멧가비
Posts
2018 posts
비트 (1997)
그 시절, 스포츠 머리 학생들의 가슴에 울끈불끈 반항심을 끓어오르게 만든 전범. 이 영화 때문에 소년들은 주먹에 라이터를 쥐고, 필터 뜯은 말보로 레드를 피우고, 데니스 로드맨 티셔츠를 구하러 동대문을 뒤졌다. 좀 더 막 나가는 녀석들은 완벽한 비트 키드가 되기 위해 바이크를 타기도 했다. 덕분에 어부지리로 몇 번 얻어탔던 기억도 난다. 시대를 막론하고 청춘이 늘 아름답지 못했던 대한민국에서 드물게 시대의 아이콘이 된 청춘영화라는 의의가 있다. 덕분에 왕가위 영화는 도저히 못 보겠는 꼬마들에게는 적절한 대체재로서 기능하기도 했다. 물론 왕가위의 우라까이라는 걸 알고 본 놈이 몇이나 됐을지는 알 수 없지만. 허무주의 꽃미남 민, 거친 욕망의 태수, 허풍쟁이 환규. 개성 뚜렷한 세 주인공의 호흡이

변호인 (2013)
안 그래도 송강호인데, 이 영화를 기점으로 이젠 그냥 연기의 데우스 엑스 마키나인 것만 같다. 송강호를 파워레인저에 데려다 놓으면 지구는 정말 끔찍한 멸망의 위기에 놓인다. 송강호를 텔레토비에 데려다 놓으면 그 곳은 원색의 이주민들이 감금 노동착취를 당하는 사탕수수 농장이 된다. 송강호를 BBC 다큐멘터리에 데려다 놓으면 사바나는 느와르의 무대가 될 것이다. 송강호로 웃으려면 [반칙왕]을 보면 된다. 송강호를 한심해 하고 싶으면 [살인의 추억]을 보면 된다. 송강호로 울고 싶으면 이 영화를 보면 된다. 배우와 별개로 영화는? 진심은 알겠으나, 그렇다고 해도 우직함을 넘어 촌스럽기까지 한 연출. 전두환의 사진 액자를 딱 그 타이밍 그 프레임 안에 집어넣는다든지, 송우석과 함께 99명 변호사들의 표정을

그때 그 사람들 (2004)
영화의 용기와 역사적 의미는 별개로 칭찬해 마땅할 것이나, 결국 만족스러울 정도로 속 시원한 영화라고는 보기 힘들다. "그는 왜 육본으로 갔는가"에 대한 시시한 대답. 영화가 다루는 실제 역사의 무게와 감독의 태도 사이에 괴리감이 심하다. 어차피 실명도 사용하지 않은 거, 적당히 모티브만 따온 풍자극이다라고 둘러댈 수 없는 역사적 소재 앞에서 감독은 명확한 자신의 입장을 유보하고 한 발 물러선 듯 보인다. 물론 화자가 특정한 정치적 입장을 취해야 할 의무는 없다. 하지만 이런 이야기는 정치적 입장을 녹여내기 위해서 끌어올만한 것에 가깝다. 아무런 입장을 취하지 않고 관점을 배제할 거였다면 대체 무슨 의도로 그 날의 난장판에 관객을 끌어들이고 시시한 너스레만 떨고 있는가. 역사의 큰 전환점을 군상극으

범죄와의 전쟁: 나쁜 놈들 전성시대 (2015)
수 많은 명장면과 재미있는 대사들로 젊은 관객들의 농담 거리를 수 없이 뽑아낸, 젊은 느와르 중 하나. 부분은 좋은데 전체 구성은 아쉽다. 당시 노태우가 선포했던 "범죄와의 전쟁"은 영화의 갈등이 되는 주 배경으로서 작용하는 대신 갈등 요소를 한 번에 밀어버리는 데우스 엑스 마키나로만 기능한다. 쉽게 말해, 밥상 엎어버린 거다. 일본 영화로 치면 야쿠자들의 항쟁으로 시작해 대지진으로 마무리 되는 식이다. 물론 이 영화를 깡패 느와르로 감상하는 대신, 깡패들의 세계는 그저 배경일 뿐, 시대의 혼란을 빡세게 뽑아먹은 한 기회주의자의 이야기라고 보면 애초에 실제 역사의 한 부분인 "범죄와의 전쟁" 역시 기회주의자로서의 성장담에 필요한 역경의 한 요소일 수 있다. 하지만 그러기엔 영화의 가장 재미있는 부분

달콤한 인생 (2005)
선문답 같은 대사들이 오가고 몸에 맞춘 수트를 입은 미남들이 암흑가에서 거드름을 피운다. 스타일을 내세운 느와르, 물론 현실의 깡패 이야기가 아니다. 깡패라는 것을 무법자 이상의 어떤 폼나는 존재로 여기며, 귀찮은 과정 뛰어넘어 멋있어지고 싶고 성가신 것은 때려서 굴복시키고 싶어하는 멍청이들의 판타지. 멍청한 마초들이 몽정하는 꿈의 세계관을 돈 들이고 공들여 영화로 만들면 이 영화처럼 된다. 담배 초콜릿 같은 영화. 순정에 죽고 가오에 사는 폼 나는 마초들의 꿈동산. 결국 영화 속 폼잽이들의 모든 말과 행동은 나르시시즘, 즉 자뻑으로 수렴된다. 미녀에게 첫 눈에 반해 판단 착오를 하는 순정 마초인 내가 너무 멋지고, 모욕감을 준 부하에게 냉혹한 린치를 가하는 내가 존나 멋진 것 같고, 개처럼 구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