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사이』

장난감.

By  | 2017년 11월 5일 | 
장난감.
영화 <캐롤>에서, 움직이는 장난감 기차 앞에 서있던 케이트 블란쳇이 루니 마라에게 다가와 자신의 딸 사진을 보여준다. "이 나이 때에 무엇을 갖고 싶었어요?"라고 묻자 루니 마라는 어렵지 않게 대답한다. "기차 세트요." 순간 내가 블란쳇의 딸이 될 수 있다면! 하고 바랐다. 움직이는 장난감은 늘 그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고 나는 영락없이 시선을 빼앗긴다. 버즈 칼리파의 126층 전망대까지 초고속을 자랑하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오르는데도 언제 문이 열릴까 하는 생각뿐이었다. 어른도 체면을 내던지고 감동할 수 있는 장난감 코너에 입장한다는 기대 비슷한 걸까. 먼저 온 관광객들을 좇아 유리벽에 붙으면 모래바람이 점점이 덮인 시내가 가득 들어찼다. 디디고 선 곳을 중심으로 여기저기 고층 빌딩을 짓는

루체른 호수.

By  | 2017년 11월 5일 | 
루체른 호수.
여행하는 동안 다행히 비를 맞는 일은 없었다. 거의 매일 이어지는 맑은 날들에 이런 운을 대체 어느 구석에서 챙겨갖고 나왔지, 실없는 생각을 했다. 루체른 호수 위의 쾌청한 날씨도 정말 좋았다. 동화 같은 풍경.

새벽의 호텔 옆 철길.

By  | 2017년 11월 10일 | 
새벽의 호텔 옆 철길.
단잠을 잤다. 씻고 외출복을 입고 짐을 싸고, 느긋하게 움직여도 시간이 넉넉했다. 유럽의 아침이 한국보다 늦는 건 꽤 좋은 일이었다. 매트리스를 뭉개고 뭉개다 일어나도 새벽 4시였다. 베란다로 나가 테이블에 카메라를 얹고 30분 가량을 앉아 있었다. 왼쪽으로 오른쪽으로 가지각색의 열차가 지나갔다. 급행으로 스쳐 가기도, 잠시 역에 들르기도, 조금 오래 서 있기도 했다. 승객이 들어찬 칸도 있고 텅텅 빈 칸도 있었다. 그렇지만 이 역에서 타고 내리는 사람은 없었다. 색들만 점점 흩어지더니 곧 날이 밝았다. 아침을 먹으러 식당으로 내려갔다. 걷는 그림자 하나 없는 플랫폼과 끄트머리의 환한 개찰구와 짙은 구름이 좋았다. 가로등이 뿜는 녹색 광선, 검푸른 색의 하늘, 군데군데 들어찬 어둠과 그 어둠에 물든 야

진짜와 가짜.

By  | 2017년 11월 9일 | 
진짜와 가짜.
리기산에 오르는 산악 열차를 타기 위해 비츠나우역에 갔다. 출발 시간이 약간 남아 호숫가를 산책하는데, 기둥 위에 선 갈매기 한 마리가 보였다. 딱 붙인 발을 움직이지 않은 채 가끔 고개만 돌리는 작은 새. 사람이 가까이 다가오든 말든 '어쩌란 말이냐. 사진이나 찍고 가라.' 하는 듯했다. 자세만은 이 땅의 주인이었다. 비츠나우역의 벤치에 앉아 있던 할아버지. 여행을 떠나기 전에도, 여행 중에도 단단히 들어둔 말은 '조각상 흉내 내는 행위 예술가들을 조심해라.'였다. 파리지옥을 닮은 듯, 흥미로워 하는 관광객에게 손을 내밀어 잡고는 원하는 액수의 돈을 내놓기 전까지 놓아주지 않는다고 한다. 멀리서 이 할아버지가 눈에 들어오자마자 나는 '이게 바로 그 위험한 순간'임을 깨닫고 경계했다. 그러나

피규어 이야기.

By  | 2017년 11월 5일 | 
피규어 이야기.
'주변 사람들은 여행 갈 때 캐릭터 피규어 같은 거 들고 가던데...' 관광지에서 함께 찍고, 피규어를 주체로도 찍고 하는 일들이 재미있어 보여서 나도 뭔가 챙길까 했지만 애초에 캐릭터 상품을 좋아하지 않으니 가져갈 아이가 없었다. 그래서 고민하다 집어든 작은 비틀. 네... 순전히 저 장면을 생각하고 챙긴 겁니다. 그렇게 한 장 담고 점퍼 주머니에 넣은 채 잊고 지내다 마지막 여행지인 베니스에서 불현듯 떠올라 또 한 장 찍어주었다. 무심한 주인 때문에 집 떠나 고생만 했네. 역시 뭐든 하던 사람이 해야 하는가 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