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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극의 쉐프 南極料理人 (2009)

멧가비|2021년 2월 21일

한국의 성인 남성들에게는 익숙한 이야기일 것이다. 정해진 기간 동안 남자들끼리 폐쇄된 공간에서 제한된 일상만을 반복하는 삶의 형태 말이다. 영화 속 남극 탐사대원들은 군대라고 봐도 좋을 생활을 하고 있다. 그런 형태의 무기질적인 생활에서 음식에 집착하게 되는 것은 너무나 자연스럽다. 춥고 빡세면 배가 고파진다. 하지만 사람의 미각 욕망이라는 것은 또한 너무나 아이러니한 게, 돌고 돌면 그 끝에는 "아는 맛", 가장 근본적인 맛으로 돌아오는 성질을 갖고 있다. 탐사대원들은 니시무라가 매번 공들여 만들어 주는 산해진미를 먹으면서도 결국 라면으로 돌아간다. 영화 속 탐사대원들의 라면에 대한 집착은 귀소본능과 향수병의 상징이다. 인스턴트 라면이 일상적으로 곁에 있는 문화권의 사람들에게는 라면이 엔딩이다.

카모메 식당 かもめ食堂 (2006)

멧가비|2021년 2월 21일

사치에가 핀란드에 식당을 내고 오니기리를 만드는 이유, 일본 사람과 핀란드 사람 모두 아침 식사로 연어를 선호하니까. 사치에는 솔직하고 단순하다. 그런 사람들이 소통에 있어서 종종 놓치는 것이 있다. 소통이란 소통하고자 하는 상대방의 언어로 시작해야 한다는 것이다. 사치에는 물론 핀어(Finnish)를 자유롭게 구사한다. 그런데도 식당에는 파리 한 마리도 없다. 언어라는 것은, 이방인이 로컬과 소통하기 위해 필요한 언어에는 단지 사전적인 의미로서의 언어도 필요하지만, 조금 더 기호화된 언어가 필요하다는 것을 아직 모르기 때문이다. 같은 일본인 미도리를 우연히 만나 [독수리 5형제]라는 '기호'를 통해 관계를 형성한 후에서야 사치에는 깨닫게 되고, 시나몬룰을 굽기 시작하자 로컬 주민들이 식당 문을 열

극한직업 (2019)

멧가비|2019년 4월 16일

소상공인의 애환을 다뤘다던가 하는 텍스트적 의미 해석 같은 건 둘째 문제다. 이 영화의 가장 큰 의의는 필모그래피 전부를 코미디로 채운, 코미디 전문 감독이라고 해도 이제는 좋을 감독의 영화가 드디어 큰 상업적 성취를 이룬 것, 이병헌이라는 감독이 메이저로서 그의 고집으로 채운 차기작을 발표할 토대가 안정적으로 마련되었다는 점이다. 코미디를 사랑한 영화 감독은 그 전에도 있어왔지만 이병헌을 특히 주목해야 하는 것은, 한국 메이저 영화 시장에서 최루성 시퀀스에 단 한 점도 미련 갖지 않는, 즉 불순물 섞이지 않은 순결한 코미디를 추구하는 사람이라는 점 때문이다. 한국의 대중적 영화 취향이란 게 아무리 주접 떨고 자빠지는 이야기에도 마지막은 늘 애틋한 감동으로 마무리 지어야 한다는 강박에서 아직은 벗어

리틀 포레스트 (2018)

리틀 포레스트 (2018)

멧가비|2018년 7월 12일

영화든 드라마든 실사화 작품을 두고 원작과 비교하는 건 무의미 하다고 생각하거니와, 이가라시의 원작을 읽지도 않았으니 하시모토 아이 판 일본 영화를 "원작"으로 간주하기로 한다. 애초에 번듯한 실사 영화가 그것도 두 편으로 나온지가 5년도 채 안 됐는데 의도하지 않아도 머릿속에서 자동으로 비교가 될 수 밖에. "원작"의 가장 좋은 점은 절제다. 도쿄 생활의 실패, 엄마의 가출 등등은 그저 그런 일이 있었다 정도의 배경 설정일 뿐. 현실에서도 가끔 예전 일들이 뜬금없이 머리를 스쳐가지만 그저 그랬었다는 것 뿐 거기에 일희일비 하지 않는 것처럼 말이다. 덕분에 주인공 이치코가 바삐 움직이는 손, 그 손에서 만들어지는 농작물과 음식에, 그 과정에 대단한 집중력이 부여된다. 주인공의 무심한 표정, 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