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rk Ride of the Glasmo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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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43 posts아직 안죽었네 친구, 아직 안죽었어!
그의 이름을 처음 본 것은 1980년대 중반, 어떤 소년지의 영화 특수효과 소개 코너였습니다. 제가 그걸 한참동안 들여다본 이유는 스타워즈 시리즈의 멋진 기계와 탈것들 때문이었지만 그와 거의 동등한 비중으로 다루어진 영화가 이것 1984년작 "네버엔딩 스토리"였거든요. 처음 듣는 제목이었지만 자그마하게 소개된 사진들만으로도 충분히 매력적이었고 수년 뒤 영상을 직접 보고난 뒤에는 SF 일변도이던 제가 반해버린 첫 번째 판타지 영화가 되었습니다. 1990년대 할리우드식 액션 영화들의 틈바구니에서 1993년작 "사선에서"는 꽤 독특했습니다. 옛 서부극의 아저씨가 백발에 피곤한 얼굴로 뛰어다니고 ("더티 해리"를 보기 전이었습니다) 테러범(존 말코비치를 여기서 처음 보았습니다)은 분명 싸
렘브란트 하우스 - 어느 화가의 작업실
암스테르담의 미술관들 포스팅을 다 했겠다 시내 구경 사진들을 한참 정리하다보니 하나 빼먹은걸 뒤늦게 알아챘네요. 렘브란트(Rembrandt Harmenszoon van Rijn)의 집, 렘브란트 하우스(렘브란트하위스, Rembrandthuis) 박물관입니다. 렘브란트의 이야기는 마우리츠하위스 미술관과 암스테르담 국립미술관에서 조금씩 한데다 워낙 유명하기도 하므로 대충 얼버무리고(...), 렘브란트가 이 건물을 구입한건 1639년으로 그의 커리어가 정점으로 치달을 33살 무렵이었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땅값 비싸기로 유명한 암스테르담인데다 덩치도 커서 가격은 1만 3천 길더, 현재 한화로는 대략 13억 원쯤 된다네요. 렘브란트의 전성기를 열었다고 평가되는, 마우리츠하위스
썸머 필름을 타보니!?
일부 예외를 빼면, 일본 영화의 연극식 연출은 인도 영화의 춤과 노래만큼 당연하게 보인다. 오래전 구로사와 아키라나 오즈 야스지로의 작품들에서는 그런 연출이 진중하고 멋있었건만 언젠가부터는 호들갑스러운 오바 내지 철지난 구닥다리로 보이는건 현대 영화와 안맞는건지 아니면 요즘 감독들이 옛 거장들만큼 조화시킬 역량이 되지 않는건지 나로서는 알수 없으나 어쨌든 다소 오바스럽더라도 용인되는 장르가 있긴 했다. 코미디라던가 혹은 청춘물이라던가. 마츠모토 소우시의 "썸머 필름을 타고!"는 안심스럽게도 둘 모두에 해당하는 경우'였'다. 영화부 멤버이자 시대극 마니아인 여고생 '맨발'은 축제에서 상영할 영화 제작에 지원하지만 로맨틱 코미디를 표방하는 부내 인싸의 다른 기획안에 물을 먹고 의기소침
캔슬러의 귀환
왕년에 지하철 5호선의 끔찍한 소음에서 벗어나기 위해 소니의 염가형 유선 노이즈 캔슬러 NC750을 쓰게 되었다고 포스팅했던걸 여태 기억하는 분이 계실것 같지는 않지만~ 나름 쏠쏠한 맛이 있던 그 NC750을 오래 쓰지는 못했습니다. 반 년쯤 뒤 자동차 바퀴에 깔려 핸드폰(XZ1C)이 사망했고 급히 조달한 후속 XZ2C는 추세에 따라 3.5mm 단자를 삭제하면서 유선 제품들이 졸지에 도태된 거죠. 물론 그 뒤는 무선 타입의 WF-1000X 시리즈가 이었으되 애미없는 가격에 한번 웃어주고는 대륙의 실수 중 하나라는 QCY T1을 싼맛에 쓰고 있었습니다. 슬슬 다른걸 써보고 싶어도 뽑기운이 좋았는지 3년이 지나도록 잔고장 한 번이 없었으나 내구성과 별개로 배터리의 수명은 어쩔 도리 없던 차에
한산 단상
- 많은 분들이 언급한대로 김한민 감독은 전작 "명량"에서 지적된 부분을 극복하려고 애썼다. 그게 얼마나 효과를 거두었느냐를 떠나서 지적을 받아들이고 노력하는 자세는 칭찬하고 싶다. - 어차피 최민식의 재기용이 어려웠던 터에 이왕 이렇게 된거 청와대... 가 아니라 출연진을 전면 교체한 것도 괜찮은 수였다고 판단된다. 전작 이미지를 유지하면서도 일신한 느낌을 낸다. - "명량"과는 달라진 이순신이라는 캐릭터의 해석이 감독의 지도인지 박해일의 역량인지 몰라도 이 "한산"이 전작의 단점 극복을 넘어 차별화에 성공한 가장 돋보이는 지점이 아닌가 싶다. - 박해일과 함께 이 영화의 연기 삼대장이라면 원균의 손현주와 어영담의 안성기를 꼽겠다. 국가적 밉상을 소화한 손현주도 대단하지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