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주부의 미국 여행과 생활 V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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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최초의 1848년 여성 권리대회를 기념하는 세네카폴스의 여성인권(Women's Rights) 국립역사공원

이 곳을 다녀와서 첫번째로 들었던 의문은 이러한 행사가 왜 당시 대도시였던 뉴욕이나 보스턴에서 열린게 아니라, 뉴욕주 북부의 작은 도시에서 열렸냐 하는 점이었다. 그 해답의 배경은 19세기 중반 미국에서 로체스터(Rochester)를 중심으로 한 온타리오 호수 남쪽의 산업지대가 다양한 개혁운동과 노예제 반대운동의 중심지로, 당시 주민들의 의식이 가장 진보적이었던 지역이라는데 있다. 그래서 위기주부의 업스테이트 뉴욕 2박3일 여행의 세번째 목적지가, 로체스터에서 동쪽으로 50마일 정도 떨어진 세네카 폴스(Seneca Falls)였던 것이다. 해리엇터브먼 NHP 구경을 마치고 국도 20번을 타고 20분 정도 서쪽으로 달려서, 핑거레이크들 중에서 가장 길고 면적도 사실상 공동 1위인 카유가 호수(Cayuga Lake) 북쪽의 세네카폴스 중심가로 왔다. 뉴욕주 교육부에서 세워 놓은 안내판이 보이는데, 여성의 권리를 주제로 공개토의가 진행된 현대적인 컨벤션 대회로는 미국뿐만이 아니라 전세계 최초라 보는 것이 타당하단다. 1848년 7월 19일부터 이틀간, 여기 웨슬리언 예배당(Wesleyan Chapel)에서 도합 300명 정도의 남녀 참석자들이 모여서 회의를 한 후에, 미국 독립선언문을 차용한 "모든 남자와 여자는 동등하게 창조되었다(All men and women are created equal)"라는 주장을 포함한 를 채택하게 된다. 참고로 아주 낡아보이는 벽 일부만 당시 예배당의 잔재이고, 깨끗한 건물 대부분은 2011년에 완전히 복원된 것이다. 여성인권 국립역사공원(Women's Rights National Historical Park)을 여기에 만드는 법안은 1980년에 일찌감치 통과되었지만, 벽화가 그려진 비지터센터는 1993년에야 문을 열었고 대부분의 복원사업은 2000년대 들어서 진행되기 시작했단다. 특히 1998년에 세네카폴스 선언 150주년 행사가 여기서 열릴 때, 당시 영부인이던 힐러리 클린턴이 참석해서 연설을 한게 공원을 알리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고... 이 때 출입문 왼쪽에 붙어있는 종이가 뭔지는 시리즈 전편들을 보신 분이라면 이제 말 안해도 잘 아실테고, 다행히 닫힌 문 좌우로 큰 유리창이 있어서 살짝 안을 들여다 볼 수 있었다. (구글맵으로 위치를 보시려면 클릭) 비지터센터 내부에서 유일하게 볼만한 전시가 컨벤션 참가자 20명을 실물 크기로 만든 라는 청동 조각품이라는데, 안에 못들어가는 대신에 이렇게 유리창을 통해서 가장 핵심적인 6인의 '색칠놀이' 벽화를 보는 것으로 퉁을 쳤다.^^ 그림 제일 오른편에 그려진 남성은 그 전해에 로체스터로 이주해서 노예제 폐지 활동을 하던 프레더릭 더글러스(Frederick Douglass)로, 자신이 발행하는 신문에 컨벤션이 개최됨을 알리고 유일한 흑인으로 참가해서, 대회 이틀째 가장 논란이 된 여성의 참정권을 결의안에 포함시켜야 한다는 연설을 해서 이를 관철시켰다. 노예해방론자로 '19세기에 가장 사진이 많이 찍힌 사람'이란 타이틀도 가지고 있는 프레더릭 더글러스에 대해서는 워싱턴DC에 있는 그를 기리는 국립사적지 방문기를 클릭해서 보시면 된다. 아래쪽의 책은 컨벤션을 제안하고 주도한 엘리자베스 스탠턴(Elizabeth Cady Stanton)이 말년에 여성의 관점에서 성경을 해석한 책으로, 베스트셀러가 되면서 동시에 19세기말에 여성운동의 분열을 야기하기도 했단다. 맞은편 안내판에 색칠놀이에 등장했던 여성 5인의 사진이 있는데 가운데가 스탠턴이고, 제일 오른쪽이 필라델피아에서 방문한 루크레시아 모트(Lucretia Mott)이다. 두 여성은 1840년에 런던에서 열린 제1차 세계 노예제 폐지대회에 남편들과 함께 참여하면서 처음 만났는데, 여자는 방청만 허용되고 토론과 투표는 허용되지 않자, 미국으로 돌아오면서 함께 여성 평등권 운동을 하기로 의기투합한다. 그 후 스탠턴이 보스턴에서 여기로 이사했고, 모트가 남편과 함께 인근 오번(Auburn)에 있는 여동생 집을 방문해있는 동안에 세네카폴스에서 급히 컨벤션을 열기로 한 것이었다. 운하 건너편에 있다고 공원 지도에 표시되어 있던 스탠턴의 집을 찾아가기 위해 차로 다리를 건너는데, 딱 봐도 여성인권과 관련이 있어 보이는 커다란 벽화가 정면에 있어서 빨간불에 사진을 찍었다. 1848년의 여성이 현대의 여성에게 불꽃을 전달하는 모습의 란 제목의 그림으로, 보도 위에 여성 벽화가를 소개하는 안내판이 작게 보이는데, 정확히 불과 한 달전에 새로 완성되서 반짝반짝했다. 운하를 따라서 추가로 관련된 동상들이 있다고 해서 잠시 차를 세우고 도로를 건넜다. 앞서 언급한 150주년을 기념해서 뉴욕 주에서 설치한 이 동상은 미국 역사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여성 운동가로 여겨지는 수잔 앤서니(Susan B. Anthony)가 1851년에 여기서 가운데 여성의 소개로 스탠턴을 처음 만나는 것을 묘사하고 있다. 좌우의 둘은 이후 50년 이상 여성운동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동지로 함께 활동하며, 1869년에 여성 투표권 획득을 목표로 하는 전국여성참정권협회(National Woman Suffrage Association, NWSA)를 공동 설립한다. 그런데 자꾸 동상들 사이로 보이는 호숫가의 으리으리한 성같은 저택에만 눈길이... 가격이 얼마나 할까 궁금해서 찾아보니, 개인 집이 아니라 교회 건물이어서 그냥 넘어갔다~ 그리고 운하가 지나가는 앞쪽의 호수 이름도, 얼마 전에 한국 뉴스에 자주 나왔던 명품 목걸이의 브랜드와 같은 반클리프(Van Cleef)로 지도에 표시되어 있던게 뇌리에 남았다.^^ 주차한 곳으로 돌아가니 앞서 여성 3명의 동상에 비해서 아주 초라해 보이게 남성 3명을 묘사한, 미국 독립 후부터 1920년에 여성 참정권 수정헌법이 통과될 때까지의 연대기가 둘러져 있는 조형물도 있었다. 폭탄머리와 턱수염의 오른쪽은 프레더릭 더글러스이고, 가운데는 루크레시아의 남편이자 1848년 컨벤션의 둘쨋날 의장을 맡았던 제임스 모트(James Mott)로, 1864년에 최초의 남녀공학 대학들 중의 하나로 개교해서 지금도 리버럴아츠 칼리지 4대 명문을 일컫는 W.A.S.P. 중의 하나인 스와스모어 대학(Swarthmore College)을 다른 퀘이커 교도들과 함께 설립했다. 그리고 왼쪽은 20세기초에 여성 참정권 운동을 강력히 지지했던 급진주의 정치 운동가인 맥스 이스트먼(Max Eastman)이란 인물이란다. 커다란 국립공원청 로고를 말뚝에 박아놓은게 눈에 띄던 엘리자베스 스탠턴의 집 앞에 차를 세웠다. 그녀는 7명의 자녀를 키웠기 때문에 대부분의 시간을 이 집에서 보내며 주로 사상가, 작가, 전략가의 역할을 맡았고, 반면에 독신이었던 앤서니는 조직가, 운동가, 연설가로 전국을 누비며 그녀의 목소리를 전달하는 상호 보완적인 역할분담이 자연스럽게 만들어졌단다. 왼쪽의 스탠턴은 1902년에, 오른쪽의 앤서니는 1906년에 둘 다 86세로 사망했지만, 여성의 참정권을 명시한 미국 수정헌법 제19조가 1920년에 통과되면서 그녀들의 반세기에 걸친 노력이 마침내 결실을 맺게 되는데, 이와 관련해서는 워싱턴DC의 캐피톨힐에 있는 벨몬트·폴 여성평등(Belmont-Paul Women's Equality) 준국립공원 방문기를 클릭해서 보시면 된다. 이렇게 또 누가 시키지도 않았고 아무도 알아봐주지 않는 미국역사 공부를 실컷 하게 만들고는 다음 목적지로 출발하기 전에 세네카폴스에서 유달리 기름값이 쌌던 주유소를 찾아갔다. 원주민이 운영하는 곳으로 건물 안에는 작은 카지노도 있었고, 광고판의 'Seneca Select'는 미동부 원주민들이 소유한 담배 브랜드로 공장이 근처에 있단다. 텅텅빈 기름통을 가득 채우고, 국립 공원 비지터센터들이 문을 닫아서 여기 화장실도 이용한 후에, 벌써 6년이나 지난 추억인 딸을 대학교에 입학시키고 보스턴에서 나이아가라 폭포로 향할 때 달렸던 90번 고속도로를, 이번에는 반대방향인 동쪽으로 소나기를 맞으며 달려서 찾아간 나혼자 2박3일 듣보잡 여행의 다음 목적지는 로마(Rome)에 있는 미국 독립전쟁 유적지였다. 아래 배너를 클릭해서 위기주부의 유튜브 구독하기를 눌러주시면 정말 감사하겠습니다.^^

좌우 수직의 주상절리와 청록색의 강물이 만드는 비현실적인 풍경! 스투드라길 협곡(Stuðlagil Canyon)

카카오 나무가 자라지도 못하는 북극권의 아이슬란드가 초콜릿으로 유명한 이유를 구글AI에 물어봤더니... 고품질의 우유와 크림 등의 현지 재료, 감초(licorice)같은 독특한 맛의 조합, 그리고 장인 정신의 소규모 생산 등을 이유로 들었다. 아이슬란드의 상점 어디를 가나 Nói Sirius 브랜드의 초콜릿을 볼 수 있는데, 포장지에 화산, 오로라, 퍼핀 등과 유명한 관광지 사진이 각각 들어가 있어서, 주변에 간단한 여행선물용으로 안성맞춤이다. 여기를 클릭하면 그 제품들과 포장지를 모두 볼 수가 있는데, 그 중에 아래와 같은 아주 특이한 풍경이 하나 있다. 퀵실버님 여행기에서 처음 보고, 여기를 직접 들리기 위해서라도 링로드를 한바퀴 꼭 돌아야겠다고 다짐했던 곳을 아이슬란드 도착해서 이 초콜릿 포장지로 먼저 만났던 기억이 난다.^^ 녹색잎의 민트가 들어간 초콜릿이라서 청록색의 강물이 흐르는 풍경을 특별히 사용한 것 같은데, 과연 우리 가족은 포장지와 같은 모습을 두 눈으로 볼 수 있었을까? 링로드에서 나오자마자 비포장으로 바뀐 길을 15 km 달리면 나오는 아주 작은 마을에서 강을 건너고, 다시 조금 더 덜컹거리며 달리니 넓은 주차장이 나왔다. 트레일이 시작되는 곳에 세워진 안내판을 찍는 금발의 꼬마 사진작가의 포즈가 아주 제대로였고, 그 너머로 안내판의 사진과 같은 주상절리가 실제로 드러난 곳이 보였는데, 어김없이 이렇게 폭포수가 떨어지고 있는 스투드라포스(Stuðlafoss)가 입구부터 등장을 해주셨다. 날씨는 개이는 듯 했지만 바람은 아직 쌀쌀해서 모녀가 겉옷을 껴입고 편도 2.5 km의 하이킹을 시작했다. 이런 평화로운 풍경의 그다지 험하지는 않은 넓은 길을 30분 가까이 걸어가면, 차로 건넜던 요클라(Jökla) 강을 다시 만나고, 건너편으로 멀리 가건물과 주차장, 그리고 경사지를 비스듬히 내려오는 산책로가 보이면 거의 다 온 것이다. (구글맵으로 위치를 보시려면 클릭) 네비게이션에서 그냥 Stuðlagil로 찾으면 차로 더 가까이 갈 수 있는 강 건너 서쪽 주차장이 먼저 나오므로, 우리처럼 하이킹으로 접근하는 동쪽 주차장으로 오려면 입구에 있던 폭포 Stuðlafoss를 찾아오면 된다. 그렇다면 훨씬 가까운 주차장을 놔두고, 왜 왕복 1시간 하이킹을 해야하는지 그 이유는... 서쪽에 잘 만들어진 전망대들은 모두 저렇게 수직의 주상절리 절벽 꼭대기에 있어서, 강가로 내려갈 수가 없기 때문이다! 사람들을 따라 계속 걸어서 건너편의 마지막 전망대가 마주 보일 때까지 상류쪽으로 올라오면, 강폭이 가장 좁은 곳에서 좌우로 수직의 주상절리가 서있는 것이 보인다. 사진 왼편에 층층이 깍인 주상절리를 계단처럼 밟고 강가로 내려갈 수가 있는데, 바닥까지 가려면 그 경사를 따라 흘러내리는 물줄기를 건너야 한다. 그래서 아내는 끝까지 내려가지 않고 위에서 사진이나 찍어주겠다고 해서 부녀만 강가로 내려가보기로 했다. 배낭을 멘 위기주부와 지혜가 조심스럽게 물이 흐르는 부분을 건너서 아래쪽으로 내려가는 모습이다. "무사히 잘 건너왔어요~" 비가 많이 온 직후에는 수위가 훨씬 높게 흙탕물로 거세게 흐르는 모양이던데, 다행히 우리가 방문했을 때는 아주 맑지는 않지만 그래도 청록빛을 띠며 잔잔하고 낮게 흐르는 협곡을 볼 수 있었다. 그런데, 여행기를 쓰며 처음 알게된 재미있는 사실은... 이러한 비현실적으로 독특한 풍경이 인간에 의해 만들어졌다는 사실이다! 모처럼 위기주부가 찍은 세로 영상을 보여드리며 그게 무슨 말인지 설명을 드리면, 여기서 상류쪽으로 약 30 km 올라간 곳에 아이슬란드 최대의 수력발전소가 만들어지면서 이 협곡이 새로 나타났기 때문이다. 발전을 위해 강물을 지하터널을 통해서 다른 쪽으로 우회시키는 바람에 흘러오는 유량이 절반 이하로 줄어들어서, 수 백만년 동안 깊은 강물에 대부분 잠겨있던 주상절리 절벽이 세상에 드러난 것이란다. 댐 공사가 진행되던 2007년경부터 수위가 내려가며 절벽이 나타나기 시작했지만, 동부 아이슬란드 내륙의 워낙 외진 동네라서 동네 양치기들만 알고있던 이 곳이 현재는 링로드 일주의 필수방문 코스가 된 이유는 사진가 겸 여행작가인 Einar Páll Svavarsson이 2016년에 이 곳을 방문해서 찍은 한 장의 사진 때문이라고 한다. 위기주부가 찍은 우리집 따님의 이 사진은 아니고... 아이슬란드 전통 문양의 스웨터를 입은 여성이 약간 아래쪽에서 주상절리 절벽 아래로 흐르는 청록색 강을 바라보는 이 사진이, 지금은 문을 닫은 초저가 항공사 와우에어(WOW Air)의 기내지에 소개되면서 북미와 유럽의 관광객들이 찾아오기 시작했단다. 그가 직접 이 지역 땅주인의 허가를 받아 '기둥협곡(Column Canyon)'이라는 뜻으로 작명을 해 구글맵에도 등록해서, 이듬해 관광부에서 공식적으로 그의 공로를 인정하기도 했단다. 부녀가 구경을 잘 마치고 다시 건너오는 모습인데, 젖은 부분은 살짝 미끄럽기도 하고 또 낙석의 위험도 있다고 하므로 혹시 방문하시는 분들은 조심해서 이동하시기를 바란다~ 구경을 마치고 돌아 나올 때 햇살이 직접 강을 비추면서 색깔이 훨씬 맑게 보였다. 물이 청록색으로 보이는 이유는 당연하게도 빙하 퇴적물 때문으로, 전날 여행기에서 자세히 소개해드렸던 빙모 바트나요쿨(Vatnajökull)이 녹아서 북쪽으로 흐르며 만들어진 강이기 때문이다. 우리 가이드님과 달리 예습을 게을리 하는 바람에 서쪽 전망대에서 협곡을 내려다 보기만 하시는 분들도 많았다.^^ 양쪽 주차장 모두 사유지로 소유자가 다른 것 같은데, 그래서 저쪽에서 이리로 건너오는 다리를 만들거나 아니면 물가까지 내려가는 계단을 만드는 것을 협의 중이라 한다. 돌아갈 때는 햇살이 뜨거울 정도로 기온이 올라갔던 것 같고, 아이슬란드를 시작으로 북유럽까지 한 달을 여행하신다는 한국에서 오신 부부와 잠시 이야기를 즐겁게 나눴던 기억이 난다. 얼룩소는 들어봤어도 얼룩양은 처음 보는 것 같아서 신기하게 생각하며 한 장 찰칵~ 그렇게 처음 보여드린 초콜릿 포장지 속의 멋진 풍경을 직접 잘 구경하고는 주차장 입구의 노점에서 따뜻한 커피와 5달러 정도 했던 '아이스케키'를 사서 먹고 차로 돌아갔다. 당시 시간이 오후 4시반 정도였지만 여행 5일째인 이 날도 우리의 싸돌아 다니기는 절반을 겨우 넘긴 것 뿐이었다.

북부 뉴욕 주 오번(Auburn)의 해리엇 터브먼(Harriet Tubman) 생가와 교회 등의 국립역사공원과 묘지

가로가 긴 직사각형 모양의 펜실베니아 주 동쪽을 비스듬히 종단하는 81번 고속도로를 이용해서 북쪽으로 주경계를 넘으면, 뉴욕(New York) 주의 핑거레잌스(Finger Lakes) 지역이 나온다. 뉴욕 주의 비공식적인 11개 지역 구분은 여기를 클릭해서 마지막의 지도를 보시면 되고, 그 중 손가락처럼 길쭉한 모양의 호수들이 많이 있어서 핑거레이크라 이름 붙은 지역에 대한 설명은, 작년 가을에 아내와 함께 '뉴욕주 최고의 절경'을 찾아갔던 여행기의 첫번째 세부지도를 클릭해서 보시면 된다. 올해의 유일한 '듣보잡 취미생활'로 10월말에 위기주부 혼자 다녀왔던 북부 뉴욕주 2박3일 여행에서 두번째 목적지를 찾아가는 길에, 그 핑거레이크들 중의 하나인 스캐니에틀레스 호수(Skaneateles Lake)의 선착장에 잠시 차를 세웠다. 여기서 건너편까지 동서 방향의 폭은 1.5마일인 반면에 남북으로의 길이는 16마일이나 되니까 기다란 호수가 맞다. 내륙의 고지대라서 그런지 여기 호숫가는 벌써 가을 단풍이 끝물인 분위기였지만 그래도 잠시 여행자의 시선을 끌기엔 충분했다. 그러나 한가롭게 단풍구경을 할 여유가 없는 빡빡한 일정이라서 바로 다시 차에 올라서 옆의 다른 호수 북쪽 끝에 있는 마을을 찾아갔다. 시골길을 달리다 오번(Auburn)이란 도시 경계를 지나자마자 카운티에서 세워놓은 해리엇 터브먼(Harriet Tubman) 이름의 안내판이 나온다. '그녀 민족의 모세(Moses of Her People)'와 '지하철도(Underground Railroad)' 등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메릴랜드 주에 있는 그녀의 출생지와 활동을 기리는 다른 국립 공원을 작년말에 방문했던 아래의 여행기를 먼저 보시면 된다. "정말로 그녀의 얼굴이 들어간 미국 20달러 지폐가 만들어져 통용되는 날이 올까?" 해리엇터브먼 국립역사공원(Harriet Tubman National Historical Park)을 검색하면 나오는 위치가 이 곳인데, 저 안쪽 주차장에 의외로 차들이 제법 많아서 놀랐던게 가장 먼저 기억이 난다. 그녀는 캐나다에서 약 10년간 도피생활을 한 후인 1859년에 미국으로 돌아와 이 동네에 정착하게 되는데, 먼저 왼편으로 보이는 하얀색 목조 건물부터 설명을 드린다. (구글맵으로 위치를 보시려면 클릭) 그녀가 다른 가난하고 나이 든 흑인과 원주민들을 위해 1896년에 땅을 사서 지었던 양로원(Home for the Aged) 건물을 1953년에 복원한 것이다. 하지만 1975년에 국가유적(National Historic Landmark)으로 지정되었다는 명패만 있을 뿐 국립공원청 로고 등이 전혀 보이지 않는데, 관련 장소들을 묶어서 2017년 1월에 국립역사공원으로 지정된 이후에도, 양로원과 인접한 생가는 그녀로부터 기증받았던 교회에서 별도로 만든 재단에서 계속 소유 및 관리를 하기 때문이란다. 그래서 연방정부 셧다운 중임에도 위기주부가 도착하기 직전에 투어가 있어서 그렇게 차들이 많았던 것이고, 투어 요금은 일인당 7달러라고 안내판에 씌여있다. 바로 남쪽에 두 여성분이 배경으로 셀카를 찍고 있는 벽돌집이 그녀가 1913년에 약 90세로 사망할 때까지 살았던 집으로, 시경계를 벗어나서 정확한 행정구역 상으로는 플레밍(Fleming) 마을에 속한다. 처음 부모님을 모시고 이사를 올 때는 목조주택이었지만 1880년에 화재로 전소된 후에 벽돌로 새로 지어서 지금까지 그대로 남아있는 것이란다. 해리엇 터브먼이 여기 정착할 수 있도록 집을 마련해준 사람은 이 지역 유지의 딸로 노예제 폐지론자인 Frances Adeline Seward인데, 바로 뉴욕 주지사와 상원의원을 거쳐 링컨의 국무장관으로 지명되고 나중에 알래스카를 매입한 것으로 유명한 윌리엄 H. 슈워드(William Henry Seward)의 아내이다. 참고로 재작년에 맨하탄의 매디슨스퀘어 공원에 있는 슈워드 국무장관의 동상을 보여드린 적이 있다. 다음으로 국립역사공원에는 포함되지 않지만, 가장 중요한 곳을 보기 위해서 오번 시의 중심에 있는 포트힐 묘지(Fort Hill Cemetery)를 찾아왔다. 인적없는 넓은 공동묘지라서 그냥 2박3일 동안 2,000 km 가까이 잘 달려준 자동차 독사진 하나 찍어줬다.^^ 유명인답게 커다란 나무 아래에 성조기와 함께 넓게 자리를 잡고 있어서, 그녀가 잠든 곳을 찾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묘비에 이름이 Harriet Tubman Davis라고 적혀있는 이유는, 그녀가 자신이 탈출시킨 22세 연하의 넬슨 데이비스(Nelson Davis)란 남성과 1869년에 결혼했기 때문이다. 묘비의 뒷면에는 그녀의 업적 및 생애와 함께 "잘 했어, 하나님의 종"이란 글귀가 씌여있었다~ 묘비 위에 놓여있던 작은 돌들까지 잠깐 구경하고는 다음 목적지를 찾아 다시 차로 이동하는데, 수 많은 묘비들 위로 노란 단풍이 아주 멋있어서, 잠시 창문을 내리고 사진을 찍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도착한 장소는 묘지 바로 옆의 주택가에 있는 그녀가 생전에 열심히 출석하고, 자신이 만든 양로원과 사후에 집 등을 모두 기증한 교회이다. 1891년에 지어진 톰슨 AME 시온교회(Thompson African Methodist Episcopal Zion Church)로 앞서 보여드린 양로원과 생가와는 달리, 이 건물은 연방정부가 매입해서 내외부를 완전히 수리한 후에 주중에는 국립공원청 비지터센터로 사용되고, 주일에는 신도들이 모여서 예배를 드린다고 한다. 공원 홈페이지의 대표사진이 이렇게 교회를 올려다 본 모습이라서 같은 구도로 한 번 찍어봤는데... 정말 이상한 점은 여기도 국립 역사공원임을 알리는 간판 등이 전혀 없다는 사실이었다. 그 이유는 아마도 이 공원이 트럼프가 처음 45대 대통령으로 취임하기 열흘전에 오바마 행정부와 의회에서 부랴부랴 설립된 것과 무관하지 않은 듯 했다. 그래도 명색이 내셔널파크와 버금가는 권위의 국립역사공원 방문기니까 NPS 로고라도 하나 등장해야 할 듯 해서, 비지터센터 겸 교회 정문에 붙어있던 안내문 사진을 마지막으로 보여드리며 마친다~ 그나저나 사상최장 기록을 계속 갈아치우고 있는 이번 미국 연방정부 셧다운은 언제까지 계속되려나? 우리집에도 급여를 바로 못받고 있지만 필수인력으로 오늘도 새벽 출근한 공무원이 한 분 계시는데 말이다. ㅎㅎ 아래 배너를 클릭해서 위기주부의 유튜브 구독하기를 눌러주시면 정말 감사하겠습니다.^^

아이슬란드 여행 5일차는 섬 전체에서 세번째로 높은 폭포인 헨기포스(Hengifoss) 하이킹으로 시작

무려 1만개의 폭포가 있다는 아이슬란드에서 가장 높은 첫번째는 낙차 228 m의 모르사르포스(Morsárfoss)지만 바트나요쿨 국립공원의 빙하지대 안에 있어서 사실상 일반인이 찾아가기는 좀 어렵고, 두번째는 레이캬비크에서 1시간 거리인 글리무르 폭포(Glymur Falls)로 198 m이나 편도 4시간의 힘든 하이킹을 해야만 가까이서 볼 수 있단다. 따라서 우리가 여행 5일째의 처음 목적지로 찾아갔던 섬의 동쪽에 있는 세번째로 높은 이 폭포가, 사실상 일반 여행객들이 다가갈 수 있는 최고(最高)의 아이슬란드 폭포인 셈이었다. "우리가 안에서 잔 나무통이에요~" 캠핑장 공동주방에서 위기주부가 많은 캠퍼들의 부러움을 한몸에 받으며 햇반을 데우고 스팸을 구워서 점심 도시락만 준비하고, 밥은 따로 먹지 않고 출발을 했다. 체크아웃을 위해 잠시 다시 시내로 내려간 김에, 작은 어촌인 듀피보구르(Djúpivogur) 앞바다의 아침을 찍어봤다. 여기서 내륙에 있는 우리의 다음 목적지를 입력했더니, 계속 꼬불한 해안가를 따라 이어지는 1번 링로드를 벗어나서 939번 도로를 타라고 알려줘서 당연히 그렇게 했는데... 그 도로는 비포장으로 얕은 언덕을 넘어가는 산길이었다! 무엇보다 사진처럼 안개도 아주 짙게 끼어서 지금 보이는 앞차를 따라잡기 전까지는 정말 좌우에 드문드문 세워진 저 노란 막대기가 없었으면 큰일 날 뻔 했으며, 가끔 맞은 편에서 갑자기 차도 나타나서 식은 땀을 흘리며 운전했다. 이 길로 95번 포장도로를 만날 때까지 약 20 km의 30분 동안이 아이슬란드 여행에서 가장 힘든 운전이었다. (우리처럼 식겁한 사람들이 많은지 레딧에도 그냥 1번으로 95번을 만날 때까지 빙 돌아서 포장도로를 이용하라는 글이 있었음) 그렇게 고생을 해서 에질스타디르(Egilsstaðir) 도시의 N1 주유소에 10시쯤 도착을 했다. 여기서 핫도그(혹은 다른 빵?)를 사고 렌트카 회사에서 준 쿠폰을 이용한 공짜 커피로 간단히 요기를 했는데, 여기서 건물의 왼편에 큰 사진을 붙여놓은게 보이는 폭포를 갈거냐 말거냐 고민이 생겼다. 왜냐하면 전날에 17시간의 강행군을 한데다, 오늘도 이동거리가 만만치 않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우리가 또 언제 아이슬란드에 와보겠어? GO GO!" 아주 폭이 넓은 강을 따라 30분 이상을 상류로 올라와 헨기포스(Hengifoss) 트레일이 시작되는 주차장을 찾아왔는데, 왕복 2시간 하이킹에 다시 차로 돌아나가는 시간까지 고려하면 3시간 이상이 이 폭포를 구경하는데 드는 셈이었다. 안내판을 보면 등반 고도차도 350 m로 제법 되고 계곡의 왼쪽으로 올라가서 내려올 때는 다리를 건너 오른쪽을 이용하라고 해서 그렇게 했다. 초반에 계단과 경사로가 많이 나와서 힘든 것도 있었지만, 더 큰 문제는 저 위에 폭포가 있는 곳까지 구름이 내려와 있고 간간이 빗방울도 떨어지는 날씨였다. "힘들게 올라갔는데, 구름에 가려 안 보이면 어떡하지..." 첫번째 전망대에 도착하니 계곡도 보이고, 저 위쪽에 구름도 겆히는 듯 해서, 다행이라 생각하며 좀 더 올라갔더니, 가느다란 국숫발같은 촘촘한 주상절리 절벽에서 떨어지는 2단의 '작은 폭포'인 리틀라네스포스(Litlanesfoss)가 나타났다. 작다고 해도 총 낙차가 30 m나 되며, 주상절리 폭포(Basalt Column Falls)라는 뜻의 Stuðlabergsfoss로 불리기도 한단다. 계곡을 건너는 다리가 나왔으니 2/3 정도 올라온 거니까, 날씨도 많이 나아진 것 같아서 힘을 내서 끝까지 올라가 보자~ 여기서부터 왼편으로 층층이 떨어지는 다른 폭포도 하나 더 보이고, 그랜드캐년 느낌도 좀 나는게, 걸어서 다가가는 길의 풍경이 아주 멋있었다. 한가지 아쉬운 점은 날씨가 더 좋았으면 풍경사진이 아주 잘 나왔을 것 같다는 거였다. "역시 안 건너뛰고, 와보길 잘 했습니다!" 물론 그래서 이 날도 밤 11시에 숙소에 들어가게 되지만 말이다... ㅎㅎ 보드워크가 끝나는 여기가 공식적인 트레일 마지막의 전망대이지만, 많은 사람들이 계곡을 따라 더 올라가길래 우리도 뒤따라 가보기로 했다. (구글맵으로 위치를 보시려면 클릭) 초반에는 어느 정도 길이 있었지만, 몇 분을 올라오니까 그냥 험한 바위들만 계속 나와서 우리도 이 정도까지만 가기로 하고 멈췄다. 높이 128 m의 헨기포스(Hengifoss)는 "Hanging Falls"라는 뜻의 이름처럼 수직으로 데롱데롱 매달린 듯한 물줄기가 장관인데, 특히 검은 현무암 사이에 붉은 점토층이 얇게 들어간 지층의 단면이 드러난 절벽으로 유명하다. 가끔 인터넷에서 저 아래 서있는 사람의 옷만큼 점토층이 빨갛게 보이는 사진들도 볼 수 있는데, 이 날은 날씨가 흐려서 그런지 아니면 그게 뽀샵을 한건지 그 정도의 선명한 붉은 색은 아니었다. 아내가 찍은 짧은 세로 영상도 하나 추억으로 올려놔 본다~ 뜬금없는 위기주부의 근엄한 독사진도... ㅋㅋ 조금 내려오다가 가족 셀카도 한 장 찍었다. "그래, 그냥 이런 표정이 어울려~" 원래는 주차장 피크닉 테이블에서 점심 도시락을 먹으면 시간이 딱 맞았는데, 불행인지 다행인지 우리가 하이킹을 끝내는 시간에 딱 맞춰서 또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그래서 일단 다시 1번 도로까지 돌아 나가서 두번째 목적지를 향해 달리기 시작했고, 오후 2시가 다 되어서 배가 고파 더 이상은 못 가겠다 싶을 때, 마침 도로옆으로 작은 주차장이 나와서 거기에 차를 세우고, 햇반에 스팸을 올리고 김가루를 뿌려서, 차 안에서 또 다른 폭포를 멀리 감상하며 아주 맛있는 점심을 먹었다.^^ 지도를 다시 찾아보니 류칸디(Rjúkandi)란 이름도 있고, 가까이 올라가서 보는 짧은 하이킹 코스도 있어서 주차장을 만들어 놓은 것이었다. 그렇다고 밥을 잘 먹고 또 바로 하이킹을 한 것은 아니고... 이번에는 링로드에서 바로 또 비포장으로 바뀐 길을 덜컹거리며, 작은 강을 거슬러 올라 다음 목적지를 찾아갔다. 아래 배너를 클릭해서 위기주부의 유튜브 구독하기를 눌러주시면 정말 감사하겠습니다.^^

국립 인디언박물관 별관인 뉴욕 George Gustav Heye Center를 끝으로 스미소니언 박물관 20개 모두 방문

정확히 4년전에 미동부 버지니아로 이사를 오고 몇 달 지나지 않은 겨울에, 아내와 둘이서 워싱턴DC 내셔널몰로 가서 '스미소니언 뮤지엄 도장깨기'를 본격적으로 시작했었다. 비지터센터 격인 스미소니언 캐슬을 방문해서 재단의 유래와 함께 소속된 20개의 박물관 리스트를 보여드리고, 시간이 될때마다 안 가본 곳들을 찾아다니기 시작했는데, 이 글로 마지막 20번째 링크가 모두 채워졌다. (해당 포스팅을 보시려면 클릭) 특히 이 박물관은 뉴욕에 있는 두 개중의 하나로, 건물 앞으로 지나간 것은 서너번이 되지만, 내부로 들어가서 구경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 따로 방문기를 쓸 수 있었다. 뉴욕시의 해상공원이라 할 수 있는 거버너스 아일랜드(Governors Island) 구경을 마치고, 다시 우리를 맨하탄까지 공짜로 태워줄 페리가 부두에 들어왔다. 좌청룡 우백호가 아니라, 좌-저지시티 우-브룩클린의 맨하탄 다운타운을 향해 천천히 다가가고 있다. 하지만 실제 브룩클린의 고층건물들은 사진 오른편에 잘려서 보이지 않고, 브룩클린 브리지 너머로 홀로 우뚝 솟아있는 고층건물은 맨하탄의 투브리지(Two Bridges) 지역에 2019년 완공된 80층짜리 고급 아파트 One Manhattan Square 빌딩이다. 그런데 위키에 따르면 아직도 입주율이 70% 정도밖에는 안 된다고... 오렌지색 스테이튼 아일랜드 페리가 정박한 선착장은 화이트홀 터미널(Whitehall Terminal)이고, 우리 배는 바로 옆의 오래된 배터리 해양건물(Battery Maritime Building)로 향하고 있다. 한적하고 평화로웠던 섬을 떠나서 다시 사람들이 바글바글거리는 맨하탄 다운타운에 상륙해보자~ 배에서 내리자마자 마주친 것은 화이트홀 터미널 앞 광장에서 거리공연을 하는 사람들... 저렇게 '인간탑'을 쌓을 때까지는 좋았는데, 하이라이트 공연을 앞두고 너무 뜸을 들이는 바람에 그냥 슬쩍 빠져나왔다. 그리고는 맨하탄의 끄트머리 배터리 공원(The Battery)의 경계인 State St를 따라서 볼링그린(Bowling Green)까지 걸었다. 삼거리에서 오른편에 보이는 석조 건물이 1907년에 완공된 알렉산더 해밀턴 미국세관(Alexander Hamilton US Custom House)이다. 하지만 세관은 1974년에 철수했고, 현재는 국립 기록보관소 뉴욕 지사, 미국 파산법원, 그리고 국립 인디언박물관 뉴욕 별관이 입주해 있다. 정면은 나중에 보여드리기로 하고, 일단 녹색 가림막 사이로 만들어진 통로를 따라 1층으로 입장을 했다. (구글맵으로 위치를 보시려면 클릭) 직원 없는 안내 데스크에는 박물관의 영문명이 적혀 있고, 배경으로 'WELCOME'이 여러나라 말로 씌어있는데... 한글로 '신걸환영합니다'라고 엉뚱하게 적혀있다. (누가 스미소니언 재단에 고쳐달라고 연락 좀) 이 박물관의 공식 명칭은 조지 구스타프 헤이 센터(George Gustav Heye Center)로 동명의 인물이 1903년부터 개인적으로 수집한 아메리카 원주민의 유물을 전시한 사설 박물관이 1916년부터 운영되었는데, 스미소니언 재단에 수집품 전체를 기증하는 형식으로 1994년에 박물관이 이리로 이전을 한 것이다. 2층으로 올라와서 타원형의 중앙홀을 딱 보는 순간에, 예전에 어디서 '인디언 유물에는 전혀 관심이 없더라도, 건물 내부를 구경하는 것만으로도 들러볼 가치가 있다'고 적은 글을 본게 기억이 났다.^^ 특히 천장화들이 인상적으로 처음에는 없었지만 1937년에 그려진 것들로, 큰 그림은 뉴욕과 뉴저지 항구의 해운활동을 묘사하고, 그 사이에 세로로  그려진 인물들은 신대륙과 관련이 있는 유명한 탐험가들이라 한다. 그래도 건물만 보러 온 것은 아니니까, 예의상 중앙홀 주변으로 만들어진 전시실도 후다닥 둘러보기로 했다. 최근에 새로 리노베이션한 것으로 보이는 현대적인 전시는 예전에 방문했던 워싱턴DC 내셔널몰에 있는 국립 인디언박물관 본관과 아주 비슷한 느낌이었다. 그래서 건성으로 통로를 따라 휙휙 지나가며 구경을 하다가... 박물관 브로셔 표지의 실물을 딱 발견했다! "뮤지엄 하이라이트들 중에서도 얼굴마담을 직접 구경했으니 다 본거네~" 그렇게 마지막 20번째 스미소니언 박물관은 몇 십분만에 관람을 마치고 밖으로 나왔다. 빨간 배너가 걸려있는 2층 출입구로 나와서 계단을 내려와 뒤돌아 건물 전체를 바라 본 모습이다. 화려한 보자르 양식으로 지어져서 맨하탄에서 역사적 중요성을 가지는 대표적인 건물이며, 처음에 세관으로 건축되었기에 건물 정면의 여러 조각들이 관련된 여러가지 의미를 가지는 것으로 유명하다. 특히 별도의 기단에 올려진 대리석으로 만든 '4대륙(Four Continents)' 작품이 유명한데, 이 사진에서는 왼편의 2개만 보인다. (오른편 2개의 조각을 청소하는 중이라 가려 놓았음) Asia America Europe Africa 워싱턴 링컨기념관의 링컨 좌상과 보스턴 하버드대학교의 존하버드 동상 등 의 많은 조각을 제작한 다니엘 체스터 프렌치(Daniel Chester French)의 작품으로 각각 아시아, 아메리카, 유럽, 아프리카를 의인화한 여성상들로 세부적인 묘사들이 재미있어서 위키에서 확대 사진을 가져와 보여드린다. 하지만 관광객들은 이 조각들과 건물에는 거의 관심이 없고, 볼링그린의 나무들을 사이에 두고 바로 건너편에 있는... 이 '황소' 주위에만 가득 몰려들었다.^^ 특히 뒤쪽에서 저렇게 포즈를 취하고 사진을 찍기 위해서 아주 긴 줄이 만들어져 있었는데, 특히 중국인들 사이에 저 부위를 만지면 돈을 많이 벌게 된다는 소문이 있단다. "그래요, 반질반질하게 만지고 부자되세요~" 앞쪽도 사진을 찍기 위한 줄이 따로 만들어지는 경우도 있는데, 이 날은 줄이 없어서 그냥 좌우와 옆에서 마구 들이미는 분위기였다. 하기야 우리 가족도 약 15년전에 여기서 모녀가 거의 '단체사진'을 찍었던 기억이 난다. 이 여성분은 타이밍을 잘 맞춰서 독사진 획득에 성공하신 듯... ㅎㅎ 돌진하는 황소 조각의 뒤쪽으로 성조기와 함께 태극기가 펄럭이는 모습이 보이는데, 이 날이 맨하탄의 '한국의 날' 행사일이었다는 것을 나중에 알았다. 미리 알았다고 해도 우리는 다른 계획이 있어 퍼래이드를 보러가기는 힘들었겠지만 말이다. 이후로 브로드웨이를 따라 걷다가 트리니티 교회에서 인디언박물관 건물 이름의 주인공인 초대 재무장관 해밀턴의 묘지를 참배하고, 저녁에는 뮤지컬 을 관람했던 것은 이미 소개를 해드렸기에 이걸로 10월초 2박3일 뉴욕 방문기를 모두 마친다. 아래 배너를 클릭해서 위기주부의 유튜브 구독하기를 눌러주시면 정말 감사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