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주부의 미국 여행과 생활 V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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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0 posts50달러 지폐 모델인 제18대 율리시스 그랜트 대통령의 묘역인 제너럴그랜트(General Grant) 국립기념관
현재 미국에서 통용되는 지폐는 7종으로, 시중에서 쉽게 보기 어려워 따로 소개한 적도 있는 2달러 지폐를 제외하면, 유통량이 가장 적은게 10달러와 50달러이다. (원래 50달러가 훨씬 적었지만, 코로나 이후 인쇄를 많이 해서 비슷해졌음) 직전에 10달러의 모델인 해밀턴 기념관을 방문했었고, 거기서 불과 차로 5분 거리에 이제 보여드리는 장소가 있다. 율리시스 그랜트(Ulysses S. Grant)가 그려진 50달러 지폐의 모습과 함께 그에 대한 기본적인 소개는 워싱턴DC의 내셔널몰 동쪽 끝에 있는 그의 기념상을 방문했던 포스팅을 먼저 보시면 된다. 네비가 목적지에 도착했다고 해서 고개를 들어보니 건물의 뒷편이 보여서 길가에 주차를 했는데, 맨하탄의 북쪽에서 허드슨 강변공원(Riverside Park)이 시작되는 위치에 Riverside Dr 도로의 중앙분리대에 해당하는 지역에 기념관을 만든 것이었다. (구글맵으로 위치를 보시려면 클릭) 그런데, 반듯한 화강암 건물의 둘레를 따라서 뭔가 울긋불긋하고 구불구불한 것이 보이는게 신기해서 뒤쪽 계단을 먼저 올라가 봤다. 모자이크 롤링벤치(Mosaic Rolling Bench)는 직접적으로 바르셀로나 구엘 공원에서 영감을 받은 공공예술 작품으로 1972년에 기념관 둘레를 따라 총 길이 약 400피트로 추가되었다. 그러나 묘역의 엄숙한 건축미와 어울리지 않는다는 비판이 많아서 1990년대에 철거가 결정되었다가 지역 주민과 예술가들의 반발로 겨우 보존이 되었다고 하는데... "공원에 다른 널직한 곳도 많은데, 애초에 왜 굳이 기념관 위에 만들었을까?" (거기에도 다 이유가 있었지만, 혹시 물어보시면 알려드림^^) 국립공원청에서 모퉁이에 세워 놓은 작은 간판에 이 곳의 이름 위쪽에다가 'Manhattan Sites'라 복수형으로 더 커다랗게 써놓은게 의아해서 찾아본 내용은 아래에 별도 지도와 함께 설명을 드린다. 뉴욕시에 위치한 넓은 의미의 국립 공원들 11곳을 보여주는 지도로 ⑥과 ⑪을 제외한 9곳을 '맨하탄 사이트'로 묶어서 관리를 하는 것이었다. (⑥번 Tenement Museum은 사설 재단이 독립적으로 운영하고, 방문객이 압도적으로 많은 ⑪번 자유의 여신상과 엘리스 섬은 별도 관리) 이 날 ②와 ③을 차례로 찍었으니, 멀리 브롱스(Bronx)에 떨어져 있는 ①번 St. Paul's Church NHS 하나만 빼고는 모두 방문한 것이 되었다. 그리고 위 지도의 남쪽으로 뉴욕항을 감싸는 넓은 유닛이 하나 더 있어 총 12개인데, 그 곳은 바로 다음날에 역시 찾아가게 된다. 잠깐 시선을 돌리니 다른 듯 비슷한 느낌의 높은 건물 둘이 보였는데, 왼편은 41층의 현대식 콘도이고 오른편은 록펠러 가문의 기부금으로 1933년에 완공된 리버사이드 처치(Riverside Church)로 진보적 사회참여로 유명한 교회란다. 그리고 잘 보이지는 않지만 두 건물 너머로 10년전의 아이비리그(Ivy League) 탐방 여행에서 주차할 곳을 못 찾아 정문 사진만 찍고 지나쳤던 컬럼비아 대학교의 본관이 있으며, 그 캠퍼스를 포함한 맨하탄의 이 구역을 인접한 할렘과는 별도로 모닝사이드 하이츠(Morningside Heights)라 부른다. 그랜트는 당시까지는 최연소 기록인 만 46세로 대통령이 되었고, 퇴임 후에는 아내와 함께 2년간 세계일주를 하며 세계적인 영웅으로 환대를 받았다. 그 후 1880년 대선에서 3선에 도전하려 했으나 공화당 내 경선에서 제임스 가필드(James A. Garfield)에게 패했고, 사기 사건에 휘말려 전재산을 잃은 후 회고록을 집필하던 중에 후두암에 걸려서 1885년에 63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그는 오하이오(Ohio) 출신 7명의 대통령들중의 하나지만, 퇴임 후 살았던 뉴욕시에 묻히기를 아내가 희망해서 여기 '그랜트의 묘(Grant's Tomb)'가 만들어지게 된 것이다. 시민들의 성금으로 5년간의 공사끝에 1897년에 성대하게 치러진 봉헌식과 그의 일생 등에 관해서 더 궁금하신 분은 위의 사진을 클릭해서, 국립공원청 홈페이지의 공식 영상을 자막과 함께 보시면 된다. 영묘(靈廟, Mausoleum)의 지붕을 둥근 돔이 아니라 계단식 원뿔 형태로 만든게 상당히 특이한 모습인데, 건축가가 고대의 기념비적 무덤들을 모델로 삼았기 때문이란다. 그렇게 한참을 돌아서 마침내 공원 간판을 찾았는데, 그랜트가 제7대 잭슨 이후로 무려 40년만에 8년 연임을 하며 남부 재건과 민권 보호 등의 업적이 상당한 대통령임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에게는 북군 총사령관으로 남북전쟁을 끝낸 '장군'으로만 기억되어서 그런지... 이 곳의 공식 명칭도 제너럴그랜트 내셔널메모리얼(General Grant National Memorial)이다. 이제 정면을 향해서 다가가는데 드르륵 우당탕 소리가 들려서 뭔가 했더니... 정면 광장에는 'No Skateboarding' 표지판 아래에서 스케이트보드를 타고 있는 형씨들이 모여 있었고, 셧다운으로 바리케이드가 쳐져 있어서 더 가까이 가서 볼 수는 없었다. 그래서 대표사진도 당시 분위기를 잘 남기려고 일부러 스케이트보더가 지나가는 순간으로 잡았다.^^ 높이 45미터인 북미 최대 규모의 영묘로 지하층에 부부의 석관이 나란히 안치되어 있는 실내는 수~일요일 오전 10시부터 오후 4시까지만 자유롭게 개방이 되며, 겨울철에는 방문객이 적어서 시간 단위로 입장이 제한될 수 있단다. 입구 위에는 위기주부가 재작년에 직접 방문했던 애퍼매톡스 코트하우스(Appomattox Court House)에서 항복하는 남군의 리(Lee) 장군에게 그랜트가 했다는 유명한 말인 "Let Us Have Peace"가 새겨져 있는데, 이 문구는 그의 1868년 대선에서 캠페인 표어로도 사용되었다. 왼편의 두 명은 전문적인 장비까지 갖추고 스케이트보딩을 촬영하고 있었는데, 마지막으로 기념관을 돌아보는 척하며 형씨들을 찍는 위기주부를 모두 노려보는 느낌이 들어서 서둘러 자리를 떴다.ㅎㅎ 비지터센터가 강변도로 건너 만들어져 있었지만 당연히 굳게 잠겨 있어서 바로 차를 몰고 맨하탄 남쪽 딸의 아파트로 향했다. 신호대기를 받았을 때 왼편으로 허드슨 야드(Hudson Yard)의 고층 빌딩들이 보여서 사진을 찍었다. 2019년초에 화려하게 개장했으나 4건의 자살 사고로 무기한 폐쇄되었다가, 결국은 2024년말에 추락을 방지하는 가느다란 철망으로 완전히 둘러싸서 재개장을 한 '베슬(Vessel)'도 신호등 아래로 살짝 보인다. 딸과 만나서 집열쇠를 받고 한국에 가있던 아내에게 둘이 만난 사진을 찍어서 보냈는데, 토요일 밤의 외출을 앞둔 따님은 블링블링하고 이틀째 쓸데없는 곳들 돌아다니느라 강행군을 한 위기주부는 피곤한 모습이 역력하다~^^ 저녁이 되니까 북쪽 베란다 너머로 멀리 크라이슬러 빌딩 등의 미드타운 고층건물들에 조명이 들어온 것이 보여서 줌으로 당겨봤고, 히터를 켜는 것을 깜박하고 잠들어서 밤새 오들오들 떨었던, 그러면서도 일어나서 찾아보고 켜기는 귀찮았던 기억이 나는 밤이다. 아래 배너를 클릭해서 위기주부의 유튜브 구독하기를 눌러주시면 정말 감사하겠습니다.^^
알렉산더 해밀턴이 유일하게 소유했던 집인 맨하탄의 해밀턴 그레인지(Hamilton Grange) 국립기념관
"It's Quiet Uptown"은 뮤지컬 2막 18번째 곡명으로, 19세의 필립이 결투로 사망한 후에 알렉산더 해밀턴(Alexander Hamilton)과 그의 아내 일라이자가 맏아들의 죽음을 받아들이려 애쓰는 슬픔을 묘사한 노래이다. 위기주부는 지금 다시 들어도 눈물이 나는데, 바로 거기 뉴욕 맨하탄의 '고요한 업타운'에 있는 해밀턴의 집을 지난 가을에 마침내 찾아갈 수 있었다. 1962년에 케네디 대통령의 서명으로 국립기념관이 된 그 장소를 소개하기에 앞서서, 직전에 들린 FDR 국립사적지에서 맨하탄까지 운전해서 내려온 도로 이야기를 잠깐 해본다. 타코닉 스테이트 파크웨이(Taconic State Parkway, TSP)는 뉴욕주에서 가장 긴 104마일의 공원도로로 1925년에 FDR의 제안으로 건설이 시작되었는데, 허드슨 밸리의 동쪽 산악지대 풍광을 고려한 아름다운 설계 등의 이유로 옛날 휴게소같은 부속 건물을 포함해 도로 전체가 2005년에 국가사적지로 지정이 되었다. 위 사진과 거의 흡사했던 단풍길을 운전하면서 주변의 많은 주립공원을 알리는 갈색의 도로표지판을 볼 수 있었는데, 잠깐 눈을 의심했던 간판이 있었으나... 인터넷으로 사진을 찾아보니 잘못 본 것이 아니었다! 1998년에 트럼프는 골프장을 만들 목적으로 맨하탄에서 30분 거리에 436에이커(1.8km²) 부지를 250만 달러에 사들였지만, 엄격한 환경규제와 교통체증 우려 등의 이유로 건설이 어렵게 되자 2006년에 뉴욕주에 기증해서 자신의 이름을 딴 주립공원을 가지게 된다. 기증식 당시에 트럼프는 1억 달러짜리 땅이라고 주장했으며, 실제로 매입가의 10배가 넘는 2천600만불로 세금 공제해택을 받은 기록이 있다. 그러나 예산 문제로 뉴욕주는 2010년에 공원 관리를 중단하고 주립공원 홈페이지에서도 삭제를 해버리자, 트럼프는 다시 반환 요청을 하기도 했단다. 현재는 지나다니며 표지판도 보기 싫다고 공원명을 바꾸자는 청원과 법안만 10여년 전부터 꾸준히 올라오고 있는 상태라 한다. 해밀턴 기념관은 맨하탄 북쪽의 할렘(Harlem) 지역 한가운데 있었기 때문에 살짝 긴장을 하고 운전을 했던 기억이며, 맞은편 주택가의 도로변에 주차를 하고 나와보니 당시 할로윈을 앞두고 있어서 다닥다닥 붙은 건물에 장식을 한 집이 눈에 띄었는데, 이 길의 이름이 Hamilton Terrace였다. (구글맵으로 위치를 보시려면 클릭) 그 길이 141st St를 만나는 삼거리 너머, 세인트니콜라스 공원(St. Nicholas Park)의 북쪽 끝에 보이는 노란색 집이 그가 살았던 해밀턴그레인지 내셔널메모리얼(Hamilton Grange National Memorial)이다. 누가 용감하게 인도 위에다 불법주차를 해놓았는지 궁금해하며 도로를 건너갔는데, 공원 간판 너머로 보이는 사복을 입은 국립공원청 직원이 자동차 주인으로, 당시 연방정부 셧다운에도 불구하고 마감 문단속을 하러 나온 듯 했다. 아직 철문이 잠겨있지는 않길래 걸쇠를 풀고 들어가려 했더니, 레인저가 걸어 나오면서 들어가면 안 된다고 말하고는 차에 앉아 나를 주시했다... 그래서 위기주부는 공원 철책 너머로 사진 한 장 담는 것 외에 방도가 없었다. 중요한 사실은 역사적인 이 저택을 보존하기 위해 주변을 공원으로 지정한 것이 아니라, 원래 이 집은 근처 다른 장소에 지어졌었는데, 두 번이나 통째로 움직여서 지금의 위치까지 오게 된 것이다. 그러한 과정이 앞쪽 안내판에 잘 설명되어 있으나 가까이 갈 수 없었지만, 인터넷과 AI의 도움으로 내용이 잘 보이도록 아래 화면을 준비했다. 이 저택은 우측 세부지도에 표시된 넓은 대지를 가진 전원주택으로 현재의 143rd St 위치에 처음 지어졌는데, 스코틀랜드 귀족이었던 아버지 가문의 영지 이름인 '그랑제(The Grange)'로 해밀턴이 명명했다. 세월이 흘러 1889년에 현재와 같은 등간격의 격자형 도로가 만들어질 때 철거될 뻔 했지만, 당시 소유주가 저택을 150미터나 말들로 질질 끌어서 새로 지어진 세인트루크 성공회교회(St. Luke's Episcopal Church)의 옆으로 옮기게 된다. 그렇게 교회의 부속 예배당과 숙소 등으로 사용되다가 1962년에 국립 공원으로 지정된 직후의 모습으로, 석조 교회와 아파트 사이에 불쌍하게 끼여있는 모습이다. 특히 현재 보이는 정면은 실제로는 집의 옆쪽에 문을 만든 것으로, 이 상태로는 복원이나 수리가 불가능했기 때문에 또 시간이 한 참 흐른 2008년에... 다시 건물을 통째로 들어 올려서 도로를 따라 지금의 공원 안으로 이동을 시킨 후에 3년간의 공사를 통해 옛날 그림과 설계도 등을 바탕으로 처음의 전원주택 모습 그대로 복원을 한 것이다. 실내 사진도 몇 장 가져와서 보여드릴까 하다가, 또 혼자서라도 다시 찾아와 내부투어를 할 일이 있을 것 같아 그 때를 기약하기로 했다~ 뉴욕시 맨하탄에 위치해 있음에도 불구하고 연간 방문객은 2만명 정도에 불과했었는데, 2015년 여름에 뮤지컬 이 초대박을 터트리고 난 이듬해에는 10만명 가까이 방문하기도 했단다! 위기주부도 최근 해밀턴의 처가집과 그가 묻혀있는 묘지를 일부러 찾아갔었으니 팬이라 할 수 있겠다.^^ 뉴욕주에서 세워놓은 안내판에 씌인 것처럼 해밀턴 부부는 남은 7명의 자녀와 함께 1802년 여름에 업타운에 새로 지은 이 집으로 이사를 해왔지만, 알렉산더 해밀턴 본인이 여기 살았던 기간은 단 2년에 불과한데, 그 이유는 바로... 1804년 7월 11일에 자신도 아들처럼 권총 결투에서 총상을 입고 이튿날 사망했기 때문이다. 전직 재무장관이자 '워싱턴의 오른팔'로 불렸던 해밀턴과 당시 현직 부통령이었던 애런 버(Aaron Burr)의 결투는 허드슨 강 건너 위호켄(Weehawken)에서 벌어졌는데, 지도를 찾아보니 자동차로 자주 지나다닌 링컨터널의 뉴저지쪽 입구 부근이었다. 그 곳도 두 명의 동상과 함께 공원으로 조성되어 있고, 맨하탄을 바라보는 전망도 좋다고 하니 언제 다시 차를 몰고 맨하탄을 방문할 기회에 또 들리게 될 지도 모르겠다. 주차해 둔 곳으로 가려고 돌아서니 보수 공사중인 루크 교회의 뒤쪽이 보였는데, 원래는 건너편에 공터로 남아있는 옛 부지에 아직도 서있는 역사적인 동상도 직접 볼 계획이었지만, 숙박할 딸의 집에 가기 전에 또 다른 기념관도 하나 더 들러야 했기 때문에 생략했고, 그래서 마지막으로 사진만 한 장 가져와서 보여드리며 글을 마친다. (이번 포스팅은 직접 찍은 사진이 딱 절반^^) 지금까지 해밀턴의 동상은 백악관 옆 재무부 빌딩, 의사당 내부 로툰다, 그리고 다시는 갈 일 없는 패터슨 등에서 많이 봤기 때문에 아쉬움은 없고, 브로드웨이에서 뮤지컬을 다시 볼 기회만 호시탐탐 노리고 있다. 별도로 미국내 순회 공연도 현재 시카고를 시작으로 많은 도시에서 차례로 열리므로, 미국에 계시는 분이라면 근처에 공연이 있으면 직접 한 번 관람하시기를 추천한다. 참, 디즈니플러스(Disney+)에서 오리지널 캐스트의 공연을 한글자막으로 제공하므로 한국에서도 TV로 보실 수 있다. 위기주부는 지금까지 아마 다섯 번도 더 본 듯...ㅎㅎ 아래 배너를 클릭해서 위기주부의 유튜브 구독하기를 눌러주시면 정말 감사하겠습니다.^^
뉴욕 맨하탄에서 가장 멋진 겨울을 보낼 수 있는 곳! 브라이언트 공원(Bryant Park)의 BoA 윈터빌리지
따로 일기를 쓰지 않는 위기주부에게는 이 블로그가 띄엄띄엄 남겨두는 '일상의 기록'이기도 해서 몇 자 적어보면... 요즘은 주중에 계속 힘들게 일을 하다보니 포스팅을 일요일에 하나씩 겨우 올리고 있다. 그래서 지난 1월말에 기차를 타고 다녀온 2박3일 뉴욕 여행의 둘쨋날 이야기도 주말에나 가능할 듯 해서 달력을 보니, 다음 일요일이 벌써 3월 1일이었다! 엄동설한 여행기를 춘삼월(春三月)에 띄울 수는 없다는 생각에 서둘러 글을 시작한다. (물론 춘삼월이란 말은 음력에서 나왔으니 사실 아직 멀었고, 뉴욕은 다음 주에도 또 눈이 내린다고 함) 딸의 직장은 금요일 재택근무인데, 55분까지 쿨쿨 자던 따님이 9시 정각부터 키보드가 부셔져라 일을 시작했다. 당연히 카메라는 켜지 않은 상태로...ㅎㅎ 그래서 엄빠는 살짝 아파트를 나와서 작년에 소개했던 동네 베이글 가게에 들린 후, 이번에는 다른 카페에서 커피를 사는 모습이다. 이 날 아침 기온이 화씨로 한자릿수, 그러니까 -10℃ 밑이었지만 맨하탄은 출근하는 사람들로 여전히 분주했고, 투고한 베이글과 커피로 급히 아침을 때우고 딸은 다시 일하러 들어가고, 점심도 먹여야 할 듯한데 또 투고하기는 그렇고 냉장고는 텅텅 비었고 해서 장을 보기로 했다. 지도 아래쪽에 표시된 H마트와 트레이더조에 들러 필요한 것을 모두 사서 돌아와, 엄마표 잔치국수를 늦은 점심으로 만들어 함께 먹었는데, 맨하탄 물가에 사소한 양념들도 모두 구매했더니 3명이 나가서 사먹는 것보다 돈이 더 들었다! 그리고는 바쁜 업무 때문에 아예 저녁 8시로 느지막히 예약한 식당에서 만나기로 하고 우리 부부만 2일째 일정을 시작했는데, 그 초반 관광경로(?)가 표시된게 위의 지도이다~ 노스트롬랙, 굿윌스토어, 올드내비, 티제이맥스, 그 외에도 몇 곳의 옷가게... 이 지도는 그런 아내를 묵묵히 따라다닌 남편의 '소심한 복수'라고나 할까? ㅋㅋ 쇼핑투어를 마치고 23rd St에서 지하철을 타고 이동한 곳은 한겨울에도 물을 틀어놓아서 꽁꽁 얼어버린 분수를 볼 수 있는 브라이언트 공원(Bryant Park)이다. 1912년에 뉴욕시에서 여성에게 헌정된 최초의 공공기념물인 이 분수는 뉴욕 자선조직 협회를 설립한 조세핀 쇼 로웰(Josephine Shaw Lowell)을 기려 그녀 사후에 명명되었단다. 겨울철에 브라이언트파크에도 스케이트장이 만들어진다고 해서 찾아온 것인데, 그 분수와 주변 고층빌딩의 실루엣을 로고로 사용하는 뱅크오브아메리카 윈터빌리지(Bank of America Winter Village) 행사장이 잔디밭 전체를 덮고 화려하게 만들어져 있었다. (구글맵으로 위치를 보시려면 클릭) 해질녘의 조명을 받으며 빙판을 즐기는 사람들 뒤로 보이는 건물은 정확히 1년전에 들어가보고 자세히 소개했던 뉴욕 공공도서관(New York Public Library)이다. 위기주부가 스케이트를 못 타서 저 사람들은 별로 부럽지 않았지만, 그 옆에서 얼음 위 범퍼카를 타는 사람들은 살짝 부러웠다~^^ 사방이 고층빌딩으로 둘러싸인 곳에서 스케이트와 아이스 범퍼카를 타는 분위기를 잘 전달해 드리려고 다음의 세로 동영상을 한바퀴 돌려봤다. 원형 핸들과 악셀이 아니라 좌우 두 개의 조이스틱으로 운전을 하던데, 사람들이 조종이 어려운지 제자리에서 빙글빙글 돌기만 하고 서로 세게 부딪히는 박진감은 좀 없었다. 그리고 비디오의 마지막에 오른편에 보이는 특이한 형상의 빌딩이 본 행사를 주관하는 뱅크오브아메리카의 본사 건물인 지상 55층의 BoA 타워이다. 운전은 힘들어도 즐겁게 빙판 위의 범퍼카를 타는 사람들~ 아이스링크 주변으로는 이렇게 많은 야외 상점들은 물론이고, 사진 오른편에 '더라지(The Lodge)'라 불을 밝힌 곳에는 가건물의 실내 바도 만들어져서 추위를 피해 음료를 즐길 수도 있었다. 전날 포스팅에서 센트럴파크의 아이스링크와 록펠러센터의 아이스링크를 소개했으니, 여기까지 맨하탄의 3대 유명한 스케이트장을 모두 보여드린 셈인데, 여기가 스케이트를 타지 않더라도 즐길거리와 볼거리가 가장 많은 베스트로 생각이 되었다. 도서관 쪽으로는 로지 이글루(Rosy Igloo)라고 해서, 비록 조화지만 장미로 장식된 프라이빗한 투명 돔들이 진짜 눈속에 파묻혀 있었는데, 예약제로만 이용이 가능한 듯 했다. 그새 날이 어두워져서 빙판에 투사된 눈송이 조명이 더욱 뚜렷이 보이기 시작한다. 아주 옛날 LA에서 김연아가 우승했던 세계 피겨대회의 갈라쇼를 관람했던 포스팅이 '영원히 깨질 수 없는' 하루 15만명이 블로그를 방문한 기록을 가지고 있는데, 언제 겨울에 뉴욕 오셔서 여기서 스케이트 한 번 타주시면 대박일 듯...^^ 다시 분수쪽까지 걸어오며 우리도 한 잔 사먹을까 둘러봤는데, 해가 떨어지면서 더 추워졌기 때문에 그냥 주변의 가게에 들어가기로 했다. 블루보틀(Blue Bottle)은 의자가 벽쪽으로 붙은 나무 벤치들 뿐이라서 건너뛰고, 레이디M(Lady M)에서 커피와 케이크 조각으로 원기보충을 하며 조금 쉰 다음에, 결국은 또 메이시 백화점까지 걸어가서는 1시간 가까이 아이쇼핑을 한 후에 약속한 레스토랑으로 지하철을 타고 이동을 했다. 위기주부는 처음 들어보는 미슐랭 스타 셰프라는 장조지 붕게리히텐(Jean-Georges Vongerichten)이 운영하는 라틴 음식점인 ABC Cocina란 곳으로, 이름이 촌스런 ABC인 이유는 식당이 128년 역사의 'ABC 가구점' 안에 있기 때문이다. (같은 건물에 아메리칸 레스토랑 ABC Kitchen도 있음) 문제는 8시로 예약을 했는데도 금요일 밤이라 그런지 30분 넘게 기다려서 겨우 자리로 안내받은 것인데, 매니저가 직접 와서는 미안하다고 주문한 맥주와 칵테일 및 파란 병의 사라토가 생수는 무료 서비스라고 알려줬다. 딸은 아직도 업무가 끝나지 않아 스트레스 만땅이기는 했지만, 여러 타파스 요리들을 시켜서 옛날 스페인 여행의 추억을 떠올리며 맛있는 저녁을 먹었다. 1시간여의 저녁 식사를 마치고 나와서 아파트로 돌아가기 위해 지하철 역으로 걸어가는 모녀의 뒷모습이다. 평소에 저녁 8시가 취침 시각인 위기주부는 도착해서 바로 쓰러져 잠들었지만, 딸은 자정까지 일을 더 한 후에야 업무를 일단락할 수 있었다고 했다. 그래서 다음날 아침은 함께 나가서 좀 여유있게 먹을 수 있었는데, 2016년에 브루클린에서 대만(Taiwanese) 요리 식당으로 시작했다는 윈선(Win Sun, 盈成) 베이커리의 작년에 생긴 맨하탄 지점을 찾아 걸어왔다. 말이 빵집이지 그냥 대만식 퓨전 아침식사를 판매하는 곳으로, 엄청난 인기를 끌고 있다는 딸의 말이 실감되게 손님들로 바글바글 했다. 그리고는 우리 부부는 바로 기차를 타고 버지니아 집으로 돌아오기 위해서 쿨하게 딸과 헤어졌다. 펜스테이션(Penn Station) 이름은 1910년에 '펜실베니아 철도(Pennsylvania Railroad, PRR)' 회사가 뉴저지에 있던 종착역을 맨하탄 시내로 연장하기 위해 거대한 터널과 함께 이 기차역을 건설하고 소유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20세기 초 미국 건축의 정수'로 불렸던 지상 역사는 1963년에 철거되고, 그 자리에 지금의 사무용 빌딩과 입구 뒤로 보이는 원통형의 매디슨스퀘어가든(Madison Square Garden, MSG) 경기장이 만들어졌다. 그리고 강가의 철도정비창은 멀리 보이는 고층 빌딩들과 '베슬(Vessel)'로 유명한 허드슨야드(Hudson Yard)로 재탄생을 한 것이다. 특히 2021년부터는 옛날 기차역과 같은 외관으로 1930년대 만들어졌던 우체국 건물을 현대적으로 개조한 모이니핸 트레인홀(Moynihan Train Hall)을 오픈해 암트랙 승강장으로 사용하면서 과거의 영광을 재현했다는 찬사를 받고 있단다. 이름은 2003년에 사망한 뉴욕을 대표했던 정치인 Daniel Patrick Moynihan 상원의원을 기리는 것으로, 그가 1990년대 초부터 연방정부의 지원을 받아 이렇게 역사를 확장하는 것을 추진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요즘 누가 이 펜스테이션 역명을 뜬금없이 자기 이름으로 바꿔달라며 떼를 쓰고 있다니 참... 아래 배너를 클릭해서 위기주부의 유튜브 구독하기를 눌러주시면 정말 감사하겠습니다.^^
제32대 프랭클린 D. 루스벨트 대통령과 영부인 엘리너 루스벨트를 각각 기념하는 두 곳의 국립사적지
미국은 1951년 2월에 수정헌법 제22조를 비준해서 한 개인이 대통령직에 선출될 수 있는 최대 횟수를 2회로 제한하게 된다. 이와 같은 개헌을 하게 된 이유가 바로 1932년부터 1944년까지 4번의 대선에 연달아 출마해 모두 당선되었던 제32대 프랭클린 델라노 루스벨트(Franklin Delano Roosevelt, FDR) 때문이다. 그의 미완성 4번의 대통령 임기에 대해서는 워싱턴DC에 있는 기념물 방문기에서 간단히 설명드렸었고, 이번에는 지난 가을의 북부 뉴욕주 2박3일 여행에서 그가 태어나고 또 죽어서 묻혀있는 'FDR의 집'을 찾아간 이야기이다. 허드슨 강을 따라 올버니와 뉴욕시의 딱 중간쯤에 위치한 하이드파크(Hyde Park) 지역의 9번 국도변에 있는 커다란 간판이다. 국립공원청 로고 옆에 써진 것을 보면 공식명칭이 프랭클린 D. 루스벨트의 집 국립사적지(Home of Franklin D. Roosevelt National Historic Site)로 왠지 '집(home)'이란 단어를 제일 앞에 써서 특히 강조한 느낌이다. 방문했을 때처럼 단풍이 든 국립 공원의 전체 조감도와 함께 하이드파크 부근 지도를 우측에 작게 보여주고 있는데, 3년전에 아내와 함께 보스턴에서 돌아오는 길에 들러서 내부 투어까지 했던 밴더빌트 맨션(Vanderbilt Mansion) 국립사적지가 마을 위쪽에 표시되어 있고, 이 공원의 영역도 9번 국도를 건너 동쪽으로 길게 뻗어있음을 볼 수 있다. (구글맵으로 위치를 보시려면 클릭) 두 연방기관의 로고가 함께 그려진 공동 비지터센터는 2003년에 새로 만들어졌는데, FDR의 처음 8년 동안은 농무부 장관을, 그리고 3번째 임기에서 4년간 부통령을 역임했던 헨리 월리스(Henry A. Wallace)를 기려 명명되었다. 그러나 4번째 대선에서 월리스를 버리고 대신에 트루먼을 러닝메이트로 바꿨는데, 월리스가 너무 급진적인 진보주의자였기 때문이란다. 그래 놓고는 1945년 1월에 4번째 임기를 시작하고 불과 82일만에... 당시 셧다운으로 모든 건물은 잠겨 있었기 때문에 바로 발길을 옮기니 꾸준히 관리를 해온 흔적이 보이는 텃밭이 나왔다. FDR의 아버지 제임스 루스벨트가 1867년에 여기 110에이커의 대지에 농장과 목장이 딸린 목조 저택을 구매해 '스프링우드(Springwood)'라 이름 붙였고, 1882년 1월 30일에 그 집 남동쪽의 2층방에서 늦둥이 프랭클린이 태어났다. 텃밭 맞은편의 커다란 건물은 집이 아니고 Franklin D. Roosevelt Presidential Library & Museum으로 1941년 6월에 개관한 미국 최초의 대통령 도서관이다. 그는 두번째 임기 말미에 고향 땅에 직접 이 시설을 짓기 시작했는데, 3선에 성공하면서 현직 대통령의 집무실로 사용되기도 한 특별한 이력을 가지게 되었단다. 국가기록원(National Archives and Records Administration, NARA)에서 관리하기 때문에 역시 문을 닫아 뒷마당의 조각정원만 잠깐 구경했는데, FDR과 마주보고 있는 흉상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서방세계를 함께 이끌었던 윈스턴 처칠 영국총리이다. 베를린 장벽을 남녀의 모양으로 잘라낸 조각은 처칠 손녀의 작품으로, 이 부분이 잘려나간 장벽은 미주리주 풀턴(Fulton)에 있는 미국 국립 처칠 박물관(America's National Churchill Museum)에 전시되어서 두 사람의 우애를 상징한다. 1946년 3월에 처칠이 미국을 방문해서 그 도시의 웨스트민스터 대학에서 냉전의 시작을 알리는 유명한 '철의 장막(Iron Curtain)' 연설을 한 것을 기념해 박물관이 거기 만들어졌단다. FDR은 1945년 4월 12일, 조지아주 웜스프링스(Warm Springs)에 있는 그의 별장에서 뇌출혈로 갑작스레 사망했다. 그는 소아마비가 재발한 하반신의 온천치료를 위해 1920년대부터 거기를 찾다가 아예 리조트를 사들여서 재단을 만들고 별장을 지어서 '리틀 화이트하우스(Little White House)'로 부르며 휴식을 위해 자주 방문했었다. 안내판 제일 오른쪽 아래 사진은 이듬해에 처칠이 여기 묘역을 방문해서 조화를 놓는 장면이다. 장미정원 안에 묘지가 만들어져 있는데, 당시에는 셧다운 때문에 관리자가 없어서 그런지 철조망으로 막혀 있어서 가까이 갈 수가 없었다. 커다란 흰 대리석은 1962년에 사망한 영부인 엘리너 루스벨트의 이름도 추가되어 공동묘비 역할을 하고, 오른편으로 보이는 작은 기둥 아래에는 애완견 팔라(Fala)도 묻혀있다. 이렇게 부부가 애완견과 함께 영원히 같은 자리에 잠들어 있으나, FDR의 임종을 지켰던 팔라와 다른 한 명은 영부인이 아니라 그가 불륜을 저질렀던 상대인 오랜 연인 루시 머서(Lucy Mercer)였단다... 스프링우드 저택은 원래는 가운데 부분만 있는 평범한 2층집이었지만, FDR의 어머니 사라(Sara)의 주도로 대대적으로 확장되었기 때문에 현재와 같은 웅장한 모습이 되었다. 시간을 되돌려 부부사를 좀 더 짚어보면... 둘은 1905년에 현직 대통령이던 시어도어 루스벨트(Theodore Roosevelt)가 조카딸을 소개해줘서 결혼했는데, 즉 부부가 따지자면 13촌의 아주 먼 친척이었다. 앞서 등장한 루시는 엘리너의 개인 비서로 FDR을 1914년에 처음 만났고, 1918년에 불륜을 알게된 엘리너는 이혼을 결심했지만 당시 해군성 차관으로 승승장구하던 FDR의 정치생명을 고려해, 결국 둘은 정치적 동반자의 관계만 유지하는 쪽으로 합의하고 불륜을 비밀로 지킨다~ 그러나 스프링우드 대저택의 실질적인 주인은 FDR의 어머니 사라였고, 그런 시어머니와 함께 사는 며느리 엘리너가 전혀 행복하지 않은 것을 알았기에, 1924년에 FDR은 집에서 3km 떨어진 자신의 사유지에 엘리너가 독립적으로 살 수 있는 땅을 내어주게 된다. 거기에 엘리너는 친구들과 함께 집을 짓고 지역 농민들에게 가구 제작과 금속 공예를 가르치는 공장도 만들게 되는데, 그 곳이 글의 마지막에 등장하는 발킬(Val-Kill)이다. 집의 뒤쪽에 있는 차고와 마굿간 건물 등을 포함해 모든 것이 그대로 보존이 되어 있는데, 이는 FDR이 죽기 전에 미리 스프링우드 전체를 국가에 기증하겠다는 의사를 밝혔기에 가능했다. 그래서 생전인 1944년에 일찌감치 국립사적지로 지정이 되었고, FDR의 장례식이 끝난 후에 엘리너는 바로 짐을 싸서 스프링우드를 떠났기 때문에, 서거 1주기에 맞춰서 일반에게 FDR이 사망한 날의 모습과 똑같이 공개될 수 있었단다. 온실과 농장 창고 건물을 스쳐지나 주차장으로 돌아가서, 이제 별도의 국립사적지로 지정이 된 엘리너 루스벨트의 거주지 '발킬'을 찾아간다. 공식명칭은 엘리너 루스벨트 국립사적지(Eleanor Roosevelt National Historic Site)이지만, 그녀가 생전에 이 곳을 부른 이름을 더 큼지막하게 적어 놓았다. 얼핏 섬뜩한 느낌의 발킬(Val-Kill)은 작년에 사망한 영화배우 발 킬머(Val Kilmer)와는 당연히 아무 관련이 없고...^^ 네덜란드어로 '계곡의 시냇물(Valley Stream)'이란 이쁜 뜻이란다. 같은 연유로 뉴욕주에는 '-kill'로 끝나는 지명이 많은데, 전설적인 우드스탁 페스티벌이 열렸던 뉴요커의 대표적 산악 휴양지인 캐츠킬(Catskill) 등이 그 예이다. (구글맵으로 위치를 보시려면 클릭) 그런데 여기는 진입로가 아예 잠겨있었다! 흑흑~ 사실 열려있었다고 해도 아래와 같은 시냇가의 '돌담집(Stone Cottage)' 사진만 후다닥 찍고 나와야만 했을 것이기는 하다. 그래서 짜투리로 소개하며 방문한 국립 공원 리스트에 추가하기로 했는데, 이렇게 공원 간판만 직접 찍어놓고 방문했다고 우기는 경우는 글의 마지막에 역시 간판 사진만 등장하는 15년전 여행기의 이 곳 이후로 두번째이다.^^ 폴킬(Fall Kill) 개울에 비친 그녀의 돌답집에 살면서, 엘리너 루스벨트는 미국 최초의 유엔(UN) 대사로 임명되어 인권위원회 의장을 맡아 1948년의 세계인권선언 초안을 직접 작성했고, 미국내 시민권 운동과 여성지위 향상 등을 위해 적극 활동했다. 이러한 업적을 기념하기 위해 1977년에 지미 카터 대통령에 의해 별도의 국립사적지로 지정이 되었는데, 현재까지도 미국의 대통령 영부인 개인을 기리는 국립 공원으로는 유일한 장소이다. 아래 배너를 클릭해서 위기주부의 유튜브 구독하기를 눌러주시면 정말 감사하겠습니다.^^
뉴욕 갤러허 스테이크하우스, 센트럴파크 스케이트장, 5번가 명품거리, 그리고 뮤지컬 <북오브몰몬> 관람
눈 내린 한겨울에 맨하탄을 방문하면 어디를 꼭 가봐야 하는지를, 폭설과 강추위를 뚫고 뉴욕시로 향하는 기차 안에서 검색해봤더니 이 곳이 단연 첫번째로 꼽혔다. 불멸의 1970년작 Love Story 영화에서 여주인공 제니가 백혈병으로 입원하기 전에 마지막으로 데이트를 하며 남주인공이 스케이트 타는 모습을 바라보던 장소이다. 참고로 영화 는 위기주부의 블로그에서 두번째로 언급이 되는데, 11년전에 가족이 함께 그 남녀주인공이 대학생으로 처음 만나 사랑을 꽃 피우던 도시를 방문했던 글이 첫번째였다. 펜스테이션에서 내려 북쪽으로 타임스퀘어를 지나 52nd St에 있는 갤러허 스테이크하우스(Gallaghers Steakhouse)에 예약한 점심 시간에 맞춰 도착했다. 특히 한국분들에게 피터루거(Peter Luger), 볼프강(Wolfgang's)과 함께 뉴욕시 스테이크 3대 맛집으로 잘 알려진 곳인데, 여기 대신에 처음 들어보는 킨스(Keens)라는 곳을 꼽기도 하는 모양이다. 안으로 들어가면 제일 먼저 드라이 에이징을 하고 있는 커다란 고기 덩어리들이 바로 시선을 사로잡는다! 금주법 시대인 1927년에 무용수 헬렌 갤러허(Helen Gallagher)와 도박사 잭 솔로몬(Jack Solomon)에 의해 스피크이지(Speakeasy, 비밀 주점)로 시작해서, 1933년에 브로드웨이 최초의 스테이크하우스로 탈바꿈해 베이브 루스, 프랭크 시나트라, 알 파치노 등의 유명인사들 사진과 사인으로 가득 차 있는 실내가 특징이란다. 당시 우리 부부 주위로만 서너 테이블이 한국 여행객일 정도로 유명한 곳이라, 별도의 실내 사진과 함께 음식에 대한 평을 '맛알못' 위기주부가 따로 올릴 필요는 없을 듯 하고, 맥주잔을 들고 있는 본인이 이 집의 이름을 예전에 처음 들었을 때부터 당일 식사를 하는 동안에도 계속 머리를 멤돌았던 단 한가지는... 바로 식당명과 비슷한 이름의 추억의 전자오락 갤러그(Galaga)였다! 그래서 나무위키로 또 쓸데없는 복습을 해봤더니... 게임 이름은 '갤럭시(Galaxy)'와 나방을 뜻하는 한자 '아(蛾, 일본어에서 が(가)로 발음됨)'를 합쳐 1981년에 만든 것이란다. 지금 솔직히 말하면 뉴욕 3대 스테이크 중의 하나를 맛봤다는 것보다 40여년 전에 본인이 수 없이 쏘아 죽였던 저것들이 '우주 나방'이란 사실을 알게된 놀라움과 기쁨이 훨씬 더 크다.^^ 식당을 나와 북쪽으로 걸으니 스티븐 콜베어(Stephen Colbert)가 진행하는 CBS 심야 토크쇼의 '대낮 공개녹화'에 입장하기 위해 줄을 서있는 사람들 너머로 크레인이 움직이고 있는 공사중인 건물이 보였다. "한겨울에도 맨하탄은 살아 있구나"란 생각을 하며 센트럴파크(Central Park)까지 걸었고, 미로같은 눈 덮인 산책로를 따라 남북으로 길쭉한 공원 남쪽의 목적지를 찾아갔다. 바로 미드타운의 초고층 건물들을 배경으로 운영되는 야외 스케이트장인 울먼 링크(Wollman Rink)이다. 원래도 호수가 있던 자리인데 1950년에 날씨에 관계없이 스케이트를 탈 수 있도록 인공냉각 시스템을 갖춘 아이스링크가 만들어졌고, 1980년대 초에 노후화로 폐쇄되었다가 트럼프 그룹이 인수해 1986년에 재개장을 해서 최근까지 직접 운영을 했던 것으로도 유명하다. (구글맵으로 위치를 보시려면 클릭) 무엇보다도 서두에 언급한 영화 에 아름다운 음악과 함께 등장해서 맨하탄의 겨울 명소로 등극을 했고, 그 후에 와 등의 수많은 영화와 드라마의 배경이 되었다. 현재 이용요금을 찾아보니 어린이와 노인은 항상 $11이지만, 성인은 요일에 따라 $16~$40로 변동이 있고, 뉴욕시민은 또 상관없이 $16에 스케이트 대여까지 가능하단다. 나중에 혹시라도 뉴욕시에 살게 되면 한 번 직접 타볼까? 아니면 만 65세 이상 노인이 된 후에? 그러다 탈 줄도 모르면서 넘어져 다칠라... ㅎㅎ 울먼링크의 남쪽으로는 더폰드(The Pond)라 불리는 자연 호수가 아직 남아 있는데, 오리들이 많이 모여 있는 아직 얼지 않은 호숫물 위로 돌다리 '갭스토 브리지(Gapstow Bridge)'가 보인다. 인공 스케이트장이 만들어지기 전에는 뉴요커들이 여기서도 한겨울에 스케이트를 탔다는 사실을 미국 여류화가 아그네스 테이트(Agnes Tait, 1894~1981)의 1934년작 에서 알 수 있다. (돌다리 너머 오른편에 멀리 보이는 곳이 현재 울먼링크가 만들어진 위치) 이 그림은 우리 동네 미술관에 소장되어 있어서, 4년전의 방문기에서 이 풍경을 직접 보고 싶다고 적었던 희망사항을 마침내 이뤄서 상호 링크가 추가 되었다.^^ 다른 커플의 사진을 찍어주고 나서, 우리도 뽀드득 거리는 눈을 밟으며 강추위를 버티기 위해 중무장한 상태의 기록을 한 장 남겼다~ 울먼링크 전경 사진에서도 잘 보이고 영상에도 등장을 했던 프랑스 샤토 스타일의 건물로 1907년에 개장한 역사적인 플라자 호텔(The Plaza)의 앞으로 걸어 나왔는데, 제일 오른편의 사모님은 노점상에서 남편에게 어울릴 털모자를 이 날 하루 종일 찾아 다니셨다. 5번가쪽 호텔 출입문을 지나는데 막 결혼식을 끝낸 커플의 사진 촬영이 한창이었다. 그리고 이제 남쪽으로 5번가 대로를 걸어 내려가면서, 눈밭에 누가 쌓아둔 거대한 루이비통 트렁크들을 마침내 직접 볼 수 있었다. 기존 플래그십 매장 건물의 재건축 가림막으로 2024년말에 등장을 해서 순식간에 인스타 핫스팟이 되었는데, 리벳 등의 반짝이는 부분은 실제로 강철에 크롬을 입혀 똑같이 커다랗게 만들었기 때문에 겉모양을 저렇게 하는데 수백만불이 들었단다. 하지만 2027년경에 공사가 완료되면 아쉽게도 철거 예정이라고... 노란 택시들이 경적을 울리는데도 불구하고 도로에 나가서 인생샷을 남기는데 진심이시던 긴 금발의 여성분이다. 우리는 그 옆으로 횡단보도를 건너서 사거리에서 남쪽으로 루이비통과 마주 보고 있는 티파니 플래그십 매장으로 들어갔다. '랜드마크(The Landmark)'란 이름으로 2023년에 재개장한 이 곳은 10층 건물 전체가 티파니의 모든 것을 보여주는데, 1층의 저 벽은 모두 스크린으로 남쪽은 맨하탄의 마천루, 북쪽은 센트럴파크에 아름답게 눈이 내리는 영상을 진짜 풍경처럼 보여주고 있었다. 5층의 'Audrey Experience' 전시실에는 영화에서 오드리 헵번이 실제 입었던 의상과 착용했던 보석이 전시되어 있고, 촬영시 사용된 대본과 자필 메모 등을 영상과 함께 보여주고 있다. 특히 6층에는 티파니가 직접 운영하는 블루박스 카페(Blue Box Café)도 있어서, 정말 영화처럼 '티파니에서 아침(Breakfast at Tiffany's)'을, 정확히는 브런치를 다음 날 진짜로 먹을 뻔 했다. 코치 매장의 볼거리는 가죽 가방들로 만든 티라노사우루스 백스(Bags)... 그리고 5번가 명품거리에 자랑스럽게 위치하고 있는, 레고 매장에 들러 옐로우캡의 운전석에 앉아서 왕팬의 방문인증을 남겼다! ㅎㅎ 1월말이라 크리스마스 트리는 치워졌지만 록펠러센터 앞의 아이스링크도 잠깐 구경을 하고는, 점심을 스테이크로 늦게 잘 먹어서 저녁 식사는 그냥 생략하기로 하고, 센터 반대편에 있던 '응' 커피점에 들어가 휴식을 취했다. (종이컵에 '%' 표시만 있었는데 45도 돌려서 읽었음) 그리고는 역시 오는 기차에서 당일표를 싸게 예약했던 The Book of Mormon 뮤지컬의 저녁 7시 공연을 보기 위해, 브로드웨이 49th St 위치에 1925년 개관한 역사적인 유진오닐 극장(Eugene O'Neill Theatre)을 찾아왔다. 2011년 5월에 초연해서 이듬해 최우수 뮤지컬을 포함해 토니상 9개를 휩쓸었던 유명한 작품을 마침내 직접 감상하게 된 것이다. 올해로 15년째 여기서 공연을 이어오고 있어서 팸플릿에 숫자 '15'가 크게 씌여있다. 뮤지컬의 제목이 몰몬교, 즉 '예수그리스도 후기성도교회'만의 경전으로 '아메리카 대륙에서 발견된 이집트 문자로 기록된 금판'을 번역했다는 몰몬경(The Book of Mormon)이라서 도대체 무슨 내용인가 궁금했었기 때문에, 극의 이해를 돕기 위해서 나무위키로 미리 예습을 하고 관람을 시작했다. 극장내의 작은 매장에서는 사운드트랙 음반과 함께 중요한 소품으로 등장하는 'Fuck Frog' 인형을 살 수도 있다. 공연이 끝나고 무대인사를 하는 출연진의 모습이며, 주된 내용은 아프리카 우간다로 파송된 몰몬 선교사들의 이야기로 제작자들 스스로 '무신론자가 종교에게 보내는 러브레터'라 표현했다는 설명이 와닿는 줄거리였다. 한국에서는 공연된 적이 없어서 인지도가 낮지만 노래들도 좋고 위기주부처럼 조금만 예습을 하고 보면 내용을 이해하는데 어려움이 없으므로 뉴욕여행을 오셨다면 직관을 추천하고 싶은 좋은 뮤지컬이었다. 단, 미국에서도 18세 이상 관람을 권장(브로드웨이 가이드는 13세 이상 추천)할 정도로 성인전용 뮤지컬임을 참고하셔야 한다. 지하철을 타고 우리 부부 2박3일 뉴욕시 여행의 숙소인 딸의 아파트에 도착하니, 연말 아루바 여행에서 아빠 선물로 사와 한 달 가까이 꾹 참고 냉장고에 넣어뒀었다는 현지 발라시(Balashi) 맥주를 꺼내줬다.^^ 아루바(Aruba)는 남미 베네수엘라 바로 위에 붙은 카리브 해의 작은 섬나라인데, 딸이 미국으로 돌아온 바로 다음 날에 미군의 마두로 납치작전이 벌어져 아루바 공항도 폐쇄되었기 때문에, 일정이 하루만 늦었으면 강제로 일주일을 더 머물러야 할뻔 했었단다. 아래 배너를 클릭해서 위기주부의 유튜브 구독하기를 눌러주시면 정말 감사하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