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ilm is Disea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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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셜 네트워크 (2010)
다시 봐도 는 완벽한 영화였다. 도 그렇고 데이빗 핀처의 이 두 작품은 완벽하다. 적어도 완벽해 보인다. 그 이유의 일부는 이 영화들이 결점을 생각할 틈을 거의 주지 않는다는 데 있을 것이다. 몇 십 년 뒤의 영화교과서엔 이 영화가 을 대체해 놓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비겁한 로버트 포드의 제시 제임스 암살 (2007)
질투가 된 동경, 배신이 된 야심. 이것은 내가 본 가장 슬픈 영화에 속한다. 호주 출신 감독 앤드류 도미닉의 놀라운 데뷔작인 이 영화는 , 과 더불어 가장 우울한 서부의 애가이다. 서부극은 기본적으로 어떤 상실감과 우수를 안고 가는데, 이미 끝나고 없는 시대이기 때문이다. 이 영화는 미국에서 마크 트웨인만큼 유명한 전설적인 의적 제시 제임스 말년의 이야기, 그를 배신하여 쏘아죽인 스무 살 청년 로버트 포드의 비극을 다룬다. 영화는 제시 제임스가 죽음을 맞이한 34세가 된 무렵부터 시작한다. 제시 제임스는 형 프랭크 제임스와 함께 열차강도 짓을 계속하지만, 초창기 멤버들은 감옥에 가 있는 탓에 법망을 피해 되는 대로 근방의 양아치들을 모아 일을 해

영화비평가 앤드류 새리스 타계
"영화에서 남녀의 대화 장면보다 더 큰 스펙터클은 없다." - 을 비평한 글에서 Andrew Sarris (1928-2012)

후궁 : 제왕의 첩 (2012)
초중반부 편집과 스토리텔링에 심각한 결함이 있다. 달려오느라 숨이 찬 전령(傳令)이 헉헉대며 이야기를 횡설수설하듯, 관객을 진득이 이입시키지 못하고 성급하게 필요한 정보를 마구 대충 던지기만 하는데 관객이 포수가 아닌 이상 받아먹지 못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나같이 머리나쁘고 둔한 관객이라면 더더욱!). 현대적인 편집 방식이랍시고 무턱대고 서걱서걱 필름을 자르기만 하면 다인 줄 아는, 무엇을 보여주어야 하며 생략해야 할지 모르며 스토리텔링의 기본적인 소통 방식도 익히지 못한 미숙한 영화라 생각했다. 하지만 영화는 중반부터 제 페이스를 찾으며 비로소 흥미진진해지기 시작한다. 문득 나는 초중반부의 결함이 감독의 미숙함이라기보다(물론 그에 대한 책임도 부정할 수 없겠으나) 필시 상영시간에 대한 외부로부터의 압박
마틴 스코세이지의 <뉴욕 뉴욕>(New York, New York,1977)
마틴 스코세이지의 1977년 작 은, (김영진 평론가의 표현을 빌리면) '재즈 시대에 대한 따뜻한 엘레지와 파멸한 사랑의 연대기를 묶은 부조화로 흥행에서 재난을 맞은' 스코세이지 최대의 실패작으로 평가받는 작품이지만, 여기 이 시퀀스만큼은 대단하다. 흔히 스코세이지 작품은 그 현란하고 강렬한 연출로 잘 알려져 있지만, 그는 또한 배우들을 진정 좋아하고 배우의 연기를 지켜보기를 사랑하며 배우를 신뢰할 줄 아는 감독이었다. 라이자 미넬리가 폭발적인 가창력으로 주제가를 부르는 이 클라이맥스 장면의 연출을 보라. 여기서 그는 최대한 연출 개입을 자제한다. 그러면서 장면의 주도권을 노래를 부르는 라이자 미넬리와 음악 자체에 맡긴다. 마치 멀찍이 떨어진 채 배우가 빛을 발하는 순간을 우리 관
![[Spoiler] 점프 신작 '공주님 고문 시간입니다' 원작자에 '우공못' 작가 그림. '시간정지용사' 또다른 플레이어? '다음에 오는 만화 대상' 운영 잡지 폐간](https://img.zoomtrend.com/2026/06/07/1780881297-ECA090ED948426-28EC95A0EB8B88EBA980EC8B9CEAB7B8EB8490.jpeg)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