밝은 저녁 아홉시의 산책, 미디 운하 2013/06/03 전에도 한 번 다룬 적이 있지만, 내가 사는 이곳에는 길다란 운하가 흐른다. 지중해에서 출발해 대서양에까지 이르는 360km 길이의 운하. 세계 문화유산으로 지정된 현존하는 가장 아름다운 미디 운하(Canal du midi)가 나의 집 앞을 흐르고 있다. 한 겨울 이곳에 도착했을 때는 까마귀 둥지라도 있을 법한 앙상한 나무들 숲 사이로 칙칙한 물이 흐르던 그곳을 동네 물나쁜 하천 정도로만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게 세계 문화유산 씩이나 되는 수백 킬로미터짜리 운하일 줄이야. 시간이 흘러 날이 따땃한 5월이 되었을 무렵에는 앙상했던 플라타너스가 손바닥만한 잎을 쩍쩍 벌리고 녹색으로 뒤덮여있었다. 있는 줄도 몰랐던
찜통 열차를 타고 마라케시(Marrakesh)로 향하다 2014/04/22 카사블랑카의 기차역에서 잠깐 고민을 하긴 했지만, 이내 미련 없이 마라케시행 열차에 올랐다. 모로코에 드디어 오고 말았다는 뿌듯함에 기쁘기는 했지만서도, 다 허물어져가는 도시에는 그다지 미련이 없었던 것 같다. 그러나 나중에 안 것이지만, 카사 블랑카가 모로코에서는 그나마 발전된 곳이었을 줄이야. 사실 나중까지도 아니고, 마라케시로 가는 기차에서부터 벌써 그랬다. 6명이 꾸역꾸역 한 칸에 밀어넣어졌는데, 그 더운 날 냉방도 안해줘서 바지가 땀으로 축축히 젖기 시작했고, 히잡까지 둘러쓴 여자들 얼굴에 땀이 송골송골 맺히는 것도 보는 것만으로 고역이었다. 그나마 위안이 있었다면 2등석 티켓인 주제에 1등석에 탔었다는 것이
아침 일곱시, 카사블랑카에 도착했다. 2013/04/22 모로코로 들어가는 가장 가깝고 가장 싼 비행기는 파리에서의 새벽 다섯시 비행기였다. 샤를 드골 공항에 밤 11시에 도착해 새벽 비행기를 기다리며 공항 노숙을 했고, 충전기 코드를 꽂았다가 경비한테 프랑스어로 욕을 먹으며 맨바닥을 견뎌야 했다. 돈의 위대함을 느끼는 순간은 대게 여행의 시간들이다. 맨바닥과 팔걸이가 불편한 공항 의자를 전전하다가 겨우 5시에 비행기에 올랐는데, 푹신한 의자에도 앉았겠다 푹 잠을 자야할 그 때에 번쩍 정신이 들고야 말았다. 내가 무슨 짓을 저지른 거지 싶은 긴장감이 파르르 온몸에 퍼졌다. 여행은 많은 것을 미화하는데 만용도 그 중 하나인 것 같다. 혼자 여행을 자주 해보았다는 겁 없는 자신감 하나로 비행기 표를,
마라케시의 밤, 야시장의 도시 2013/04/22 마라케시는 낮은 괴롭다. 황무지의 찌는 듯한 더위에, 온갖 사기꾼과 호객꾼들이 한 걸음마다 열 명은 들러 붙는다. 광장 앞의 8차선 도로에선 승합차와 트럭, 자전거, 오토바이, 마차와 유모차까지 중앙선 없이 섞여 달리며 끊임 없는 클락션 소리와 먼지를 뿜어낸다. 내가 묵었던 Hostel의 내부는 늘어지기 딱 좋은 소파들로 곳곳이 덮여있었는데, 얼마 안 가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왜 도시 곳곳에 널린 오렌지 주스 노점들이 낮 종일 믹서기를 멈추지 못하는지도. 무더운 더위와 소음을 눕기 딱 좋은 소파와 오렌지 주스를 방패 삼아 버텨내는 것이다. 바로 마라케시의 밤을 위해서. 마라케시는 밤의 도시, 야시장의 도시이고 마라케시의 낮은 밤을 기다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