멧가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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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 (1992)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 (1992)

멧가비|2017년 3월 21일

권력은 권력 스스로 태어나 존재하지 않는다. 특히 부조리한 권력은 그 권력에 희생당하는 구성원들 스스로 불러들이기도 한다. 그것이 무지함에서 비롯되었든 아니면 그릇된 신념의 결과이든, 결국 수요가 있어야 공급이 존재하게 된다. 엄석대 저 새끼 나쁜 새끼라며 욕하는 아이들도 그 전 까지는 석대를 영웅처럼 혹은 왕처럼 떠받들며 그 그늘 아래에서 콩고물을 얻어 먹고 싶어하던 피지배계급이었다. 아이들은 폭력 아래에서 숨죽여 지배를 받았지만 동시에 자신들 위에서 폭력으로 군림할 누군가를 늘 필요로 하고 있었을지 모른다. 엄석대의 몰락은 그저 그 자리의 원래 주인인 (군부 독재 시대의) "교사"가 나타났기 때문이다. 석대는 정의의 심판을 받은 게 아니라 용도 폐기됐을 뿐이다. 철권이 녹슬면 기회주의자들은

김복남 살인사건의 전말 (2010)

김복남 살인사건의 전말 (2010)

멧가비|2017년 3월 13일

닫힌 사회의 구조적 폭력, 사회 정의에 대한 무관심과 고발 의식과의 거리 등 영화의 거시적인 주제의식들은 더 이상 새로운 개념이 아니다. 특히 폭력에 희생당하는 여성성에 대한 동정적 시선이 이 영화를 새로운 무언가로 만드는 건 아니다. 가장 공감되는 관점은, 인간 관계의 온도차, 즉 비극이 발생하는 지점을 바로 그 온도차로 상정한 부분이다. 단순히 폭력의 피해자인 복남이 서슬 퍼런 낫으로 가해자들을 도륙하는 복수극의 쾌감으로 일관하는 영화가 아니다. 복남이 낫을 들기로 결심하는 데에는 해원의 외면과 그에 대한 원망 등 복잡한 것이 작용했으리라. 관찰자이자 간접적 가해자인 해원의 존재는 영화를 "관계"에 대한 이야기로 만든다. 복남에게 있어서의 해원, 해원에게 있어서의 복남이라는 사람이 갖는 의

패신저스 Passengers (2016)

패신저스 Passengers (2016)

멧가비|2017년 3월 13일

동면기의 기능 고장에서 시작된 이야기. 생각해보면 소재 자체는 우주를 배경으로 한 재난물 가운데서도 정말 SF 장르와 밀접한 형태다. 동면기가 나오는 영화는 많은데 그 동면기가 말썽을 일으켜 이야기가 시작되는 영화를 내가 전에도 본 적이 있었나 생각해봤는데 답을 못 찾았다. 극한 상황에서의 윤리적 고민이나 스톡홀롬 증후군 등 생각해 볼 소재가 많지만 영화는 그것들을 한국식 이자까야에 걸린 일본화 족자처럼 적당히 분위기만 내는 장식 이상으로 활용하지 않는다. 짐이 오로라를 살린 셈이라는 결과론적인 모순의 인과관계에도 무심하다. 사고가 아니라, 의도해서 짐을 깨워놓고 숨어서 관찰하는 제 3의 인물이 있다거나 하는 식의 반전은 일어나지 않았다. 그런 반전이 있지 않을까 기대하던 와중 타이밍 좋게 등장한

멜랑콜리아 Melancholia (2011)

멜랑콜리아 Melancholia (2011)

멧가비|2017년 3월 12일

전후반 두 파트로 나뉜 형식을 통해 영화는 우울증 환자 본인과 그 측근(가족)의 관점을 균형있게 다룬다. 파트가 넘어가면서 영화의 톤과 장르가 변하는 건 우울증의 당사자와 보호자(관찰자)가 그것을 받아들이는 정서 차이를 나타낸다. 전반부에서 상대적으로 멀쩡하던 저스틴이 후반부에서 기초적인 생활은 커녕 눈도 제대로 못 뜨는 중증으로 묘사되는 것 역시 단지 병증의 악화만이 아닌, 우울증을 대하는 본인과 제 3자의 관점 차이를 은유하는 묘사이기도 하다. 우울증 환자인 저스틴에게는 주변 모두가 자신을 못살게 굴고 자신의 인생을 망가뜨리는 존재다. 자신은 그저 마음의 병을 가졌을 뿐인데 사람들은 자신을 비난하거나 떠나간다. 이게 전반부, 저스틴 본인이 받아들이는 자신의 우울증의 현실적인 면. 전반에서

셀프 리스 Self/less (2015)

셀프 리스 Self/less (2015)

멧가비|2017년 3월 12일

용궁 나라의 용왕님이 있었다. 평생을 바쳐 제국을 이뤘으나 육체의 쇠락으로 죽어가는 것만은 막을 수가 없었던 용왕님은, 별주부가 타이미이 좋게 진상해 올린 간 덕분에 새 삶을 얻는다. 그러나 새 간으로 회춘해 부어라 마셔라 흥청망청 즐겁던 시간도 잠시. 토끼의 것인 줄만 알았던 간은, 사실 앞길 창창한 심청이가 아비의 눈을 뜨게 하려고 별주부에게 돈 받고 내놓은 인신공양 제물이었다. 용왕님에게도 일말의 연민과 공감 능력은 있었던 것. 딸 청이를 잃은 심봉사에게 동정심을 느낀 용왕님은, 사악한 장기매매꾼 별주부를 불태워 죽이고 청이에게 간과 목숨을 돌려주며 자신은 정해진 죽음을 맞는다. 결국 용왕님이 간과 함께 물려 준 재산으로, 청이는 눈 뜬 아비와 잘 먹고 잘 살게 되었다는, 그저 그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