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하루에 10시간 동안 차를 몰고 6곳의 목적지를 찾아다녔던, 지난 4월말의 '펜실베이니아 별볼일 없는 국립 공원들' 시리즈의 마지막 편이다. 해질녘 긴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어 첫인상은 얼핏 묘비처럼 보이기도 했던 아래 사진의 공원 간판에는, 앨러게니 포티지 레일로드 국립사적지(Allegheny Portage Railroad National Historic Site)라 씌여 있으니까 기차(train)와 관련된 장소임을 알 수 있었다. 그렇다면 저 테두리의 돌로 만든 아치는 철도가 지나가는 다리의 교각이나 터널의 형상을 나타내고자 했던 것 같다.
내륙에 해발고도까지 높아서 나무에 새순이 이제야 올라오고 있었던 숲속에는 아무 것도 나오지를 않다가...
숲을 지나서 언덕 꼭대기에 도착하니까, 아주 크고 튼튼하게 잘 지어놓은 기차역같은 건물들이 나와서 놀랬다. 전혀 예상하지 않은 장소에서 아주 멋진 기차역을 만나니까... 주변 풍경과 건축 양식은 완전히 다르지만, 15년전에 방문했던 캘리포니아 모하비 사막의 켈소(Kelso)가 떠오른다.
그러나 이 건물들은 기차역은 아니고, 이 곳이 1964년에 국립사적지로 지정이 되며 건설된 비지터센터와 관리사무소 등이 모여있을 뿐이다 (구글맵으로 위치를 보시려면 클릭) 국립공원청 로고가 붙어있는 오른편 안내소로 들어가면, 당연히 기차가 먼저 나오겠지 생각했는데...
입구 중앙에 자리잡고 있는 하얀 물체는 배(boat)였다! 퇴근을 준비하다가 종소리에 놀라 밖으로 나온 털보 레인저가 틀어준 안내영화를 보고 나서야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공원 브로셔의 지도나 그림을 PDF로 못 찾아서 아래에 앞면 전체를 사진으로 찍어서 올리는데, 위기주부가 이렇게라도 보여드려야겠다 생각할 정도로 흥미로운 경우는 매우 드물다.^^
1830년대는 증기기관(steam engine)을 이용한 철도가 건설되기 시작했지만, 대량의 물류운송은 아직도 운하(canal)가 효율적이던 시기였다. 1사분면의 펜실베니아 지도와 같이 필라델피아와 피츠버그를 운하로 바로 연결하는 것은 높은 앨러게니 산맥(Allegheny Mountain)에 가로막혀 불가능하니까, 거기 블레어 고개(Blair Gap)를 넘는 36마일 구간은 운하를 다니는 배를 통째로 차량에 실어서 철도로 산을 넘도록 만든게 1834년에 개통된 Allegheny Portage Railroad란다. (두 수로 사이의 구간을 육로 운송하는 행위가 '포티지(portage)'라는 단어의 뜻)
아주 잘 만들어 놓은 이 디오라마처럼 기관차가 배를 끌고 산으로 올라갔다는 이야기인데... 배가 두동강이 나있다? 처음에는 모형이 만든지 오래되어서 갈라져 떨어졌나 생각했지만,
그게 아니라 철도 차량 길이에 맞춰서 화물선이 분리가 가능하도록 일부러 만든 것이란다! 이렇게 함으로써 두 번이나 짐을 옮겨 싣는 수고를 할 필요없이 전구간 운송이 가능하도록 했다는건데, 어찌보면 현대의 규격화된 컨테이너 화물운송의 원조처럼 보이기도 한다.
물론 비지터센터에는 배를 실은 차량을 '평지에서' 끌었던 기관차도 하나 전시되어 있는데, 우리가 흔히 아는 증기 기관차가 아니라 그냥 보일러에 바퀴를 달아놓은 모습이다. 이 철도의 더 대단한 사실은 밖으로 나가서, 옛날 선로가 지나가는 곳에서 직접 확인하게 되는데, 그 전에 중요한 장소를 설명하는 안내판 하나만 더 보여드린다.
미국 최초의 기차가 지나는 동굴로 약 300미터 길이의 '스테이플 벤드 터널(Staple Bend Tunnel)'도 이 철도와 함께 만들어졌는데, 시리즈 전편에 소개했던 존스타운(Johnstown) 부근에 사진과 같은 모습으로 복원되어 있다고 한다. (창문 밖으로 이 날 위기주부와 함께 수고했던 차가 보임^^)
철도가 놓여진 곳으로 오니까, 미국 토목학회가 지정한 국가유적이라는 의미인 National Historic Civil Engineering Landmark 간판이 먼저 보였다. 그런데 뒤쪽으로 보이는 철도가 복선이다. 단선으로 교차 운행도 가능했을 건데 굳이 복선으로 꼭 만들어야 했던 이유는 혹시 브로셔 그림을 자세히 보신 분이라면 이미 알겠지만,
복선 철도를 덮고 건설된 저 커다란 하얀 건물인 '엔진 하우스(Engine House)'에 있다. 브로셔 사진 제일 아래에 이 노선의 고도 변화를 보여주는 단면도가 있는데, 배를 실은 무거운 기차가 산을 넘기 위해서는 10곳의 경사로마다 이런 엔진실을 만들어서 열차를 밧줄로 잡아 당겨야 했던 것이다!
엔진하우스 내부 복선 철도의 바닥에 피스톤 엔진과 커다란 톱니바퀴가 보이는데, 그냥 줄을 감아서 끌어올릴 힘은 없었기 때문에, 하나의 밧줄로 도르래를 이용해 복선 철도의 양쪽의 기차를 연결해서, 한 대가 올라가면 다른 한 대는 내려오는 식으로 엔진은 바퀴를 돌려주는 역할만 했다고 한다. 즉, 푸니큘라 또는 인클라인이라 부르는 경사철도(incline railroad) 혹은 강삭철도(cable railway) 시스템을 10개나 만든 것이다.
제목에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간다"는 속담을 언급했지만, 약 200년전에 이런 기계로 배를 산으로 끌어올린 것을 보면... 여기서는 정말 "의지만 있으면 배도 산으로 간다"고 해도 손색이 없을 듯 하다. 처음 15년 동안은 사진에 보이는 삼(hemp)을 꼬아서 만든 밧줄이 짐을 가득 실은 배와 차량의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끊어지며 사고도 발생을 했지만, 새로 발명된 강철 케이블(iron wire rope)로 1849년에 모두 바꿔서 안정적으로 내륙 물류수송의 대동맥 역할을 했으나...
증기기관의 개선으로 기차의 마력이 증가하고, 토목공학의 발달로 보다 긴 터널과 교량의 건설이 가능해져서, 결국 1854년에 필라델피아와 피츠버그를 한 번에 연결하는 완전히 새로운 철도가 개통을 하자마자, 운하를 다니는 배를 싣고 밧줄로 끌어서 산을 넘었던 이 구식 철도는 한순간에 무용지물로 전락하고 말았던 것이다.
여기 6번 엔진하우스의 고도가 전구간에서 가장 높은 해발 717 m이고, 사진의 서쪽 방향으로 완만한 서밋레벨(Summit Level)을 지나 1~5번의 경사로를 내려가서 해발 358 m의 존스타운에서 기차에 실린 배를 다시 운하에 내렸던 것이다. 여기서 반대편 동쪽 방향으로 10번 엔진하우스 자리까지 국립 공원으로 지정되어 있으며, 그 쪽으로 철도가 끝나는 홀리데이스버그(Holidaysburg) 마을은 291 m로 거리는 훨씬 가깝지만 고도차는 더 크다.
바로 옆으로는 레몬 하우스(Lemon House)라 불리는 2층 건물이 있는데, 과일 레몬과는 관계가 없고 운영한 부부의 성씨가 레몬이었단다.^^ 철도와 함께 만들어져서 작업자와 이용객들에게 식사와 음료를 파는 친목의 장소였다고 하는데, 이미 레인저가 문을 잠그고 퇴근해서 옛날 모습 그대로 복원되었다는 내부는 들어가 볼 수 없었다.
레몬하우스 뒤로 버려진 이 철도를 따라 건설되었던 옛날 22번 국도(Old Route 22)가 살짝 보인다. 위기주부는 공원 출입구와 연결된 왕복 4차선의 현재 22번 국도를 이용해 산을 내려가 3시간 거리의 집까지 운전해 돌아갔는데, 여기를 포함해 이 날 방문했던 6곳을 대표하는 연도를 시간 순으로 링크를 걸어보면 1754년, 1789년, 1834년, 1889년, 1936년, 그리고 2001년까지... 참으로 부지런히 시공간(時空間)을 헤집고 다녔던 2024년 4월 22일의 이야기가 모두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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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남북전쟁 1861~65년 기간에 남부연합의 수도였던 리치먼드(Richmond)는 워싱턴 남쪽 자동차로 2시간 거리에 위치해서, 우리에게는 마치 '서울-평양'과 같은 느낌을 준다. 재작년에 그 도시에 있는 버지니아 주청사만 잠깐 방문해서 소개를 한 적이 있는데, 거기와 다른 남부 버지니아 지역의 국립 공원들 총 5곳을 묶어서 '1탄 펜실베니아'에 이은 3~4시간 거리의 별볼일 없는 곳들 찾아다니기 시리즈 2탄으로 또 다녀왔다.
지도에 표시된 5곳을 북쪽 집에서 출발해 반시계 방향으로 돌아서, 리치먼드 시내의 2곳은 마지막에 잠깐씩만 들렀기에 묶어서 제일 먼저 소개한다. 이 여행은 블로그 역사상 처음으로 경로의 역순(逆順)으로 글을 쓰는데, 그 이유는 이어질 시리즈 내용을 차례로 잘 읽어보시면 알게 된다.
리치먼드와 그 외곽의 남북전쟁 관련 장소들이 리치먼드 국립전장공원(Richmond National Battlefield Park)으로 지정되어 있는데, 여기는 시내 공원에 위치한 비지터센터로 간판 아래쪽에 의료박물관(Medical Museum)이라 씌여있다. 일단 '침보라소(Chimborazo)'는 여기 야트막한 언덕과 공원의 이름이기도 한데, 생뚱맞게도 중미 에콰도르(Ecuador)의 가장 높은 해발 6,310 m 성층화산의 이름에서 따왔다고 한다.
전체 공원 지도를 예의상 올려보는데, 도시 외곽에 1862년의 7일 전투(Seven Days' Battle)와 1864년 콜드하버 전투(Battle of Cold Harbor) 유적지들이 메인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시간관계상 4곳의 비지터센터들 중에서 시내에 있는 여기 하나만 잠깐 들리는 것으로 위기주부의 국립 공원들 방문 리스트에 추가하기로...^^
남북전쟁 기간 동안에 부상당한 남군 병사들의 치료를 위한 군사병원(military hospital)이 이 언덕에 만들어졌었는데, 목재로 만들었던 150동의 건물은 현재 하나도 남아있지 않고, 비지터센터로 사용되는 이 건물은 1900년대 초에 연방정부가 기상관측용으로 지은 것이라 한다. (구글맵으로 위치를 보시려면 클릭)
여기에 있던 병원에서 전쟁기간 동안에 76,000명 이상의 부상병을 치료하며 사망률은 10% 미만이라서, 당시로는 전세계에서 가장 규모가 크면서 치료수준도 높았던 병원이라 할 수 있단다.
목수(carpenter)의 연장 가방이 아니라, 19세기 중반 외과의사(surgeon)의 치료 가방이란다.
남군 군의관의 복장과 무기를 비롯해 그들의 활약상에 대한 소개 등도 전시되어 있었다.
위기주부는 의대 진학은 꿈도 꿔본 적이 없고, 피를 보면 약간의 경기도 일으키는 체질이라서, 당시의 의료상황 등을 소개하는 전시들이 눈에 잘 들어오지가 않았다.^^ 여기에는 또 활톱(hacksaw)이 전시된 것이 보이는데, 이런 도구들로...
당시 어떻게 부상당한 다리를 절단했는지 친절하게 그림으로 설명을 해놓았다. 이 정도로 리치먼드 국립전장공원에 속하는 침보라소 의료박물관(Chimborazo Medical Museum) 구경은 마치고, 밖으로 나가서 공원을 잠깐 둘러보았다.
사진 가운데 실루엣으로 보이는 동상이 여기서 유명하다고 해서 찾아가는 길인데, 그 동상은 바로 무엇인고 하니...
자유의 여신상이다~ㅎㅎ 1950년에 시작된 미국 보이스카웃 연맹의 'Strengthen the Arm of Liberty'라는 캠페인으로 미국 전역에 높이 2.5 m의 이런 동상이 약 200개나 세워졌는데, 현재 약 100개 정도가 남았다고 한다.
캠페인 제목에 따라 일부러 그렇게 만들었는지 모르겠지만, 횃불을 들고 있는 팔이 약간 비정상적으로 길어 보였다. 전체적으로 심하게 때가 탄 것은 물론이고 왕관도 일부 부러져 있어서, 청소와 보수가 좀 필요해 보였다.
나무들 너머로 제임스 강(James River)이 살짝 내려다 보이는 언덕의 끝쪽으로 걸어가면, 여기에 앞서 설명한 침보라소 병원(Chimborazo Hospital)이 있었다는 동판을 볼 수 있다. 이제 북부 버지니아와는 뭔가 살짝 분위기가 다른 남부 리치먼드 시내를 운전해서 마지막 목적지를 급하게 찾아갔다.
구글 네비게이션이 알려주는데로 찾아왔는데, 공원 홈페이지에 나온 건물 모습과는 살짝 다른 여기는 매기워커 국립사적지(Maggie L Walker National Historic Site)이다.
입구가 어딘지 두리번거리다가 비지터센터는 건물 사이 통로를 이용해 안뜰로 들어가라는 표지판을 겨우 찾았다. (구글맵으로 위치를 보시려면 클릭)
비지터센터가 5시가 아니라 4시반까지만 운영한다고 되어 있는데, 이 때는 이미 그 시간을 살짝 넘기고 있었지만 문이 잠기지는 않았었다. 그래서 열고 들어갔더니, 국립공원청 파크레인저 예닐곱명이 모여서 퇴근 준비를 하면서 화기애애하게 담소를 나누고 있다가, 갑자기 들어오는 동양남자 한 명을 보고는 상당히 놀라더라는...ㅎㅎ
매기 워커(Maggie Lena Walker)는 흑인 노예의 딸로 태어난 교육자 겸 사업가로, 1903년에 미국 최초의 여성 은행장이 되어서 흑인들의 자립을 도운 것으로 유명하다. 또한 모든 여성과 장애인들의 인권신장에도 기여해서 그녀가 살았던 집이 1975년에 국립사적지로 지정되었는데, 여기는 옆건물에 만들어진 비지터센터고 다른 외관의 보존된 집은 주차한 곳 반대쪽인데 늦어서 들어가볼 수는 없었다.
이 날 하루 이미 계기판에 찍힌 누적 운전시간이 9시간이었지만, 또 2시간을 더 운전해 집으로 돌아가기 전에 마지막으로 길 건너편 소방서 건물에 그려진 벽화를 감상했다. 다른 파크레인저 한 명이 또 모임에 참여하려고 비지터센터로 들어가는 모습인데, 참 팔자 좋은 연방 공무원이라는 생각이 든다... 시간을 거슬러서 이 날 이전에 방문했던 다른 국립 공원들을 소개하며 남북전쟁과 흑인 지도자의 이야기가 계속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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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남북전쟁 1861~65년 기간에 남부연합의 수도였던 리치먼드(Richmond)는 워싱턴 남쪽 자동차로 2시간 거리에 위치해서, 우리에게는 마치 '서울-평양'과 같은 느낌을 준다. 재작년에 그 도시에 있는 버지니아 주청사만 잠깐 방문해서 소개를 한 적이 있는데, 거기와 다른 남부 버지니아 지역의 국립 공원들 총 5곳을 묶어서 '1탄 펜실베니아'에 이은 3~4시간 거리의 별볼일 없는 곳들 찾아다니기 시리즈 2탄으로 또 다녀왔다.
지도에 표시된 5곳을 북쪽 집에서 출발해 반시계 방향으로 돌아서, 리치먼드 시내의 2곳은 마지막에 잠깐씩만 들렀기에 묶어서 제일 먼저 소개한다. 이 여행은 블로그 역사상 처음으로 경로의 역순(逆順)으로 글을 쓰는데, 그 이유는 이어질 시리즈 내용을 차례로 잘 읽어보시면 알게 된다.
리치먼드와 그 외곽의 남북전쟁 관련 장소들이 리치먼드 국립전장공원(Richmond National Battlefield Park)으로 지정되어 있는데, 여기는 시내 공원에 위치한 비지터센터로 간판 아래쪽에 의료박물관(Medical Museum)이라 씌여있다. 일단 '침보라소(Chimborazo)'는 여기 야트막한 언덕과 공원의 이름이기도 한데, 생뚱맞게도 중미 에콰도르(Ecuador)의 가장 높은 해발 6,310 m 성층화산의 이름에서 따왔다고 한다.
전체 공원 지도를 예의상 올려보는데, 도시 외곽에 1862년의 7일 전투(Seven Days' Battle)와 1864년 콜드하버 전투(Battle of Cold Harbor) 유적지들이 메인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시간관계상 4곳의 비지터센터들 중에서 시내에 있는 여기 하나만 잠깐 들리는 것으로 위기주부의 국립 공원들 방문 리스트에 추가하기로...^^
남북전쟁 기간 동안에 부상당한 남군 병사들의 치료를 위한 군사병원(military hospital)이 이 언덕에 만들어졌었는데, 목재로 만들었던 150동의 건물은 현재 하나도 남아있지 않고, 비지터센터로 사용되는 이 건물은 1900년대 초에 연방정부가 기상관측용으로 지은 것이라 한다. (구글맵으로 위치를 보시려면 클릭)
여기에 있던 병원에서 전쟁기간 동안에 76,000명 이상의 부상병을 치료하며 사망률은 10% 미만이라서, 당시로는 전세계에서 가장 규모가 크면서 치료수준도 높았던 병원이라 할 수 있단다.
목수(carpenter)의 연장 가방이 아니라, 19세기 중반 외과의사(surgeon)의 치료 가방이란다.
남군 군의관의 복장과 무기를 비롯해 그들의 활약상에 대한 소개 등도 전시되어 있었다.
위기주부는 의대 진학은 꿈도 꿔본 적이 없고, 피를 보면 약간의 경기도 일으키는 체질이라서, 당시의 의료상황 등을 소개하는 전시들이 눈에 잘 들어오지가 않았다.^^ 여기에는 또 활톱(hacksaw)이 전시된 것이 보이는데, 이런 도구들로...
당시 어떻게 부상당한 다리를 절단했는지 친절하게 그림으로 설명을 해놓았다. 이 정도로 리치먼드 국립전장공원에 속하는 침보라소 의료박물관(Chimborazo Medical Museum) 구경은 마치고, 밖으로 나가서 공원을 잠깐 둘러보았다.
사진 가운데 실루엣으로 보이는 동상이 여기서 유명하다고 해서 찾아가는 길인데, 그 동상은 바로 무엇인고 하니...
자유의 여신상이다~ㅎㅎ 1950년에 시작된 미국 보이스카웃 연맹의 'Strengthen the Arm of Liberty'라는 캠페인으로 미국 전역에 높이 2.5 m의 이런 동상이 약 200개나 세워졌는데, 현재 약 100개 정도가 남았다고 한다.
캠페인 제목에 따라 일부러 그렇게 만들었는지 모르겠지만, 횃불을 들고 있는 팔이 약간 비정상적으로 길어 보였다. 전체적으로 심하게 때가 탄 것은 물론이고 왕관도 일부 부러져 있어서, 청소와 보수가 좀 필요해 보였다.
나무들 너머로 제임스 강(James River)이 살짝 내려다 보이는 언덕의 끝쪽으로 걸어가면, 여기에 앞서 설명한 침보라소 병원(Chimborazo Hospital)이 있었다는 동판을 볼 수 있다. 이제 북부 버지니아와는 뭔가 살짝 분위기가 다른 남부 리치먼드 시내를 운전해서 마지막 목적지를 급하게 찾아갔다.
구글 네비게이션이 알려주는데로 찾아왔는데, 공원 홈페이지에 나온 건물 모습과는 살짝 다른 여기는 매기워커 국립사적지(Maggie L Walker National Historic Site)이다.
입구가 어딘지 두리번거리다가 비지터센터는 건물 사이 통로를 이용해 안뜰로 들어가라는 표지판을 겨우 찾았다. (구글맵으로 위치를 보시려면 클릭)
비지터센터가 5시가 아니라 4시반까지만 운영한다고 되어 있는데, 이 때는 이미 그 시간을 살짝 넘기고 있었지만 문이 잠기지는 않았었다. 그래서 열고 들어갔더니, 국립공원청 파크레인저 예닐곱명이 모여서 퇴근 준비를 하면서 화기애애하게 담소를 나누고 있다가, 갑자기 들어오는 동양남자 한 명을 보고는 상당히 놀라더라는...ㅎㅎ
매기 워커(Maggie Lena Walker)는 흑인 노예의 딸로 태어난 교육자 겸 사업가로, 1903년에 미국 최초의 여성 은행장이 되어서 흑인들의 자립을 도운 것으로 유명하다. 또한 모든 여성과 장애인들의 인권신장에도 기여해서 그녀가 살았던 집이 1975년에 국립사적지로 지정되었는데, 여기는 옆건물에 만들어진 비지터센터고 다른 외관의 보존된 집은 주차한 곳 반대쪽인데 늦어서 들어가볼 수는 없었다.
이 날 하루 이미 계기판에 찍힌 누적 운전시간이 9시간이었지만, 또 2시간을 더 운전해 집으로 돌아가기 전에 마지막으로 길 건너편 소방서 건물에 그려진 벽화를 감상했다. 다른 파크레인저 한 명이 또 모임에 참여하려고 비지터센터로 들어가는 모습인데, 참 팔자 좋은 연방 공무원이라는 생각이 든다... 시간을 거슬러서 이 날 이전에 방문했던 다른 국립 공원들을 소개하며 남북전쟁과 흑인 지도자의 이야기가 계속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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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의 한 달만에 여행기를 쓰려니 어떻게 시작해야 할 지를 모르겠다. 그래봐야 또 별볼일 없는 국립공원에 관한 이야기지만 말이다... 작년 여름부터 일부러 찾아다녀, 이제 집에서 2시간 이내 거리에는 NPS Official Unit들이 정말 2~3곳밖에 남지를 않았는데, 거기는 '별볼일 있는' 곳들이라서 아내와 함께 갈 장소로 계속 남겨두고 있다. 그래서 모처럼 혼자서 하루 종일 시간을 낼 수 있었던 지난 월요일에, 처음으로 범위를 넓혀서 편도 3시간 내외가 걸리는 여러 곳들을 묶어서 다녀온 첫번째 시리즈를 시작한다.
위의 경로와 같이 집에서 북서쪽 방향으로 향해서, 펜실베이니아(Pennsylvania) 주의 남서부에 있는 5개의 '내셔널'들과 다른 유명한 장소 하나까지 더해, 총 6곳을 하루만에 모두 둘러보았다. 저녁 8시에 집으로 돌아와 계기판을 확인해보니, 총 운전시간이 정확히 딱 10시간에 주행거리는 512마일(824 km)이었다. "오래간만에 쉬는 날 이게 뭐하는 짓이냐?"
새벽 4시반 출발의 긴장이 풀어지며 잠이 좀 온다는 느낌이 들때, 고맙게 등장해준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분홍색 봄꽃 너머로 바라본 주황색 아침 여명이다~ 좀 더 기다려 일출까지 감상하려 했지만, 이 날 꽃샘추위가 극심해서 내리기 전 확인한 계기판의 온도계가 섭씨로 영하였다는...!
뒤돌아 본 메릴랜드 주의 사이들링힐 웰컴센터(Sideling Hill Welcome Center) 모습으로, 건물 오른편으로 도로를 만들기 위해 산을 깊이 깍은 것이 보인다. 저 고개를 넘어 계속 서쪽으로 달려야 하는 고속도로가 인터스테이트 68번 겸 국도 40번인데.
이 루트가 바로 1800년대 초에 신생국가 미국의 첫번째 국책사업으로 만들어진 동서를 잇는 마찻길인 '내셔널로드(National Road)' 구간임을 알려주는 안내판으로, 이에 대해서는 본 시리즈 여행기의 다음 편에서 자세히 설명될 예정이다.
1시간을 더 달려 "Wild and Wonderful" 웨스트버지니아 주에 들어가니까, 또 딱 맞취서 아주 잘 지어놓은 휴게소가 나온 덕택에, 졸음을 쫓고 보온병에 넣어간 커피와 아침을 먹었다. 그렇게 두 번이나 쉬면서 거의 4시간만에 펜실베니아 주에 있는 첫번째 목적지에 도착을 했다.
프렌드쉽힐 국립사적지(Friendship Hill National Historic Site)라는 이름만으로는 어떤 곳인지 짐작하기 어려우니, 친절하게 그 밑에 누구의 집이었다고 적어 놓았다. 붉은 필기체 서명은 앨버트 갤러틴(Albert Gallatin)으로 그의 이름은 백악관과 그 주변을 소개했던 예전 포스팅에 이미 한 번 등장한 적이 있다. "LA 바닷가에 있는 우정의 종각은 가봤어도, 우정의 언덕은 또 처음이네~"
간판이 세워진 숲을 빠져 나오면, 파란 초원에 좌우로 가로수가 잘 심어진 진입로가 나와서, 언덕 위의 멋진 저택이 나올 것을 직감하게 된다. (구글맵으로 위치를 보시려면 클릭)
넓은 주차장에는 멀러 보이는 국립공원청 차량만 한 대 세워져 있었는데, 파크레인저는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가 않았다.
스위스 제네바에서 태어난 앨버트 갤러틴은 19살이던 1780년에 신생 독립국인 미국으로 와서 하버드 대학에서 프랑스어 강사를 한 후에, 22살에 느닷없이 당시로는 가장 변방인 서부 펜실베니아 시골에 땅을 사서는 지역 유지 및 정치인이 된다. 그 후 연방 하원의장을 거쳐서 불과 40세인 1801년에 미국 재무장관이 되어 무려 13년간 역임했고, 그 후에는 외교관으로 프랑스와 영국 대사를 거쳐서, 말년에는 지금의 뉴욕 대학교(New York University, NYU)를 설립하기도 했다.
언덕으로 올라가는 길 중간에 그의 동상이 만들어져 있는데, 앞서 설명한 그가 활약한 분야들인 정치/경제/외교와는 전혀 상관이 없어 보이는 측량을 하는 모습이다.
그는 일찌기 서부개척에 미국의 미래가 있음을 예견해서 이리로 이사를 왔고, 지리학에 밝아서 상기의 National Road를 어디로 만들어야 하는지를, 이 지역을 방문한 워싱턴 대통령을 직접 만나 설명하기도 했단다. 그래서 재무장관 시절에 루이지애나 매입과 루이스/클라크 탐험대 후원을 실질적으로 주도하게 된다. 또한 언어학에도 뛰어나서 원주민 언어를 최초로 체계적으로 연구하고, 이를 통해서 남북 아메리카 인디언이 모두 아시아에서 이주해왔다는 주장을 처음 한 사람으로 '미국 민족학의 아버지'로 불리기도 한단다. 한 마디로 다재다능, 박학다식 그 자체!
그가 여기를 '우정의 언덕(Friendship Hill)'으로 부르며 1789년부터 집을 짓고, 아래쪽 강가에 자신의 고향을 기려 뉴제네바(New Geneva)라는 마을을 만들어서 유리 공장을 세웠단다. 하지만 중앙 정계로 진출해 장관과 외교관이 되고, 그 후에도 뉴욕시에서 계속 활동했기 때문에 여기에 살았던 기간은 길지 않으며, 결국 1832년에 다른 사람에게 집과 땅을 모두 팔았다고 한다.
제일 왼편의 돌로 된 외벽 부분과 우물 정도가 갤러틴이 소유했을 때 모습이고, 그 오른편과 나머지 많은 부분들은 다음 집주인이 개보수와 증축을 한 것이란다.
왠지 전설이 있을 것 같은 우물 속이 궁금해서 내려다 보니, 현대적 자물쇠로 옛날 나무로 된 입구를 잠궈 놓은게 특이했다.
비지터센터가 건물 안에 만들어져 있고, 그리로 통해서 자유롭게 집 내부도 일부 구경을 할 수 있지만, 4월말까지는 주말에만 문을 열기 때문에 직접 들어가 볼 수는 없었다.
새로운 주인이 강을 내려다 보는 곳에 만든 정자(gazebo)는 이 지역의 사교장으로 유명했는데, 절벽이 무너질 위험이 있어서 국립공원 지정 후에 안쪽으로 옮겨 다시 만든 것이라는 설명이 안내판에 적혀 있다. 저 끝에서 축대 아래쪽을 내려다 보면,
그 옛날에는 수 많은 배들이 오가던 모논가헬라 강(Monongahela River)이 지금은 조용히 흐르고 있다. 이 강은 사진 오른편 북쪽으로 흘러 피츠버그에서 앨러게니 강(Allegheny River)과 합류해 오하이오 강이 되어 결국 미시시피 강과 연결되기 때문에, 갤러틴이 그 당시에는 모든 산업의 동맥인 뱃길을 끼고 있는 이 땅을 구입했던 것이다.
앞마당 잔디밭에서 바라본 모습으로 주인이 바뀌며 증축이 많이 된 것을 알 수 있다. 1960년대 국가유적으로 등록될 때까지 개인소유였다가, 정부가 구입해서 필요한 수리를 거친 후에 1978년에 국립사적지가 되었다.
그리고 언덕 아래로 아침 햇살에 빛나는 평화로운 초원의 풍경을 바라보니, 그냥 바로 떠나기는 좀 섭섭한 듯 하길래... 주차장으로 돌아가는 길에 다시 만난
앨버트 옹과 셀카 한 장 함께 찍었다.ㅎㅎ 공원 홈페이지 서두에는 그를 '잊혀진 건국의 아버지(America's Forgotten Founding Father)'로 부르지만, 실제 미국의 독립보다는 그 후에 주로 활동을 한 사람이다. 그러나 제4대 재무부 장관으로 미국이 지금의 세계최대 경제대국이 되는 토대(foundation)를 마련한 사람이기에 꼭 틀린 말도 아닌 듯 하다. 타주의 별볼일 없는 국립공원들까지 돌아봤던 나들이의 다음 편은, 누구나 다 아는 '국부(國父)' 조지 워싱턴의 젊은 시절 이야기로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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