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폰지, 자신을 미워하지 않다.

조커(2019)

By  | 2019년 11월 12일 | 
환경미화원의 파업으로 인해 고담시에 쥐가 들끓는다는 라디오뉴스가 나온다. 그 뉴스를 배경으로, 훗날 조커가 되는 정병러 청년 아서는 알바를 위해 광대 분장을 하고는 거울을 향해 위의 캡처 사진에 나오는 표정을 지어 보인다. 코믹북 영화사상 가장 논쟁적이라 할 토드 필립스의 '조커'는 그렇게 시작된다. 도입부에서부터 적시되었듯 토드 필립스 영화에서의 조커는 도시의 시궁쥐다. 도시라는 게 생긴 이래 늘 존재해 왔지만, 빈곤과 쇠퇴, 그리고 공적 서비스의 부재가 있기 전까지는 어찌저찌 무마되거나 잘 보이지 않던 존재, 도시를 지탱하던 문명이라는 게 쇠락하기 시작하면서 비로소 가시화된 후 도시의 가장 취약한 부분부터 갉아먹기 시작한 존재이다. 조커라는 시궁쥐는 어쩌면 단순히 혐오의 대상을 넘어 도시

미드소마(2019)

By  | 2019년 10월 2일 | 
아리 에스터의 전작 '유전'이 심령공포물이라는 장르 형식을 빌어 '가족'에 대해서 이야기했다면, 올해 나온 '미드소마'는 슬래쉬 무비의 형식을 일부 차용하여 좀 더 포괄적인 '관계'에 대해 다룬다. 두 영화의 공통점은 극도로 폭력적인 장르 형식을 활용하여, 추상적인 주제를 극단적이며 도발적인 방식으로 그려냈다는 점이다. 장르의 문법을, 그것도 아주 폭력적인 장르를 활용했기 때문에 이야기는 일종의 우화가 되어서 남녀, 가족, 공동체의 문제에 대해서 현실을 다루면서도 현실 이면의 더 포괄적인 이야기를 할 수 있었다. 그래서 영화를 보는 사람들이 어떤 이는 그 폭력성에 질려 넌더리를 치고, 또 어떤 이는 우화에서 적극적인 사회 비판의 메세지를 읽어내며, 경우에 따라서는 영화 속 극단적인 폭력에서 '힐링'을

나이브스 아웃 (2019)

By  | 2019년 12월 9일 | 
한 줄 요약: 라이언 존슨님하가 짱 먹으시면 될 듯함요. 많이들 지적하듯이 라이언 존슨의 '나이브스 아웃'은 느무느무 전통적인 고전 탐정물이다. 너무 전통적이라서 어딘가에 아가사 크리스티가 쓴 원작소설이 있었던 게 아닐까 싶을 정도다. 그런데 관련 장르의 팬들은 다들 알다시피 아가사 크리스티식 탐정물은 영상화가 어렵고, 특히 장편영화로는 쥐약이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책을 읽을 때처럼 느긋한 관객으로서 다양한 인간군상의 두뇌게임을 즐기기에 영화는 훨씬 더 볼거리와 감정이입에 최적화된 매체이기 때문이다. 쉽게 말해, 난롯가에서 읽는 추리소설과 달라서 영화관의 관객들은 90분에서 120분동안 다양한 캐릭터들 중에 누가 범인일까? 에 전력 집중할 수가 없다. 당연히 '다른 것'이 필요하고 그것

겨울왕국2 (2019)

By  | 2019년 11월 25일 | 
1편을 보면서도 래리꼬래리꼬 하는 테마쏭(?)이 참 인상깊다 생각한 정도로, 해당 프렌차이즈에 대한 큰 애정이나 기대는 없는 채 2편을 보았다. 어차피 디즈니인데, 디즈니가 맘 먹고 밀어주는 프렌차이즈인데! 대충 다 재미있고 정치적으로 올바르면서 거부감 안 주고 여러 요소들이 잘 짜여있고 뭐 그렇겠지, 하면서. 2편이 무엇보다 인상깊었던 점은 역시 압도적인 비쥬얼. 3D 애니가 옛날식 씨네마스코프에 조금도 뒤지지 않는 예술적 완성도와 독자적 표현 영역을 정립한지는 사실 꽤 되었는데, 이후로도 계속해서 기술과 표현 면의 발전이 끊이지 않아서 점점 더 위상을 확고히하고 있다. (이제는 오히려 역사와 전통의 2D 애니가 사양길로 들어서고) 3D 애니 표현 기술로 너무 여러 번 놀라고 또 놀라 와서 이

'나우시카' 다시 보기

By  | 2020년 3월 14일 | 
84년작이니까 벌써 40년 가까이 묵은 작품이 된다. 이 작품이 중요한 계기가 되어 설립된 지브리 스튜디오는 일본의 국민 영화사 비슷한 것이 됐고, 그 만큼 이 애니를 만든 이들, 즐긴 이들, 영향받은 이들은 사회의 주류, 기성세대가 되었다. 한때 '나우시카'는 일본에서나 한국에서나 좌파 꼬꼬마들의 새로운 희망이자 상상력의 원천이었는데 말이다. 대략 30년만에 다시 본 감상은 지금 입장에서 참 단순명쾌한 작품이라는 것. 죄없고 순수한 주인공과 주인공의 작은 공동체가 있고, 그들의 주위에는 탐욕과 폭력의 화신인 거대 국가들이 있으며, 자연 내지 소박한 휴머니즘과 함께하는 주인공의 공동체와 달리 외부의 거대 국가들은 문명의 힘으로 자연을, 인간 본성을 거역하여 세상을 멸망으로 몰아넣고 있다. 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