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클라호마시티 브릭타운(Bricktown)에서 점심을 먹고 오클라호마 연방청사 폭탄테러 추모공원 방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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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클라호마시티 브릭타운(Bricktown)에서 점심을 먹고 오클라호마 연방청사 폭탄테러 추모공원 방문
LA에서 워싱턴DC까지의 대륙횡단 이사 3일째는 텍사스의 북쪽에 있는 오클라호마(Oklahoma) 주를 하루만에 완전히 통과하는 날이었다. 그래서 주도인 오클라호마시티(Oklahoma City)에서 점심을 먹은 1시간여가 관광의 전부였고 여행기도 이 한 편으로 끝나기 때문에, 이 생소한 주에 대해서 최대한 많은 이야기를 해드려야겠다는 생각이 앞서서 글을 시작하는 것이 참 힘들었다. "이게 얼마만에 보는 현대식 고층건물인가?" 아내가 점심을 먹을 장소로 선정한 오클라호마시티 다운타운의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내리면서 제일 먼저 든 생각이었다. 다운타운 남쪽에 브릭타운(Bricktown)이라 불리는 쇼핑몰과 레스토랑이 모여있는 곳에서, 우리는 저 간판에 보이는 텍사델피아(Texadelphia)라는 가게에서 점심을 먹기로 했다. '텍사스'와 '필라델피아'를 합쳐서 가게 이름을 만들었으니까. 그 단어들이 하나씩 들어간 메뉴 두 개에 커다란 생맥주도 한 잔 곁들여 야외 테이블에서 점심을 먹었다. 처음 와보는 미지의 땅에서 잠깐의 여유를 만끽하면서, 마침내 정말 대륙횡단을 하고 있음을 실감했던 당시의 느낌이 지금도 생생하다. 레스토랑 옆으로는 브릭타운 운하(Bricktown Canal)가 있어서, 관광객들을 태운 수상택시가 그 물길 위로 천천히 떠다니고 있는 평화로운 풍경이었다. (구글맵으로 위치를 보시려면 클릭) 뒤로 보이는 조명탑이 서있는 갈색 건물은 마이너리그 야구장인 Chickasaw Bricktown Ballpark인데, 홈팀 이름이 오클라호마시티 다저스(Oklahoma City Dodgers)란다~ 운하를 따라서 쇼핑몰이 있는 곳까지 걸어와서, 빠질 수 없는 커플셀카 한 장 또 찍었다. 오클라호마(Oklahoma)는 1830년대에 남동부에서 여기로 강제 이주된 다섯 부족 중의 하나인 촉토(Choctaw) 원주민의 언어로 '붉은 사람들' 즉 백인이 아닌 모든 인디언들을 뜻하는 말이라고 한다. 운하를 건너는 다리 위로도 올라가 보았는데, 뒤로 보이는 것은 미니 골프장이다. 한동안은 강제 이주된 원주민들만 살아서 인디언 준주(Indian Territory)로 불렸지만, 결국은 또 백인들이 땅을 차지하게 되면서 서쪽에 오클라호마 준주(Oklahoma Territory)가 생겼고, 결국은 두 지역이 하나로 합쳐져서 1907년에야 미국의 46번째 주가 되었다. 한국 속담에 "먼저 먹는 놈이 임자"라는 말이 있는데, 오클라호마에는 "쑤너(Sooners)"라는 말이 있다. 미국정부가 1889년 4월 22일 정오를 기해서, 오클라호마에서 비어있는 땅에 아무나 먼저 가서 깃발만 꼽으면 자기 땅이 되도록 했는데, 미리 알고 빈 땅에 '더 먼저(sooner)' 가있다가 땅주인이 된 사람들을 말하는데 일종의 새치기라고 할 수 있겠다. 지금은 오클라호마 주민들을 부르는 애칭으로, 또 오클라호마 대학교의 미식축구팀을 부르는 말로 사용된다. 반대방향으로도 운하를 따라 좀 걸어보고 싶었지만, 꼭 들러봐야 할 곳이 하나 있어서 주차장으로 돌아갔다. 주의 북동부 중심도시인 털사(Tulsa)는 '20세기 원유의 수도'라고 불리며 석유산업이 성장했고, 텍사스 아마리요(Amarillo)에서 오클라호마시티를 지나서 털사까지 루트66(Route 66) 구간이 1927년부터 최초로 건설된 후에 동쪽으로는 시카고, 서쪽으로는 로스앤젤레스까지 연결이 되어 미국의 '마더로드(Mother Road)'가 되었다. 주차장 옆 건물 꼭대기에 유홀(U-Haul) 이사트럭이 놓여있는게 재미있어서 사진을 찍고 있는데, 우리 차의 캘리포니아 번호판을 보고 여행객이라 생각했는지, 지나가던 사람이 토네이도가 불어서 트럭이 저기까지 날려서 올라갔다고 친절히 설명을 해주었다.^^ 잠깐 운전을 해서 찾아간 곳은 오클라호마시티에서 꼭 방문해야 하는 장소로, 미국에 오클라호마 주가 있다는 것이 전세계에 뉴스로 알려진 오클라호마 연방청사 폭탄테러 사건이 터졌던 곳이다. 1995년 4월 19일 아침에 미국 연방정부 사무실이 있는 오클라호마시티의 Alfred P. Murrah Federal Building에 폭탄테러가 발생해서 168명이 사망하고 600명 이상이 부상하는 참극이 발생했는데, 이는 2001년 9·11 테러가 발생하기 전까지는 미국 영토에서 발생한 가장 심각한 폭탄테러 사건이었다. 추모공원의 서쪽 출입구 역할을 하는 까만 벽에는 아래와 같은 글귀가 위에 새겨져 있다. (구글맵으로 위치를 보시려면 클릭) "We come here to remember those who were killed, those who survived and those changed forever. May all who leave here know the impact of violence. May this memorial offer comfort, strength, peace, hope, and serenity." 안쪽으로 들어가면 동서로 좁고 길게 만들어진 얕은 리플렉팅풀(Reflecting Pool)이 나오고, 그 동쪽끝에도 까만 벽이 세워져 있다. 이 물이 채워진 풀이 있는 위치는 당시에 9층 건물의 북쪽 출입구와 접한 도로가 있던 곳으로, 범인인 티모시 맥베이(Timothy McVeigh)가 2톤이 넘는 사제폭발물을 실은 트럭을 주차해놓고 폭파시킨 장소이다. 리플렉팅풀의 남쪽을 따라서 걸어가고 있는데, 오른편으로 보이는 잔디밭이 연방청사 건물이 서있던 장소이다. 그 잔디밭에는 사망자 168명을 상징하는 168개의 빈 의자가 놓여있어서 'Field of Empty Chairs'라고 부른다. 의자는 9줄로 배열되어 있는데 1층부터 9층까지 각 층에서 희생된 사람들의 이름이 각각 새겨져 있다고 한다. 리플렉팅풀의 북쪽에는 당시 폭발로 피해를 입었던 다른 건물을 보수해서 Oklahoma City National Memorial Museum이 별도로 운영되고 있다. 참고로 이 추모공원은 참사 5주년인 2000년에 문을 열때는 국립공원청이 직접 관리하는 내셔널메모리얼(National Memorial)에 포함되었지만, 2004년부터는 추모재단의 소유로 운영되고 국립공원청은 협조만 하기 때문에, 현재 NPS 오피셜유닛 423개에 포함되지는 않는다. 동쪽 출입구의 안쪽에는 9:01 시간이 새겨져 있고, 반대편 서쪽 출입구에는 9:03 시간이 새겨져 있는데, 우리는 지금 그 사이의 폭발이 일어났던 순간인 오전 9:02분에 서있는 것이다. 청동으로 만든 두 문을 Gates of Time이라 부르는데 9:01은 폭탄테러 이전의 평화롭고 순수했던 시간을, 9:03은 그 후에 치유와 회복이 시작되는 시간을 각각 의미한단다. 풀 북쪽의 박물관은 유료입장이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우리는 내부를 둘러볼 시간이 없었기 때문에, 다시 왔던 길로 돌아서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빈 의자들을 한 번 더 바라보면서 주차해 놓은 곳으로 돌아가기로 했다. 중간에 걸음을 멈추고 360도 비디오를 찍은 것을 클릭해서 보실 수 있다. 이 야외 추모공원은 24시간 개방을 하며 연간 35만명 이상이 방문을 하고, 미국의 국가사적지(National Register of Historic Places)로 지정이 되어 있다. 빈 의자들 중에는 작은 의자도 많은데, 168명의 희생자 중에는 건물 안의 탁아소에 있던 영유아가 19명이나 포함되었기 때문이다... 연방정부에 대한 반감으로 폭탄테러를 일으킨 극우주의자 티모시 맥베이는 2001년 6월에 독극물 주입으로 사형되었는데, 1963년 이후 38년만에 연방정부에서 집행하는 사형이었다 한다. 또한 이례적으로 원하는 희생자 유족들이 모두 볼 수 있도록 폐쇄회로TV로 중계를 했는데, 이는 65년만에 처음으로 일반에게 공개 집행된 사형으로 찬반논란을 일으켰다고 한다. 아래 배너를 클릭해서 위기주부의 유튜브 구독하기를 눌러주시면 정말 감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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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posts50달러 지폐 모델인 제18대 율리시스 그랜트 대통령의 묘역인 제너럴그랜트(General Grant) 국립기념관
현재 미국에서 통용되는 지폐는 7종으로, 시중에서 쉽게 보기 어려워 따로 소개한 적도 있는 2달러 지폐를 제외하면, 유통량이 가장 적은게 10달러와 50달러이다. (원래 50달러가 훨씬 적었지만, 코로나 이후 인쇄를 많이 해서 비슷해졌음) 직전에 10달러의 모델인 해밀턴 기념관을 방문했었고, 거기서 불과 차로 5분 거리에 이제 보여드리는 장소가 있다. 율리시스 그랜트(Ulysses S. Grant)가 그려진 50달러 지폐의 모습과 함께 그에 대한 기본적인 소개는 워싱턴DC의 내셔널몰 동쪽 끝에 있는 그의 기념상을 방문했던 포스팅을 먼저 보시면 된다. 네비가 목적지에 도착했다고 해서 고개를 들어보니 건물의 뒷편이 보여서 길가에 주차를 했는데, 맨하탄의 북쪽에서 허드슨 강변공원(Riverside Park)이 시작되는 위치에 Riverside Dr 도로의 중앙분리대에 해당하는 지역에 기념관을 만든 것이었다. (구글맵으로 위치를 보시려면 클릭) 그런데, 반듯한 화강암 건물의 둘레를 따라서 뭔가 울긋불긋하고 구불구불한 것이 보이는게 신기해서 뒤쪽 계단을 먼저 올라가 봤다. 모자이크 롤링벤치(Mosaic Rolling Bench)는 직접적으로 바르셀로나 구엘 공원에서 영감을 받은 공공예술 작품으로 1972년에 기념관 둘레를 따라 총 길이 약 400피트로 추가되었다. 그러나 묘역의 엄숙한 건축미와 어울리지 않는다는 비판이 많아서 1990년대에 철거가 결정되었다가 지역 주민과 예술가들의 반발로 겨우 보존이 되었다고 하는데... "공원에 다른 널직한 곳도 많은데, 애초에 왜 굳이 기념관 위에 만들었을까?" (거기에도 다 이유가 있었지만, 혹시 물어보시면 알려드림^^) 국립공원청에서 모퉁이에 세워 놓은 작은 간판에 이 곳의 이름 위쪽에다가 'Manhattan Sites'라 복수형으로 더 커다랗게 써놓은게 의아해서 찾아본 내용은 아래에 별도 지도와 함께 설명을 드린다. 뉴욕시에 위치한 넓은 의미의 국립 공원들 11곳을 보여주는 지도로 ⑥과 ⑪을 제외한 9곳을 '맨하탄 사이트'로 묶어서 관리를 하는 것이었다. (⑥번 Tenement Museum은 사설 재단이 독립적으로 운영하고, 방문객이 압도적으로 많은 ⑪번 자유의 여신상과 엘리스 섬은 별도 관리) 이 날 ②와 ③을 차례로 찍었으니, 멀리 브롱스(Bronx)에 떨어져 있는 ①번 St. Paul's Church NHS 하나만 빼고는 모두 방문한 것이 되었다. 그리고 위 지도의 남쪽으로 뉴욕항을 감싸는 넓은 유닛이 하나 더 있어 총 12개인데, 그 곳은 바로 다음날에 역시 찾아가게 된다. 잠깐 시선을 돌리니 다른 듯 비슷한 느낌의 높은 건물 둘이 보였는데, 왼편은 41층의 현대식 콘도이고 오른편은 록펠러 가문의 기부금으로 1933년에 완공된 리버사이드 처치(Riverside Church)로 진보적 사회참여로 유명한 교회란다. 그리고 잘 보이지는 않지만 두 건물 너머로 10년전의 아이비리그(Ivy League) 탐방 여행에서 주차할 곳을 못 찾아 정문 사진만 찍고 지나쳤던 컬럼비아 대학교의 본관이 있으며, 그 캠퍼스를 포함한 맨하탄의 이 구역을 인접한 할렘과는 별도로 모닝사이드 하이츠(Morningside Heights)라 부른다. 그랜트는 당시까지는 최연소 기록인 만 46세로 대통령이 되었고, 퇴임 후에는 아내와 함께 2년간 세계일주를 하며 세계적인 영웅으로 환대를 받았다. 그 후 1880년 대선에서 3선에 도전하려 했으나 공화당 내 경선에서 제임스 가필드(James A. Garfield)에게 패했고, 사기 사건에 휘말려 전재산을 잃은 후 회고록을 집필하던 중에 후두암에 걸려서 1885년에 63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그는 오하이오(Ohio) 출신 7명의 대통령들중의 하나지만, 퇴임 후 살았던 뉴욕시에 묻히기를 아내가 희망해서 여기 '그랜트의 묘(Grant's Tomb)'가 만들어지게 된 것이다. 시민들의 성금으로 5년간의 공사끝에 1897년에 성대하게 치러진 봉헌식과 그의 일생 등에 관해서 더 궁금하신 분은 위의 사진을 클릭해서, 국립공원청 홈페이지의 공식 영상을 자막과 함께 보시면 된다. 영묘(靈廟, Mausoleum)의 지붕을 둥근 돔이 아니라 계단식 원뿔 형태로 만든게 상당히 특이한 모습인데, 건축가가 고대의 기념비적 무덤들을 모델로 삼았기 때문이란다. 그렇게 한참을 돌아서 마침내 공원 간판을 찾았는데, 그랜트가 제7대 잭슨 이후로 무려 40년만에 8년 연임을 하며 남부 재건과 민권 보호 등의 업적이 상당한 대통령임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에게는 북군 총사령관으로 남북전쟁을 끝낸 '장군'으로만 기억되어서 그런지... 이 곳의 공식 명칭도 제너럴그랜트 내셔널메모리얼(General Grant National Memorial)이다. 이제 정면을 향해서 다가가는데 드르륵 우당탕 소리가 들려서 뭔가 했더니... 정면 광장에는 'No Skateboarding' 표지판 아래에서 스케이트보드를 타고 있는 형씨들이 모여 있었고, 셧다운으로 바리케이드가 쳐져 있어서 더 가까이 가서 볼 수는 없었다. 그래서 대표사진도 당시 분위기를 잘 남기려고 일부러 스케이트보더가 지나가는 순간으로 잡았다.^^ 높이 45미터인 북미 최대 규모의 영묘로 지하층에 부부의 석관이 나란히 안치되어 있는 실내는 수~일요일 오전 10시부터 오후 4시까지만 자유롭게 개방이 되며, 겨울철에는 방문객이 적어서 시간 단위로 입장이 제한될 수 있단다. 입구 위에는 위기주부가 재작년에 직접 방문했던 애퍼매톡스 코트하우스(Appomattox Court House)에서 항복하는 남군의 리(Lee) 장군에게 그랜트가 했다는 유명한 말인 "Let Us Have Peace"가 새겨져 있는데, 이 문구는 그의 1868년 대선에서 캠페인 표어로도 사용되었다. 왼편의 두 명은 전문적인 장비까지 갖추고 스케이트보딩을 촬영하고 있었는데, 마지막으로 기념관을 돌아보는 척하며 형씨들을 찍는 위기주부를 모두 노려보는 느낌이 들어서 서둘러 자리를 떴다.ㅎㅎ 비지터센터가 강변도로 건너 만들어져 있었지만 당연히 굳게 잠겨 있어서 바로 차를 몰고 맨하탄 남쪽 딸의 아파트로 향했다. 신호대기를 받았을 때 왼편으로 허드슨 야드(Hudson Yard)의 고층 빌딩들이 보여서 사진을 찍었다. 2019년초에 화려하게 개장했으나 4건의 자살 사고로 무기한 폐쇄되었다가, 결국은 2024년말에 추락을 방지하는 가느다란 철망으로 완전히 둘러싸서 재개장을 한 '베슬(Vessel)'도 신호등 아래로 살짝 보인다. 딸과 만나서 집열쇠를 받고 한국에 가있던 아내에게 둘이 만난 사진을 찍어서 보냈는데, 토요일 밤의 외출을 앞둔 따님은 블링블링하고 이틀째 쓸데없는 곳들 돌아다니느라 강행군을 한 위기주부는 피곤한 모습이 역력하다~^^ 저녁이 되니까 북쪽 베란다 너머로 멀리 크라이슬러 빌딩 등의 미드타운 고층건물들에 조명이 들어온 것이 보여서 줌으로 당겨봤고, 히터를 켜는 것을 깜박하고 잠들어서 밤새 오들오들 떨었던, 그러면서도 일어나서 찾아보고 켜기는 귀찮았던 기억이 나는 밤이다. 아래 배너를 클릭해서 위기주부의 유튜브 구독하기를 눌러주시면 정말 감사하겠습니다.^^
알렉산더 해밀턴이 유일하게 소유했던 집인 맨하탄의 해밀턴 그레인지(Hamilton Grange) 국립기념관
"It's Quiet Uptown"은 뮤지컬 2막 18번째 곡명으로, 19세의 필립이 결투로 사망한 후에 알렉산더 해밀턴(Alexander Hamilton)과 그의 아내 일라이자가 맏아들의 죽음을 받아들이려 애쓰는 슬픔을 묘사한 노래이다. 위기주부는 지금 다시 들어도 눈물이 나는데, 바로 거기 뉴욕 맨하탄의 '고요한 업타운'에 있는 해밀턴의 집을 지난 가을에 마침내 찾아갈 수 있었다. 1962년에 케네디 대통령의 서명으로 국립기념관이 된 그 장소를 소개하기에 앞서서, 직전에 들린 FDR 국립사적지에서 맨하탄까지 운전해서 내려온 도로 이야기를 잠깐 해본다. 타코닉 스테이트 파크웨이(Taconic State Parkway, TSP)는 뉴욕주에서 가장 긴 104마일의 공원도로로 1925년에 FDR의 제안으로 건설이 시작되었는데, 허드슨 밸리의 동쪽 산악지대 풍광을 고려한 아름다운 설계 등의 이유로 옛날 휴게소같은 부속 건물을 포함해 도로 전체가 2005년에 국가사적지로 지정이 되었다. 위 사진과 거의 흡사했던 단풍길을 운전하면서 주변의 많은 주립공원을 알리는 갈색의 도로표지판을 볼 수 있었는데, 잠깐 눈을 의심했던 간판이 있었으나... 인터넷으로 사진을 찾아보니 잘못 본 것이 아니었다! 1998년에 트럼프는 골프장을 만들 목적으로 맨하탄에서 30분 거리에 436에이커(1.8km²) 부지를 250만 달러에 사들였지만, 엄격한 환경규제와 교통체증 우려 등의 이유로 건설이 어렵게 되자 2006년에 뉴욕주에 기증해서 자신의 이름을 딴 주립공원을 가지게 된다. 기증식 당시에 트럼프는 1억 달러짜리 땅이라고 주장했으며, 실제로 매입가의 10배가 넘는 2천600만불로 세금 공제해택을 받은 기록이 있다. 그러나 예산 문제로 뉴욕주는 2010년에 공원 관리를 중단하고 주립공원 홈페이지에서도 삭제를 해버리자, 트럼프는 다시 반환 요청을 하기도 했단다. 현재는 지나다니며 표지판도 보기 싫다고 공원명을 바꾸자는 청원과 법안만 10여년 전부터 꾸준히 올라오고 있는 상태라 한다. 해밀턴 기념관은 맨하탄 북쪽의 할렘(Harlem) 지역 한가운데 있었기 때문에 살짝 긴장을 하고 운전을 했던 기억이며, 맞은편 주택가의 도로변에 주차를 하고 나와보니 당시 할로윈을 앞두고 있어서 다닥다닥 붙은 건물에 장식을 한 집이 눈에 띄었는데, 이 길의 이름이 Hamilton Terrace였다. (구글맵으로 위치를 보시려면 클릭) 그 길이 141st St를 만나는 삼거리 너머, 세인트니콜라스 공원(St. Nicholas Park)의 북쪽 끝에 보이는 노란색 집이 그가 살았던 해밀턴그레인지 내셔널메모리얼(Hamilton Grange National Memorial)이다. 누가 용감하게 인도 위에다 불법주차를 해놓았는지 궁금해하며 도로를 건너갔는데, 공원 간판 너머로 보이는 사복을 입은 국립공원청 직원이 자동차 주인으로, 당시 연방정부 셧다운에도 불구하고 마감 문단속을 하러 나온 듯 했다. 아직 철문이 잠겨있지는 않길래 걸쇠를 풀고 들어가려 했더니, 레인저가 걸어 나오면서 들어가면 안 된다고 말하고는 차에 앉아 나를 주시했다... 그래서 위기주부는 공원 철책 너머로 사진 한 장 담는 것 외에 방도가 없었다. 중요한 사실은 역사적인 이 저택을 보존하기 위해 주변을 공원으로 지정한 것이 아니라, 원래 이 집은 근처 다른 장소에 지어졌었는데, 두 번이나 통째로 움직여서 지금의 위치까지 오게 된 것이다. 그러한 과정이 앞쪽 안내판에 잘 설명되어 있으나 가까이 갈 수 없었지만, 인터넷과 AI의 도움으로 내용이 잘 보이도록 아래 화면을 준비했다. 이 저택은 우측 세부지도에 표시된 넓은 대지를 가진 전원주택으로 현재의 143rd St 위치에 처음 지어졌는데, 스코틀랜드 귀족이었던 아버지 가문의 영지 이름인 '그랑제(The Grange)'로 해밀턴이 명명했다. 세월이 흘러 1889년에 현재와 같은 등간격의 격자형 도로가 만들어질 때 철거될 뻔 했지만, 당시 소유주가 저택을 150미터나 말들로 질질 끌어서 새로 지어진 세인트루크 성공회교회(St. Luke's Episcopal Church)의 옆으로 옮기게 된다. 그렇게 교회의 부속 예배당과 숙소 등으로 사용되다가 1962년에 국립 공원으로 지정된 직후의 모습으로, 석조 교회와 아파트 사이에 불쌍하게 끼여있는 모습이다. 특히 현재 보이는 정면은 실제로는 집의 옆쪽에 문을 만든 것으로, 이 상태로는 복원이나 수리가 불가능했기 때문에 또 시간이 한 참 흐른 2008년에... 다시 건물을 통째로 들어 올려서 도로를 따라 지금의 공원 안으로 이동을 시킨 후에 3년간의 공사를 통해 옛날 그림과 설계도 등을 바탕으로 처음의 전원주택 모습 그대로 복원을 한 것이다. 실내 사진도 몇 장 가져와서 보여드릴까 하다가, 또 혼자서라도 다시 찾아와 내부투어를 할 일이 있을 것 같아 그 때를 기약하기로 했다~ 뉴욕시 맨하탄에 위치해 있음에도 불구하고 연간 방문객은 2만명 정도에 불과했었는데, 2015년 여름에 뮤지컬 이 초대박을 터트리고 난 이듬해에는 10만명 가까이 방문하기도 했단다! 위기주부도 최근 해밀턴의 처가집과 그가 묻혀있는 묘지를 일부러 찾아갔었으니 팬이라 할 수 있겠다.^^ 뉴욕주에서 세워놓은 안내판에 씌인 것처럼 해밀턴 부부는 남은 7명의 자녀와 함께 1802년 여름에 업타운에 새로 지은 이 집으로 이사를 해왔지만, 알렉산더 해밀턴 본인이 여기 살았던 기간은 단 2년에 불과한데, 그 이유는 바로... 1804년 7월 11일에 자신도 아들처럼 권총 결투에서 총상을 입고 이튿날 사망했기 때문이다. 전직 재무장관이자 '워싱턴의 오른팔'로 불렸던 해밀턴과 당시 현직 부통령이었던 애런 버(Aaron Burr)의 결투는 허드슨 강 건너 위호켄(Weehawken)에서 벌어졌는데, 지도를 찾아보니 자동차로 자주 지나다닌 링컨터널의 뉴저지쪽 입구 부근이었다. 그 곳도 두 명의 동상과 함께 공원으로 조성되어 있고, 맨하탄을 바라보는 전망도 좋다고 하니 언제 다시 차를 몰고 맨하탄을 방문할 기회에 또 들리게 될 지도 모르겠다. 주차해 둔 곳으로 가려고 돌아서니 보수 공사중인 루크 교회의 뒤쪽이 보였는데, 원래는 건너편에 공터로 남아있는 옛 부지에 아직도 서있는 역사적인 동상도 직접 볼 계획이었지만, 숙박할 딸의 집에 가기 전에 또 다른 기념관도 하나 더 들러야 했기 때문에 생략했고, 그래서 마지막으로 사진만 한 장 가져와서 보여드리며 글을 마친다. (이번 포스팅은 직접 찍은 사진이 딱 절반^^) 지금까지 해밀턴의 동상은 백악관 옆 재무부 빌딩, 의사당 내부 로툰다, 그리고 다시는 갈 일 없는 패터슨 등에서 많이 봤기 때문에 아쉬움은 없고, 브로드웨이에서 뮤지컬을 다시 볼 기회만 호시탐탐 노리고 있다. 별도로 미국내 순회 공연도 현재 시카고를 시작으로 많은 도시에서 차례로 열리므로, 미국에 계시는 분이라면 근처에 공연이 있으면 직접 한 번 관람하시기를 추천한다. 참, 디즈니플러스(Disney+)에서 오리지널 캐스트의 공연을 한글자막으로 제공하므로 한국에서도 TV로 보실 수 있다. 위기주부는 지금까지 아마 다섯 번도 더 본 듯...ㅎㅎ 아래 배너를 클릭해서 위기주부의 유튜브 구독하기를 눌러주시면 정말 감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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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재킹 시즌2 3화 4화 Hijack S02 E03 E04 2026 개인평가 - 샘이 숨겨온 진실과 배후, 아기와 젖병, 폭탄테러 샘이 숨겨온 지하철탈취의 진실이 밝혀지게 되는데.. 1.고립(샘/마샤=배후)=욕망(절망) 샘은 기관사에게 그 누구도 해치지 않겠단 약속을 했었으나, 지하철 내부에서 살인이 벌어지게 되었단 것, 이는 샘이 벌인 탈취에 또 다른 세력이 관여하고 있었단 의미, 원인은..? 독일경찰과 영국정보국은 2년 전 비행기 하이재킹에 이어 1년 전 자녀를 잃은 샘이 그 복수를 위해 모든 계획을 벌였다 생각했으나, 본질은 샘이 오랜 기간 쫓아온 범인 존의 흔적을 찾게 되면서, 독일에 있는 대사관 직원 올리비아와 약속까지 잡게 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