에서 집행하는 사형이었다 한다. 또한 이례적으로 원하는 희생자 유족들이 모두 볼 수 있도록 폐쇄회로TV로 중계를 했는데, 이는 65년만에 처음으로 일반에게 공개 집행된 사형으로 찬반논란을 일으켰다고 한다. 아래 배너를 클릭해서 위기주부의 유튜브 구독하기를 눌러주시면 정말 감사하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