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랙코미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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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8 posts살인광 시대 Monsieur Verdoux (1947)
'유나이티드 아티스츠' 설립 후 [모던 타임즈]를 시작으로 한 작가주의적 장편 필모들을 하나씩 쌓는 동안 채플린은, 친구은 더글라스 페어뱅크스의 죽음, 마지막 아내 이외에 유일하게 신뢰했던 폴렛 고다드와의 이혼, 다른 전처들과의 끊임없는 소송, 무성영화 시대가 저물며 이어지는 동료들의 퇴장, 공산주의자 혐의 등을 겪게 된다. 그렇게 쌓인 10년이 로맨틱하고 따뜻했던 광대를 냉소주의자로 만들고야 만 것일까. 주식경제 몰락으로 굶주리고 곤두선 당대 사회상이 반영되고 채플린은 살인마 역을 맡는다. 그냥 사람을 죽이게 되는 것도 아니고 혼빙 연쇄 살인마 역이다. 전작에서 방랑자 캐릭터와의 이별을 선언했다고 한들, 이렇게까지 정반대로 돌아서야만 했을까. 이미 [위대한 독재자]로 충분히 세상에 밉보인 상태에
네트워크 Network (1976)
50년대, 텔레비전이 널리 보급된 이후 가정에서의 일상은 경천동지하게 패러다임이 바뀌고 만다. 이제 불특정 다수의 사람들이 같은 시간에 같은 그림을 보면서 같이 울고 웃게 되고야 만 것이다. 90년대 인터넷 보급도 그 변화에는 비할 바가 못 될 것이다. 그렇게 텔레비전은 단지 매체로서 화려하게 등장했을 뿐 아니라 매체를 소비하는 사람들의 삶을 뒤집어 놓았다. 장 보드리아르가 "시뮐라시옹" 이론을 통해 경고한 현상을 실제로 세상에 구현한 것이 바로 텔레비전. 텔레비전은 실제 삶을 기록해 보여주는 대신 어떠한 "경향"을 인위적으로 재구성해 대중에게 보여주고, 시청자는 그것들 받아들여 실제 삶에 반영하게 된다. 미디어가 삶을 반영하는 게 아니라 인간이 미디어를 흉내내는 현상, 가짜가 실체를 대체하는 상황
메이햄, 2017
<28일 후>와 의 그럴듯한 이종교배. 좁은 회사 건물로 공간을 한정지어 놓고 거기에 분노 바이러스를 풀어 거시적으로는 자본주의에 대한 비판을, 미시적으로는 회사 및 사회 생활에 대한 관객들의 공감을 이끌어 내겠다는 선포. 뭐, 둘 다 어느 정도는 조금씩 해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잘못된 점. 영화 전반에 스며든 막나가는 광기 컨셉이 아무리 봐도 가짜 같다는 것. 이것은 저예산의 제작비 때문이기도 하고, 자기 필요할 때만 작위적으로 변모하는 각본 때문이기도 하다. 아무리 봐도 뒷북 치는 것처럼 느껴지는 자본주의에 대한 비판. 그럼에도 이는 아직까지 유효하다. 하청에 하청으로 돌아가 책임을 기피하려드는 이 사회의 시스템, 사람 보다 기업이 더 중요하다 여기는 이 사회의
우연이 필연이 되는 순간
대낮에 도심의 통근 전철이 선로상에서 화물 열차와 충돌을 일으킬 확률은 얼마인가? 피고인에게 불리한 증언을 하기로 예정된 증인이 하필 그 전철에 타고있을 확률은 얼마인가? 사고 열차의 부품을 취급하는 피고인의 동생이 해당 사건에 관계되었을 확률은 얼마인가? 사고 직전 열차에서 내려 CCTV에 잡힌 매우 닮은 얼굴이 그 동생이 아닐 확률은 얼마인가? 이렇게 매우 낮은 확률의 우연이 계속 겹쳐 일어났을때 우리는 이것을 필연이라 부른다. 그리고 필연적인 사건에는 어떠한 인과 관계나 논리적 법칙 혹은 의도가 들어있을거라 본다. 할아버지에게 크리스마스 선물로 자전거를 사달라고 부탁한 에스토니아 탈린의 한 소녀가 그 부탁으로 인해 덴마크의 코펜하겐에서 이런 피바람이 불 줄은 꿈에도 상상이



