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물
Posts
50 posts유 캔 카운트 온 미 You Can Count On Me (2000)
새미, 일상과 가정이 부서지지 않게 붙드는 데에 열심인 엄마이자 누나이자 가장. 한 편으로는 인간관계에 있어서 좋은 점만 취하고 불편한 부분은 회피하는 습성도 갖고 있다. 테리, 돈도 없고 거처도 없는 떠돌이, 삼촌이고 새미의 남동생. 이미 부서져있는 인생이지만 닥쳐오는 것들을 피하지 않고 본질 그대로 바라보는 성향은 오히려 새미보다 어른스럽다. 어린 시절 일찌기 조실부모한 갑작스러운 경험이 달라도 너무 다른 남매에게 끼친 영향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살고 있는 마을 만큼이나 변화없이 그럭저럭 흘러갔을 삶에 동생 테리와 지점장 브라이언, 두 남자가 찾아오면서 새미의 일상에 균열이 생긴다. 까다롭게 구는 지점장 브라이언은 개인적인 용무로의 근무지 이탈을 제지해 새미의 반복되는 일상을 불편하게 만들고,
콜럼버스 Columbus (2017)
건축물이라는 것은 누군가에게는 예술이지만 누군가에게는 일상의 공간이다. 건축 예술이 다른 어떤 시각 예술과 다른 점, 예술적인 가치와 별개로 실용성이 끝내준다는 점이다. 순수 예술적인 측면과 산업 디자인의 측면, 둘 모두를 이렇게 고루 가진 분야가 건축 외에 또 뭐가 있더라. 어쨌거나 건축에 대한, 건축의 영화. 두 주인공 진과 케이시는 대척점에 서 있다. 진은 아버지의 회복 혹은 임종을 지켜 볼 며칠이 아까울 정도로 정서적 유대를 느끼지 못하는 아들이지만, 사실 그의 성장배경에서 큰 부분을 차지했을 경제적 여유는 그의 아버지가 아들과의 유대감과 맞바꾼 것이리라. 케이시는 가족 전체를 해체시키고 이제는 딸인 케이시의 인생을 발목잡는 엄마에게의 애증에 묶여 떠나지 못한다. 달라도 너무 다른 둘이 우연
인 디 에어 Up In The Air (2009)
삶에도 해체주의라는 게 있다면 주인공 라이언 빙엄은 삶 해체업자 해체예술가 쯤이라 해도 되겠다. 직업은 회사와 직원의 관계를 끊어내는 역할, 자기 자신은 가족과 사실상 관계를 끊고 지낸지 오래다. 늘 좋은 영화니 좋은 책이니 하는 것들은 언제나 가족과 이웃과의 연결, 유대를 강조할 뿐 "필요한 해체" 혹은 "좋은 해체"에 대해서는 누구도 얘기하지 않는다. 빙엄의 직업은 필요한 해체이며 사생활은 좋은 해체, 내 눈에는 그렇게 보이는데. 지금은 더 이상 복작대는 가족주의로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 동화같은 세상이 아니다. "외로움"이라는 것은 아담의 원죄처럼 이제 현대인이 태어나면서부터 익숙해져야 하는 자아의 일부분일지도 모른다. 그 외로움이라는 것을, 물리치거나 해결해야 할 고민거리로 여기지 않으며 그렇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 そして父になる (2013)
고레에다 영화는 늘 좋다. 이 영화도 고레에다 영화들 중 어느 것에도 뒤지지 않게 좋다. 그래서 제목이 불만이다. 부모자식을 넘어 조금 더 거시적인 휴머니즘에 대한 텍스트로 이해될 수 있는 가능성을, 처음부터 좁혀버리는 단정적인 제목처럼 보여서다. 좋은 영화를 더 좋지 못하게 만드는 좁은 울타리 같은 제목. 두 가족을 등장시키지만 애초에 공평한 비교같은 것은 아니고 처음부터 료타의 성장담이다. 자기 자신도 부모와의 관계에서 컴플렉스를 가지고 있지만, 아니 오히려 그래서인지 인간관계를 자신만의 규격에 맞춰 판단해버리는 인간이다. 하지만 서민적인 배경의 처가를 보자면 그것이 료타의 타고난 본성은 아니라는 것도 알 수 있다. 어느 시점에 무언가를 계기로 결과지향적, 물질지향적인 사람이 되어버린 료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