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주부의 미국 여행과 생활 V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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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캬비크의 주상절리 모양의 교회 할그림스키르캬(Hallgrímskirkja)와 유명한 빵집, 그리고 무지개 길

세계에서 가장 북쪽에 위치한 수도인 아이슬란드의 최대 도시 레이캬비크(Reykjavík)는 주변의 온천들에서 솟아나는 수증기 때문에 '연기나는 만(Bay of Smokes)'이란 뜻의 이름이 붙었고, 전체 국민의 2/3에 해당하는 약 25만명이 수도권에 거주하고 있단다. 해를 넘겨서 계속 여행기가 이어지는 2025년 여름휴가 6박7일 아이슬란드 가족여행의 마지막 날은 그 레이캬비크 시내만 구경하고 오후에 케플라비크 국제공항으로 이동해 집으로 돌아가는 비행기만 타면 되는 아주 여유있는 일정이다. 교외의 깔끔한 신도시 지역 에어비앤비 숙소 베란다에서 내다본 흐린 아침 모습이다. 전날 밤까지 레이캬비크 부근에 있는 다른 온천인 스카이라군(Sky Lagoon)을 갈까말까 살짝 고민을 했었지만, 첫날 방문했던 가장 유명한 블루라군으로 충분하다는 생각에 그냥 레이캬비크 시내만 여유있게 둘러보기로 했다. 우리와 함깨 링로드를 따라 섬을 한바퀴 돌았던 렌트카에 묻은 흙먼지가 아스팔트 위에서 더욱 도드라져 보였다. "너도 고생했다~ 오늘 저녁에 집에 돌아가서 샤워하고, 너는 바로 내일부터 또 다른 여행객 태우고 부지런히 달려라..." 20분 정도 걸려서 레이캬비크 중심가에 우뚝 솟은 할그림스키르캬(Hallgrímskirkja)에 도착했다. 1945년에 착공해서 1986년에야 완공되었다는 최고 높이 약 75m의 이 교회는 17세기 아이슬란드의 성직자이자 시인인 할그리무르 페투르손(Hallgrímur Pétursson)을 기려서 명명되었단다. 주상절리를 본딴 외관은 사진으로 하도 많이 봐서 오히려 익숙했는데, 더 놀라운 것은 정문으로 들어가서 본 내부 모습이었다. "내부 인테리어 할 돈이 없었나? 그림도 동상도 스테인드글래스도 없고... 이건 뭐 북유럽 이케아 스타일 교회인가?" 정말 내 생애에 이렇게 깔끔한 큰 교회는 다시 보기 어려울 듯 했다.^^ (구글맵으로 위치를 보시려면 클릭) 그나마 입구쪽에는 무슨 천조각과 파이프오르간이라도 있어서 시야를 둘 곳이 있었는데, 혹시라도 넓은 흰색이나 하얀 빈 공간 등을 무서워하는 순백 공포증(Leukophobia)이 있으신 분이라면 내부는 건너뛰시기 바란다~ 할그림 교회 앞의 광장에는 유럽인 최초로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한 것으로 알려진 탐험가 레이프 에릭손(Leif Erikson)의 동상이 서 있는데, 아이슬란드 의회 '알싱기(Alþingi)'의 설립 1,000주년을 기념해서 1930년에 미국이 만들어서 기증한 것이라 한다. 가이드가 미리 찾아둔 빵집을 찾아 걸어가다가, 빨강과 초록의 보색 대비가 눈에 확 띄는 이 집을 보고, 당시에는 입구의 좌우로 두 마리의 용이 그려져 있길래 왠 중국집인가 했지만, 다시 확인해보니 그냥 햄버거 등을 파는 분식집인데 나름 여기도 장사는 잘 되는 곳 같았다. 우리의 목적지는 바로 그 옆건물로 토요일 오전부터 빵을 사러 들어가려는 사람들로 긴 줄이 벌써 만들어져 있었다. 그런데 이 집의 외관도 낙서들로 정신이 없기는 마찬가지... 지금 보니까 아무 장식도 없던 교회와 대비되어서 더 그렇게 느껴졌는지도 모르겠다~ 레이캬비크에서 꼭 먹어보라고 친구가 알려줘서 딸도 알고 있었다는 'Brauð & Co.' 빵집은 고품질 유기농 재료로 만든 사워도우 빵과 시나몬 롤로 매우 유명하단다. 아내와 딸이 빵을 사는 동안에 먼저 나와서 도로를 건너 빵집의 정면 모습을 제대로 봤더니 낙서보다는 그래피티 벽화라 부를만 했다.^^ 커피는 인근의 다른 카페에서 따로 구입한 후에 우리도 남들처럼 교회쪽으로 돌아가는 길에 나온 작은 놀이터에서 빵과 커피로 늦은 아침을 먹었다. 다시 광장으로 돌아와서 이제 교회의 정면으로 뻗어있는 스콜라뵈르뒤스티구르(Skólavörðustígur)란 긴 이름의 도로를 따라 언덕을 조금 내려가다가 그 길이 보행자 전용으로 바뀌면, 레이캬비크의 유명한 '무지개 길(Rainbow Street)'이 시작된다. 예상대로 2015년 프라이드 페스티벌(Pride Festival) 기간에 처음 임시로 칠해졌다가 사진 찰영의 명소가 되면서 2019년부터는 연중 내내 유지되는 영구적인 랜드마크가 되었단다. 우리는 그냥 좌우의 가게들을 구경하며 천천히 걷고 있는데 이 곳이 포토스팟임을 온몸으로 입증하는 분들이 나타나셨으니... "맞아~ 저 자세는 팔의 옷소매를 걷어 올리는게 포인트였지!" "여성분도 세운 무릎을 두 손으로 감싸 쥐셔야지~" 무지개 길이 살짝 휘어지며 끝나는 곳으로 걸어가서 뒤돌아 볼 때까지, 모델을 바꿔가며 인생샷을 남기는데 진심인 여행객들이었다... 그리고 계속해서 바다쪽으로 걸으면 무슨 큰 동상이 있는 넓은 공원이 나오고 나서 큰 대로를 만나게 된다. 현대적인 디자인의 커다란 건축물 두 개가 마치 포개진 듯한 모습으로 시야에 들어왔는데, 우리의 다음 목적지는 그 오른편에 보이는 유리 건물이었다. 글을 시작할 때는 이 한편으로 아이슬란드 여행기를 끝낼 생각이었지만... 그러려면 아직도 십여장 더 남은 사진들에 일일이 설명을 다는 것만 몇일 더 걸릴 듯 하고, 어차피 해도 넘겼으니 더 끌고 가자는 무의식도 발동해서, 레이캬비크의 남은 풍경과 아이슬란드를 떠나는 모습은 다음 마지막 회에서 계속 이어진다~ 아래 배너를 클릭해서 위기주부의 유튜브 구독하기를 눌러주시면 정말 감사하겠습니다.^^

쉐난도어 국립공원에서 새해 일출을 보고 국립 아시아 미술관에서 열린 '이건희 컬렉션' 특별전을 관람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라는 말이 'Happy New Year'보다 더 많이 들리던 곳에서 새해 일출을 봤다~ 전날 밤에 갈까말까 했었던 한국교회의 송구영신 예배에 참석했다면 한국말 인사를 당연히 많이 받았겠지만, 그냥 버지니아 주의 높은 산속 도로변에서 그런 상황이 벌어진다는 것이 참 재미있었다. 옛날 LA의 그리피스 천문대에서 가족이 일출을 볼 때도 한국분들이 많아서 느낀 적이 있지만, 정말로 미국 어디를 가나 산을 좋아하고 해 뜨는 모습 구경을 좋아하는 민족성은 바뀌지 않는 듯 하다. 2026년 1월 1일 새벽에 집에서 1시간반을 운전해 찾아온 이 곳은 쉐난도어 국립공원의 벅할로우 전망대(Buck Hollow Overlook)이다. 운전해 오면서 차가 몇 대나 먼저 와있을까 맞추기를 했는데, 일출 약 15분전에 도착한 우리가 거의 10대 째로 새해 첫날부터 아내가 내기에서 이겨 남편 돈을 많이 땄다.^^ 산맥의 능선을 따라 공원을 종주하는 스카이라인 드라이브(Skyline Drive)에는 이런 도로변 주차장이 수십개가 있지만, 일출을 보기 위해서는 전망이 동쪽을 향하고 시선을 가리는게 없어야 하기에 미리 조사해보고 여기를 콕 찍어 찾아온 것이다. (구글맵으로 위치를 보시려면 클릭) 신년맞이 컵라면 먹방을 찍으시는 분의 일행이 단체로 타고 오신 밴을 비롯해서 주차된 차량의 절반 이상이 한국분들이 몰고 온 것이었다. 바로 옆의 다른 한국분들과 새해 인사를 나누고 사진을 찍어드리고 나서, 우리 부부의 2026년 첫 커플 사진도 부탁해서 찍었다. 사실 이 때가 예정된 일출 시각인 7시 30분이었지만, 동쪽 멀리는 구름이 짙게 깔려 있어서 하늘은 밝아졌지만 해를 볼 수는 없었다. 하필이면 정확히 해가 올라오는 위치에만 구름이 더 두껍게 있어서, 첫 해를 보려면 제법 더 기다려야겠다고 생각을 하는 순간에... 지평선 위의 구름 사이로 모습을 드러내는 동그란 태양을 마주할 수 있었다! 위기주부가 미동부에 사니까 바닷가 일출을 기대하신 분이 혹시 계실까봐 알려드리면, 워싱턴DC 지역이 의외로 내륙이라서 제대로 된 바다 일출을 볼 수 있는 동쪽의 메릴랜드 오션시티(Ocean City)나 남쪽의 버지니아비치(Virginia Beach)까지 가려면 3~4시간을 운전해야 한다. 그렇게 쉐난도어 국립공원에서 신년 해맞이를 '공짜로' 잘 마치고 (새벽에는 게이트에서 입장료를 받는 직원이 없음), 대부분의 다른 차들은 남쪽의 비지터센터 방향으로 빠졌지만 우리는 바로 왔던 길을 정확히 되돌아 집으로 와서는 함께 떡국을 끓여서 조금 늦은 아침으로 먹었다. 그리고는 내친김에 지난 달에 추위로 계획을 변경해서 못 갔던 전시회를 보기 위해서 전철을 타고 워싱턴DC로 향했다. 내셔널몰에 위치한 국립 아시아 미술관의 Korean Treasures: Collected, Cherished, Shared 특별전은 한국의 국립중앙박물관, 현대미술관, 리움미술관 등에 나누어 소장된 흔히 '이건희 컬렉션'으로 부르는 330점의 기증품을 삼성 그룹의 후원으로 첫번째 해외 전시를 하는 것이란다. 입구로 들어가면 처음 정면으로 마주하는 란 병풍으로 여기 전시회의 주제를 상징하는 작품이다. 그런데 이 박물관에도 미국 국립공원의 쥬니어레인저같은 프로그램이 있는지, 한 소녀가 그림을 보면서 열심히 소책자의 빈 칸을 채우고 있는 모습이다. 그 옆으로 조선의 미를 상징한다는 백자 '달항아리' 실물과 함께 추상화, 정물화, 인물화를 모아 놓은 전시도 인상 깊었다. 두루마리 세로 그림과 작은 가구들, 그리고 술상에 술병과 잔을 올려두고 선비의 사랑방을 재현했다는 설명을 붙인 전시도 있었고, '케데헌'에서 아이돌 시상식 공연무대의 배경 그림으로 등장해서 세계적으로 유명해진 일월오봉도 병풍도 볼 수 있다. 그리고 뭐 당연한 이야기지만 모든 작품의 제목만 한글로 병기되어 있고, 나머지 세부적인 작품 해설은 모두 영어로 씌여있다. 고려 청자 등의 도자기들만 따로 많이 모아 놓은 곳도 있고, 불교와 관련된 불화들과 중앙의 법고대 등도 전시되어 있다. 특별전이 지하 두 개 층에 걸쳐서 전시되어 아시아 미술관의 거의 절반에 가까운 전시공간을 차지하기 때문에 대충 둘러보는데도 시간이 많이 걸렸다. 조선시대 수묵화와 백자들을 모아 놓은 전시실을 지나면, 마지막 전시실에서는 이렇게 현대 한국화가들의 작품들도 볼 수 있으나, 사실 위기주부는 작년 5월에 한국에 다녀온 이야기를 올리며 소개했던 그림을 직접 보러 왔는데 끝까지 찾을 수가 없었다. 나중에 집으로 돌아가는 지하철에서 검색을 해보니... 는 처음 6주만 전시되고 종이 상태에 문제점이 발견되어서 혼자 먼저 한국으로 돌려보내졌단다. 흑흑~ (사진이나 여기를 클릭해서 출처와 함께 전시회에 관한 상세기사를 보실 수 있음) 나머지 전시물들은 워싱턴DC에서 2월 1일까지 공개되고, 그 후 3월부터 7월까지는 시카고미술관에서, 그리고 9월부터 내년 2월까지는 대영박물관으로 장소를 옮기며 전시될 예정이라 한다. 아랫층의 출구쪽에는 처음 입구의 를 떠올리는 형태로 소품들을 전시해 놓아서 '수미상관'의 전체 구성을 만들었다. 4년전의 국립 아시아미술관 방문기를 클릭해서 직접 보실 수 있듯이, 그 때와 비교해 다른 전시들도 완전히 새로웠지만 일일이 소개할 필요는 없을 듯 하고, 지상층에 그냥 비어있던 로비가 이렇게 문게이트 카페(Moongate Cafe)로 변신한게 가장 큰 볼거리였다. 우리도 차 한잔의 여유를 좀 부릴까 했는데 빈자리가 없어서 포기했고, 대신에 내셔널몰 건너편의 국립 자연사박물관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거기도 전시들이 일부 바뀌어서 사진을 좀 찍어서 한 편 써볼까 하다가, 밀린 여행기도 많이 남아있다는 생각에 그냥 대부분 눈으로 구경만 했다. 늘 그렇듯이 2층의 광물과 보석 전시실에서 가장 많은 시간을 보냈는데 '저주의 호프 다이아몬드' 사진은 희망찬 새해 첫 포스팅과 어울리지 않는 듯 해서 건너뛰고, 금값이 사상 최고치를 찍고 있는 현 시국에 맞춰서, 블로그 방문해주신 모든 분들도 운수대통하시라고 미국 자연사박물관의 금덩어리들 사진만 한 장 마지막으로 보여드리며 2026년의 첫번째 글을 마친다~ 아래 배너를 클릭해서 위기주부의 유튜브 구독하기를 눌러주시면 정말 감사하겠습니다.^^

사라토가(Saratoga) 국립역사공원에서 영국군이 항복한 장소, 필립 스카일러 장군의 집, 그리고 기념비

내년 2026년은 필라델피아 인디펜던스홀에서 미국이 공식적으로 영국의 식민지로부터 독립을 선언한 지 250주년(Semiquincentennial)이 되는 해이다. 하지만 미국의 혁명 전쟁(American Revolutionary War)은 1775년 4월 19일의 렉싱턴/콩코드 전투를 그 시작으로 보기 때문에, 이를 포함해 독립전쟁의 가장 중요한 5개의 전투를 기념하는 아래와 같은 우표가 올해 발행됐었다. 제일 윗줄의 Battles of Lexington & Concord는 보스턴 외곽에서 벌어져 현재 Minute Man National Historical Park로 관리되고 있는데, 예전에 주변을 몇 번 지나가기는 했지만 아쉽게도 직접 가보지는 못했다. 같은 해 6월의 벙커힐 전투(Battle of Bunker Hill) 기념비는 2015년에 방문했었고, 셋째줄 1776년 12월의 트랜턴 전투(Battle of Trenton)에 대해서는 수채화로 묘사된 워싱턴이 델라웨어 강을 건넌 곳을 올초에 지나간 적이 있다. (사진은 트랜턴에서 영국군이 주둔하고 있던 막사) 전편에서 보여드렸던 대포의 사진이 들어간 새러토가 전투(Battle of Saratoga)에 대해서는 이제 설명을 드릴 예정이고, 마지막 줄은 사실상 전쟁이 종결된 1781년 10월의 요크타운 전투(Battle of Yorktown)로 3년전에 역시 현장을 들렀다. 여기를 클릭해 보실 수 있는 1부에서 설명드린 두 번의 공격이 모두 실패한 후에, 전장에서 몇 마일 북쪽의 작은 마을로 후퇴했던 존 버고인(John Burgoyne) 소장이 이끄는 영국군이 열흘이 지난 10월 17일에 호레이쇼 게이츠(Horatio Gates) 소장의 대륙군에게 이 자리에서 항복을 하게 된다. 이는 당시 세계를 주름잡던 대영제국의 장군이 통솔하는 5천명 이상의 정규군이 야전에서 항복한 역사상 최초의 사례라 한다. 그것도 다른 유럽의 강대국이 아니라 아메리카 식민지의 반란군에게! 포신에 영국 왕실을 상징하는 왕관과 대문자 'R'이 새겨진 이 대포는, 항복한 영국군의 왕립 포병대로부터 압류한 것의 모조품이라 한다. 당시 30문 이상의 대포를 압류해서 계속 이어진 독립 전쟁에 대륙군이 대부분 사용을 했고, 지금까지 몇 개 남아있는 실물은 다른 박물관 등에 보존되어 있단다. 좌우로 두 개가 원래 설치되었던 모양인데 오른편의 것은 누가 훔쳐갔는지 사라지고 없었다.^^ 기념물의 중앙에 부조로 새겨진 그림에 대해서는 따로 설명할 예정이고, 좌우로 4개의 어록이 동판으로 만들어져 있는데 게이츠 장군이 다음날 의회에 승전보를 알린 문장을 아래에 보여드린다. 꼼꼼히 1부를 읽어보셨다면 아시겠지만 게이츠는 전투 직전에 북부군 사령관으로 부임해 와서, 두 번의 전투 동안에 계속 수비만 주장하며 요새 밖으로 한 발자국도 안 나왔었다... 자신의 상관인 총사령관 조지 워싱턴에 대한 보고는 건너뛰고 바로 대륙의회에 전문을 보낼 때부터 꿍꿍이가 있었던 그는, 지금도 미국에서 가장 받기 어려운 훈장인 의회 황금 메달(Congressional Gold Medal)을 받고 전쟁위원회 위원장을 겸임하게 되자, 워싱턴을 끌어내리고 자신이 총사령관을 하겠다는 야망에 부풀게 된다. 하지만 그러한 콘웨이 음모(Conway Cabal)가 사전에 발각되자 그는 워싱턴에게 직접 사과해야 했고, 자신이 신생 미국의 지도자가 되려던 꿈도 접어야 했다. 커다란 의회 황금 메달을 자랑스럽게 걸고 있는 호레이쇼 게이츠의 초상화지만... 여차저차해서 그는 1780년에 다시 남부군 사령관으로 임명되지만, 그 해 8월 사우스캐롤라이나 캠던(Camden)에서 벌어진 전투에서 수적우위에도 불구하고 잘못된 용병술로 영국군에게 대패하고 혼자 북쪽으로 300 km를 쉬지 않고 줄행랑을 친다. 친분이 있는 의원들의 로비로 군사재판은 면하고 종전때까지 참모직은 유지했지만, 그는 흔히 미국 역사상 최악의 장군들 중의 하나로 항상 언급된다. 허드슨 강을 따라 북쪽으로 이어지는 4번 국도 옆의 여기 사라토가 항복지(Saratoga Surrender Site)를 내려다 보는 저 커다란 집의 주인은 누굴까? 외롭게 서있는 차로 돌아가면서 마지막으로 왼쪽의 안내판을 둘러봤다~ 기념물의 동판은 워싱턴DC의 미의사당 로툰다에 걸려있는 총 8개의 대형 역사화들 중에서, 존 트럼벌((John Trumbull)이 그린 4개 중의 하나인 그림이었다. 사라토가 전투에서 대륙군이 승리한 것을 계기로 영국과 앙숙이던 프랑스가 미국의 독립을 인정하고 동맹을 맺으며, 스페인과 함께 영국에 선전포고를 하면서 독립전쟁은 유럽 강대국들간의 국제전으로 확대되는 '결정적인 전환점'을 맞는다. 게이츠가 그림의 중앙에 서있고 오른편이 대륙군인데, 그 중에 유일하게 민간인 복장으로 등장하는 23번 인물의 집을 이제 찾아간다. 북쪽으로 딱 1 km만 달리면 나오는 필립 스카일러 장군의 집(General Philip Schuyler House)으로 위기주부는 그의 이름을 올해로 10년째를 맞는 뮤지컬 을 예전에 관람하면서 주인공의 장인으로 잠깐 등장해서 처음 알게 되었다. 필립 스카일러는 이 지역 출신의 전임 북부군 사령관으로 버고인의 영국군이 여기까지 남하하는 것을 막지 못한 책임을 지고 물러났지만, 대륙군에 민간인 신분으로 계속 남아서 후임자인 게이츠를 도와서 식량 보급과 민병대 충원 등에 큰 도움을 줬다. 스카일러의 저택은 남쪽으로 35마일 거리인 뉴욕 주도 올버니(Albany)에 있으나, 안내판의 그림처럼 여기를 중심으로 주변의 넓은 땅을 아우르는 자신의 농장을 방문할 때 노란 집에 머물렀다. 그리고 독립전쟁 당시에 이 마을의 이름이 바로 새러토가(Saratoga)였지만, 그 후 1831년에 스카일러빌(Schuylerville)로 마을 이름을 바꿔서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처음 영국군이 마을을 점령했을 때는 여기 스카일러의 집을 본부로 사용했지만, 두 번의 전투가 끝나고 북쪽으로 위험한 후퇴 또는 깔끔한 항복을 놓고 고민할 때, 버고인 장군은 집과 농장의 다른 모든 건물을 불태우라고 직접 명령을 했다. 그래서 지금 보이는 집은 전투가 끝나고 불과 한 달만에 새로 만들어서 지금까지 온전한 상태로 남아있는 것이라 한다. 평소에는 내부도 자유롭게 구경할 수 있다지만, 방문했을 때는 연방정부 셧다운 안내문만 또 읽어야 했다.^^ 버고인과 스카일러의 이야기 및 사라토가 전투의 후일담은 시리즈 다다음편에서 또 잠깐 이어질 예정이다. 사라토가 국립역사공원 둘러보기의 마지막 장소로 영국군이 항복하기 전에 마지막으로 주둔했던 언덕 위에 세워진 사라토가 기념비(Saratoga Monument)를 찾아왔다. (구글맵으로 위치를 보시려면 클릭) 언덕에는 프로스펙트 힐 공동묘지(Prospect Hill Cemetery)가 1865년에 먼저 만들어지긴 했지만, 독립전쟁이나 남북전쟁 전사자와는 관련이 없는 개인 소유의 일반 묘지라 한다. 공사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옛날 영국군 참호의 흔적 등이 발견되어서, 여기가 마지막 주둔지였다는 사실이 확인되고 기념비도 이 자리에 들어서게 된 것이다. 여행의 첫날에도 묘지에서 예쁜 노란 단풍을 구경했었는데 둘쨋날도...^^ 이 길을 따라 숲속으로 걸어 들어가면 참호 등을 복원해놓은 빅토리 우즈(Victory Woods)가 나온다고 하지만, 이 날도 그렇게 한가한 일정이 아니라 바로 뒤돌아서 화강암으로 만든 높이 약 47m(155피트)의 오벨리스크로 전투 100주년인 1877년에 초석을 놓고 1883년에 완공된 사라토가 기념비만 한바퀴 빨리 둘러보고 다음 장소로 이동하기로 했다. 동서남북 네 방향 모두 출입문이 만들어져 있고, 그 윗층에는 흔히 조각을 세워놓는 등의 장식을 위해 벽을 파놓는 공간을 뜻하는 '벽감(壁龕, niche)'이 만들어져 있지만, 지금 보이는 남쪽은 그냥 비워져 있다... 오전의 햇살을 정면으로 받는 동쪽 면에는 자신의 농장을 내려다 보는 필립 스카일러 장군의 동상이 이렇게 멋있게 세워져 있는데 말이다. 그리고 정반대 서쪽 벽감에 세워진 동상은 맹활약한 저격수 부대를 이끌었던 대니얼 모건(Daniel Morgan) 대령으로 앞서 설명한 그림에도 흰 옷을 입고 가장 크게 그려져 있다. 그는 글도 거의 모르는 민간인 마차꾼으로 1755년 브래독 원정에 조지 워싱턴과 함께 참여했었고, 이듬해 식민지 영국군 장교를 때린 죄로 499대의 태형을 견뎌낸 것으로 유명하며, 준장으로 독립전쟁을 마친 후에 연방 하원의원에 당선된 입지전적 인물이다. 현재 출입구로 사용되는 북쪽 문에는 어김없이 또 안내문이 붙어있는데, 평소에는 188개의 계단을 따라 꼭대기의 전망대까지 자유롭게 올라갈 수 있단다. 여기 위에는 어쨌거나 북쪽에서 내려온 영국군을 막아낸 사령관인 호레이쇼 게이츠 장군의 동상이 만들어져 있는데, 그렇다면 남쪽의 벽감만 비워져 있는 이유는? 새러토가 전투의 가장 큰 영웅이지만 이름이나 형상을 남길 수는 없는 그 놈을 상징적으로 기리는 것이다! "저기 사시는 분은 대문을 나설 때마다 대포가 자기 집을 조준하고 있는 모습을 보시겠군~" 그런 생각을 하며 주차한 곳으로 돌아가서, 북부 뉴욕주 2박3일 여행 둘쨋날의 다음 목적지인 유서 깊은 휴양도시로 짧게 이동했다. PS. 미국에서는 특별히 독립 250주년이 되는 해라고, 타임스퀘어의 크리스털 볼도 아래와 같이 '250'이란 숫자와 성조기 디자인으로 번쩍이며 새해를 맞이할 예정이랍니다. 2년전에는 맨하탄에서 새해맞이를 했었지만 이번에는 딸의 아파트가 연말내내 비어있음에도 불구하고 어디 못 가고 조용히 집에서 보낼 듯하여 미리 새해 인사를 드립니다. 블로그 방문해주시는 모든 분들 2026년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아래 배너를 클릭해서 위기주부의 유튜브 구독하기를 눌러주시면 정말 감사하겠습니다.^^

세계 최초의 음성 인식 인터랙티브 언어 박물관이라는 워싱턴DC의 플래닛워드(Planet Word) 체험기

오래간만의 워싱턴DC 나들이 제목이 아주 거창한데, 방문한 박물관을 구글AI가 위와 같은 표현으로 정의한 것을 그대로 옮겨 적었다. 원래 계획은 내셔널몰에 다른 뮤지엄의 특별전을 구경하고 레스토랑을 가려고 했지만, 날씨가 너무 추워서 그냥 예약한 식당에서 가까운 이 곳으로 목적지를 급히 변경했다. 그리고 특별히 '체험기'라는 말을 끝에 붙인 이유는 제목의 길이를 좀 늘리기 위함도 있으나, 정말로 단순히 전시물을 보는 것이 아니라 직접 듣고 말하면서 언어와 단어의 중요성과 역할을 재미있게 체험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처음으로 덜레스 국제공항의 직원 주차장에 차를 세워놓고, 실버라인 지하철을 타고 워싱턴DC를 다녀오기로 했다. 새벽에 약간 내린 눈은 그쳤으나 기온은 아침보다 더 떨어져서 위기주부는 외출을 취소할까 생각도 살짝 들었지만, 이 날의 주인공인 다른 한 분이 의지를 굽히지 않으셨다~ 백악관 북동쪽의 맥퍼슨 스퀘어(McPherson Square) 역에서 내려 대각선으로 도로를 건너니, 미국 100달러 지폐의 모델 이름을 딴 프랭클린 공원(Franklin Park)이 나왔는데, 여기는 옛날 백악관에 물을 공급하는 천연 샘터가 있던 자리라 한다. 그리고 가운데 보이는 두 개의 첨탑이 있는 12층 건물은 워싱턴 포스트 신문사의 본사로 DC 내의 오피스 빌딩들 중에서는 제일 높은 64 m의 높이를 자랑한다. (워싱턴DC의 가장 높은 건물 5개의 순위와 실물 사진을 보시려면 클릭) 이 공원은 매년 연말에 무료 조명 축제를 하는 장소로도 유명해서, 왼편에 곰의 모형과 오른편에 실제 얼음으로 깍은 조각도 보인다. 하지만 우리의 목적지는 정면에 보이는 1869년에 DC의 공립학교로 완공된 고풍스런 프랭클린 스쿨(Franklin School) 건물로 이 동네에서는 아주 흔한 국가유적지이다. 20세기 중반에 학교가 이전한 후로는 시의 행정 사무실로 사용되다가 노숙자 쉼터로 전락하기도 했지만, 내외부 복원 및 리모델링을 거쳐서 2020년말에 "언어가 살아 숨 쉬는 박물관" 플래닛 워드(Planet Word)로 다시 문을 열었다. 참고로 공식적으로는 입장료가 없는 무료 박물관이지만 19세 이상은 인당 15불의 기부금을 권장한다고 안내되어 있다. 똘똘 싸매신 사모님이 '말하는 버드나무(Speaking Willow)' 아래에 서있는데, 축축 늘어진 것들의 조명이 켜지면서 각각 다른 언어로 속삭이는 것이 바로 밑에 서있는 사람에게만 들린다. (구글맵으로 위치를 보시려면 클릭) 전세계 여러 문자들의 조각을 모아서 사람의 형상을 만든 것을 잠깐 구경하고는 뒤로 보이는 문으로 들어가니까, 직원이 예약여부를 확인한 후에 엘리베이터를 타고 3층으로 올라가서 차례로 구경하며 걸어 내려오면 된다고 알려주었다. 추운 겨울 비수기라서 우리는 예약 없이 바로 입장이 가능했지만, 체험형 시설이 많은 관계로 여름방학 등의 성수기에는 예약 없이는 입장이 불가할 수도 있단다. 엘리베이터부터 아주 사실적인 책장의 사진으로 삼면이 둘러싸여 있어서, 왠지 횡재한 기분으로 기대감을 가지고 3층에서 뒤돌아 내리니... 세계 각 나라의 옹알이(babbling)를 하는 귀여운 아기들이 제일 먼저 우리를 반겨주었다. 첫번째 전시인 이 는 아기들이 어떻게 언어를 놀랍게 습득하는지를 화면으로 보여주는데... "나도 아기처럼 말을 빨리 배우고 싶다~" 전세계 언어를 조금씩 맛볼 수 있는 로 미국 수화를 포함해서 31개 나라의 말을 배울 수 있는데, 지구본에서 그 나라의 위치가 보이는 테블릿 앞에 서서 배우고 싶은 언어를 선택하는 방식이다. 하와이 섬 앞에서 함께 원주민 말을 배워봤는데, 자음은 적고 모음이 풍부한 그들의 언어에 대해 짧게 가르친 후에 하와이 주어(state fish)인 후무후무누쿠누쿠아푸아아(Humuhumunukunukuapua'a)를 발음하라고 해서 성공하면 지구본에 그 물고기가 잠깐 나타나는 식으로 보상이 주어진다. 한국어는 시원(Shiwon)이란 여성분이 나와서 사람 이름을 부를 때 -아, -씨, -님 등으로 존칭에 따라 다르게 부르는 것을 가르쳐 주었고 (역시 동방예의지국^^), 여름휴가로 다녀왔던 아이슬란드는 전통적으로 이름에 고유한 성씨가 없고 아버지나 어머니의 이름 뒤에 접미사 '-son'(남성) 또는 '-dóttir'(여성)를 붙여서 성처럼 사용한다는 것을 가르쳐주며 자신의 이름을 아이슬란드식으로 말해보라고 했다. 은 약 2천개의 낱말이 양각된 거대한 벽을 스크린으로 해서, 동그란 무지개색 마이크 앞에 앉은 방문객들과 소통하며 영어 단어의 기원을 재미있는 애니메이션으로 설명하고 문답도 주고받는 아주 독특한 전시였다. 그리고 3층 건너편에는 수수께끼와 퍼즐을 풀며 단어 탐정활동을 즐길 수 있는 별도의 유료체험 공간인 도 있지만, 입구만 슬쩍 보고는 아랫층으로 내려갔다. "어머나! 박물관에 왠 노래방이?" 천장에 미러볼까지 반짝이며 돌아가는 전시실은 노래의 가사(lyric)에 숨겨진 언어적 기교와 리듬의 비밀을 알려준다는데, 진짜 노래방처럼 테블릿의 리스트 안에서 부르고 싶은 곡을 선택할 수 있어서, 위기주부가 렛잇고 한 번 불러볼까 하다가 참았다.^^ 옆방에는 한국으로 치자면 '아재개그 배틀'을 각자 화면을 보며 마주 앉아서 할 수 있는 가 있고 거기를 통과하면, 라고 삼면에 산과 들판 및 도시의 풍경이 투사되는 곳이 나왔다. 각 화면의 아래에는 추상 형용사가 씌여진 페인트 통이 있어서, 거기에 붓을 담궜다가 벽에 문지르면 그 부분이 그렇게 바뀌게 된다. 즉 왼쪽의 아내가 지금 온세상을 '비현실적(surreal)'으로  바꾸고 있는 중이다~ 씌여진 형용사도 화면의 일부라서 쉽거나 어려운 동의어로 바뀌기도 하는데, 생전 처음 들어보는 'crepuscular'라는 단어가 나오기도 했다... 2층 중앙의 는 한마디로 마법의 도서관이다. 당시에는 중앙 서가에 표지가 보이도록 전시된 책들 중의 하나를 들어 펼쳐보니까 그냥 가운데 절반만 열리도록 비닐로 싸여 있어서 그냥 다시 제자리에 두었는데, 복습을 해보니 그렇게 펼쳐서 아래쪽 까만 책상 위에 올려놓으면 그 책의 내용이 애니메이션으로 책상 위에 펼쳐진단다! 또 벽의 책장들 중에는 비밀의 문이 있어서 그 안으로 들어가면 시 낭송을 들을 수 있는 'poetry nook'란 아늑한 공간이 나오는 것도 몰랐다. 그러나 다른 하나의 마법은 해봤는데 나지막히 책장 사이에 있는 화려한 액자의 거울들 앞에 서서, 거울 아래에 씌여진 책의 구절을 소리내어 읽으면, 빛이 들어오며 안쪽으로 만들어진 책의 내용을 보여주는 멋진 모형을 볼 수 있는 것이었다. 거의 20년전이 다 되어가는 옛날에 플러튼 도서관에서 딸아이 그림책을 왕창 빌려서 북어드벤쳐(Book Adventure)를 했던 기억이 떠오르며, 어린 아이들과 함께 오면 참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른 거울 속에 나타나는 디오라마로 The Phantom Tollbooth 동화책에서 주인공 마일로가 몸에 시계가 달린 감시견(watchdog)인 톡(Tock)과 함께 단어의 도시 '딕셔너폴리스(Dictionopolis)'의 아자즈 왕이 주최한 연회에 초대된 장면이란다. 모든 것이 지루하고 재미없다고 느끼던 소년이 환상적인 모험을 통해 배움의 즐거움과 세상에 대한 호기심을 깨닫는다는 명작이라는데, 여기 늙은 소년도 번역본을 구해서 읽어볼까? ㅎㅎ 다음의 는 유명한 연설들을 화면으로 본 후에, 그 중의 하나를 텔레프롬프터에 뜨는 원고를 보며 읽는 녹음실이 따로 만들어져 있어서, 무명의 버락 오바마를 전국적인 정치 스타로 떠오르게 했던 2004년 민주당 전당대회 기조연설의 일부를 아내가 따라하고 있는 모습이다. "... there's not a liberal America and a conservative America; there's the United States of America." 1층으로 내려오니까 화면들이 나선형으로 이어지도록 무슨 관제실처럼 거창하게 보이는 방이 먼저 나왔는데, 광고(advertisement)가 어떻게 단어를 교묘히 이용해서 소비자를 유혹하는지에 대한 퀴즈를 풀고, 제일 안쪽에서는 자신만의 광고 카피를 만들어 볼 수도 있는 전시이다. 상단의 색깔로 구분된 영역이 하나의 문제풀이에 이용하는 화면인데, 예/아니오 답변을 고르는 것이 생각보다 어려웠던 기억이다~ 마지막 10번째 전시실인 로 자신이 생각하는 단어의 중요성을 쪽지로 남기거나 화면 속 인물들의 경험담을 앉아서 들을 수 있다지만 가장 재미는 없었다... 뭔가 생각을 정리해보라고 마무리로 배치한 듯 하지만, 초반에 너무 인상깊은 체험형 전시들이 많아서 그런지 막판의 두 곳은 흥미가 급격히 떨어지는 문제가 있었다.^^ 들어왔던 로비와 연결된 기념품 가게로 나오면 플래닛워드(Planet Word) 관람이 모두 끝난다. 이 곳은 초등학교 읽기 교사였던 앤 프리드먼(Ann Friedman)이 설립했는데, 그녀는 미국의 손꼽히는 부동산 재벌의 딸로 사재 2,000만 달러에 마이크로소프트, 블룸버그 등의 기부금을 더해 총 5,500만 달러를 들여 박물관을 만들었단다. 또 그녀의 남편은 퓰리처상을 3번이나 받은 뉴욕타임스의 저명한 칼럼니스트로 세계적 베스트셀러 의 저자인 토머스 프리드먼이라 한다. 뉴욕시에 금융의 중심가인 월스트리트(Wall St)가 있다면, 워싱턴DC에는 정치/로비의 중심가로 불리는 K스트리트(K St)가 백악관 북쪽에 가로로 있다. 그 길을 따라 예약한 레스토랑을 찾아가다가 도로 표지판이 달린 신호등을 올려다 봤는데, 아주 깨끗하고 꼭대기에는 최신 감시 카메라까지 달린 것이 스티커가 덕지덕지 붙어있던 맨하탄의 노란 신호등과 극명한 대비를 보였다. 식당 사진은 여러 '해피아워(Happy Hour)' 메뉴와 함께 맥주를 들고 '해피'한 표정을 짓는 위기주부 모습만 한 장 추억으로 올려 놓는다.^^ 저녁 메뉴에서 스파게티 요리와 맥주도 하나 더 추가해서 나눠 먹고는 다음 주 아내의 생일 축하를 겸한 외식을 마치고 맥퍼슨 지하철역으로 걸어갔다. 제임스 맥퍼슨(James McPherson, 1828~1864)은 육사를 수석으로 졸업하고 불과 35세에 소장(Major General)까지 진급해서, 남북전쟁 당시에 북군의 그랜트와 셔먼에 이어 총사령관이 될 후보였지만, 애틀란타 전투에서 전방시찰 중에 저격을 받아 사망하는 바람에 북군의 전사자들 중에 가장 높은 계급이자 유일한 야전 사령관으로 기록된 비운의 인물이다. 그의 기마상을 새로 장만한 핸드폰의 10배줌으로 당겨 찍었는데, 조명이 전혀 없어서 어둡게 나왔지만 어차피 누군지 관심있는 분도 없을테니 그냥 올려본다~ 텅텅 빈 지하철을 1시간 가까이 타고 덜레스 공항역으로 돌아와 긴 지하통로를 통해서 터미널까지 걸어오니, 커다란 공항의 전경사진 앞에 크리스마스 트리들을 만들어 세워 놓았는데, 특이하게 이 공항은 일반적인 빨간색과 초록색 대신에 항상 저런 파란색으로 매년 장식하는게 유별나다.^^ 본 포스팅이 올해 2025년의 마지막은 아닌 듯 하지만, 떡 본 김에 제사 지낸다고... 한 해 동안 블로그 방문해주신 많은 분들께 감사드리며, 모두 즐겁고 건강한 성탄과 연말 보내시기를 바란다.

스나이펠스요쿨(Snæfellsjökull) 국립공원의 스뵈르툴로프트 등대와 론드랑가르 바위 및 바르두르 석상

누구나 들어본 적이 있는 와 <80일간의 세계일주>의 작가로 SF 문학의 선구자로 불리는 프랑스 소설가 쥘 베른(Jules Verne)의 작품 중에 1864년작 Journey to the Center of the Earth 소설이 있다. 2008년에 같은 영어 제목의 영화로 제작된 것을 기억하는 분도 계실텐데, 원작 소설과 영화에서 주인공 일행이 지하의 '잃어버린 세계'를 찾아 땅 속으로 들어가는 통로가 바로 아이슬란드 섬의 서쪽 끝에 있는 사화산 스나이펠스요쿨(Snæfellsjökull)의 분화구였다고 한다. 오로라 사진으로 유명한 장소 구경을 마치고 계속 스나이펠스네스(Snæfellsnes) 반도의 서쪽을 향해 달린다. 반도의 서쪽 끝부분 전체는 화산의 이름을 따서 스나이펠스요쿨 국립공원(Snæfellsjökuls þjóðgarður)으로 지정되어 있는데, 입구 마을에 아주 멋진 건물의 최신 비지터센터가 만들어져 있었지만, 이미 오후 5시가 넘어서 문을 닫았기 때문에 그냥 지나쳐서 바로 땅끝의 노란 등대를 찾아갔다. 포장도로를 벗어나서 이런 바닷가 용암지대에 만들어진 거친 비포장 도로를, 지프 레니게이드 4WD 렌트카를 몰고 땅끝의 등대를 향해 달리는 것 자체가 재미있었던 기억이다. (구글맵으로 위치를 보시려면 클릭) 영어로는 대부분 오렌지색이라 표현을 하는 것 같지만, 위기주부는 개나리색이라 부르고 싶은 색깔의 정사각 기둥 모양의 이 등대는 두 개의 이름을 가지고 있다는데... 지금 우리처럼 육지에서 가까이 볼 때는 '피난처 등대'라는 뜻의 스칼라스나가비티(Skálasnagaviti)로 불리지만, 이러한 검은 현무암 절벽의 바닷가 위에 우뚝 솟아있어서, 뱃사람들에게는 '검은 절벽 위'를 의미하는 스뵈르툴로프트 등대(Svörtuloft Lighthouse)로 더 널리 알려져 있다. "여기가 아이슬란드 섬의 서쪽 끝이니까, 저 수평선 너머 혹시 그린란드가 보이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이렇게 잘 만들어진 전망대에서 사방을 둘러보며 했었던 기억이 나지만, 구글어스로 확인을 해보니 여기서도 그린란드(Greenland)까지는 직선으로 400 km 이상 떨어져 있는 먼 거리이다. 절벽 아래로는 차갑고 무서운 북대서양의 거친 파도가 깍아놓은 바위 아치와 다양한 새들도 구경할 수 있었는데, 더 멋진 아치와 더 많은 바닷새들이 이후로도 계속 등장하게 된다. 파란 하늘 아래 개나리색 등대의 사진을 다시 보니 다른 두 곳이 떠오르는데, 페루 리마 벽화마을의 스타벅스와 포트워싱턴 공원의 비지터센터 건물이지만, 두 곳 모두 날씨는 흐려서 이런 선명한 대비는 아니었다.^^ 그리고 여기서는 등대의 뒤쪽으로 구름에 가린 모습만 살짝 보여주는 스나이펠스요쿨 화산과 빙하는 다음 목적지의 주차장에서 아래와 같이 깨끗하게 전체를 볼 수 있었다. 얼핏 낮아 보이지만 1,446 m 높이의 약 70만년 전에 폭발해서 만들어진 순상화산으로 정상부에 빙하와 함께 '지하세계'로 이어지는 통로가 있는 것이 특징이다.^^ 여기는 도로변에 넓은 주차장이 만들어져 있어서 커다란 관광버스들도 보였는데, 수도 레이캬비크에서 당일 투어로 스나이펠스네스 반도 투어를 할 때 반드시 들리는 가장 유명한 볼거리가 있기 때문이다. 참, 빙하와 반도의 이름 앞에 공통으로 들어간 '스나이펠스'는 비슷한 영어 발음의 '스노우폴(snow fall)'이란 뜻이란다~ 그 볼거리는 바로 바닷가 절벽 위애 성채처럼 우뚝 솟아있는 론드랑가르(Lóndrangar) 바위로, 방금 관광버스가 떠나서 그런지 전망대를 우리 가족이 독차지할 수 있었다. (구글맵으로 위치를 보시려면 클릭) 사진 아래쪽의 사람들처럼 걸어서 가까이 가면 옛날 건물의 흔적과 함께 높이 75미터의 바위탑을 더 자세히 볼 수도 있는데, 지역 민담에서는 엘프들이 사는 장소라 여겨지기도 하고 유명 시인이 악마를 만난 장소라 묘사하기도 하는 등, 아이슬란드 사람들에게는 신화와 신비로 가득찬 상상력이 깃든 바위산이라 한다. 발 아래를 보니 이끼 낀 바위섬의 한쪽으로만 갈매기들이 가득 앉아 있어서 그들이 울어대는 소리가 아주 시끄러웠다. 이리저리 날아다니는 새들도 엄청 많아서 따라 구경을 하다 반대편으로 시선을 돌리니, 아래쪽에 별도의 전망대가 또 만들어져 있어서 그리로 가보기로 했다. 그리고 절벽의 색깔은 다르지만 거칠고 원시적인 해안선의 풍경이 4년전에 가족여행으로 다녀왔던 북부 캘리포니아 바닷가를 또 떠올리게 한다~ 점점 옛날 여행들의 추억을 먹고 사는 듯...ㅎㅎ 좀 전의 바위섬은 물론이고 우리가 서있던 전망대 바로 아래의 절벽까지, 정말 무수히 많은 바닷새들이 집을 짓고 있었고 또 저녁 식사를 먹는지 계속 바다와 둥지를 오가며 날아다녀 정신이 없을 지경이었다. (동영상도 많이 찍었지만 그냥 생략^^) 대부분은 하얀 갈매기같아 보였지만 특이하게도 바위섬의 아래쪽 1/3 지점을 자세히 보니, 새들도 혹시 흑백차별을 하는지 거기만 펭귄을 좀 닮은 것 같기도 한 까만 새들이 따로 모여 있었다... 이미 저녁 7시가 다 되어가고 있었기 때문에 이걸로 끝이려니 생각했는데, 가이드님께서 국립공원을 바로 벗어난 마을에 하나 더 볼 것이 남았다고 또 네비게이션에 입력하셨다. 슬슬 어두워지기 시작해서 그런지 여기서 처음 봤을 때는 굴뚝이 있는 돌로 만든 집인 줄 알았지만, 오른쪽의 안내판을 열심히 읽은 따님이 이 지역 신화 속에 등장하는 반인반트롤(half-man half-troll)의 거인 바르두르(Bárður)의 석상이라고 알려주었다. 모녀가 함께 높이 6미터의 석상 가운데 통로의 뒤쪽에서 다정한 척 포즈를 취했다.^^ 전설에 따르면 그는 노르웨이 왕의 서자였는데 위협을 피해 가족과 함께 아이슬란드로 이주했으며, 큰 딸이 사고를 당하고 이복형제와 심하게 다툰 후에 스나이펠스요쿨 빙하산으로 올라가 사라졌다 한다. 그 후로 사람들은 바르두르가 이 지역의 수호신인 스나이펠스아스(Snæfellsáss)가 되었다고 믿으며, 어려움이 있을 때 도움을 청하는 전통이 생기게 된다. 돌을 쌓아서 만든 커다란 코와 수염의 묘사가 인상적이었던 이 조형물 자체는 비교적 최근인 1985년에 아이슬란드 조각가가 만들었단다. 찬바람이 점점 더 심해졌지만, 여기도 바닷가 절벽에 구멍 뚫린 바위가 있다고 해서 정말 마지막으로 찾아가보기로 했다. 작은 구멍이 하나 더 있는게, 직접 보지는 못했지만 아치스 국립공원의 '더블오(Double-O)' 아치가 또 떠오른다. (여기를 클릭해 사진은 보실 수 있음) 근처에 사람이 위로 올라갈 수 있는 바닷가 아치도 있다지만, 이제는 정말로 자러 갈(?) 시간이 되어서 2시간반 거리의 예약한 숙소를 찍고 출발했다. 무인 주유소에 들러서 차에 기름을 넣고 신용카드로 결제해야 입장이 가능한 화장실을 이용하고 나와보니, 사모님이 아직도 해가 지지 않은 들판에서 풀을 뜯고 있는 양들의 사진을 찍고 계셨다. "귀여운 아이슬란드의 양들도 내일이면 이별이네..." 레이캬비크 교외의 에어비앤비 숙소에 어김없이 밤 10시가 넘어 도착을 해서, 스팸 구이와 남은 반찬으로 저녁을 맛있게 먹고 여행기 프롤로그에 언급했던 것처럼 남은 맥주 예닐곱 캔을 모두 마시며 즐거운 대화를 나눈 후에, 새벽 1시쯤 잠자리에 들기 직전에 짐을 모두 펼쳐놓은 지저분한 모습이다. 소설 의 주인공들은 아이슬란드 화산의 분화구로 들어가서 모험을 한 후에 분출하는 용암을 타고 다시 땅 밖으로 나오니 이탈리아 남부의 어떤 화산섬이었다고 하지만, 다음날 우리는 뗏목 대신에 비행기를 타고 대서양을 건너 미국으로 돌아간다. 아래 배너를 클릭해서 위기주부의 유튜브 구독하기를 눌러주시면 정말 감사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