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s

167 posts
쿠바여행 네번째, 트리니다드에서

쿠바여행 네번째, 트리니다드에서

한량|2013년 8월 21일

트리니다드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도시이다. 스페인 식민지 시절의 건물과 길들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어서이다. 야트막한 언덕배기의 길들은 그때 그시절의 돌길이다. 길의 폭은 제법 널찍하다. 그 길 위로 아무렇지 않게 말들이 뚜벅뚜벅 걷는다. 언덕에는 마을의 중심지답게 너른 광장과 교회가 있다. 그리고 우리가 자주 가던 언덕 위의 레스토랑. 내가 지쳐 널부러져 있는 사이, 달이 동네 한바퀴 탐험을 마치고서 알아놓은 곳이었다. 모든 문들은 길가를 향해 활짝 열려있고, 그 사이로 음악소리가 요란하다. 젋은 밴드가 신나는 연주를 한다. 구석에 엉덩이 붙이고 앉아 메뉴를 들여다본다. 그리고 샌드위치. 감탄에 감탄을 하며 먹는다. 저기, 아바나에서 우리가 먹은 건 뭐지? 통탄이 밀려온다. 우리는 맥주도,

쿠바여행 세번째, 혁명의 자욱

쿠바여행 세번째, 혁명의 자욱

한량|2013년 8월 18일

여행을 준비하며 몇 권의 쿠바 여행서적을 읽었다. 좌우로 길게 펼쳐진 섬의 지도에서 낯선 도시의 지명들을 짚어보았다. 어디 어디를 가 볼까. 환전은 어떻게 할까. 숙소는 어떻게 구할까. 이런 기본적인 준비 외에 더 필요한 것이 있었으니, 그것은 역사 공부였다. 근현대사의 기록들과 정치 지형에 대한 이해가 무엇보다 가장 필요했다. 거칠게 이야기 해보자. A국의 지배를 오래토록 받아온 이 나라에 독립의 바람이 불었다. 독립을 일궈내려는 순간 지켜보던 B국이 A국에 전쟁을 건다. 자국의 함대를 침몰시키면서까지 빌미를 만든 전쟁에서 B국이 승리한다. 고로 지배 체제가 바뀐다. B국은 이 나라에 어용 정부를 세운다. 신생 정부는 B국의 비호 아래 승승장구한다. 물론 소수의 지배 계급을 제외한 모두는 고통 받는다.

쿠바여행 두번째, 혁명광장과 말레꼰

쿠바여행 두번째, 혁명광장과 말레꼰

한량|2013년 8월 15일

아바나의 차들은 늘 반짝거렸다. 알록달록한 색 위로 언제나 볕이 어른거렸다. 여러번 덧바른 칠과, 고심해 맞춰 끼운 타이어들. 에어컨을 기대할 수 없으니 늘 창문은 열려있고, 가끔은 문도 덜컹하고 열렸다. 열심히 달리는 중에도. 그럴 때면 손을 뻗어 문을 훽 잡아당겼다. 물론, 속도는 여전하다. 어느 곳에나 떠돌이 개들이 많았다. 대부분은 얌전하고 조용한 편이어서 꼬리를 늘어뜨리고 살랑살랑 걸어다녔다. 저들끼리 싸우거나 하지도 않는 모양이었다. 개들은 한낮의 소요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그늘진 틈을 찾아 아무렇게나 몸을 구겼다. 생긴 것은 별반 다르지 않아도 사진 속 개들은 그냥 개가 아니다. 엄연한 경찰견들. 목에는 나름의 신분증까지 달았다. 경찰관들의 뒤를 쫓아 늠름하게 다니다가도 이렇게 누워 더위를 식히

쿠바여행 첫번째, 아바나 비에하

쿠바여행 첫번째, 아바나 비에하

한량|2013년 8월 15일

새벽녘 눈이 번쩍 뜨였다. 마지막 짐 점검을 하고 집을 나섰다. 공항버스는 정류장에 표기된 시간보다 늦게 왔다. 공항버스는 시간 칼 같이 지켜야 하는 거 아냐? 하자, 달이 말했다. 이제 우리가 가는 곳에서 이런 기다림은 아마 일상적인 일이 될 거야. 그랬다. 그건 일종의 예언이었다. 카운터에서 수화물을 부치고 보딩 패스를 받아들었다. 무려 석 장. 이제껏 우리가 가 본 곳 중에서 아마 제일 먼 곳. 하루를 꼬박 날아가야 했다. 입국 심사대를 거쳐 제일 먼저 한 것은 아침 먹기. 나는 고추기름 동동 뜬 순두부 국물을 떠먹으며 미리 그리워했다. 무엇을? 매콤짭짤한 국물을. 늘어선 면세점을 훅훅 지나쳤다. 가방도, 악세사리도, 향수도 사지 않은 우리가 멈춘 곳은 한국 기념품 판매코너. 그곳엔 한복 입은 인형

떠나기 전날 밤

한량|2013년 7월 25일

지갑을 거꾸로 들고 탈탈 털었다. 몇 개의 신용카드와 체크카드, 지폐와 동전 몇 개. 포인트 적립 카드와 까페 스탬프가 찍힌 종이들. 죄다 꺼냈다. 그리고 카드 두 장만 챙겼다. 당분간은 별로 쓸 일이 없을 테니까. 항공권을 끊은 것은 이 월 무렵이었는데, 환전은 이틀 앞두고서야 했다. 환율 변동 추이를 살피다 막판에 올인! 이런 것은 물론 아니고, 그만큼 정신없이 복닥복닥 지내느라 그랬다. 시작이 반이란 말은 발권이 반이란 말과도 얼추 통하는 듯하다. 그 반만 믿고서 이제야 짐을 싼다. 이륙 열 두시간을 채 안 남기고서. 목베개를 사고, 컵라면 몇 개와 참치캔을 사온 어젯밤. 일단 펼쳐진 가방이 있어야 진척이 될 것 같아 캐리어를 찾기 시작했다. 근데 없다. 넣어둘 만한 곳을 뒤져봐도 없다. 그리 비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