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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경주

겨울 경주

한량|2013년 7월 6일

첨성대와 슈만과 클라라 그리고 경주 향교에서.

동네여행

동네여행

한량|2013년 5월 8일

알람 없이 눈이 떠진 아침. 시계를 보니 무려 다섯시 오십 오분. 몇 분 차이도 안 나건만, 다섯시 대의 기상이라니 뭔가 다르게 느껴진다. 지나치게 바른 느낌이다. 물을 끓여 커피를 내리고 오렌지를 깐다. 홀로 식탁에 앉아 아침을 보낸다. 이런 하루하루가 모인 요즘. 그 요즘의 사진을 들여다보니 죄다 동네 근처다. 이 날은 아침 일찍 밥 먹고 창덕궁 후원에 갔다. 선생님을 졸졸 따라 걸음을 옮기는 착한 학생들 되었다가, 마지막엔 슬그머니 뒤로 빠졌다. 나무그늘 아래 벤치에 앉아 쉬는데 세상에나 너구리를 보았다. 너구리는 유유자적하게 어슬렁어슬렁 흙길을 지나 언덕을 넘어갔다. 우오오워어! 너구리! 청설모나 까치나 멧새나 하는 것과는 또 다른 느낌이었다. 궁궐 관리 직원분이 우리에게 말씀해주신다. 원래는 밤에

<지슬>과 할머니, 엄마, 딸

<지슬>과 할머니, 엄마, 딸

한량|2013년 3월 22일

걸어갈 거리에 동네 영화관이 있다. 설렁탕 하나와 도가니탕 하나를 싹 비우고 영화관을 향해 걷는 밤. 목요일 밤. 어깨며 목덜미, 한 주 동안 노동한 근육들이 자기를 주장하고 있다. 이어 마른 기침을 몇 번 한다. 유난히 아픈 부분들을 돌아본다. 얘들아, 아직 금요일이 남아있어. 도닥도닥인다. 달과 나는 나란히 앉아 영화를 본다. 눈을 가리고 손가락 새로 훔쳐보아야 했던 장면도 있다. 징그러운 장면은 아니다. 징그러운 장면이 뭐 있나, 사람이 제일 징그럽지. 영화를 보는 내 어깨와 손목에 긴장이 들어간다. 돌아오는 길 자박자박 걸으며 감상을 나눈다. 집에 와 하루의 화장을 지우고 내일을 위한 샤워를 한다. 머리를 대강이나마 말리고서 그대로 잠자리에 든다. 토닥토닥이며 잘 자, 한 것 같은데 어느새 우리는 줄

아무렇지 않게 바다

아무렇지 않게 바다

한량|2013년 2월 14일

한밤의 고속버스를 타고 집에 내려간다. 이것저것 가득한 상을 받는다. 세배도 드린다. 세뱃돈도 받는다. 나는 한복입은 꼬맹이한테 몰래 다가가 형수라고 불러보라 이르고 만원을 쥐어준다. 함께 시장을 본다. 선물, 하고 아버님이 내민 봉지 안에는 석류가 들어있다. 손 끝을 발갛게 물들이며 석류를 먹는다. 모여앉아 앵그리버드 점수 내기를 한다. 어머님의 추임새에 우리는 깔깔 웃는다. 안녕히 주무세요 인사하고 자러갈 때도 아버님은 앵그리버드 삼매경이다. 아침에 일어나보니 같은 자세로 새들을 날리고 계신다. 점점 어른들이 귀여워진다. 우리 외갓집에 가서는 모포를 펼쳐놓고 여덟명이 둘러앉아 윷놀이 판을 벌린다. 몇 번의 판을 거치며 판돈이 올라간다. 꼼수와 야유가 횡행한다. 곧 군대에 갈 사촌동생에게 다들 덕담을 한다

그녀는 로,

그녀는 로,

한량|2013년 2월 7일

롤리타, 내 삶의 빛이요, 내 생명의 불꽃. 나의 죄, 나의 영혼. 롤ㅡ리ㅡ타. 세 번 입천장에서 이빨을 톡톡 치며 세 단계의 여행을 하는 혀끝. 롤. 리. 타. 책장에서 를 꺼내 다시 읽었다. 의자 깊숙히 엉덩이를 묻고서 험버트의 독백을 따라갔다. 행간에서 비죽비죽 튀어나오는 광기, 현란한 수사, 짧은 문장들 사이를 오가는 심리 묘사. 번역본임에도(그래서 그 많은 언어유희와 서양문학사를 바탕으로 한 배경지식을 놓치면서도) 험버트의 여정에 쉽게 말려들었다. 그러자 영화가 보고 싶어졌다. 늦은 밤, 나는 혼자 거실에 앉아 벽을 가득 메우는 옛 필름을 한참 보았다. 험버트가 살아온 삶이 많이 생략되어 있어 애너밸에서 롤리타로 이어지는 개연성이 조금 부족하지 않나. 험버트에게 롤리타는 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