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주부의 미국 여행과 생활 V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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멤피스 다운타운의 빌스트리트(Beale Street)와 마틴루터킹이 암살당한 로레인모텔(Lorraine Motel)

멤피스 다운타운의 빌스트리트(Beale Street)와 마틴루터킹이 암살당한 로레인모텔(Lorraine Motel)

미국남부 테네시 주의 서쪽 끝, 미시시피 강변의 항구도시로 세계 최대의 목화 시장인 멤피스(Memphis)를 소개하는 대표적인 말은 '블루스의 본고장'이다. 음악에 문외한인 위기주부도 아는 블루스 기타리스트 겸 가수, 비비 킹(B.B. King)은 1925년 미시시피 주 인디애놀라(Indianola)에서 태어났고 본명은 라일리 킹(Riley King)이었다. 그는 1946년 멤피스의 라디오 방송국에서 DJ로 활동하던 중 ‘블루스 보이(Blues Boy)’라는 뜻의 ‘BB’라는 별명을 얻었고, 1949년에 멤피스에서 데뷔를 해서 60년 이상 활동을 한 '블루스의 왕(King of the Blues)'이다. 바로 그 '블루스의 본고장(Home of the Blues)' 파란색 사인을 볼 수 있는 곳이 멤피스 다운타운의 빌 스트리트(Beale Street)이다. 사실 여기 Main St 교차로를 찾아온 원래 이유는 빌스트리트 남쪽 작은 공원에 있는 아래의 엘비스 동상(Elvis Statue)을 보기 위해서였다. 대륙횡단 여행기 전편에서 엘비스 프레슬리가 멤피스에서 가수로 데뷔한 이야기를 들려드렸는데 (보시려면 여기를 클릭), 데뷔 당시의 젊었을 때 모습을 보여주는 동상이라고 한다. 음악 역사상 최초로 십대 팬들의 광적인 사랑을 받는 슈퍼스타가 된 엘비스의 로큰롤도 직접적으로 블루스 음악에서 나왔기 때문에, 사람들은 그를 "흑인 음악을 훔친 백인 가수"라고 비난하기도 했단다. 그리고 동쪽으로 조금 걸어 가보니 왼편의 하드락카페부터 Beale St 좌우로 많은 라이브카페와 레스토랑, 음악 스튜디오 등이 모여있다는 곳이 보였는데, 오른편의 BB King's Blues Club을 시작으로 해서 2nd St 부터 4th St 까지는 보행자전용 도로로 되어있다. 그 가장 중심에서 남북으로 교차하는 도로의 이름인 비비킹 블러버드(B.B. King Blvd)의 표지판이 멀리 보인다. 저기 어디 들어가서 블루스 음악에 맥주 한 잔 곁들여 저녁을 먹으며 오늘을 마무리할까 잠시 고민을 했지만, 사실 둘 다 블루스에는 크게 관심이 없고 또 다른 들러야 할 곳이 하나 더 남아있어서 그냥 돌아섰다. 예의상 멤피스 여행기에 사진 한 장은 보여드려야 할 것 같아서, 비비 킹의 대표곡이라는 의 1993년 공연실황 영상을 하나 걸어본다. 비비 킹은 2006년에 대중음악 발전에 기여한 공로로 미국인이 받을 수 있는 최고의 훈장인 '자유의 메달'을 받았고, 2015년에 그가 89세로 사망했을 때 여기 미국에서는 몇 일 동안 내내 톱뉴스로 보도가 되었다. (2012년에 시카고의 House of Blues에서 비비킹의 공연을 직접 보셨던 요세미티님의 추모 포스팅을 보시려면 여기를 클릭) 그냥 우리는 엘비스 동상 앞에서 셀카나 한 장 남기고 다음 장소로 이동을 했다. 엘비스 프레슬리의 이야기는 '멤피스 여행기 3부작'의 마지막 3부에서 다시 계속해서 들려드리기로 하고, 이 2부에서는 멤피스 여행에서 빼놓을 수 없는 또 다른 '킹(King)'의 이야기로 넘어가도록 하자~ 다운타운 조금 남쪽에 있는 로레인 모텔(Lorraine Motel)이라는 곳인데, 오늘 밤 우리가 여기에 숙박하는 것은 아니고... 작은 흑백화면 속의 오른쪽에 서있는 마틴 루터 킹(Martin Luther King Jr.) 목사가 1968년 4월 4일에 암살을 당한 장소가 여기이다. (구글맵으로 위치를 보시려면 클릭) 화면 왼쪽에 마지막으로 함께 서있던 사람은 아직 살아있는 민주당 정치인인 제시 잭슨(Jesse Jackson) 목사이다. 그는 화환이 놓여진 2층 306호 앞에 서있다가 건너편 건물에서 날아온 총알에 맞아서 숨졌다. 일찌기 1964년에 노벨평화상을 받은 세계적인 유명인이었지만, 흑인 청소노동자들이 백인들과 차별되는 부당한 대우를 받는 것에 항의하기 위한 파업에 연대하기 위해 멤피스 시를 방문 중이었던 것이다. 그가 1956년 앨라배마 주 '몽고메리 버스 보이콧 투쟁'을 이끌어서 승리한 직후에 결성했던 남부 그리스도교도 지도회의(Southern Christian Leadership Conference, SCLC)에서 만들어 놓은 추모 석판에는, 다음과 같이 번역할 수 있는 창세기 37장 19~20절의 말씀, 소위 "꿈 꾸는 자"에 관한 이야기가 적혀있다. "그들이 서로 이르되 보라 꿈 꾸는 자가 오는도다 ... 그를 죽여서 ... 그의 꿈이 어떻게 되는지를 우리가 볼 것이라" 위 글귀가 추모판에 적힌 이유는 많은 분들이 아시겠지만, 마틴루터킹 목사가 1963년에 워싱턴DC의 링컨 기념관 앞에서 했던 유명한 "I Have a Dream" 연설 때문일 것이다. 위기주부는 1989년에 성문종합영어 장문독해에서 이 연설문을 처음 읽었던 기억이 난다...^^ 영어자막이 들어간 당시 연설의 동영상을 클릭해서 보실 수 있는데, 참고로 2분 20초 정도부터 "I have a dream"으로 시작되는 부분이 나온다. 한글자막이 들어간 동영상이나 번역문도 쉽게 찾아서 보실 수 있고, 아마도 마틴루터킹의 이 연설은 그 연설장소 부근에 세워진 그의 기념비를 방문한 후에, 블로그에 다시 상세히 소개를 할 기회가 또 올 것이다. 아내가 보고있던 안내판의 왼쪽 가운데에, 그 날 오후 6시 1분에 쓰러져있는 킹 목사와 주변의 사람들이 총알이 날라온 곳을 가리키고 있는 모습이 담겨있다. (사진을 클릭해서 원본보기를 하시면 내용을 읽으실 수 있음) 바로 길 건너에 오른쪽에 보이는 뒤쪽 빨간 벽돌건물의 열려있는 2층 창문이 바로 과격파 백인단체 소속의 제임스 얼 레이(James Earl Ray)가 총을 쏜 곳이다. 범인은 캐나다를 거쳐서 영국으로 도망갔지만 가짜 여권이 발각되어 미국으로 추방된 후 체포되어서 99년형을 받고 복역하다가 1998년에 교도소에서 70세로 지병으로 사망했다. 당시 킹 목사를 공산주의자로 몰던 에드가 후버의 FBI가 암살을 사주한 것이라는 등의 많은 음모론이 있지만, 여기서는 그냥 팩트만 전달을 해드리는 것으로... 이 곳은 암살사건 이후에도 계속 모텔로 운영이 되다가 결국 폐업 후에 1982년에 건물이 철거될 뻔 했지만, 지역 흑인사회 지도자들의 노력으로 국가민권운동 박물관(National Civil Rights Museum)의 일부가 되었다. 여기서 'National'을 국립이 아니라 국가로 개인적으로 번역한 이유는, 이 박물관은 나라에서 세운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미 문을 닫은 후였기 때문에 입장료를 내고 들어가고 싶어도 그럴 수가 없어서 우리도 돌아섰지만, 이 때는 찾는 사람이 많이 없어서 좀 씁쓸하다는 생각이 잠깐 들었다. 1950년대 스타일로 세워놓은 로레인 모텔(Lorraine Motel)의 간판 아래에 'I HAVE A DREAM'과 함께, 마틴 루터 킹(Martin Luther King)의 영어 첫글자만 모아서 자주 쓰는 표현인 'MLK'가 적혀있다. 그렇게 MLK가 암살당한 장소를 짧게 방문하고, 그 옆의 넓은 주차장에서 뒤를 돌아보니... 어디서 갑자기 나타났는지 제법 많은 사람들이 여기 추모의 공간을 찾아온 것을 보니, 앞서 씁쓸한 마음이 사라졌다~ 미국에서는 그의 탄생일을 기념하기 위해서 1월 세번째 월요일을 마틴루터킹 데이(Martin Luther King, Jr. Day)라는 연방 공휴일로 지정했는데, 올해 2022년은 1월 17일로 정말 신기하게도 마침 이 포스팅을 올리는 날이다! (실제 생년월일은 1929년 1월 15일) 다음날 아침에 여기 멤피스에서 꼭 더 들러야 할 곳이 하나 남았기 때문에, 조금 더 남쪽으로 내려가서 공항 근처에 숙소를 잡고는 Piccadilly Cafeteria라는 곳에 저녁을 먹으러 왔는데, 굉장히 큰 이 식당에 백인도 거의 없었고 우리 부부 빼고는 전부 흑인이었다. 몇 일 후에 테네시 주에 사는 아내의 친구집을 잠시 방문하게 되는데, 그 친구분 말씀이 특히 멤피스 남쪽은 흑인들이 아주 많은 위험한 동네라서 자기는 절대로 안 간다고... 그래서 약 한 달간 두 번의 미국 대륙횡단을 하면서, 저녁을 먹은 장소로는 가장 기억에 남는 곳들 중의 하나였다.

워싱턴DC 국립미술관(National Gallery of Art)의 서관(West Building)에서 구경한 유명한 작품들 소개

워싱턴DC 국립미술관(National Gallery of Art)의 서관(West Building)에서 구경한 유명한 작품들 소개

지금으로부터 10여년전의 봄방학 워싱턴/나이아가라/뉴욕 여행에서 우리 가족은 처음 1박2일 동안에 워싱턴DC를 구경했었다. 그 때 둘쨋날에 먼저 자연사박물관, 항공우주박물관을 둘러보고 3번째로 국립미술관에 들어왔는데... 당시 여행기를 다시 읽어보니 (보시려면 클릭!), 다리가 아파서 그림 전시실은 거의 들어가지도 않고 건물과 조각정원만 겨우 둘러보고는 국회의사당으로 이동을 했었다. 이제 '우리동네 공짜 미술관'이 된 미국의 국립미술관! 아내와 지혜의 공통된 의견에 따라서 1월 2일 일요일에, 옛날에 하나도 제대로 구경을 못했던 그 곳을 찬찬히 둘러보기 위해 워싱턴DC로 차를 몰았다. 자동차를 가지고 워싱턴DC의 내셔널몰을 방문하면 거의 길가의 빈자리를 찾아서 주차를 해야한다. 안내판을 간단히 설명하면 일단 월~금요일의 출퇴근 시간에는 주차가 안되고, 그 외 주중 낮시간과 토요일에는 (글자가 지워졌는데) 2시간까지, 월~토요일 저녁시간에는 3시간반까지 유료주차가 가능한데, 제일 아래 연두색 판에 안내된 것과 같이 모바일앱으로 주차비 결제를 해야한다. 그러면 오늘같은 일요일은? 빈 자리만 찾는다면 주차비도 안 내고 무한정 주차가 가능하기 때문에, 앞으로 가능한 매주 일요일은 워싱턴DC의 박물관/미술관들 하나씩 '격파'하는 날로 정하기로 했다.^^ 우리의 첫번째 격파 대상이 된 미국의 국립미술관(National Gallery of Art)은 제일 동쪽의 조각정원(Sculpture), 뒤로 보이는 서관(West Building)과 그 동쪽의 동관(East Building)의 3부분으로 이루어지는데, 동서로 그 전체 길이는 무려 700 m가 넘는다! (구글맵으로 지도를 보시려면 클릭) 3부분 중에서 최초로 1937년에 공사가 시작되어 1940년에 문을 연 웨스트빌딩의 뒤쪽 출입구로 들어가면 1층인 지상층(Ground Floor)으로 연결된다. 내셔널몰의 앞쪽도 거의 같은 모습이지만 큰 계단이 있어서 출입구가 바로 2층인 주층(Main Floor)으로 연결되는 차이점이 있다. 입구에서 직원에게 꼭 봐야할 그림들에 대해 설명을 듣고 있는 아내의 모습인데, 손가락으로 위를 찌르고 있는 이유는 위쪽의 Main Floor로 올라가야 한다는 뜻이다. 여기서 파란색 가이드맵에 그려진 미술관의 아래 지도를 가지고 이 날 둘러본 곳들에 대해서 소개를 해보자~ 이 복잡한 지도가 한 번에 이해되지 않아도 걱정하지 마시기를... 이 날 우리는 왼쪽 서관의 Main Floor와 오른쪽의 동관을 둘 다 구경했는데, 이 포스팅에서는 서관만 소개한다. 전시된 현대미술 작품들처럼 건물도 이해하기 어렵게 만들어진 동관은 추후 별도의 포스팅으로 소개할 예정이다. 그런데 조각작품들이 주로 있는 서관 Ground Floor의 전시실들은 들어가 보지도 못했기 때문에 완전한 격파(?)를 위해서는 다시 또 방문해야 한다. 주층으로 올라와서 중앙 로툰다(Rotunda)의 까만색 대리석 기둥들과 그 중앙의 머큐리(Mercury) 동상이 서있는 분수를 보니까, 옛날 여기에 와봤던 기억이 푸드득 떠올랐다. 분수 주변은 연말연시를 맞아 포인세티아를 심어 놓아서 달라보이는 것은 당연한데, 10년전 사진을 보면 동상이 까맣고 미술관 소개에도 청동(bronze)으로 만들었다고 되어 있지만, 지금은 황금색으로 보이는 것은 왜일까? 그냥 청동 조각을 잘 닦아놔서 금색으로 보이는건지, 아니면 그 사이에 정말로 황금으로 도금을 한 것인지...? 궁금증은 뒤로 하고, 1번 전시실부터 차례로 모든 방을 돌아보겠다는 각오로 미술품 관람을 시작한다. 영어 작품명을 클릭하면 미술관 홈페이지의 해당 사이트로 연결되어 원본 그림을 크게 보실 수 있기 때문에, 불필요하게 그림만 사진에 꽉 차게 찍어서 올리지는 않는다, 하지만, 이 날 우리 가족이 꼽은 최고의 작품 하나만 예외로 아래에 사진으로 크게 보여드릴 예정이니 기대하시라~ 지금 6번 전시실에 있는 긴머리의 두 여인은, 미국에 있는 유일한 레오나르도다빈치(Leonardo da Vinci)의 유화인 Ginevra de' Benci 그림을 보고 있다. 이 그림은 특이하게 전시실 가운데 투명한 보호상자 안에 들어가 있는데, 이렇게 캔버스의 뒷면에도 간단한 그림과 함께 글씨가 씌여있기 때문이다. 위의 그림 속 여인을 보면 당연히 파리 루브르에 전시되어 있는 모나리자가 떠오를 수 밖에 없는데, 1963년에 진짜 모나리자를 프랑스에서 가지고 와서 여기 미국 국립미술관에서 특별전시를 한 적도 있다고 한다. 20번 전시실에는 레오나르도, 미켈란젤로와 함께 르네상스의 3대 거장이라는 라파엘(Raphael)의 그림이 여러 점 걸려있는데, 아내와 지혜가 동그란 화폭의 The Alba Madonna 그림을 감상하고 있다. 사실 미국땅에 딱 하나밖에 없다는 레오나르도의 그림을 보고 났더니, 여러 점이 걸려있는 라파엘의 그림은 눈에 잘 안들어 오고, 이사 온 집의 리모델링 공사를 앞둔 위기주부는 이 미술관의 럭셔리한 원목 마룻바닥에 더 눈이 갔다.^^ 서쪽 정원 광장에 있는 백조와 놀고있는 천사들의 모습을 조각한 Cherubs Playing with a Swan 분수대를 배경으로 방문객들이 사진을 찍고 있다. 옛날에 방문했을 때 이 앞에서 우리도 사진을 찍으면서 아픈 다리를 쉬었던 기록이 새록새록하다. 다시 유럽회화 전시실로 들어오니 이번에는 바닥뿐만 아니라 벽도 원목으로 마감을 해놓았다! (계속 그림은 안 보고 미술관 인테리어만^^) 수 십곳의 전시실에 가득 걸린 15~18세기의 유럽회화들 중에서 가장 위기주부의 시선을 끈 작품은 바로... 50번 전시실에 특별하게 걸려있는 네덜란드 화가 요하네스 퍼미어(Johannes Vermeer)의 작품 3점이었다. 왼쪽부터 Girl with the Red Hat, A Lady Writing, 그리고 퍼미어의 작품으로 추정되는 Girl with a Flute 그림이다. 국립미술관은 Woman Holding a Balance 그림까지 총 4점을 가지고 있는데, 그것은 현재 독일에서 해외전시 중이란다. 퍼미어(Vermeer)라는 화가의 이름은 잘 모르시는 분이라도, 영화로도 제작된 그림 는 들어보셨을 텐데, 블로그 이웃이신 요세미티님의 퍼미어에 관한 해박하신 글들을 클릭해서 보시면 이해에 도움이 되실 것이다. 그렇게 절반의 전시실을 둘러보고 다시 중앙 로툰다로 돌아왔다. 이 까만 기둥들은 라스베가스처럼 가짜가 아니라 진짜 대리석을 깍아서 만든 것인데, 도대체 이 큰 돌덩어리 하나를 어디서 가지고 와서 어떻게 깍아서 세웠는지가 참 궁금하다. "자, 이제 또 어느 전시실을 꼭 가봐야 하나?" 18~19세기 프랑스와 영국의 회화 및 조각 작품이 있는 어느 전시실의 편안한 소파에 앉아 쉬며 지도를 보고있다. 잠시 복도를 지나가는데 미술책에서보다 역사책에 더 많이 나오는 The Emperor Napoleon in His Study at the Tuileries 그림이 통로 너머로 보였다. "나폴레옹, 안녕하세요~" 미국회화 전시실에서 미국의 1~3대 대통령의 초상화를 자세히 보고있는 지혜의 모습이다. 가운데가 이 3명 중에서는 가장 존재감이 없는 제2대 대통령인 존 애덤스(John Adams)인데, 소위 역사상 '세계 최초의 부통령'이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유명하다.^^ 동쪽 정원 광장에는 Cherubs Playing with a Lyre 조각의 분수대가 있는데, 반대편 서쪽과 같이 아기천사의 조각이지만 조각가는 다른 것으로 홈페이지에 설명이 나와있다. 72~79번의 특별전시실은 이 때는 문을 열지 않았고, 이제 여기 국립미술관에서 가장 유명하고 인기있는 그림들이 모여있는 인상파(Impessionism) 전시실로 들어가 보자~ 85번 전시실의 클로드 모네(Claude Monet)... 왼쪽의 Woman with a Parasol - Madame Monet and Her Son 그림을 포함해 사진의 4점이 모두 모네의 작품인데, 연꽃이 등장하는 The Japanese Footbridge 그림은 남자가 바짝 붙어서 사진을 찍고 있어서 잘 보이지 않는다. 그 옆의 84번 전시실에는 폴 세잔(Paul Cézanne)의 작품만 12점이 가득 걸려있고, 저 안쪽의 83번 전시실로 들어가면... 한쪽 벽면에 1889년의 자화상 Self-Portrait 그림을 포함해서 빈센트 반 고흐(Vincent van Gogh) 작품만 6점이 걸려있다. 앞서 언급했던 것과 같이, 이 날 우리 가족의 미국 국립미술관 방문에서 '최고의 작품(?)'으로 꼽은 그림이 여기 제일 왼쪽에 작게 걸려있으니... 유일하게 그림만 꽉 차게 찍은 사진으로 소개하는 Roulin's Baby 그림이 오늘의 주인공이다.^^ 고흐의 이웃이자 모델로 자주 등장한 우체부 Joseph Roulin의 아기라고 하는데, 통통한 아기가 귀엽기도 하고 왜 피부색이 슈렉처럼 녹색일까 궁금해서 한 참을 쳐다봤다. (포스팅을 쓰면서 찾아보니 암스테르담의 반고흐 미술관에 피부가 살색으로 그려진 똑같은 작품이 또 있는 것으로 봐서, 아마도 이 작품은 붉은 물감이 부족해서 그리다가 포기한 미완성의 작품이 아닐까?) 미국 국립미술관 서관 관람의 마지막 작품으로 소개하는 것은 모네가 시시각각 변하는 빛과 색깔을 표현하기 위해 30점이나 같은 위치에서 그렸다는 루앙 대성당의 모습이다. 왼쪽이 햇살이 비추는 Rouen Cathedral, West Façade, Sunlight, 오른쪽 Rouen Cathedral, West Façade 그림은 설명은 없지만 아마도 햇살이 건물 위쪽을 막 비추는 이른 아침의 순간이 아닐까 생각된다. 이상으로 주층(Main Floor)의 전시실을 모두 둘러보고, 뒤쪽 계단을 통해서 우리가 들어왔던 아래쪽 지상층(Ground Floor)으로 다시 내려가서는, 안내데스크 뒤쪽에 있는 여기 가든카페(Garden Cafe)에서 커피와 빵으로 간식을 먹으며 우아한 휴식을 취했다. 거기서 동관쪽으로 걸어가는 길에는 그냥 '기념품가게'라고 부르기에는 미안한, 고급 백화점처럼 상품을 진열해놓은 '샵(Shop)'이 좌우로 만들어져 있어서, 도저히 그냥 지나갈 수가 없어 한 참을 구경했다. "방문기념 티셔츠를 이렇게 마네킹에 입혀놓고, 쇼윈도처럼 보여주는 기념품 가게를 내가 다른 곳에서 본 적이 있었던가?" 또 기념품을 사면 담아주는 저 종이가방 조차도 색깔 선택과 디자인이 얼마나 고급스럽던지... 만약 비행기를 타고 힘들게 여행으로 왔다면 뭐라도 하나 샀을텐데, 그냥 우리 동네 미술관이니까 필요하면 다시 사러오면 된다고 설득하면서 무사히 지나갔다. 샵이 끝나면 미술관의 역사를 보여주는 흑백사진들이 걸려있는 복도가 나오고, 그 끝에 현대미술관인 동관 건물이 출입구 밖으로 보인다. 하지만 10여년 전처럼 몰라서 건물 밖으로 그냥 나간 것이 아니라, 지하로 내려가서 다른 큰 카페와 미술작품을 통과해서 편리하게 이동을 했는데, 난해한 현대미술 작품들이 또 가득한 동관의 이야기는 별도의 포스팅으로 소개할 예정이다. 아래 배너를 클릭해서 위기주부의 유튜브 구독하기를 눌러주시면 정말 감사하겠습니다.^^

엘비스 프레슬리(Elvis Presley)가 첫 녹음을 한 테네시 주 멤피스(Memphis)의 선스튜디오(Sun Studio)

엘비스 프레슬리(Elvis Presley)가 첫 녹음을 한 테네시 주 멤피스(Memphis)의 선스튜디오(Sun Studio)

미국에는 미시시피(Mississippi)라는 긴 이름처럼 실제 길이도 긴 강(river)이 있다는 것은, 아마도 영어를 잘 읽지도 못하던 국민학교 시절에 누나들의 사회과부도(요즘도 이렇게 부르는지 모르겠지만?) 교과서의 세계지도를 볼 때부터 기억했던 것 같다... 미서부 LA에서 동쪽으로 향한 대륙횡단 여행 겸 이사의 4일째 오후에, 아주 오래 전부터 내 머리 속에 추상적으로만 들어있었던 그 미시시피 강을 마침내 자동차를 몰고 직접 건너게 되었다. 인터스테이트 40번 고속도로가 지나는 에르난도데소토 다리(Hernando de Soto Bridge)로 미시시피 강을 동쪽으로 건너면, 환영간판에 붓글씨처럼 적혀있는 테네시(Tennessee) 주가 시작되면서, 시경계의 남쪽이 바로 미시시피(Mississippi) 주와 접해있는 도시인 멤피스(Memphis)가 나온다. 이집트 나일강변의 고대도시 이름을 그대로 따온 것답게 강가에 거대한 피라미드가 보이는데, 1991년에 실내 경기장으로 만들어졌다가 우여곡절 끝에 지금은 아웃도어 브랜드인 배스프로샵(Bass Pro Shops)의 초대형 매장이 있는 호텔 겸 전망대 레스토랑으로 사용되고 있단다. 아무래도 미시시피강(Mississippi River)의 지도 한 장은 보여드리고 지나가야 할 것 같아서 네이버 두산백과에서 가져왔다. 미국 50개 주들 중에서 미시시피 강의 유역이 포함되는 주가 31개라고 하니, 미국의 지리를 이해하는데 이 강을 빼놓고는 불가능하다 할 수 있다. 앞서 보여드린 고속도로 다리의 이름은 1540년 전후로 미국남부를 탐험하면서 미시시피 강을 건넌 기록을 최초로 남긴 스페인 탐험가 Hernando de Soto에서 유래했는데, 그 다리와 멤피스는 지도에서 빨간 '미시시피강' 글자의 두번째 모음 'ㅣ'의 꼭대기 위치라고 보시면 된다. 멤피스로 향하는 차 안에서 아내가 이 도시의 관광에 대해 벼락공부를 했는데, 꼭 가봐야하는 1등 관광지는 이 낡은 빨간 벽돌건물에 위치한 선스튜디오(Sun Studio)라는 녹음실이었다. (구글맵으로 위치를 보시려면 클릭) 대륙횡단 여행의 4일째만에 처음으로 좁은 실내의 관광지에 들어간 셈인데, 남부임에도 불구하고 비교적 대부분의 사람들이 마스크를 잘 착용하고는 있었다. 이 곳은 바로 우측의 커다란 흑백사진 속에 앉아있는 "로큰롤의 왕(King of Rock and Roll)"이라 불린 엘비스 프레슬리(Elvis Presley)가 첫번째 녹음을 하고 음반을 냈던 곳, 즉 전설적인 가수 엘비스 프레슬리를 만들어 낸 음반사인 선레코드(Sun Records)가 있던 곳이다. 우리가 도착했을 때는 이 날의 마지막 투어만 남겨두고 매진이라는 표시가 앞에 있었다. 하지만, 여직원에게 투어를 하겠다고 하니까 아무 고민 없이 두 장의 표를 더 판매를 했다... 코로나로 기본 투어인원이 줄었기 때문에 추가가 가능했는지? 캘리포니아에서 왔다고 해서 특별히 배려해 준 것인지? 잘은 모르겠지만 그렇게 우리는 마지막 참가자로 스튜디오 투어에 참가할 수 있었다. 1970년대초에 녹음실이 문을 닫은 후에 이 건물은 건축회사, 자동차부품 가게 등으로 사용되다가, 엘비스 프레슬리가 죽고 10년 후인 1987년에 다시 음악 스튜디오 겸 카페와 기념품가게로 문을 열었다. 그 후 전세계 엘비스 팬은 물론 멤피스를 방문하는 우리같은 일반인들로부터도 큰 인기를 끌어서 최고의 관광지가 되었고, 2003년에는 공식적으로 미국역사유적(National Historic Landmark)으로도 지정되었다고 한다. "자~ 그럼 여기 화장실 문 위에 걸린 사진속에 핫바지를 입고 껄렁한 자세로 서 있는, 포레스트 검프에게서 개다리춤을 배워서 세계적인 대스타가 된 엘비스 프레슬리에 대해 알아보도록 합시다." 그 전에 화장실부터... 커다랗게 걸려있던 흑백사진은 "Million Dollar Quartet"이라고 알려진, 이 스튜디오에서 있었던 즉흥연주의 모습을 담은 것이다. 엘비스가 대형음반사인 RCA레코드로 이적하고 전국적으로 명성을 떨치기 시작하던 1956년 겨울에 우연히 옛날 스튜디오를 방문했다가, 당시 선스튜디오 소속의 다른 가수들을 만나서 즉흥적으로 여러 노래를 함께 다양한 시도로 부르는 것을 녹음한, 락큰롤 역사의 중요한 이정표가 되는 사건으로 동명의 뮤지컬로 만들어지기도 했단다. 카페 내부에도 옛날 LP판과 녹음기계 등등의 많은 전시가 있으므로, 꼭 투어를 하지 않더라도 잠시 들러서 구경할만 했다. 물론 이렇게 좌우의 벽에 가득 쌓여있는 판매용 기념품들이 훨씬 많기는 하지만 말이다~^^ 오후 4시반이 되자 밖에 있던 많은 사람들이 들어와서 긴 줄이 만들어졌고, 차례로 입장을 해서 안쪽의 좁은 계단을 통해 2층으로 올라갔다. 지난 1년여 동안에 국립공원 등 곳곳에서 거리두기를 해달라는 다양한 사인을 많이 봐왔지만, 이 안내문이 가장 재미있고 딱 맞아 떨어졌다. "Please keep ONE ELVIS apart" 하지만, 사실상 2층 전시실에서의 거리두기는 불가능하게 사람들이 많았다... 이 스튜디오는 프로듀서이자 라디오 진행자인 사진 속의 Sam Phillips가 1950년에 Memphis Recording Service라는 이름으로 문을 열었는데, 당시 흑인들만의 음악이었던 블루스(Blues)를 널리 알리는데 주력해서, 나중에 '블루스의 왕'이라는 명성을 얻게 되는 비비킹(B. B. King)도 1952년에 이 스튜디오에서 녹음을 한 적이 있다고 한다. 사진 가운데 까만 마스크를 쓴 투어가이드가 계속해서는 아마 이런 이야기를 했을거다... 1953년 여름 어느날, 기타를 멘 청년 하나가 찾아와서는 어머니 생일선물로 드릴 음반을 하나 자비로 녹음하고 싶다고 여기를 찾아왔다. 그 때 사장인 샘 필립스는 없었기 때문에 여직원이 기술자와 함께 그가 두 곡을 부르는 것을 녹음해서 주고는 이름과 전화번호를 받은 다음에 "좋은 발라드 가수, 꼭 붙잡을 것"이라고 메모를 해두었다. 위의 동영상이나 여기를 클릭하면 당시 녹음을 투어에서 잠깐 틀어서 들려주는 장면을 보실 수 있다. 당시 고등학교를 갓 졸업했던 그 청년은 낮에는 트럭운전을 하고 밤에는 술집에서 노래를 부르며 1년이 흘렀고, 1954년 여름에 "흑인 창법으로 노래하는 백인 가수"를 찾던 샘은 그에게 다시 연락을 해 정식녹음을 하면서 라는 곡을 그의 독특한 창법으로 불렀던 것을 7월 10일 밤 9시 30분경에 처음으로 멤피스 라디오로 방송을 하게 된다. 그러자 청취자들의 전화와 엽서가 방송국으로 폭주했고... 가수 엘비스 프레슬리가 탄생하게 된다. 이 정도 설명하고 2층의 전시물들을 관람하는 자유시간을 좀 줬는데, 우리의 눈길을 끈 것은 사진 아래에 보이는 그의 고등학교 졸업앨범이었다. 엘비스 프레슬리는 남동쪽으로 100마일 정도 떨어진 미시시피 주의 투펠로(Tupelo)에서 1935년에 쌍둥이로 태어났지만 형은 바로 죽어서 외아들로 자랐는데, 집은 아주 가난했으며 아버지가 무능하고 폭력적이라서 모자관계가 아주 돈독했다고 한다. 1948년에 가족이 멤피스의 빈민가로 이사를 했고, 로큰롤을 부를 때의 반항아적인 이미지와는 달리 고등학교 때는 전혀 문제를 일으키지 않는 착한 학생이었다고 한다. 엘비스의 고등학교 졸업사진을 보고 있는데, 바로 옆에 계시던 분이 하는 말씀이... 엘비스 왼쪽에 있는 여성이 바로 자신의 숙모, 즉 아버지의 여동생이라고 하는 것이 아닌가! 그 때 뭔가 알 수 없는 시공간을 거쳐서 엘비스 프레슬리가 직접적으로 우리와 연결되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고 하면 좀 심하게 과장이겠지? 투어는 1층으로 내려와서 카페 옆의 녹음실로 계속 이어졌는데, 엘비스가 1955년에 매니저를 "Colonel" Tom Parker로 바꾸고 RCA Victor 레코드와 계약하기 전까지의 모든 녹음과, 또 이후에도 앞서 소개한 Million Dollar Quartet을 포함해 다른 몇 번의 녹음을 여기서 했다. 흑인의 블루스에 백인의 컨트리 음악이 섞인 로큰롤이 사실상 여기서 탄생하는 과정을 가이드가 몇 곡의 음악과 함께 설명을 했던 것 같다. 가이드는 로큰롤 특유의 기타사운드를 내는 방법을 직접 보여주기도 했고, 모든 투어를 마치면서 하는 말이... 사진에 파란 모자 위로 보이는 오래된 마이크가 이 곳을 스튜디오로 복원할 때 선레코드에서 가지고 온 것인데, 당시 담당자 말이 1950년대에 엘비스가 이 마이크를 잡고 녹음을 '했을 수도' 있다는 말을 들었다며, 원하시는 분은 나와서 마이크를 잡고 기념사진을 찍으시라고 하는 것이었다. 연세 지긋하신 분들이 이렇게 차례로 얌전히 마이크를 잡고 기념사진을 찍으시길래, 저 분들은 엘비스가 저런 마이크를 잡고 노래하는 모습을 본 적이 없으신 것 같다는 생각이 좀 들었다. 그래서, 모두 찍으실 때까지 기다렸다가 할 수 없이 이 몸이 직접... 가볍게 포즈를 한 번 잡아드렸다~ 엘비스의 개다리춤까지 췄으면 대박이었겠지만...^^ 선스튜디오(Sun Studio) 투어를 마치고 나오니까, 건물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으시는 분들이 많아서 우리도 한 장 부탁했는데, 둘 다 고개를 왜 갸우뚱하고 찍었을까? 여기서 엘비스 프레슬리가 가수로 데뷔한 이야기만 해드렸다고 섭섭해 하지 않으셔도 된다. 앞으로 이어질 나머지 두 편에서도 엘비스의 이야기는 계속되니까, 사실상 멤피스 여행기는 '엘비스 3부작'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물론 다음 편 2부에서는 다른 중요한 역사적 사건이 벌어진 장소가 주무대로 등장하기는 하지만 말이다. 아래 배너를 클릭해서 위기주부의 유튜브 구독하기를 눌러주시면 정말 감사하겠습니다.^^

버지니아 덜레스 국제공항 아래에 있는 미국 국립항공우주박물관 별관 Steven F. Udvar-Hazy Center

버지니아 덜레스 국제공항 아래에 있는 미국 국립항공우주박물관 별관 Steven F. Udvar-Hazy Center

미국 서부에서 동부로 이사를 왔으니 새해일출은 바다에서 뜨는 것을 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워싱턴DC는 바닷가에 위치한 도시가 아닌데다, 그 동쪽에 커다란 델마바 반도(Delmarva Peninsula)가 있어서 대서양에서 뜨는 일출을 보기 위해서는 동쪽이나 남쪽으로 3시간 이상을 달려야 했고, 일기예보가 2022년 새해 첫날의 날씨도 흐리다고 해서 포기했다. 여기서 '알쓸미잡(알아두면 쓸데없는 미국관련 잡학사전)' 하나... '델마바(Delmarva)'라는 이름은 그 반도에 있는 3개의 주인 Delaware, Maryland, 그리고 Virginia를 합성해서 만든 공식적인 이름이라고 한다. 대신에 지난 2019년과 2021년처럼 1월 1일부터 아울렛을 갈까했으나 아침에 일어나보니 비가 내리고 있었다. 그래서 찾은 곳은 우리집에서 20분 거리에 있는 스티븐 F 우드바하지 센터(Steven F. Udvar-Hazy Center)라는 곳으로, 왼쪽 간판의 장소명 위에 음영으로 스미소니언 재단 국립항공우주박물관(Smithsonian Institution National Air and Space Museum)이라고 되어있다. (구글맵으로 위치를 보시려면 클릭) 다시 말씀드리지만 여기는 워싱턴DC의 내셔널몰에 있는 국립항공우주박물관이 아니고, 버지니아 덜레스 국제공항 아래에 2003년에 문을 연 별관(annex)이다. 헝가리 이민자로 상용 여객기 임대업을 해서 억만장자가 된 Steven F. Udvar-Házy가 스미소니언 재단에 6천5백만불을 기부해서 만들어졌기 때문에 전시장에 그의 이름을 붙였단다. (2011년에 봄방학 때 워싱턴/나이아가라/뉴욕 여행에서 방문했던 내셔널몰의 항공우주박물관 본관 여행기를 보시려면 여기를 클릭) 당연히 전시장 입장료는 없지만 주차비는 15불이 있고, 아이맥스(IMAX) 극장은 별도의 관람료를 내고 표를 사야 한다. 현재 30분 내외 길이의 4편의 우주와 비행 관련 영화가 상영되고 있는데, 우리는 우주왕복선의 이야기를 다룬 를 먼저 보고 또 마지막에 볼 다른 영화도 예매를 했다. 무슨 영화를 또 봤는지와 주차비 관련해서는 이 포스팅 마지막에 다시 자세히 알려드린다. 아이맥스 영화를 보고 나와서 계속 걸어가면 이렇게 폭이 약 80 m에 좌우로 길이가 300 m가 넘는 거대한 주격납고(main hangar)가 나온다. 점심 도시락까지 챙겨가 3시간 이상을 구경하면서 찍은 사진들을 모두 소개하려면 두 편으로 나누어도 부족할 것 같고, 그렇다고 이 비행기 저 비행기 사진들만 설명없이 주루룩 올리는 것은 위기주부의 스타일도 아니고 해서... 이 곳에서 가장 유명한 볼거리들만 '간단한' 설명과 함께 보여드리면서 그냥 한 편으로 끝내기로 했다. 전시장의 중앙에 널찍이 자리를 잡고 있는 이 독특한 까만 비행기는 "블랙버드(Blackbird)"라는 별명으로 유명한 Lockheed SR-71 고고도 정찰기로, 적국의 하늘을 마음대로 돌아다니다가 격추 미사일이 날라오면 더 빨리 더 높은 고도로 올라가면 미사일이 못 따라온다는 전설을 가지고 있다. 2015년에 아리조나 투산의 피마항공우주박물관(Pima Air & Space Museum)에서도 본 적이 있지만, 그 때는 밑에서만 올려다봐서 전체적인 모습을 감상할 수 없었는데, 여기는 위에서 내려다보니까 정말 '사진빨'이 제대로 나오는 매혹적인 모습을 감상할 수 있었다. 주격납고와는 별도로 만들어진 James S. McDonnell Space Hangar에는 정면에 보이는 우주왕복선을 포함해서 우주와 관련된 전시물들이 따로 모여있다. 그런데 연결된 입구의 왼쪽으로 금색 육각형 모양이 있는 걸개그림이 보인다. 바로 지난 크리스마스에 마침내 우주로 발사된 제임스웹 우주망원경(James Webb Space Telescope)의 순금 반사경 모습을 실물 크기로 보여주면서, 아래에는 간단한 설명판과 함께 영상을 틀어주고 있었다. 모형도 아닌 단순한 그림일 뿐이지만, 지난 30년의 노력끝에 이제 막 우주로 날라가고 있는 12조원짜리 차세대 우주망원경을 직접 본 듯한 감동이었다. 우주왕복선 디스커버리(Space Shuttle Discovery)는 1984년부터 2011년까지 39번이나 우주로 발사되어서, 현재 남아있는 3대 중에서 가장 오래되고 비행횟수가 많은 우주왕복선으로 1990년에는 허블 우주망원경을 궤도에 올려놓기도 했다. 나머지 2대의 우주왕복선은 아틀란티스(Atlantis)와 엔데버(Endeavour)인데, 플로리다 케네디 우주센터에 있는 아틀란티스는 우리가 2013년 봄에 방문했을 때는 전시관이 오픈하지 않아 직접 보지는 못했고, LA의 캘리포니아 사이언스센터에 전시된 엔데버는 여기를 클릭하시면 전시된 모습과 함께 전시되기까지의 과정도 보실 수 있다. 전시장 바닥에는 다양한 항공과 우주 관련된 그림들로 거리두기 안내문이 붙어 있었다. 그 뒤로 여러가지 로켓들의 모형이 만들어져 있었는데, 우주개발 역사에서 가장 크고 중요한 로켓이 안 보인다고 했더니... 달탐사에 사용되었던 새턴 5호 로켓(Saturn V Rocket)의 모형은 이렇게 따로 전시가 되어 있었다. 역시 2013년에 플로리다 케네디 우주센터에서 직접 봤던 이 거대한 로켓 실물의 모습을 보시려면 여기를 클릭해서 감동의 여행기를 보시면 된다. 옛날 살던 동네의 제트추진연구소(Jet Propulsion Laboratory, JPL) 로고가 박힌 화성 착륙선 패스파인더(Pathfinder)와, 바퀴 6개가 달린 탐사선 소저너(Sojourner)가 1997년에 최초로 화성에 착륙한 직후의 모습을 재현해놓은 모형도 볼 수가 있었다. 이외에도 허공에 매달린 많은 인공위성을 비롯해, 실제 우주에 다녀온 거미와 많은 물건들, 옛날 로켓의 실물 등등과 우주와 관련된 모형과 장난감까지 아주 다양한 전시가 있는 스페이스행거(Space Hangar)였다. 그 옆으로는 별도의 건물인 Mary Baker Engen Restoration Hangar가 있어서, 오래된 여러 비행기의 복원작업을 하는 모습을 평일에는 직접 볼 수가 있다고 한다. 스미소니언 항공우주박물관은 워싱턴DC의 본관과 여기 버지니아 별관 이외에도, 메릴랜드 실버힐(Silver Hill)이라는 곳에 또 저장소를 가지고 있다 한다. 다시 연결통로를 따라 주격납고로 돌아가서 다른 유명한 전시물을 찾아가보자~ 2차 세계대전부터 한국전쟁까지 미공군의 주력 전략폭격기였던 Boeing B-29 Superfortress는 4천대 가까이 생산이 되어서, 전세계 항공박물관 어디에 가나 한 대쯤은 볼 수 있는 아주 흔한 비행기이다. 하지만 여기 전시된 B-29가 특별히 유명한 이유는... 이 비행기가 바로 일본 히로시마에 원자폭탄을 투하했던 바로 그 기체인 에놀라게이(Enola Gay)이기 때문이다! 이 폭격기의 조종사였던 Paul Tibbets가 자신의 어머니 이름을 따서 지은 Enola Gay가 반대편에 선명하게 씌여있었는데 깜박하고 사진을 찍지 않았다. 주격납고 남쪽 멀리 퇴역한 초음속 여객기인 콩코드(Concorde)가 보이는데, 에어프랑스에서 박물관에 기증한 것이라고 한다. 참고로 콩코드는 총 20대가 생산되어서 대부분 프랑스와 영국에 전시되어 있지만, 미국에 3대가 있어서 뉴욕과 시애틀에서도 볼 수가 있다. 그런데, 갑자기 뒤쪽에서 요란한 소리가 들려서 뒤를 돌아보니... 작은 프로펠러 비행기 한 대가 우리를 향해 돌진하고 있어서 깜짝...^^ 아래층으로 내려가서 콩코드 가까이 가보자~ 2003년에 퇴역하지 않고 지금까지 운항이 되었다고 해도, 일반인들은 타기 어려운 비싼 티켓값의 초음속 여객기라서 실물 아래에 서보는 것만으로 만족하기로 했다. 하지만 다시 여러 회사가 초음속 여객기 상용화를 위한 개발을 진행하고 있고, 대형 항공사들이 2030년대를 목표로 도입을 준비하고 있다고 하므로, 우리 부부는 몰라도 딸은 나중에 초음속 여객기를 타볼 수 있는 기회가 오기를 바란다. 남쪽 끝에 매달려 있는 꼬리날개가 두 개인 저 비행기는 2005년에 67시간 동안 착륙하지 않고 논스톱으로 지구를 한바퀴 돈 세계기록을 가지고 있는 Virgin Atlantic GlobalFlyer 기체이다. 반대편 주격납고의 북쪽에는 '밀덕'이나 '항덕'이시라면 하루종일 구경해도 질리지 않을 만큼의 많은 비교적 최신의 군용 항공기들과 여러 전시물이 있다. 최신의 스텔스 전투기인 Lockheed Martin F-35 Lightning II의 모습도 가운데 보이는데, 개발 과정에서 최종 프로토타입으로 제작된 시제기라고 한다. 그냥 사진 구도가 잘 나온 것 같아서 한 장만 더 올리면, 날개를 접고 있는 미해군의 곡예비행팀인 블루앤젤스(Blue Angels)의 파란 F/A-18A와 해양경비대가 운용한 Sikorsky HH-52 Seaguard 헬기의 모습이다. 1차로 그 정도 둘러보고는 입구쪽에 있는 전망대로 올라왔다. 거대한 전시센터의 모습과 그 주변을 위에서 내려다 볼 수 있도록 일부러 만들어 놓은 타워로 서쪽 바로 밑으로 격납고가 보이고, 북쪽으로 멀리 워싱턴DC의 관문인 버지니아 덜레스 국제공항(Dulles International Airport)이 보인다. 국제공항의 활주로에서 여기 전시장의 격납고까지 유도로가 만들어져 있어서, 콩코드나 우주왕복선 같은 큰 동체를 쉽게 가지고 올 수 있기 때문에, 여기 공항 바로 아래에 국립항공우주박물관의 별관을 만든 것이다. 빠질 수 없는 기념품 가게 잠깐 들러서 구경을 하고는, 점심 도시락을 먹기 위해서 주차장에 세워둔 차로 돌아갔다. 입구 정면의 좌우로는 각종 항공과 우주관련 기여자들과 단체의 이름이, 또 소액이라도 이 곳 건설을 위해서 기부한 사람들의 명단이 있는 금속판이 줄지어 있고, 그 끝에는 '어센트(Ascent)'라는 조각작품이 하늘로 솟아 있다. 피크닉에리어를 찾아 갔지만 비가 와서 의자가 다 젖어있었기 때문에 차 안에서 점심을 먹고는 다시 전시장으로 돌아와서 2차 관람을 시작했다. 1차에서는 올라가보지 않았던 높은 관람대가 있어서 거기서 보는 모습은 또 느낌이 색달랐다. 디스커버리 호의 바로 위에 매달려 있는 특이하게 생긴 위성은 TDRS(Tracking and Data Relay Satellite)로 우주왕복선과 지상의 교신을 담당했다고 하며, 화물칸에 설치되어 있던 로봇팔인 캐나담(Canadarm)은 꺼내져서 오른편 노란색 거치대에 전시되어 있다. 뒤로 돌아보면 멀리 들어온 입구가 보이고, 발아래에는 블랙버드의 거대한 모습이 보인다. 우주복같은 조종복을 입고 좌우에 커다란 로켓엔진을 단 비행기를 타고 마하3.2의 속도로 적국의 하늘을 날아가는 느낌은 어땠을까? 3층 관람대를 따라 걸으며 에놀라게이의 전체 모습도 한 번 찍어봤는데, 그 아래쪽에 빨간 원이 그려진 비행기들은 2차대전 당시의 일본군 전투기들이다. 일본에 원폭을 투하한 폭격기 아래에 일본 전투기들이라... 스미소니언에서 일부러 이렇게 배치를 한 것인지가 궁금하다. 정면에서 광각으로 내려보고 찍은 콩코드는 완전히 무슨 미사일같이 보였는데, 새로 개발되고 있는 초음속 여객기들도 마하2 이상의 속도를 내기 위해서는 결국은 비슷한 외관을 가지고 있다. 이렇게 블랙버드, 디스커버리, 에놀라게이, 콩코드 등의 이 곳을 대표하는 비행기와 우주선을 다시 봤지만, 우리 가족의 가장 많은 귀여움을 받은 비행기는... 스카이베이비(Sky Baby)라는 이름의 이 복엽기로 Ray Stits가 1952년에 자신의 집에서 만들었는데, 1980년대까지 세계에서 가장 작은 비행기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있었다 한다.^^ 이렇게 국립항공우주박물관의 별관인 Steven F. Udvar-Hazy Center 구경을 모두 마치고 다시 아이맥스 극장으로 향했다. 여기서 관람한 두번째 영화는 현재 일반극장에서도 상영중인 이었다. 국립 박물관 내의 아이맥스 극장에서 상업영화를 상영한다는 것이 참 의외였는데, 가격도 조금 저렴했던 것 같다. 문제는 전시장이 완전히 문을 닫은 후에 영화가 끝났는데, 그 때는 주차비를 내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모르고, 미리 극장에 들어가기 전에 주차비 15불을 결제한 것이었다. 출구 게이트가 그냥 열려있는 것을 보고 상당히 아까웠지만, 그냥 입장료도 없이 눈호강을 했으니 가족 3명이 각각 5불씩 박물관에 기부를 한 셈 치기로 했다. 참, 판데믹 이후에 처음으로 영화관에서 본 이 영화의 주제는 한마디로 '어른 말씀을 들어라'라고 생각된다. 아래 배너를 클릭해서 위기주부의 유튜브 구독하기를 눌러주시면 정말 감사하겠습니다.^^

핫스프링스(Hot Springs) 국립공원 비지터센터 박물관과 마운틴타워(Mountain Tower) 전망대 풍경

핫스프링스(Hot Springs) 국립공원 비지터센터 박물관과 마운틴타워(Mountain Tower) 전망대 풍경

명실상부한 미국 유일의 '국립온천'이라고 부를 수 있는 남부 아칸소(Arkansas) 주에 있는 핫스프링스 내셔널파크(Hot Springs National Park)의 두번째 여행기이다. 참고로 미국의 여러 주들을 묶어서 지역으로 구분하는데는 많은 방법이 있지만, 가장 기본적인 것은 인구통계국에서 서부(West), 중서부(Midwest), 남부(South), 북동부(Northeast)의 4개 지역으로 나누는 방법이다. 여기 아칸소를 포함한 그 남부의 주들은 사회적으로 개신교의 영향력이 크고 정치적으로 보수적인 지역이라서 "바이블 벨트(Bible Belt)"라고 불리기도 한다. 아칸소 중서부에 인구 4만명 정도의 작은 도시인 핫스프링스(Hot Springs)의 중심가 횡단보도를 건너고 있는데, 도로 오른편으로 건너가면 바로 국립공원 땅이다.^^ 아칸소 주 첫번째 여행기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미국의 제42대 대통령인 빌 클린턴(Bill Clinton)은 아칸소 남부의 호프(Hope)라는 시골에서 태어나 새아빠를 따라서 여기 핫스프링스로 이사해서 고등학교까지 다녔다. 그래서 이 근처 어디에 빌 클린턴의 얼굴이 크게 그려진 안내판도 있다고 하는데 우리는 찾지를 못했다. 왼쪽으로 보이는 돔이 있는 건물이 우리가 조금 전에 미국 국립온천 엄청난 수질을 체험할 수 있었던 '쿼포탕(Quapaw Baths)'이다. (국립공원에 대한 소개와 온천욕을 하는 모습을 보시려면 여기를 클릭해서 1편을 보시면 됨) 이제 그 바로 옆에 있는 다른 온천장 건물에 들어선 국립공원 비지터센터(Visitor Center)를 둘러볼 차례인데, 간판 오른편에 흔들의자에 앉아서 온천을 해서 보들보들해진 손을 흔들고 계신 사모님이 보인다~ 옛날에 포다이스(Fordyce) 온천으로 운영된 건물의 입구로, 국립공원청 직원들이 서있는 뒤로 귀중품을 보관하던 금색의 작은 락커들이 클래식한 멋을 풍겼다. 여러 커다란 온천이 줄지어 서있는 Bathhouse Row에서 이 곳이 1962년에 제일 먼저 폐업을 했기 때문에, 아마도 국립공원 비지터센터로 개조가 된 것 같다. 그냥 국립공원 브로셔만 챙겨서 나올 뻔 했는데, 박물관으로도 운영된다는 것이 생각나서 2층으로 올라갔다. 이 곳의 온천들은 1930~50년대에 그 전성기였다고 하는데, 당시의 여러 모습을 아주 그대로 잘 복원해 놓았다. 마사지실의 모습을 마네킹으로 재현을 해놓았는데, 새하얀 타일과 쉬트들과 함께 흰 천을 덮은 마네킹까지 누워 있어서 처음부터 약간은 으스스한 느낌이 많이 들었는데... 여기 치료실의 고압호스와 저 아내가 가까이 목을 대고 있는 스팀캐비넷(steam cabinet)을 보면서는 약간의 공포까지 밀려왔다. 왜냐하면 작년에 봤던 넷플릭스 드라마 에서 정신병원에서 치료를 한다는 명목으로 사람을 저 스팀캐비넷으로 고문을 하고, 나중에는 저기 가두고 뜨거운 물로 사람을 죽이려고 하는 장면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물론 여기는 정신병원이 아니라 온천휴양지이긴 하지만 말이다... 남자 탈의실의 중앙에는 인디언이 스페인 병사에게 여기 온천수를 바치는 듯한 모습의 동상과, 그 위로는 멋진 스테인드글라스 천정이 화려하게 만들어져 있다. 여기 포다이스(Fordyce) 온천이 이렇게 가장 럭셔리하고 그래서 이용요금이 비쌌기 때문에, 1960년대 온천문화가 쇠락기로 접어들면서 가장 빨리 망한 것이 아닌가 생각될 정도였다. 개인 마사지실의 모습으로 왼편 테이블에 놓인 것은 처음에는 전화라고 생각을 했는데, 안내판의 설명을 다시 읽어보니 전기를 이용한 마사지 기계라고 한다. 앞서 스팀캐비넷을 봤더니 저 기계도 혹시 전기고문 용도로 사용될 수 있었겠다는 생각이...^^ 여자 탈의실인데 당시 상류층이 이용을 하던 곳이라 프라이버시를 중요하게 생각했는지, 각각의 작은 방으로 탈의실이 만들어져 있어서 안에서 옷을 다 갈아입고 나올 수 있는 구조로 되어 있었다. 탈의실의 유령...은 아니고, 시키지도 않았는데 저렇게 목만 옆으로 내고 사진을 찍으시겠단다~ 3층으로 올라갔더니 체조연습장같은 마루바닥의 체육관이 만들어져 있었다. 요즘도 수영장이나 스파에는 헬스시설이 있는 것 처럼, 러닝머신이나 웨이트트레이닝 등은 없지만 이런 운동으로 땀을 흘릴 수 있는 공간이 옛날 온천에도 있다는 것이 신기했다. 예쁜 타일바닥과 스테인드글라스로 장식된 여성 휴게실에는 그랜드피아노도 있고 당시 상류층 여성들이 입었던 옷들도 전시가 되어 있었다. 건물 안에는 오래된 엘리베이터도 동작을 하고 있어서 한 번 타볼까 하다가, 밀폐된 공간은 피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에 다시 계단으로 걸어서 1층으로 내려갔다. 로비 위에 씌여진 예레미야 30장 17절의 성경말씀 "내가 너를 치료하여 네 상처를 낫게 하리라"를 보니까, 이 곳이 단순한 온천이 아니었음을 또 서두에 언급한 것처럼 바이블벨트에 속하는 미국남부에 와있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었다. 남부에 와있다는 것은 여기 점심을 먹기 위해서 들린 팬케잌 가게에서도 느낄 수 있었다. 안 그래도 영어듣기가 잘 안 되는데 이 동네 사람들이 하는 말은 더욱 알아듣기가 힘들었다. 물론 더 남쪽의 루이지애나 또는 알라바마 등의 '딥사우스(Deep South)'로 가면 사투리가 훨씬 심해진다고는 하지만 말이다. 아침에 지나갔던 노천온천탕이 있는 Arlington Lawn 잔디밭이 길 건너로 보이는데, 공원 간판이 도로쪽으로 향하고 있어서 아침에는 못 봤던 것이었다. 시내 중심가 도로 옆에 세워진 내셔널파크 사인은 다시 봐도 어색하면서 재미있었다. 알링턴 호텔(Arlington Hotel)의 로비에 잠시 들어가서 구경을 했는데, 알 카포네가 단골손님이었고 4명의 미국 현직 대통령이 숙박했던 장소답게 화려하기는 했지만, 역시 쇠락한 분위기가 느껴져서 밤이 되면 유령이 나오기에 딱 좋은 호텔이라는 생각을 하며, 우리가 숙박했던 호텔로 돌아가서 차를 몰고 뒷산으로 올라갔다. 국립공원 영역에 포함되는 산 정상에 이런 전망타워가 만들어져 있다는 것이 약간 의외였는데, 1877년부터 나무로 만든 전망대가 서있던 자리에 1982년에 지금의 높이 216피트(66 m)의 마운틴타워를 새로 만들었다고 한다. (구글맵으로 위치를 보시려면 클릭) 꼭대기로 올라가기 위해서는 입장료가 있는데, 국립공원 연간회원권을 보여주면 조금 할인이 되었던 기억이다. 오른편 삼거리의 큰 건물이 알링턴 호텔이고, 거기서 남쪽으로 좁고 긴 배스하우스로우(Bathhouse Row)가 이어지고, 그 끝에 큰 성같이 서있는 옛날 육군/해군 종합병원(Army & Navy General Hospital) 건물이 보인다. 제일 꼭대기 야외 전망대에서는 360도 풍경을 감상할 수 있는데, 바람이 아주 상쾌했던 것이 사진으로도 느껴진다. 아내가 두 번의 대륙횡단 여행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장소들 중의 한 곳으로 꼽았던 남부 아칸소 주의 핫스프링스 국립공원(Hot Springs National Park)... 온천을 하러 다시 꼭 오고싶다고 해서, 만 60세 환갑잔치 대신에 여기 다시 데리고 와주겠다고 했는데, 과연 언제 다시 이 외진 곳을 방문하게 될 지 위기주부도 궁금하다~ 아래층 실내 전망대로 내려오면 잘 만들어진 설명판과 함께 파노라믹뷰로 핫스프링스 지역을 편하게 구경할 수 있다. 아칸소 주는 "The Natural State"라는 별칭답게 사방이 숲이었는데, 이 때가 약간씩 단풍이 들려고 하는 시기였다. 주차장으로 내려가 다시 차에 시동을 걸고 오른편 멀리 보이는 70번 국도를 잠시 거쳐서, 텍사스와 아칸소에만 있는 인터스테이트 30번을 타고 동쪽으로 대륙횡단 이사를 계속했다. 캘리포니아에서부터 시작되는 40번 고속도로를 다시 만나는 주도인 리틀록(Little Rock)에는 주 의사당과 함께 1957년 흑인인권운동의 역사가 있는 Little Rock Central High School National Historic Site 등이 있지만, 모두 생략하고 미시시피 강을 만날 때까지 약 3시간을 쉬지 않고 동쪽으로 계속 달렸다. 아래 배너를 클릭해서 위기주부의 유튜브 구독하기를 눌러주시면 정말 감사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