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립스카일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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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버니(Albany)의 스카일러맨션(Schuyler Mansion) 주립사적지, 뉴욕주 의사당과 엠파이어스테이트 광장

뉴욕주(New York State)는 독립혁명 중인 1777년에 주헌법을 채택했는데, 뉴욕시(New York City)는 이미 영국군에 함락되었기 때문에, 허드슨 강을 따라 북쪽으로 100마일 떨어진 킹스턴(Kingston)에서 주의회가 열려 최초의 주도로 여겨진다. 1783년에 전쟁이 끝나고 뉴욕시가 연방 수도를 겸한 주도가 되었으나, 지리적 형평성과 정치적 견제 및 다시 영국이 침략했을 때의 방어적 취약성 등의 이유로, 1797년부터 주 전역의 대표자들이 모이기에 지리적 중심부인 올버니(Albany)로 주의회가 이전했고, 이후 현재까지 뉴욕주의 행정과 정치의 중심지 자리를 지키고 있다. 북부 뉴욕주 2박3일 여행의 반환점을 돌아 이제 남쪽으로 내려가면서 주도 올버니를 지나게 되었는데, 위기주부가 그 도시에서 처음 찾아간 곳은 미국 '건국의 아버지들(Founding Fathers)' 중의 한 명인 필립 스카일러(Philip Schuyler, 1733~1804)가 살던 집을 보존한 스카일러 맨션 주립사적지(Schuyler Mansion State Historic Site)였다. 토요일 오전 11시의 첫번째 유료투어 시간에 맞춰서 비지터센터로 사용되는 별채 건물을 잘 찾아왔다. (구글맵으로 위치를 보시려면 클릭) '올버니의 아들(Son of Albany)'이라는 글귀가 붙어있는 붉은 벽 앞으로 역시 빨간 옷을 입은 가이드가 보이는데, 실내의 전시를 구경하며 투어의 시작을 기다리는 사람들이 10명 정도였던 것 같다. 그는 1650년대에 네덜란드에서 미국으로 이주한 목수의 후손으로 아버지가 올버니 시장을 역임해서 일찍부터 정치와 군사 분야에 두각을 나타냈다. 독립을 논의한 대륙회의에 뉴욕 식민지 대표로 참석했고, 조지 워싱턴이 최초로 임명한 4명의 소장(Major General)에 포함되어 대륙군 서열 4위에 해당했으며, 전후에는 두 차례 연방 상원의원으로 선출되기도 했다. 스카일러 저택의 뒷문으로 먼저 들어간 가이드가 정문을 열어주기를 기다리는 참석자들 모습으로, 투어 시작 전에 가이드가 어떻게 여기를 알고 찾아왔는지를 사람들에게 물었는데... 뮤지컬 때문이라고 위기주부가 씩씩하게 대답을 했었다.^^ 로비에는 스카일러 부부의 초상화가 좌우로 걸려 있는데, 그의 아내 캐서린 반 랜셀러(Catherine van Rensselaer)는 네덜란드 통치 시절에 거대한 영지를 하사 받아 뉴욕주에서 가장 부유하고 영향력 있던 역시 네덜란드계 렌셀러 가문 출신이었다. 한마디로 당시 뉴욕주의 정치/군사와 토지/자본을 각각 대표하는 양대 명문가의 결합이라 생각하면 된다. 좌측의 주 응접실(Best Parlor)에 있는 가구는 실제 스카일러 부부가 살았을 때 사용하던 진품으로, 물려받아서 계속 사용하던 후손이 스카일러 맨션이 주립사적지로 지정되어 복원하는 과정에서 기증을 한 것이다. 따라서 그 옛날 이 집을 방문했었던 워싱턴, 프랭클린, 매디슨 등등의 수 많은 유명인들이 실제로 저기 앉았던 의자들인 것이다. 무엇보다도 벽에 걸린 그림 속의 남녀가 1780년 12월에 실제 결혼식을 한 장소가 여기라서 위기주부처럼 찾아오는 사람들이 부쩍 늘었다는데... 바로 뮤지컬의 주인공 알렉산더 해밀턴(Alexander Hamilton)과 이 집의 둘쨋딸 엘리자베스 스카일러(Elizabeth Schuyler), 즉 극중 '일라이자'이다. 해밀턴이 워싱턴의 부관으로 뉴저지 모리스타운(Morristown)에서 1780년초 겨울을 보낼 때, 스카일러 장군이 가족과 함께 방문을 해서 그 해 2월에 열린 무도회에서 둘이 만나 사랑에 빠진 것은 뮤지컬 내용과 같지만, 결혼식은 신랑 친구들 라파예트, 로렌스, 멀리건 등이 모두 참석해 뉴욕에서 성대하게 한 것이 아니라, 여기 처가집 거실에서 신부측 식구 10여명만 참석해서 조촐하게 열렸다고 한다. 또 뮤지컬에서는 언니 '안젤리카'가 무도회에서 먼저 해밀턴에게 반하고도, 자신은 가문에 도움이 되는 결혼상대를 찾아야 한다며 동생을 소개해주는 인상적인 장면이 있으나, 실제로 안젤리카는 이미 3년전에 결혼해서 그림처럼 아기도 있는 상태였단다. 그것도 부모님의 반대를 무릅쓰고 영국 출신의 사업가와 야반도주로 결혼을 했다는...ㅎㅎ 결과적으로는 그녀 남편의 사업이 크게 성공해서 그들은 유럽으로 건너가 런던과 파리 사교계에서 유명인이 되었고, 해밀턴과 지속적으로 서신을 주고받는 친밀한 사이였던 것은 맞단다. 건너편의 다른 작은 응접실로 여기도 바닥과 벽지 등이 아주 정성스레 복원이 되어 있다. 이 집은 필립 스카일러 사후에 100여년 동안 다른 주인들을 거치며, 마지막 20년 정도는 수녀들이 운영하는 고아원으로 사용되어 원래의 모습은 완전히 사라졌었지만, 수녀원은 이 집의 중요성을 알고 일반인에게는 팔지 않았었기에 뉴욕주가 1911년에 사들여서 주립사적지로 복원될 수 있었다고 한다. 복원 과정에는 해밀턴 부부의 증손녀가 집에 관한 기록 및 흩어진 가구와 유품 등을 모으는 역할을 했는데, 일례로 프랑스에서 수입한 로마의 풍경 등이 먹물로 그려진 노란색 벽지로 홀과 계단이 장식되어 있었다는 친척들의 기억에 따라서 사진과 같이 노란 벽에 그림을 그리는 식이었다. 뮤지컬에서 안젤리카가 자기 집은 딸만 셋이라고 노래하는 가사가 있지만 실제로 스카일러 부부는 8명의 장성한 자녀를 두었다. (제일 위에 3명이 여자인 것은 맞고 그 밑으로 아들 3명, 그리고 다시 딸 2명) 아마도 우연이겠지만 같은 8개의 의자가 놓여진 식당에는 나머지 다른 자녀의 초상화들이 벽을 돌아가며 걸려 있었다. 맞은편의 작은 방은 서재로 독립전쟁이 끝난 후에 해밀턴이 여기서 공부를 해 변호사가 되었단다~ 일반적으로 '미국 변호사'라 하면 뉴욕주 변호사 시험을 통과해야 하는데, 지금도 주도인 올버니에서 그 시험이 이틀간 치러지기 때문에 법조계에는 더 많이 알려진 도시라 할 수 있다. 2층도 널직한 홀을 가운데 두고 좌우로 각각 2개씩의 방이 있는 단순한 구조로, 집의 정면으로 허드슨 강을 바라보는 동향의 오른쪽 방이 가장 큰 마스터룸이었다. (사진이 없는 4번째 방은 그냥 설명판 등으로만 채워져 있었음) 뭔가 전형적인 미국 할머니 '그래니(granny)' 스타일로 꾸며진 마스터룸의 모습인데, 재미있는 사실은 아침에 들렀던 사라토가 전쟁터에서 항복한 영국군 사령관 존 버고인(John Burgoyne)을 필립 스카일러가 초대해서 이 안방을 숙소로 내주었다고 한다. 자신들의 사라토가 마을 농장과 별장을 일부러 모두 태워버린 자를 집으로 초대한 것에 아내는 매우 화를 냈고, 비록 항복을 했다고는 하지만 적장을 귀빈 대접하는 것에 항의하는 사람들이 몰려들어, 집 주위를 대륙군들이 지키고 있어야 했단다. 이 방에는 당시의 가구가 혹시 남아있는지를 누가 물어봤는데, 저 아기를 재우는 요람이 해밀턴 부부 때부터 대물림 된 것이라고 가이드가 알려주었다. 즉, 19세의 나이로 아버지의 명예를 지키기 위한 결투로 사망한 장남 필립 해밀턴(Philip Hamilton)이 누웠던 요람이라는 뜻으로... 뮤지컬 내용의 거짓과 진실 밝혀보기는 이 날 오후에 맨하탄에서 잠깐 들린 국립기념물 포스팅에서 2탄으로 이어진다. 맞은편은 유일하게 벽지가 없는 방이라 좀 썰렁해 보였고, 여기 저택의 나머지 다른 가구들도 대부분이 올버니 역사학회 등에서 기증받은 18~19세기에 만들어진 나름 가치가 있는 제품들이라 했다. 이름부터 'Bedchamber'인 이 방은 독립전쟁 때는 10명 이상이 잘 수 있는 숙직실로 사용되어, 스카일러 장군의 부관이나 호위병 및 정보원들이 이용을 했단다. 특히 1781년 8월에는 영국 충성파  20명이 그를 납치하거나 암살할 목적으로 저택에 침입한 적이 있는데, 가족들과 2층으로 급히 대피해서 목숨을 건진 적도 있다. 이것으로 2박3일 중 유일한 비지터센터 방문과 투어가 가능했던 주립사적지 구경을 끝내고 올버니에 와서 빠트릴 수 없는 다음 목적지를 찾아갔다. 뉴욕주 의사당(New York State Capitol)은 32년 동안 5명의 건축가가 바뀌면서 1899년에 완공될 당시에 총 2,500만 달러, 현재가치로는 8억 달러의 건축비가 들어서 미국에서 가장 비싼 공공건물이었다 한다. 도로변에 주차를 하고 건물의 정면 모습을 보기 위해 걸어가니 남서쪽으로 넓은 엠파이어스테이트 광장(Empire State Plaza)과 함께 다른 현대식 관공서 건물들이 나왔다. (구글맵으로 위치를 보시려면 클릭) 주청사를 마주보고 있는 나지막한 건물은 주립 박물관 및 도서관 등으로 사용되고, 그 왼편의 무료 전망대가 있는 44층의 코닝타워(Corning Tower)는 높이 180m로 뉴욕시를 제외한 뉴욕주에서 가장 높은 건물이다. 그 앞으로 외계 우주선처럼 보이는 둥근 것은 공연장인데, 위성사진을 보면 정확히 달걀 모양으로 만들어져서 공식적인 이름도 '에그(The Egg)'라 한다. 그리고 오른편으로는 23층의 똑같은 빌딩 4개가 세워져 있는데, 놀라운 점은 이 모든 건물들이 광장 아래의 6층 높이의 지하 구조물로 연결이 되어 있어서 하나의 건축 프로젝트로 만들어졌다는 사실이다. 전망대와 박물관 및 광장과 지하의 몰에 있는 여러 현대미술 작품 등이 구경거리라 하지만 그럴 시간적 여유는 애초에 없었기 때문에, 뉴욕 주청사의 정면 모습만 사진에 담고 차로 돌아가 다음 행선지를 향했다. 최초 설계에서는 건물 중앙에 10층 높이의 타워를 세우고 돔을 씌울 계획이었으나 건물 무게로 지반침하가 일어나 취소되는 바람에, 미국의 50개 주청사들 중에서 중앙 돔이 없는 11개들 중 하나가 되었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백만 달러 계단'이란 별명으로 불리는 웅장한 Great Western Staircase와 화려한 상하원 회의실 등을 평일에 무료 투어로 구경할 수 있다고 하므로, 아주 나중에라도 아내와 함께 다시 올버니를 방문하게 되면 꼭 내부를 둘러볼 생각이다. 아래 배너를 클릭해서 위기주부의 유튜브 구독하기를 눌러주시면 정말 감사하겠습니다.^^

사라토가(Saratoga) 국립역사공원에서 영국군이 항복한 장소, 필립 스카일러 장군의 집, 그리고 기념비

내년 2026년은 필라델피아 인디펜던스홀에서 미국이 공식적으로 영국의 식민지로부터 독립을 선언한 지 250주년(Semiquincentennial)이 되는 해이다. 하지만 미국의 혁명 전쟁(American Revolutionary War)은 1775년 4월 19일의 렉싱턴/콩코드 전투를 그 시작으로 보기 때문에, 이를 포함해 독립전쟁의 가장 중요한 5개의 전투를 기념하는 아래와 같은 우표가 올해 발행됐었다. 제일 윗줄의 Battles of Lexington & Concord는 보스턴 외곽에서 벌어져 현재 Minute Man National Historical Park로 관리되고 있는데, 예전에 주변을 몇 번 지나가기는 했지만 아쉽게도 직접 가보지는 못했다. 같은 해 6월의 벙커힐 전투(Battle of Bunker Hill) 기념비는 2015년에 방문했었고, 셋째줄 1776년 12월의 트랜턴 전투(Battle of Trenton)에 대해서는 수채화로 묘사된 워싱턴이 델라웨어 강을 건넌 곳을 올초에 지나간 적이 있다. (사진은 트랜턴에서 영국군이 주둔하고 있던 막사) 전편에서 보여드렸던 대포의 사진이 들어간 새러토가 전투(Battle of Saratoga)에 대해서는 이제 설명을 드릴 예정이고, 마지막 줄은 사실상 전쟁이 종결된 1781년 10월의 요크타운 전투(Battle of Yorktown)로 3년전에 역시 현장을 들렀다. 여기를 클릭해 보실 수 있는 1부에서 설명드린 두 번의 공격이 모두 실패한 후에, 전장에서 몇 마일 북쪽의 작은 마을로 후퇴했던 존 버고인(John Burgoyne) 소장이 이끄는 영국군이 열흘이 지난 10월 17일에 호레이쇼 게이츠(Horatio Gates) 소장의 대륙군에게 이 자리에서 항복을 하게 된다. 이는 당시 세계를 주름잡던 대영제국의 장군이 통솔하는 5천명 이상의 정규군이 야전에서 항복한 역사상 최초의 사례라 한다. 그것도 다른 유럽의 강대국이 아니라 아메리카 식민지의 반란군에게! 포신에 영국 왕실을 상징하는 왕관과 대문자 'R'이 새겨진 이 대포는, 항복한 영국군의 왕립 포병대로부터 압류한 것의 모조품이라 한다. 당시 30문 이상의 대포를 압류해서 계속 이어진 독립 전쟁에 대륙군이 대부분 사용을 했고, 지금까지 몇 개 남아있는 실물은 다른 박물관 등에 보존되어 있단다. 좌우로 두 개가 원래 설치되었던 모양인데 오른편의 것은 누가 훔쳐갔는지 사라지고 없었다.^^ 기념물의 중앙에 부조로 새겨진 그림에 대해서는 따로 설명할 예정이고, 좌우로 4개의 어록이 동판으로 만들어져 있는데 게이츠 장군이 다음날 의회에 승전보를 알린 문장을 아래에 보여드린다. 꼼꼼히 1부를 읽어보셨다면 아시겠지만 게이츠는 전투 직전에 북부군 사령관으로 부임해 와서, 두 번의 전투 동안에 계속 수비만 주장하며 요새 밖으로 한 발자국도 안 나왔었다... 자신의 상관인 총사령관 조지 워싱턴에 대한 보고는 건너뛰고 바로 대륙의회에 전문을 보낼 때부터 꿍꿍이가 있었던 그는, 지금도 미국에서 가장 받기 어려운 훈장인 의회 황금 메달(Congressional Gold Medal)을 받고 전쟁위원회 위원장을 겸임하게 되자, 워싱턴을 끌어내리고 자신이 총사령관을 하겠다는 야망에 부풀게 된다. 하지만 그러한 콘웨이 음모(Conway Cabal)가 사전에 발각되자 그는 워싱턴에게 직접 사과해야 했고, 자신이 신생 미국의 지도자가 되려던 꿈도 접어야 했다. 커다란 의회 황금 메달을 자랑스럽게 걸고 있는 호레이쇼 게이츠의 초상화지만... 여차저차해서 그는 1780년에 다시 남부군 사령관으로 임명되지만, 그 해 8월 사우스캐롤라이나 캠던(Camden)에서 벌어진 전투에서 수적우위에도 불구하고 잘못된 용병술로 영국군에게 대패하고 혼자 북쪽으로 300 km를 쉬지 않고 줄행랑을 친다. 친분이 있는 의원들의 로비로 군사재판은 면하고 종전때까지 참모직은 유지했지만, 그는 흔히 미국 역사상 최악의 장군들 중의 하나로 항상 언급된다. 허드슨 강을 따라 북쪽으로 이어지는 4번 국도 옆의 여기 사라토가 항복지(Saratoga Surrender Site)를 내려다 보는 저 커다란 집의 주인은 누굴까? 외롭게 서있는 차로 돌아가면서 마지막으로 왼쪽의 안내판을 둘러봤다~ 기념물의 동판은 워싱턴DC의 미의사당 로툰다에 걸려있는 총 8개의 대형 역사화들 중에서, 존 트럼벌((John Trumbull)이 그린 4개 중의 하나인 그림이었다. 사라토가 전투에서 대륙군이 승리한 것을 계기로 영국과 앙숙이던 프랑스가 미국의 독립을 인정하고 동맹을 맺으며, 스페인과 함께 영국에 선전포고를 하면서 독립전쟁은 유럽 강대국들간의 국제전으로 확대되는 '결정적인 전환점'을 맞는다. 게이츠가 그림의 중앙에 서있고 오른편이 대륙군인데, 그 중에 유일하게 민간인 복장으로 등장하는 23번 인물의 집을 이제 찾아간다. 북쪽으로 딱 1 km만 달리면 나오는 필립 스카일러 장군의 집(General Philip Schuyler House)으로 위기주부는 그의 이름을 올해로 10년째를 맞는 뮤지컬 을 예전에 관람하면서 주인공의 장인으로 잠깐 등장해서 처음 알게 되었다. 필립 스카일러는 이 지역 출신의 전임 북부군 사령관으로 버고인의 영국군이 여기까지 남하하는 것을 막지 못한 책임을 지고 물러났지만, 대륙군에 민간인 신분으로 계속 남아서 후임자인 게이츠를 도와서 식량 보급과 민병대 충원 등에 큰 도움을 줬다. 스카일러의 저택은 남쪽으로 35마일 거리인 뉴욕 주도 올버니(Albany)에 있으나, 안내판의 그림처럼 여기를 중심으로 주변의 넓은 땅을 아우르는 자신의 농장을 방문할 때 노란 집에 머물렀다. 그리고 독립전쟁 당시에 이 마을의 이름이 바로 새러토가(Saratoga)였지만, 그 후 1831년에 스카일러빌(Schuylerville)로 마을 이름을 바꿔서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처음 영국군이 마을을 점령했을 때는 여기 스카일러의 집을 본부로 사용했지만, 두 번의 전투가 끝나고 북쪽으로 위험한 후퇴 또는 깔끔한 항복을 놓고 고민할 때, 버고인 장군은 집과 농장의 다른 모든 건물을 불태우라고 직접 명령을 했다. 그래서 지금 보이는 집은 전투가 끝나고 불과 한 달만에 새로 만들어서 지금까지 온전한 상태로 남아있는 것이라 한다. 평소에는 내부도 자유롭게 구경할 수 있다지만, 방문했을 때는 연방정부 셧다운 안내문만 또 읽어야 했다.^^ 버고인과 스카일러의 이야기 및 사라토가 전투의 후일담은 시리즈 다다음편에서 또 잠깐 이어질 예정이다. 사라토가 국립역사공원 둘러보기의 마지막 장소로 영국군이 항복하기 전에 마지막으로 주둔했던 언덕 위에 세워진 사라토가 기념비(Saratoga Monument)를 찾아왔다. (구글맵으로 위치를 보시려면 클릭) 언덕에는 프로스펙트 힐 공동묘지(Prospect Hill Cemetery)가 1865년에 먼저 만들어지긴 했지만, 독립전쟁이나 남북전쟁 전사자와는 관련이 없는 개인 소유의 일반 묘지라 한다. 공사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옛날 영국군 참호의 흔적 등이 발견되어서, 여기가 마지막 주둔지였다는 사실이 확인되고 기념비도 이 자리에 들어서게 된 것이다. 여행의 첫날에도 묘지에서 예쁜 노란 단풍을 구경했었는데 둘쨋날도...^^ 이 길을 따라 숲속으로 걸어 들어가면 참호 등을 복원해놓은 빅토리 우즈(Victory Woods)가 나온다고 하지만, 이 날도 그렇게 한가한 일정이 아니라 바로 뒤돌아서 화강암으로 만든 높이 약 47m(155피트)의 오벨리스크로 전투 100주년인 1877년에 초석을 놓고 1883년에 완공된 사라토가 기념비만 한바퀴 빨리 둘러보고 다음 장소로 이동하기로 했다. 동서남북 네 방향 모두 출입문이 만들어져 있고, 그 윗층에는 흔히 조각을 세워놓는 등의 장식을 위해 벽을 파놓는 공간을 뜻하는 '벽감(壁龕, niche)'이 만들어져 있지만, 지금 보이는 남쪽은 그냥 비워져 있다... 오전의 햇살을 정면으로 받는 동쪽 면에는 자신의 농장을 내려다 보는 필립 스카일러 장군의 동상이 이렇게 멋있게 세워져 있는데 말이다. 그리고 정반대 서쪽 벽감에 세워진 동상은 맹활약한 저격수 부대를 이끌었던 대니얼 모건(Daniel Morgan) 대령으로 앞서 설명한 그림에도 흰 옷을 입고 가장 크게 그려져 있다. 그는 글도 거의 모르는 민간인 마차꾼으로 1755년 브래독 원정에 조지 워싱턴과 함께 참여했었고, 이듬해 식민지 영국군 장교를 때린 죄로 499대의 태형을 견뎌낸 것으로 유명하며, 준장으로 독립전쟁을 마친 후에 연방 하원의원에 당선된 입지전적 인물이다. 현재 출입구로 사용되는 북쪽 문에는 어김없이 또 안내문이 붙어있는데, 평소에는 188개의 계단을 따라 꼭대기의 전망대까지 자유롭게 올라갈 수 있단다. 여기 위에는 어쨌거나 북쪽에서 내려온 영국군을 막아낸 사령관인 호레이쇼 게이츠 장군의 동상이 만들어져 있는데, 그렇다면 남쪽의 벽감만 비워져 있는 이유는? 새러토가 전투의 가장 큰 영웅이지만 이름이나 형상을 남길 수는 없는 그 놈을 상징적으로 기리는 것이다! "저기 사시는 분은 대문을 나설 때마다 대포가 자기 집을 조준하고 있는 모습을 보시겠군~" 그런 생각을 하며 주차한 곳으로 돌아가서, 북부 뉴욕주 2박3일 여행 둘쨋날의 다음 목적지인 유서 깊은 휴양도시로 짧게 이동했다. PS. 미국에서는 특별히 독립 250주년이 되는 해라고, 타임스퀘어의 크리스털 볼도 아래와 같이 '250'이란 숫자와 성조기 디자인으로 번쩍이며 새해를 맞이할 예정이랍니다. 2년전에는 맨하탄에서 새해맞이를 했었지만 이번에는 딸의 아파트가 연말내내 비어있음에도 불구하고 어디 못 가고 조용히 집에서 보낼 듯하여 미리 새해 인사를 드립니다. 블로그 방문해주시는 모든 분들 2026년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아래 배너를 클릭해서 위기주부의 유튜브 구독하기를 눌러주시면 정말 감사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