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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보기 →콜럼버스 Columbus (2017)
건축물이라는 것은 누군가에게는 예술이지만 누군가에게는 일상의 공간이다. 건축 예술이 다른 어떤 시각 예술과 다른 점, 예술적인 가치와 별개로 실용성이 끝내준다는 점이다. 순수 예술적인 측면과 산업 디자인의 측면, 둘 모두를 이렇게 고루 가진 분야가 건축 외에 또 뭐가 있더라. 어쨌거나 건축에 대한, 건축의 영화. 두 주인공 진과 케이시는 대척점에 서 있다. 진은 아버지의 회복 혹은 임종을 지켜 볼 며칠이 아까울 정도로 정서적 유대를 느끼지 못하는 아들이지만, 사실 그의 성장배경에서 큰 부분을 차지했을 경제적 여유는 그의 아버지가 아들과의 유대감과 맞바꾼 것이리라. 케이시는 가족 전체를 해체시키고 이제는 딸인 케이시의 인생을 발목잡는 엄마에게의 애증에 묶여 떠나지 못한다. 달라도 너무 다른 둘이 우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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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우하우스 정확한 뜻과 의미 & 영화 정보 관람평(간략 리뷰) 후기 심미와 기능의 통합, 예술과 공학/기술의 조화 삶과 산업을 위한 예술, 예술의 일상화 · 산업화 1 바우하우스 정확한 뜻과 의미 2 영화 바우하우스 정보 관람평(간략 리뷰) 1 바우하우스 정확한 뜻과 의미 1919년에 개교한 실험적 시각예술종합학교 바우하우스(Bauhaus)는 '(건물 따위를) 건축하다'를 뜻하는 bauen '집, 건물, 건축'을 뜻하는 bau + '집'을 뜻하는 haus 이를 조합한 단어다. 그 이름에서부터 건축이 강조되는 바, 실제로 바우하우스의 지향도 건축에 있었다. 건축의 날개 아래 예술 통합! 예술 통합으로.......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 Everything Everywhere All at Once (2022)
큰 힘에 큰 책임을 지려는 거미 인간도 아니고 모든 멀티버스에서 위험인물로 지목 당한 마법사도 아닌, 에블린, 인생의 모든 선택의 순간에서 실패만을 경험한 누군가의 딸이자 누군가의 어머니이고 또한 누군가의 아내인 자, 바로 에블린. 모두 똑같이 동그란 창문을 달고 있지만 그 안에는 모두 다른 빨래가 돌아가고 있는 빨래방 세탁기들처럼, 에블린은 모두 같은 에블린이지만 모두 다른 인생을 사는 멀티버스를 넘나드는 빨래방 주인, 알파버스에서 점프해 온 알파 에드워드가 기대를 건 바로 그 "이쪽 에블린", 아무 것도 이루지 못했기 때문에 오히려 무한한 가능성을 가졌다는 이유에서다. 대승불교에서 말하는 '잔을 비워야만 채울 수 있다'고 하는 진공묘유 철학과도 상통하는 바가 있는데, 영화는 구태여 불가를 언급하며 정
파친코 PACHINKO (2022)
일제의 만행을 적나라하게 고발한 사회파 장르 같은 건 아니더라. 그보다는 조금 더 보편적인 이민자 소수집단의 가족 멜로였던 점, 확실히 상업적으로는 더 잘 먹히는 플롯이고 원작이 미국에서 얻은 호응 역시 미국의 이민자 역사에 얽힌 감성을 건드렸기 때문일 것이다. 애플 TV 이전 제작사들이 백인들 이야기로 각색하고 싶어했다던 게 무슨 말인지 알겠더라. 물론 그렇다고 이야기가 가진 진정성이 없다는 뜻은 아니고. 한국인의 입장에서 보기에는 식민지 시대를 거친 재일 1세들에 관한 이야기를 하면서 진짜 날카로운 얘기는 피하고 조금 두루뭉술하게 에둘러 간다는 인상을 조금은 받는 게 사실이다. 하지만 드라마에서 느껴지는 어떤 강단이랄까, 단전에 감추고 있는 단단한 힘 같은 것이 느껴져서 다음 시즌에 조금 더 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