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주부의 미국 여행과 생활 V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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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0 posts오늘날 '오케이(Okay, OK)'란 말을 쓰이게 만든 미국 대통령! 마틴 밴 뷰런(Martin Van Buren) 국립사적지
영어권을 넘어 전세계에서 통용되며 한국에서는 'ㅇㅋ'로 쓰기도 하는 이 말은 1839년 3월 23일자 보스턴 지역신문에 최초로 등장했다. 당시 미국 식자층들 사이에서 표현을 발음대로 적은 다음에 이니셜로 약어를 만들어 자기들끼리만 아는 은어(隱語)를 쓰는게 유행이어서 '모두 맞다(all correct)'는 것을 Oll Korrect → O.K.로 표시했던 것이다. 이런 원리로 많은 약어가 등장해서 모두 흔적도 없이 사라졌지만, 유일하게 '오케이(O.K.)'만 지금까지 살아 남아서 만국공통어가 된 것은 바로 이 사람 때문이다. 뉴욕 주도 올버니(Albany)에서 허드슨 강을 건너 남쪽으로 9번 국도를 따라 조금 내려오면 킨더훅(Kinderhook)이란 마을이 나오고, 거기서 옛날 샛길로 빠지면 바로 등장하는 마틴밴뷰런 국립사적지(Martin Van Buren National Historic Site)의 간판을 주차장에 내려서 돌아보고 찍었다. 그는 20달러 지폐의 모델인 앤드루 잭슨(Andrew Jackson)의 부통령으로 재임하며 1836년 대선에서 승리해 미국의 제8대 대통령이 되었는데, 이와 같이 선거를 통해 현직 부통령에서 차기 대통령이 바로 된 경우는 제41대 '아버지 부시(Father Bush)'와 함께 지금까지도 유이(有二)한 케이스란다. 1782년생인 마틴 밴뷰런(Martin Van Buren)은 미국 시민권자로 태어난 최초의 대통령인 동시에 지금까지 유일하게 영어가 모국어가 아닌 대통령이라는 사실이 아이러니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선술집을 운영한 네덜란드 이민자 가정에서 태어나 정규교육을 받지 않고 네덜란드어만 쓰며 자라다가, 독학으로 영어를 익혀서 변호사 시험에 합격한 후 뉴욕주 상원의원과 검찰총장을 거쳐 주지사에 당선되고, 국무장관과 부통령을 거쳐 대통령까지 거머쥔 말 그대로 입지전적 인물이다. 당시 연방정부 셧다운에 늦가을 낙엽까지 뒹굴어서 더욱 적막하게 느껴졌던 길을 따라서 비지터센터까지 일단 먼저 걸어가본다~ (구글맵으로 위치를 보시려면 클릭) 공원 브로셔라도 하나 챙기고 싶었지만 찾을 수가 없었고, 이제는 집의 바깥만 한바퀴 돌며 사진을 찍는 것 외에는 할게 없었다. 빈약한 방문기를 보충하기 위해 홈페이지 내용을 살펴보다가, 첫 페이지에 레인저가 직접 만든 소개 영상이 올라와 있어서 아래 유튜브 링크를 띄운다. 의욕이 넘치는 젊은 국립공원청 직원이 그랜드캐년, 옐로스톤, 그레이트스모키같은 인기있는 국립공원이 아니라... 여기같은 썰렁한 국립사적지로 발령을 받으면 이런 영상을 직접 만들게 된다. "But we all know that the jewel in the crown of the National Park Service is..." 셧다운이 아니었으면 정해진 시간에 무료로 내부 가이드 투어를 할 수 있었겠지만, 이 날의 빠듯했던 일정을 생각하면 오히려 다행이었을 수도...^^ 그는 대통령 재임 중이던 1839년에 이 집과 농장을 구입해서 독일어 '린덴발트(Lindenwald)'로 이름지었는데, 이듬해 재선에 실패하고 1841년에 이사와서 1862년에 79세로 사망할 때까지 살았다. 특히 아깝게 탈락한 1844년의 민주당 경선과 직접 자유토지당(Free Soil Party)을 만들어 출마했던 1848년 대선의 선거본부로 사용되기도 해서, 미국 정치사의 중요한 장소였던 이 집 거실의 사진이 안내판에 보인다. 특이한 타워를 포함한 집의 뒤쪽 부분은 1849-50년 동안에 증축된 것으로, 그 결과 모두 36개나 되는 방을 가진 대저택이 되어서, 4명의 아들 부부와 손주들 및 다수의 하인들이 모두 함께 거주하기도 했단다. 이 집도 그의 사후에 아들들이 매각해서 다른 소유자들을 거쳤지만 전체적인 골격은 유지되었고, 1974년에 국립사적지로 지정되며 연방정부가 인수해서 옛모습으로 내외부를 완전히 복원을 한 것이란다. 마틴 밴 뷰런은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생소한 이름이지만, 앤드루 잭슨과 함께 현재의 미국 민주당(Democratic Party)을 1828년에 창설했고, 오늘날 사용되는 현대적인 선거 캠페인의 기초를 닦은 정치사에서는 매우 중요한 인물이다. 그의 뛰어난 정치적 수완과 전략 덕분에 아군들은 '작은 마법사(The Little Magician)', 적군들은 '킨더후크의 붉은 여우(The Red Fox of Kinderhook)'라는 별명을 지어 불렀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를 '올드 킨더후크(Old Kinderhook)'라 불렀기에 1840년 재선 캠페인에서 지지자들이 지역마다 'OK 클럽'을 조직하고 슬로건으로 "Vote for OK"를 사용하며 그 단어가 전국적으로 퍼지게 되었다. 하지만 흐지부지 잊혀질 수도 있는 약어를 상대편이 네거티브 공세에 적극 활용하며 그 뜻을 모두에게 각인시켰는데, 잭슨과 밴뷰런이 정규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해서 스펠링을 'Oll Korrect'로 틀리게 쓴다거나, 위의 1840년 신문에 실린 휘그당이 만든 풍자 만화처럼 양쪽 진영이 모두 'OK'란 표기를 적극 활용했기에 오늘날 공용어로 살아남게 되었다. 마지막으로 그는 미국 대통령사에서 또 하나의 기록을 가지고 있는데, 퇴임 후 21년 동안에 제16대 링컨까지 무려 8명이 대통령에 취임하는 것을 보게 된다. 이는 그 기간에 2명이 재임중 병사했고 재선에 성공한 대통령이 아무도 없었기에 가능했다. (2024년말에 100세로 사망한 지미 카터는 퇴임 후 44년이나 생존한 기록을 가지지만 7명의 후임을 지켜봤는데, 그 중 4명이 재선했고 임기 중 사망자도 없었기 때문) 이제 계속해서 허드슨 강을 따라 남쪽으로 달려서 또 다른 뉴욕주 출신의, 이번에는 아주 유명한 대통령의 집을 또 찾아간다. 아래 배너를 클릭해서 위기주부의 유튜브 구독하기를 눌러주시면 정말 감사하겠습니다.^^
눈폭풍으로 10년만의 최대 폭설과 한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암트랙(Amtrak) 기차로 2박3일 뉴욕 여행
정확히 일주일 전인 1월 25일 일요일을 전후로 미국 북동부 지역에 눈폭풍이 몰아쳐서, 버지니아 북부인 우리 동네에도 공식적으로 8.3인치(21cm)의 눈이 내렸고, 이는 '스노우질라(Snowzilla)'란 별명의 역대급 블리자드로 30인치 이상이 쌓였었다는 2016년 이후로 최대 적설량이었단다. 그리고는 낮기온이 영상으로 전혀 올라가지 않는 북극 한파가 지금까지 계속되어서 쌓인 눈들은 모두 그대로 얼어붙었지만, 우리 부부는 이 와중에도 씩씩하게 목요일부터 2박3일로 딸을 만나러 뉴욕 여행을 다녀왔다. 아내가 선견지명으로 미리 예약해놓았던 기차를 타고 말이다! 토요일 오후에 퇴근해서 AWD가 아닌 위기주부의 차에 미리 스노우체인을 해서 차고에 집어 넣은 모습이다. 이 모습을 다시 보니 옛날 추억이 떠올라서 아래의 옛날 사진을 가져와봤다. 같은 자동차에 같은 스노우체인을 감은 16년전 모습으로 휠도 체인도 모두 반짝반짝~^^ (여기를 클릭해 당시 여행기를 보실 수 있음) 새벽 4시에 이미 제설차가 한 번 지나간 도로까지 집앞 진입로(driveway)의 눈을 다 치우고 돌아섰는데, 그 사이에 다시 발자국이 깊게 찍힐 만큼 또 눈이 쌓였다. 그리고는 녹슨 스노우체인만 믿고 꿋꿋하게 사모님 회사로 출발을 했는데, 편도 4차선의 고속도로가 이렇게 완전히 하얗게 덮인 것은 정말 처음 봤다! (이 날 하루종일 덜레스 공항의 대부분 항공편은 결항) 아내를 내려주고 다시 집으로 돌아올 때는 눈이 많이 내렸는데, 우리집 직전의 샛길 이름을 자세히 보면 '스노우힐(Snow Hill)'이다. (오후에 퇴근하는 아내를 픽업해서 다시 올 때는 정말 체인을 하고도 계속 미끄러져서 하마터면 차를 버리고 걸어가야할 뻔 했음) 아침에 돌아와서 바로 눈을 다시 치워야 했고, 낮 12시에 또 눈을 치우려고 나와보니 차량 앞에 블레이드를 장착하고 동네의 눈을 치우는 제설차(plow truck)도 눈이 너무 많이 쌓여서 버벅대고 있었다. 사실 낮부터는 눈이 아니라 단단한 얼음 알갱이가 하늘에서 떨어져서 바로 꾹꾹 눌리며 얼었기 때문에, 만약에 푹신한 눈으로 계속 내렸다면 이번에 적설량이 1피트(30cm)는 쉽게 넘어 갔을거다. 이렇게 세번째로 눈을 치우고 난 다음에야 낮잠을 조금 잘 수 있었고, 오후에 픽업을 나가기 전에 또 치워야 했다. 저녁을 먹고나서 깜깜해진 다음에야 눈이 그친 후에 마지막으로 또 치웠으니까, 이 날 총 5번이나 드라이브웨이를 눈삽으로 치우는 기록을 세웠다. 그리고는 월/화/수요일 3일은 부부가 모두 빙판길을 헤치고 출근을 해서 일했고, 쉬는 날에 맞춰서 함께 휴가를 미리 신청해놓았던 목요일 아침에 배낭 하나만 달랑 챙겨서 기차역으로 가는 전철을 타러 걸어가고 있다. 미국독립 250주년을 기념해 빨강/파랑/하양 조명을 켜놓은 이 통로는 덜레스 국제공항 전철역으로 이어지는데, 지금 좌우 벽에는 허블과 제임스웹 우주망원경으로 찍은 사진들을 전시해 놓았다. 공항 터미널도 똑같은 적청백(赤靑白)의 조명을 밝힌 것을 알 수 있고, 해 뜨기 전의 이른 시각이라서 검푸른 하늘과 붉은 여명 및 선로의 하얀 눈도 마치 일부러 맞춘 느낌이다. 여기서 실버라인을 타고 DC의 메트로센터 환승역에서 레드라인으로 갈아 타서 기차역까지는 1시간 정도가 걸렸다. 정문 위의 유리창으로 미국 의사당 돔이 보이는 유니언 스테이션(Union Station)에 대해서는 여기를 클릭해서 상세한 설명의 방문기를 보실 수 있고, 우리 부부는 미국생활 19년차에 처음으로 이용하는 전미여객철도공사(National Railroad Passenger Corporation), 즉 암트랙(Amtrak) 기차를 타기 위해 대합실로 향했다. 출도착 현황판 제일 위에 우리가 몇 달전에 미리 예매해놓은, 해군 조선소로 유명한 버지니아 뉴포트뉴스(Newport News)에서 출발해 DC와 뉴욕을 거쳐 메사추세츠 보스턴(Boston)까지 가는 Northeast Regional 86번 열차가 정시 출발로 표시되어 있다. (그 다음 뉴욕행 두 편은 취소!) 미동부로 이사를 온 직후에 DC에서 보스턴까지 자동차로 운전하는 것에 대해 글을 올린 적이 있는데, 그래서 이번에는 그에 해당하는 철도노선을 보여드려야 할 것 같은 의무감이 든다. 북동부 회랑(Northeast Corridor, NEC)이라 불리는 DC에서 보스턴까지의 457마일(735km) 철도를 중심축으로 하는 표시된 구역은 하루 2,200대 이상의 열차가 운행되어 미국에서 가장 붐비는 여객 철도 노선이며, 미국의 고속철도에 해당하는 최고속도 약 250km/h의 아셀라(Acela)가 유일하게 운영되는 구간이기도 하단다. 출발 15분 정도를 남겨두고 탑승구가 게이트K라 떠서 와보니 제법 많은 사람들이 이미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었다. 기차표는 미리 예매할 수록 싼 가격에 살 수 있는 시스템이라서 이번에는 자동차 기름값에 왕복 통행료를 합친 비용보다 훨씬 저렴하게 두 명이 뉴욕을 다녀올 수 있었다. 특이한 점은 기차표에 객차 번호나 좌석이 전혀 지정되어 있지 않아서 아무데나 빈 자리에 앉아서 가는 방식이었고, 덩치 큰 백인들을 고려했는지 한국의 무궁화급 완행임에도 불구하고 의자는 KTX 특실보다도 더 컸던 것 같다. 워싱턴DC에서 뉴욕까지의 세부 노선도에 표시된 대부분의 중간역에 정차를 해서 15번 정도 멈췄음에도 3시간반 정도만에 맨하탄 중심부의 펜 스테이션(Penn Station)에 도착을 했다. 도중에 잠깐 위치 앱으로 속도를 확인해보니 시속 125마일(약 200km)로 달리기도 해서 깜짝 놀랐었다! NBA 뉴욕 닉스 농구팀이 홈으로 사용하는 매디슨스퀘어가든(Madison Square Garden, MSG) 경기장 지하의 펜 스테이션에 도착해서 7번가쪽으로 나와보니 오른편 가까이에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과 중앙에 서밋 전망대로 유명한 원밴더빌트 빌딩이 보여서 맨하탄에 도착했음을 실감했다. (구글맵으로 위치를 보시려면 클릭) 집에서 차를 몰고 출발해 정확히 여기까지 도착하는 것과 비교한다면 기차가 1시간반 정도 더 걸리기는 했지만, 운전을 안 해도 되고 맨하탄에서 주차할 걱정을 안 해도 되는 등의 장점이 아주 컸다. 그리고는 북쪽으로 7번가를 따라 걸어서 제설하고 남은 눈덩어리들이 꽁꽁 얼어서 쌓여있는 한겨울의 타임스퀘어를 지나 점심을 예약한 식당을 찾아가는 것으로 말 그대로 '엄동설한(嚴冬雪寒)' 2박3일 뉴욕시 여행을 시작했다. 아래 배너를 클릭해서 위기주부의 유튜브 구독하기를 눌러주시면 정말 감사하겠습니다.^^
올버니(Albany)의 스카일러맨션(Schuyler Mansion) 주립사적지, 뉴욕주 의사당과 엠파이어스테이트 광장
뉴욕주(New York State)는 독립혁명 중인 1777년에 주헌법을 채택했는데, 뉴욕시(New York City)는 이미 영국군에 함락되었기 때문에, 허드슨 강을 따라 북쪽으로 100마일 떨어진 킹스턴(Kingston)에서 주의회가 열려 최초의 주도로 여겨진다. 1783년에 전쟁이 끝나고 뉴욕시가 연방 수도를 겸한 주도가 되었으나, 지리적 형평성과 정치적 견제 및 다시 영국이 침략했을 때의 방어적 취약성 등의 이유로, 1797년부터 주 전역의 대표자들이 모이기에 지리적 중심부인 올버니(Albany)로 주의회가 이전했고, 이후 현재까지 뉴욕주의 행정과 정치의 중심지 자리를 지키고 있다. 북부 뉴욕주 2박3일 여행의 반환점을 돌아 이제 남쪽으로 내려가면서 주도 올버니를 지나게 되었는데, 위기주부가 그 도시에서 처음 찾아간 곳은 미국 '건국의 아버지들(Founding Fathers)' 중의 한 명인 필립 스카일러(Philip Schuyler, 1733~1804)가 살던 집을 보존한 스카일러 맨션 주립사적지(Schuyler Mansion State Historic Site)였다. 토요일 오전 11시의 첫번째 유료투어 시간에 맞춰서 비지터센터로 사용되는 별채 건물을 잘 찾아왔다. (구글맵으로 위치를 보시려면 클릭) '올버니의 아들(Son of Albany)'이라는 글귀가 붙어있는 붉은 벽 앞으로 역시 빨간 옷을 입은 가이드가 보이는데, 실내의 전시를 구경하며 투어의 시작을 기다리는 사람들이 10명 정도였던 것 같다. 그는 1650년대에 네덜란드에서 미국으로 이주한 목수의 후손으로 아버지가 올버니 시장을 역임해서 일찍부터 정치와 군사 분야에 두각을 나타냈다. 독립을 논의한 대륙회의에 뉴욕 식민지 대표로 참석했고, 조지 워싱턴이 최초로 임명한 4명의 소장(Major General)에 포함되어 대륙군 서열 4위에 해당했으며, 전후에는 두 차례 연방 상원의원으로 선출되기도 했다. 스카일러 저택의 뒷문으로 먼저 들어간 가이드가 정문을 열어주기를 기다리는 참석자들 모습으로, 투어 시작 전에 가이드가 어떻게 여기를 알고 찾아왔는지를 사람들에게 물었는데... 뮤지컬 때문이라고 위기주부가 씩씩하게 대답을 했었다.^^ 로비에는 스카일러 부부의 초상화가 좌우로 걸려 있는데, 그의 아내 캐서린 반 랜셀러(Catherine van Rensselaer)는 네덜란드 통치 시절에 거대한 영지를 하사 받아 뉴욕주에서 가장 부유하고 영향력 있던 역시 네덜란드계 렌셀러 가문 출신이었다. 한마디로 당시 뉴욕주의 정치/군사와 토지/자본을 각각 대표하는 양대 명문가의 결합이라 생각하면 된다. 좌측의 주 응접실(Best Parlor)에 있는 가구는 실제 스카일러 부부가 살았을 때 사용하던 진품으로, 물려받아서 계속 사용하던 후손이 스카일러 맨션이 주립사적지로 지정되어 복원하는 과정에서 기증을 한 것이다. 따라서 그 옛날 이 집을 방문했었던 워싱턴, 프랭클린, 매디슨 등등의 수 많은 유명인들이 실제로 저기 앉았던 의자들인 것이다. 무엇보다도 벽에 걸린 그림 속의 남녀가 1780년 12월에 실제 결혼식을 한 장소가 여기라서 위기주부처럼 찾아오는 사람들이 부쩍 늘었다는데... 바로 뮤지컬의 주인공 알렉산더 해밀턴(Alexander Hamilton)과 이 집의 둘쨋딸 엘리자베스 스카일러(Elizabeth Schuyler), 즉 극중 '일라이자'이다. 해밀턴이 워싱턴의 부관으로 뉴저지 모리스타운(Morristown)에서 1780년초 겨울을 보낼 때, 스카일러 장군이 가족과 함께 방문을 해서 그 해 2월에 열린 무도회에서 둘이 만나 사랑에 빠진 것은 뮤지컬 내용과 같지만, 결혼식은 신랑 친구들 라파예트, 로렌스, 멀리건 등이 모두 참석해 뉴욕에서 성대하게 한 것이 아니라, 여기 처가집 거실에서 신부측 식구 10여명만 참석해서 조촐하게 열렸다고 한다. 또 뮤지컬에서는 언니 '안젤리카'가 무도회에서 먼저 해밀턴에게 반하고도, 자신은 가문에 도움이 되는 결혼상대를 찾아야 한다며 동생을 소개해주는 인상적인 장면이 있으나, 실제로 안젤리카는 이미 3년전에 결혼해서 그림처럼 아기도 있는 상태였단다. 그것도 부모님의 반대를 무릅쓰고 영국 출신의 사업가와 야반도주로 결혼을 했다는...ㅎㅎ 결과적으로는 그녀 남편의 사업이 크게 성공해서 그들은 유럽으로 건너가 런던과 파리 사교계에서 유명인이 되었고, 해밀턴과 지속적으로 서신을 주고받는 친밀한 사이였던 것은 맞단다. 건너편의 다른 작은 응접실로 여기도 바닥과 벽지 등이 아주 정성스레 복원이 되어 있다. 이 집은 필립 스카일러 사후에 100여년 동안 다른 주인들을 거치며, 마지막 20년 정도는 수녀들이 운영하는 고아원으로 사용되어 원래의 모습은 완전히 사라졌었지만, 수녀원은 이 집의 중요성을 알고 일반인에게는 팔지 않았었기에 뉴욕주가 1911년에 사들여서 주립사적지로 복원될 수 있었다고 한다. 복원 과정에는 해밀턴 부부의 증손녀가 집에 관한 기록 및 흩어진 가구와 유품 등을 모으는 역할을 했는데, 일례로 프랑스에서 수입한 로마의 풍경 등이 먹물로 그려진 노란색 벽지로 홀과 계단이 장식되어 있었다는 친척들의 기억에 따라서 사진과 같이 노란 벽에 그림을 그리는 식이었다. 뮤지컬에서 안젤리카가 자기 집은 딸만 셋이라고 노래하는 가사가 있지만 실제로 스카일러 부부는 8명의 장성한 자녀를 두었다. (제일 위에 3명이 여자인 것은 맞고 그 밑으로 아들 3명, 그리고 다시 딸 2명) 아마도 우연이겠지만 같은 8개의 의자가 놓여진 식당에는 나머지 다른 자녀의 초상화들이 벽을 돌아가며 걸려 있었다. 맞은편의 작은 방은 서재로 독립전쟁이 끝난 후에 해밀턴이 여기서 공부를 해 변호사가 되었단다~ 일반적으로 '미국 변호사'라 하면 뉴욕주 변호사 시험을 통과해야 하는데, 지금도 주도인 올버니에서 그 시험이 이틀간 치러지기 때문에 법조계에는 더 많이 알려진 도시라 할 수 있다. 2층도 널직한 홀을 가운데 두고 좌우로 각각 2개씩의 방이 있는 단순한 구조로, 집의 정면으로 허드슨 강을 바라보는 동향의 오른쪽 방이 가장 큰 마스터룸이었다. (사진이 없는 4번째 방은 그냥 설명판 등으로만 채워져 있었음) 뭔가 전형적인 미국 할머니 '그래니(granny)' 스타일로 꾸며진 마스터룸의 모습인데, 재미있는 사실은 아침에 들렀던 사라토가 전쟁터에서 항복한 영국군 사령관 존 버고인(John Burgoyne)을 필립 스카일러가 초대해서 이 안방을 숙소로 내주었다고 한다. 자신들의 사라토가 마을 농장과 별장을 일부러 모두 태워버린 자를 집으로 초대한 것에 아내는 매우 화를 냈고, 비록 항복을 했다고는 하지만 적장을 귀빈 대접하는 것에 항의하는 사람들이 몰려들어, 집 주위를 대륙군들이 지키고 있어야 했단다. 이 방에는 당시의 가구가 혹시 남아있는지를 누가 물어봤는데, 저 아기를 재우는 요람이 해밀턴 부부 때부터 대물림 된 것이라고 가이드가 알려주었다. 즉, 19세의 나이로 아버지의 명예를 지키기 위한 결투로 사망한 장남 필립 해밀턴(Philip Hamilton)이 누웠던 요람이라는 뜻으로... 뮤지컬 내용의 거짓과 진실 밝혀보기는 이 날 오후에 맨하탄에서 잠깐 들린 국립기념물 포스팅에서 2탄으로 이어진다. 맞은편은 유일하게 벽지가 없는 방이라 좀 썰렁해 보였고, 여기 저택의 나머지 다른 가구들도 대부분이 올버니 역사학회 등에서 기증받은 18~19세기에 만들어진 나름 가치가 있는 제품들이라 했다. 이름부터 'Bedchamber'인 이 방은 독립전쟁 때는 10명 이상이 잘 수 있는 숙직실로 사용되어, 스카일러 장군의 부관이나 호위병 및 정보원들이 이용을 했단다. 특히 1781년 8월에는 영국 충성파 20명이 그를 납치하거나 암살할 목적으로 저택에 침입한 적이 있는데, 가족들과 2층으로 급히 대피해서 목숨을 건진 적도 있다. 이것으로 2박3일 중 유일한 비지터센터 방문과 투어가 가능했던 주립사적지 구경을 끝내고 올버니에 와서 빠트릴 수 없는 다음 목적지를 찾아갔다. 뉴욕주 의사당(New York State Capitol)은 32년 동안 5명의 건축가가 바뀌면서 1899년에 완공될 당시에 총 2,500만 달러, 현재가치로는 8억 달러의 건축비가 들어서 미국에서 가장 비싼 공공건물이었다 한다. 도로변에 주차를 하고 건물의 정면 모습을 보기 위해 걸어가니 남서쪽으로 넓은 엠파이어스테이트 광장(Empire State Plaza)과 함께 다른 현대식 관공서 건물들이 나왔다. (구글맵으로 위치를 보시려면 클릭) 주청사를 마주보고 있는 나지막한 건물은 주립 박물관 및 도서관 등으로 사용되고, 그 왼편의 무료 전망대가 있는 44층의 코닝타워(Corning Tower)는 높이 180m로 뉴욕시를 제외한 뉴욕주에서 가장 높은 건물이다. 그 앞으로 외계 우주선처럼 보이는 둥근 것은 공연장인데, 위성사진을 보면 정확히 달걀 모양으로 만들어져서 공식적인 이름도 '에그(The Egg)'라 한다. 그리고 오른편으로는 23층의 똑같은 빌딩 4개가 세워져 있는데, 놀라운 점은 이 모든 건물들이 광장 아래의 6층 높이의 지하 구조물로 연결이 되어 있어서 하나의 건축 프로젝트로 만들어졌다는 사실이다. 전망대와 박물관 및 광장과 지하의 몰에 있는 여러 현대미술 작품 등이 구경거리라 하지만 그럴 시간적 여유는 애초에 없었기 때문에, 뉴욕 주청사의 정면 모습만 사진에 담고 차로 돌아가 다음 행선지를 향했다. 최초 설계에서는 건물 중앙에 10층 높이의 타워를 세우고 돔을 씌울 계획이었으나 건물 무게로 지반침하가 일어나 취소되는 바람에, 미국의 50개 주청사들 중에서 중앙 돔이 없는 11개들 중 하나가 되었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백만 달러 계단'이란 별명으로 불리는 웅장한 Great Western Staircase와 화려한 상하원 회의실 등을 평일에 무료 투어로 구경할 수 있다고 하므로, 아주 나중에라도 아내와 함께 다시 올버니를 방문하게 되면 꼭 내부를 둘러볼 생각이다. 아래 배너를 클릭해서 위기주부의 유튜브 구독하기를 눌러주시면 정말 감사하겠습니다.^^
레이캬비크 하르파(Harpa) 콘서트홀, 선보이저, 보너스 마트, 바이킹 핫도그, 이케아... 그리고 그린란드
한국방문과 미국땅인 하와이를 제외하면 위기주부가 20년 가까운 미국생활 동안 해외여행을 한 것은 2017년 스페인, 2019년 페루, 2023년 멕시코, 그리고 이제 여행기를 끝내는 작년의 아이슬란드까지 4번뿐이다. 본 시리즈의 프롤로그 마지막에 아이슬란드 여행이 '해외여행에 대한 흥미'를 다시 일깨우는 경험이었다 표현했지만, 반년이나 지나 글을 마치는 지금은 다시 원래대로 돌아간 듯 하다... 또한 블로그에 여행기를 순서대로 꼼꼼히 쓰는게 추억을 정리하는 역할도 하지만, 다녀와서 숙제를 해야 한다는 부담도 되어 마치 '양날의 검'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문득 떠오른다~ (레이캬비크 전편에서 이어짐) 포개진 두 건물 중에 독특한 유리 외관을 가지고 2011년에 완공된 하르파 콘서트홀/컨벤션센터(Harpa Concert Hall and Conference Centre)를 구경하러 걸어가는 모녀의 뒷모습이다. 건물명 'Harpa'는 악기 하프(harp)의 아이슬란드어인 동시에 고대 노르드 달력에서 여름이 시작하는 첫달의 이름이기도 해서, 긴 겨울이 끝나고 밝은 시기가 오는 것을 의미하며, 특히 착공 이듬해 발생한 아이슬란드 금융위기를 극복하며 건설되어서 부활과 희망을 상징하는 이름으로 공모를 통해 선정되었다 한다. "그럼 첼로 대신에 하프 연주자의 조각이 더 어울리지 않았을까?" (구글맵으로 위치를 보시려면 클릭) 육각형의 주상절리를 형상화한 유리 외벽은 군데군데 다른 색깔의 유리도 있고, 각 덩어리의 내부에 LED 조명이 설치되어서 밤이면 더욱 멋있는 야경을 보여준다고 한다. 특히 위아래가 각각 3면으로 된 길쭉하고 비스듬한 육각 기둥의 12면체를 수직으로 쌓아 올린 것 자체로 지붕의 무게를 감당하는 외벽의 구조체 역할을 하는 것이 인상적이다. 자유롭게 입장할 수 있는 내부 홀에서 보는 모습은 천장의 거울까지 더해져서 더욱 멋진데, 북구의 태양이 낮게 떠서 햇살이 들어올 때는 마치 무지개색의 거대한 만화경(kaleidoscope) 속에 들어간 듯한 느낌이라지만, 이 날은 날씨가 흐려서 그런 장관을 볼 수는 없었다. 공연장을 나와 바닷가를 따라 조금 걸으면 레이캬비크 시의 200주년을 기념해 1990년에 만들어졌다는 조각상인 선보이저(Sun Voyager)가 나온다. 이를 처음 마주하는 여행객이라면 누구나 바이킹의 배나 또는 고래의 뼈를 떠올린다고 하지만, 작가는 태양을 향해 나아가는 '꿈의 배(Dreamboat)'를 형상화했으며, 역시 햇빛이 스테인리스 표면에 반사될 때가 가장 멋있다고... "그런데, 아무리 봐도 포크들을 겹쳐 놓은 것 같단 말이지~" 다시 가장 번화가를 지나 렌트카를 주차해놓은 교회쪽으로 걸어가는데 이렇게 벽화가 그려진 건물들도 제법 볼 수 있었다. 아이슬란드 여행기에 이 귀여운 '분홍 돼지'의 사진이 빠지면 안 될것 같아서, 잠시 들렀던 작은 보너스(Bónus) 마트의 사진도 하나 남겨둔다.^^ 교회앞 광장까지 걸어오는 동안에 많은 레스토랑들을 지나쳤지만, 이제 좀 있으면 비행기 타고 공짜밥 먹고 집에 돌아갈거라 생각하니 굳이 비싼 아이슬란드 식당이 내키지가 않아서, 나름 유명하다는 광장 옆 가판대의 바이킹 핫도그로 간단히 점심을 때우기로 했다. 그런데 주변으로 빈 터들도 많던데, 핫도그를 파는 노점이 여기 하나뿐이라 긴 줄이 만들어져서 어떻게 독점을 누리고 있는지가 또 쓸데없이 궁금했던 기억이 난다. 비록 역광이긴 하지만 할그림스키르캬 첨탑과 그 앞의 레이프에릭손 동상을 핸드폰 줌으로 당겨보니, 오른손으로 움켜 쥔 커다란 도끼가 눈에 확 띄었다. 이제 뭘 더 하나 고민하다가 교회 안에서 파이프오르간 소리가 흘러 나오길래 일단 안으로 들어가 앉아서 생각해보기로 했다. 공연은 아니고 젊은 연주자가 그냥 연습을 하고 있었는데, 위기주부는 자리에 앉자마자 그대로 골아떨어져서 30분 이상 숙면을 취했다는...ㅎㅎ 그 동안에 가이드님은 열심히 검색해서 케플라비크 국제공항 근처에 있는 북아메리카와 유라시아 지각판의 경계에 만들어져 있다는 '행운아 레이프 다리(Leif the Lucky Bridge)'를 마지막으로 들러볼까 검토하셨지만, 일주일간의 빡센 아이슬란드 여행의 마지막 행선지로 레이캬비크 이케아(IKEA)나 설렁설렁 구경하다가 공항으로 돌아가기로 했다. 아주아주 옛날에 한국에 이케아가 거의 알려지지도 않았을 때 홍콩 여행에서 작은 이케아 매장을 들렀던 추억도 떠올랐다~ 노란 '딱정벌레'의 지붕에 가구 박스들을 올려놓은 모습이 왜 이리 귀엽던지... (미국같으면 커다란 F-150 픽업트럭^^) 비록 여기가 스웨덴은 아니지만 같은 북유럽 문화권 나라의 이케아를 방문하니, 제품의 이름들부터 왠지 자연스럽게 느껴지는게 마치 원조(?) 매장을 방문한 듯한 느낌으로 미로를 한바퀴 돌았었다. 그리고는 아주 여유있게 공항쪽으로 출발해서 렌트카를 반납하고 체크인을 하고 게이트를 찾아갔는데, 여기 보이는 D31~D35의 다섯 게이트는 모두 미국의 다른 도시들로 향하는 비행기들만 모아 놓은 곳으로 아주 바글바글했다. 기억이 맞다면 우리 목적지 외에 뉴욕, 보스턴, 시카고, 그리고 올랜도였던 듯... 마치 비행기에 타기도 전에 이미 미국땅에 도착한 느낌이었달까? ㅎㅎ 그 복잡함을 뚫고 사진의 아이슬란데어(Icelandair) 항공기와 같은 기종에 탑승하는 것으로 2025년 우리 가족 3명의 6박7일 아이슬란드 여름휴가가 모두 끝났다~ 마지막으로 창가에 앉았던 아내가 찍은 아래의 사진 한 장만 보너스로 더 올리면... 요즘 누구 때문에 뉴스의 헤드라인을 계속 장식하고 있는 그린란드(Greenland)의 전혀 그린하지 않은 풍경이다. "행여나 정말 미국땅이 되면 한 번 가볼까?" 이상과 같이 아래의 배너를 클릭해서 전체 일정과 경로를 보실 수 있는 프롤로그를 포함한 20부작의 '여행복습' 과제를 모두 마쳤고, 당장은 5월말에 조카의 결혼식 참석을 위해 하와이행 비행기를 탈 예정이긴 하지만... 또 다른 위기주부의 진정한 다음 해외여행의 행선지는 언제 어디가 될 지 전혀 감(感)이 오지 않는다. 아래 배너를 클릭해서 위기주부의 유튜브 구독하기를 눌러주시면 정말 감사하겠습니다.^^
경마장과 문화예술 및 온천으로 유명한 휴양도시 사라토가스프링스(Saratoga Springs)의 진짜 물맛은?
뉴욕주 북부의 사라토가스프링스(Saratoga Springs)는 1863년에 개장해서 유럽의 귀족들까지 찾아오는 미국에서 가장 유명한 경마장이 있고, 곳곳에서 솟아나는 천연 미네랄 샘물을 이용한 온천으로 '스파의 여왕(The Queen of Spas)'이라는 별명을 얻은 미동부의 대표적인 휴양지자 관광도시이다. 또한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와 뉴욕시티 발레단이 매년 여름에 사라토가 공연예술센터 야외 공연장을 거점으로 활동하기 때문에 최근에는 풍부한 각종 문화와 예술을 즐길 수 있는 장소로도 각광을 받고 있단다. 북부 뉴욕주 2박3일 솔로 여행의 둘쨋날 아침에 사라토가 국립역사공원 구경을 끝내고 사라토가스프링스에 도착해서, 시내에서 첫번째로 꼽히는 관광지인 콩그레스 파크(Congress Park) 건너편에 일단 차를 세웠다. 하지만 공원내 역사박물관과 100년 넘은 회전목마 등을 구경하기에는 이 날의 일정이 빠듯했기에 시내 남쪽의 커다란 주립공원에만 집중하기로 했다. 바로 다시 차에 타면서 지나온 브로드웨이(Broadway) 거리를 돌아본 모습으로, 고급 휴양지답게 독특한 부티크 상점과 비싼 레스토랑 및 카페와 술집들이 즐비하다는데... 언젠가는 아내와 함께 여기를 다시 방문할 때가 한 번은 올 것이라는 확신이 들어서 미련없이 출발을 했다. 사라토가스파 주립공원(Saratoga Spa State Park)은 넓은 면적에 골프장과 야외극장 등이 모여있어서 주차장이 여기저기 아주 많은데, 미리 찾아보고 가장 중심쪽에 있는 곳에 주차를 하고 걸어 나왔더니 넓은 잔디밭과 함께 이 곳을 대표하는 '목욕탕' 건물이 제일 먼저 보였다. (구글맵으로 위치를 보시려면 클릭) 1930년대 만들어진 루즈벨트 배스(The Roosevelt Baths)가 이 곳에서 솟는 샘물에 몸을 담글 수 있는 '온천(Spa)'인데, 김 빠지는 이야기를 일단 먼저 하자면... 여기 샘물들은 그냥 차가운 광천수라서 일부러 가열을 하거나 뜨거운 다른 물을 섞어서 온탕을 만든다고 한다. 길거리의 시냇물에서도 김이 모락모락 나던 아칸소 주의 핫스프링스(Hot Springs)같은 모습을 처음에 상상했었지만 사실을 알아보고는 제법 실망했던 기억이다. 그래도 지하 탄산수의 무분별한 개발을 막기 위해 일찌기 1909년에 주정부의 보호구역으로 지정된 후, 뉴욕 주지사에서 대통령으로 당선된 FDR의 지원으로 현재의 많은 건물들이 들어섰으며, 1940년대 중반에 연간 약 20만명이 심장병과 관절염 등을 치료할 목적으로 찾아왔던 전성기를 지나서 1962년에 공식적으로 주립공원으로 지정되었다. 그런데 토요일 오전에 단체로 공원에서 무슨 파자마 데이(Pajama Day)라도 하는지 잠옷바지(?)를 입은 학생들이 보이고 그 부모들도 많이 계셨다. 차를 몰고 들어올 때 자원봉사자같은 분들이 주차안내도 해줘서 무슨 행사가 있구나 짐작은 했는데, 건너편으로는 이렇게 옷을 맞춰서 입고 달리기를 하는 학생들도 볼 수가 있었다. 연회장 등으로 사용된다는 홀오브스프링스(Hall of Springs) 건물의 정면 모습을 사진에 담고 있는데, 왠 여성분이 갑자기 다가와서 빨리 자리에서 비켜라고 알려주어서 걸어온 쪽을 뒤돌아 보니... 어디선가 나타나서 좌우로 도열한 많은 학부모들 사이로 달리기 대회를 하는 학생들이 이리로 뛰어오고 있는 것이었다. 저 선두의 두 명은 키가 거의 머리 하나 차이가 나는데, 위기주부 앞을 동시에 지나쳐서 잔디밭 북쪽 끝에 만들어진 결승선을 향했으나 누가 이겼는지는 확인이 불가했다. 다들 번호표도 달고 자기 학교의 유니폼도 제대로 입고 달리는 것으로 봐서, 이 지역 학교 육상부들의 공식적인 대회가 열리고 있는 모양이었다. 그래서 주립공원 중앙의 역사적 건물들 구경은 이걸로 마쳤고, 이제는 이 곳을 방문한 주목적인 사라토가 샘물의 맛을 보러 갈 차례이다. 주차장으로 돌아와서 이번에는 반대편 숲쪽으로 향하는데, 산책로가 시작되는 곳에 세워진 안내판의 오른쪽에는 여기서 만날 수 있는 동식물에 관한 설명이 있고 나머지 왼쪽의 지도를 확대해 아래에 보여드린다. 현재 위치가 하단 중앙에 별표로 찍혀있고, 물방울 표시가 샘물이 나오는 장소들로 이 지도에만 9곳이 있는데 물맛이 모두 약간씩 다르다고 한다. 그래서 여기는 개인 컵을 들고 다니면서 샘물 맛을 보는 사람들이 많다고 한다. 당시 절정의 노란 단풍길을 걷는 커플의 모습이 아주 평화로워 보이지만... 위기주부는 거의 뛰다시피 걸어 내려가서는 개울가에 있는 여기서 제일 유명한 샘(?)을 첫번째로 찾아갔다. 개울의 한가운데 넙적 둥글한 섬(?)의 가운데에서 분수처럼 높이 솟구치는 물줄기가 사진으로 잘 보이실랑가 모르것다~ 좀 전의 지도에 'Island Spouter'라 표시되어 있던 이 광천(mineral spring)은 그 특이한 모양 때문에 '가이서(Geyser)'로 더 알려져 있고, 그래서 여기 개울의 이름도 가이서크릭(Geyser Creek)으로 불린다. 흘러오는 개울물과 함께 샘물이 분출하는 모습을 세로 동영상으로 찍은 것을 클릭해서 보실 수가 있다. 개울 건너편에서 좀 더 가까이 접근은 가능하지만, 물이 솟아 나오는 바위 위로는 역시 올라갈 수 없기 때문에, 여기 주립공원에서 직접 물맛을 볼 수가 없는 유일한 샘물이다. 그래서 바로 아래쪽에 컵으로 받아먹기 좋도록 잘 만들어 놓은 'Hayes Spring'의 앞으로 왔는데, 물이 떨어져 빠지는 곳의 색깔과 형상을 보는 순간에 마셔보고 싶은 생각이 싹 사라졌다! 물에 녹아 있는 철분과 다른 광물이 많기 때문에 오랜 시간이 지나면서 저렇게 된 것이라서, 그냥 여기는 구경하는 것으로 만족했다. 그래도 여기까지 왔으니 사라토가 샘물맛을 직접 봐야할 것 같아서, 조금은 주변이 깔끔해(?) 보이는 'Polaris Spring'에서 역시 솟아오르는 물을 두 손으로 받아 한모금 마셔 봤는데... 하마터면 그냥 뱉을 뻔할 정도로 비릿하고 이상한 맛이 났다. 다른 사람들의 표현을 찾아보니 그게 금속성의 쇠맛이라고 하며, 피맛과 비슷한다는 의견도 있었다. (드라큘라들이 실제로 계시는 듯^^) 구글맵에는 'Memorial Spring'으로 표시되어 있는 여기도 몇 방울 마셔봤는데, 직전의 충격이 너무 커서 맛이 다른지 어떤지 느낄 수가 없었다. 이 외에도 나트륨이 많아서 짠맛이 나거나, 유황 냄새가 나는 샘물도 있고, 또 의외로 일반적인 생수처럼 미네랄이 거의 느껴지지 않는 곳도 있다지만 '맛알못'인 위기주부가 평가하는게 어불성설인 듯 하여 사라토가 물맛 투어는 그냥 이걸로 마치고 주차장으로 돌아가기로 했다. 아직 육상대회가 끝나지 않았는지 이번에는 주차장을 가로질러서 다른 연령대의 학생들이 또 달리기를 해서, 진행요원의 지시가 있을 때까지 차를 빼지 못하고 기다려야 했다. 그렇다면 뜬금없이 대표사진으로 보여드렸던 시중에 판매되는 사라토가 생수의 맛은 어떨까? 본인이 사먹어 본 적도 없고 사먹을 생각도 없으니 찾아본 내용을 정리해드리며 여행기를 마치도록 하자~ 미국 내 프리미엄 생수 시장에서 확고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는 사라토가 스프링 워터(Saratoga Spring Water)는 위에서 언급한 미네랄들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 그냥 깨끗한(?) 맛이란다~ 이 지역의 깊은 지하수를 끌어 올린 후에 여과하고 탄산도 인위적으로 넣었으며, 최근에는 버몬트 주나 다른 지역에서도 생산을 한다고 하므로, 사라토가스프링스의 유서깊은 샘물 맛이 궁금하다고 이 비싼 파란 유리병을 사서 드실 필요는 없다. 아래 배너를 클릭해서 위기주부의 유튜브 구독하기를 눌러주시면 정말 감사하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