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폰지, 자신을 미워하지 않다.

퍼시픽림, 그랑블루 재개봉판, 이치더킬러

By  | 2013년 7월 30일 | 
1. 아직 덜 컸나 보다. 아니 괴수랑 슈퍼로보또가 싸우는데! 큰 화면에서 건물들이 아작나고 주인공로봇의 추진형 펀치가 괴수의 안면을 정타하며 그들의 필살기가 아이맥스에서, 4D로, 쩌렁쩌렁한 사운드로 울리는데! 거따 대고 '아니 저게 과학적으로 말이 되는 설정이야?', '캐릭터의 깊이와 이중성, 인물의 문학적 아이러니 같은 게 왜 안 나오지?', '드리프트로 인간과 인간이 사유와 기억을 함께했다면 더 큰 갈등과 망상, 인간 존재의 모순 같은 게 있어야 되는 것 아니야?' 이런 의문이 도저히 안 나온다. 그저 주먹 불끈 쥐고 함께 본 사람의 옷자락만 늘어나도록 잡아당길 뿐. 진짜로 벌떡 일어나 소리 빽빽 지르고 화면을 향해 주먹질 해가면서 시끄럽게 영화감상하고 싶다는 생각이 마구마구 들었다. 이건 프로레슬

메텔 없는 삶을 살아야 한다

By  | 2013년 2월 11일 | 
메텔은 철이(테츠로)에게 격동의 소년기를 지탱할 힘을 주었고, 유사 엄마가 되어줌으로써 그로 하여금 유년기의 상실을 이겨낼 수 있게 만들어주었다. 철이가 토악질해놓은 꿈들을 신비로운 미소로 받아주었고, 짧고도 긴 여행을 통해 철이로 하여금 자신의 삶이 의미 있는 모험이라 생각하게 해주었다. 무엇보다도 메텔이 철이에게 베풀어준 큰 은혜는, 때가 됐을 때 그에게서 떠나가 주었다는 부분이다. 철이라는 소년은 메텔을 만나거나 메텔과 헤어짐으로써 남자가 된 것이 아니라, 메텔로부터 버림받았다는 트라우마와 싸움으로써 남자가 된 것이다. TV방영을 위해 축약된 버전이 아닌 현실에서는 철이가 메텔과 헤어지는 과정이 그렇게 단순치 않았을 것이다. 999호를 타고 돌아오는 길에서 철이는 패악을 부리고,

일대종사

By  | 2013년 9월 2일 | 
왕가위의 신작 '일대종사'는 시대에 남은 한 거장이랄까, 장인의 성장기다. 엽문(양조위 분)은 남다른 재능을 지녔되 젊은 시절 삶에 굴곡이 없었던 부잣집 도련님이었다. 그가 어쩌다가 쿵후라는 한 기예를 배웠고, 인생의 봄날 속에서 그 화려함에 취해 동료들과 일종의 춤을 추고(그의 운과 재능이 합쳐져서 그 춤사위는 상당히 두각을 보였나 보다), 현란한 개념의 놀이를 했다. 같은 기예로 한 세월을 풍미한 예전의 거장과 만나고, 그에게서 인정을 받기도 했다. 또한 한창 피어나던 나이에 있던 거장의 딸(궁이, 장쯔이 분)과 한 합을 춤추면서 봄날의 아찔한 경계선을 느끼기도 했다. 넘어서는 안 되기 때문에 짜릿한 금기였는데, 그 가장자리를 몰래 쓰다듬던 시절의 마음은 아마도 그냥 부잣집 젊은이의 장난에 가까웠을

레옹 다시 보기

By  | 2013년 4월 14일 | 
레옹 다시 보기
레옹은 열아홉 살 때의 사랑이 살인으로 귀결된 이후, 사랑 대신 살인을 삶의 에너지로 선택한 중년남자다. 그는 사랑을 나누듯이 살인을 하고, 그 이외의 모든 일상에서는 최소한의 의식주에 만족하는 금욕적인 남자다. 그는 보이지 않는 신을 섬기듯 늘 같은 걸 먹고, 누워 잠자지 않으며 모든 통속적인 일들과 끈적끈적한 관계들에 거리를 둔다. 그는 죽음을 섬기는 수도자이고 프로패셔널한 살인 행위의 구도자이다. 그리고 그런 구도는 그 자신의 말에 의거하건대 열아홉 살 때 좌절된 사랑과 그로 인한 분노에 비롯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에게는 사랑이 죄악이며, 그의 삶은 과거에 그가 감히 누군가를 사랑했다는 죄악에 대해 끊임없이 속죄하는 과정으로 보인다. 마틸다는 2차 성징이 아직 나타나지 않은 어린아이다.

아무르 (2012)

By  | 2013년 1월 6일 | 
아무르 (2012)
영화 보기 전에 소개글 등을 보면서, 아니 저런 내용으로 어떻게 그 러닝타임을 다 채웠을까? 싶었다. '오랫동안 사랑하고 살던 부부 중 한 명에게 반신마비가 오더니 점점 더 심해진다' 라는 한 줄로 요약될 만한 이야기였으니까. 황금종려상을 탈 정도의 영화라면 뭔가 소개되지 않은 다른 이야기가 들어있지 않을까 호기심이 생겼었다. 보고 나니 그렇지 않았고, 또 그렇기도 했다. 두 사람의 이야기는 정말로 저 한 줄에 요약될 수도 있다. 하지만 저기 밋밋한 한 줄에는 또, 예상치 못했던 결들이 켜켜이 묻혀 있기도 했다. 하기야 '로미오와 줄리엣'도 '십대 소년소녀가 눈이 맞아서 부모 반대 무릅쓰고 여러 일을 꾸미다가 둘 다 죽고 만다'로 요약될 수 있는 이야기 아닌가. 단지 내가 몰랐던 건 수십 년을 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