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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프터 라이프 앵그리맨 After Life (2019)

멧가비|2019년 4월 30일

리키 저베이스는 일본 만자이를 떠올리게 하는 구석이 있는 코미디언이다. 내가 기억하는 그의 캐릭터는 대개 정감 가는 바보이거나 눈치 빠른 독설가 둘 중 하나였다. 마치 보케와 츳코미처럼 말이다. 물론 그 두 가지를 동시에 하는 경우도 있었을 것이고. 이 드라마의 저베이스 캐릭터는 기존과 어딘가 다르고 낯설다. 바보가 되어 세상과 부딪히거나 독설가가 되어 바보들을 후려치는 대신, 끝도 없는 우울함에 빠져 세상 전부를 미워하는 심술보 토니. 기존의 저베이스 캐릭터들처럼 무언가 대상을 두고 그에 대해 반응하는 대신 본 것도 못 본 척 하고 억지로 세상을 밀어내며 자기 자신과만 소통하려 애쓰는, 그것마저 그만 두고 자살할 타이밍만 노리고 있는 홀애비 캐릭터다. 그러나 그 와중에도 저베이스 유머를 이

초여름 麥秋 (1951)

초여름 麥秋 (1951)

멧가비|2019년 1월 5일

가족이라는 것이 돌아가는 매커니즘이야 새삼 새로울 게 없는 일이겠다만, 오즈는 언제나 같은 이야기를 하면서도 아주 조금씩의 변주를 통해 가족 안에서 세상을 읽는다. 낡은 것은 남고 새로운 것은 새 그릇을 찾아 떠난다. 그것이 생로병사이고 삼라만상이다, 라며 말하기 위해 전후(戰後)의 오즈는 카메라를 일본식 다다미 집에 눌러 앉힌 것이다. 이른바 '노리코 삼부작' 중 두 번째 영화. 이 다음인 [동경 이야기]에서는 유일하게 노리코가 가족이 아니다. 하지만 노리코는 가족 아닌 자들을 가족으로 여기고 있다. 때문에 前 시아버지인 류 치슈는 노리코에게, 노리코가 차마 떠나지 못하는 그 가족이 사실은 이미 해체되었다는 것을 확인시켜준다. [만춘]에 이어 딸의 이름은 또 노리코다. 여지없이 하라 세츠코가

만춘 晩春 (1949)

만춘 晩春 (1949)

멧가비|2019년 1월 5일

내가 이 영화에 대해 늘 중첩해 떠올리는 건 오 헨리의 영원한 레퍼런스 [크리스마스 선물]이다. 딸은 혼자 남을 아버지 생각에 독신을 주장한다. 아버지는 딸이 혼기를 놓칠까봐 재혼하겠다는 거짓 선언을 한다. 부녀가 서로를 걱정하고 배겨하는데 그 걱정해주는 방식이 서로에게는 스트레스인 교착 상황. 결국 어느 한 쪽이 자신을 접고 상대방의 배려를 받아들일 때 까지 빙글빙글 쳇바퀴 돌아가는 갈등 뿐. 내가 아버지를 위해 남아주는 게 아닌, 아버지만의 인생을 내가 방해하는가, 라는 질문을 딸 노리코가 스스로 품은 순간 매듭은 풀린다. 오즈 영화니까 결론은 딸이 시집가는 거고, 오즈 영화니까 정작 결혼식 장면은 없는 거고. 영화네느 만고불변 두 가지의 가족 거짓말이 나온다. 첫째, 나는 이제 살 만큼

진흙강 泥の河 (1981)

멧가비|2018년 11월 6일

전후 약 10년. 빈곤은 끝났다는 나라의 선언과 달리, 도시의 제반 시설은 미비하며 사람들의 생활은 그 이상으로 아직 희망없이 치열하기만 하다. 전쟁을 겪은(전범국 국민이라는 자각과 특별한 이념도 없었을 평범한) 사람들에게 10년이란 그 모든 것을 떨치기에 턱없이 부족했으며, 그만큼 마음 안에는 패배감과 허무함, 상실감 등 복잡하게 뒤엉킨 감정들이 남아있을 것이다. 한 소년이 있다. 패전 즈음에 태어나 상흔을 직접 목격하지 않은 순수한 세대다. 소년 노부오는 또 다른 소년 키이치를 만난다. 키이치 역시 전후 세대아니 그에게는 전쟁의 여파가 여실히 남아있다. 아비는 전사하로 홀로 남은 어미는 맨몸으로 내몰린 세상에서 곤궁한 삶이나마 이어갈 요량으로 매춘을 선택했다. 노부오의 가정은 전쟁에서 생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