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사서독
Posts
249 posts
크랙: 닫힌 사회와 그 적들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 감독의 영화 몽상가들로 인상 깊은 스크린 데뷔를 하긴 했지만 이후의 작품 선택은 킹덤 오브 헤븐과 007 카지노 로얄을 제외하면 참으로 미묘한 것이 에바 그린의 최근 필모그래피입니다. 킹덤 오브 헤븐이 2005년에 개봉했고 카지노 로얄이 2006년에 개봉했으니 2016년인 현재, 에바 그린의 출연작 중에서 대중적으로 흥행에 성공한 작품은 없는 셈입니다. 팀 버튼 감독의 다크 섀도우즈에 출연해서 자신만의 독특한 매력을 선보이긴 했지만 영화 자체가 화려한 출연진에 비해 흥행과 비평 모두 아쉬운 부분이 있었죠. 이후 그녀의 존재감을 알린 작품은 300: 제국의 부활과 씬시티 2입니다. 그래픽 노블을 원작으로 한 마초 성향 영화의 속편에 연이어 출연한 에바 그린은 두 영화에서 악녀 역을 맡

성수학원: 성스러운 짐승들의 폭력
삼국지 게임을 즐겨 해봤던 이들이라면 이름 한 번은 꼭 들어봤을 코에이(KOEI)란 게임 회사가 있다. 그런데 일본에는 그 코에이와 비슷한 이름을 가진 거대 영화사가 있다. 일본 문화에 끼친 영향력을 따진다면 게임회사 코에이를 능가할 그 영화사의 이름은 바로 토에이(TOEI 東映)로, 일본 야구를 좋아하는 분들이라면 토에이 플라이어스란 구단 이름을 기억할 것이다. 토에이 플라이어스는, 한국계 야구선수 장훈(일본명 하리모토 이사오) 선수가 데뷔를 했던 팀으로, 장훈 선수가 요미우리 자이언츠로 옮겨가서 왕정치(일본명 오 사다하루)와 함께 OH포를 완성하기 전까지 열심히 뛰었던 팀인데 한국에서 건너간 백인천 선수가 토에이 플라이어스의 중심타자였던 장훈 선수와 함께 뛰기도 했던 팀이기도 하다.

사노: 사노여, 새벽을 노래하라!
아시안게임이 열렸던 1986년에 임권택 감독이 메가폰을 잡고 강수연이 주연을 맡아 열연을 펼친 영화 씨받이가 개봉되었고 강수연은 씨받이에서의 열연을 통해 제44회 베니스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을 수상하게 되었다. 과거의 활력을 잃은 채 라쇼몽, 7인의 사무라이의 구로자와 아키라 감독을 비롯한 일본 감독, 그리고 그 감독이 연출한 영화와 그 영화에 출연한 배우들이 해외 영화제에서 연이어 상을 수상하는 것을 지켜봐야만 했던 한국 영화계로서는, 충무로를 대표하는 감독이라고 할 수 있는 임권택 감독과 그의 영화, 그리고 그 영화에 출연한 여배우가 세계 유수의 영화제에서 호평을 받는 것을 기쁜 마음으로 바라보았다. 이후 임권택 감독은 베니스 영화제(씨받이, 강수연)에서의 영광을 시작으로, 모스크바 영화

백발마녀전: '경파예상우의곡'의 슬픔
홍콩영화가 한국에서 인기를 끌 당시에는 인터넷이 제대로 보급되지 않았었습니다. 아예 인터넷이란 존재를 모르던 시절도 있었구요. 영화라면 으레 극장 아니면 비디오테이프를 통해서 보는 것이었던 시절이었으며 단성사, 국도극장 등의 극장 이름이 새겨져 있던 개봉 영화 포스터와 몇 안되는 영화잡지, 비디오대여점에 비치된 소책자 등을 통해서 영화에 대한 정보를 얻던 시절이기도 했습니다. TV 속 영화 안내 프로그램이라든지 두꺼운 뿔테 안경을 쓰고는 오늘밤 이 영화 놓치지 말라고 설명해주던 영화 평론가, 그리고 이어서 진행되는 토요명화, 주말의 명화는 영화팬들에게 상당한 위치를 차지했었죠. 지금 같으면 영화에 대한 정보를 실시간 인터넷으로 얻을 수 있지만 당시는 소수의 인물들에 의해서 영화에 대한 정보가 알음

독고구검: 절대무공이란 이름의 헛됨
90년대 초반 인터넷도 없던 그때 그 시절, 대학 도서관에서 학생들이 가장 많이 대출해간 도서 베스트10에 무협소설 영웅문 시리즈가 꼬박꼬박 포함되어 있곤 했었더랬습니다. 비단 대학생들만 영웅문을 열독한 것이 아니라 맨투맨 영어교재와 수학의 정석에 몰두해야 될 중고등학생들 역시도 영웅문 시리즈를 탐독하곤 했었으니 책 좀 읽는다는 남학생들은 곽정이며 황용이며 구양봉이며 황약사며 소용녀니 양과니 하는 영웅문 속 캐릭터를 줄줄 읊어대곤 했었고 야간학습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버스 속 라디오에선 영웅문 시리즈를 펴냈던 고려원에서 출간한 무협소설 광고가 흘러나오곤 했었답니다. 요즘으로 따지면 반지의 제왕 시리즈나 해리 포터 시리즈 못지 않은 열풍이었던 셈이지만 그때 그 시절의 출판계 풍습은 지금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